#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3화
사무실로 돌아간 유현을 반겨 준 것은 어느덧 돌아온 강혜림과 권지아였다.
각자 사무실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둘을 보며 유현이 물었다.
“어땠나요? 두 분이 함께 다녀오신 건?”
오늘 권지아와 강혜림은 단둘이서 사상세계에 다녀왔다.
유현이 없어서 서재를 개방하는 일도 없는지라 성령들의 후원을 받지 못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유현이 둘을 함께 묶어서 움직이게 만든 것은 포인트를 벌기 위함이 아닌, 서로의 협동심을 위해서였다.
“별문제 없었다.”
“무난하게 끝냈어요.”
유현도 딱히 둘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번에는 사상세계를 클리어 목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팀워크에 감은 잡으셨나요?”
“그렇다.”
“아, 네. 뭐. 그렇죠?”
당당하게 대답하는 권지아와 다르게, 묘하게 대답을 망설이는 강혜림.
둘이 오늘 다녀온 사상세계는 우르클라의 오크 부락이었다. 인간형 몬스터인 오크는 강건한 육체를 지닌 환상체로서 어지간한 하급 컬렉터는 실력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상대하기 벅찬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전투 종족인 오크들은 바꿔 말하면 컬렉터들에게 실전의 경험치를 가장 잘 주는 쪽에 속했다. 권지아나 강혜림이야 이미 그런 것은 다 완성이 된 상태였지만, 혼자서 싸우는 것과 둘이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은 그거대로 다른 법이었다.
유현은 적당히 서로의 합을 맞추라는 의미에서 둘을 보냈는데, 어째 돌아오는 반응이 서로 다르다.
“무슨 문제 있었습니까?”
유현이 강혜림을 보며 묻자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시선을 돌려 권지아를 보니, 그녀는 정말 순수하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흐음. 둘이 싸운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저런 반응이라는 것은 강혜림이 권지아를 아직 어색하게 여긴다는 소리였다.
함께 싸워야 할 동료를 어색하기 여기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권지아는 강혜림을 좋게 보고 있다는 것 정도? 전생에 검후라는 타이틀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 영향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반응을 보면 그래도 나름 잘 싸우다 온 것 같고.’
강혜림이 권지아를 아직 어려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둘은 오크 군락에서 서로 무난하게 합을 맞춰 가며 싸웠다.
강혜림은 마음속으로 권지아를 완전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그녀의 몸은 검을 쥔 손은 권지아에 맞춰서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다만, 그 사실까지 완전하게 알 리가 없는 유현은 조금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 부분은 따로 셀린에게 들어야겠군.’
유현이 권지아와 강혜림 둘을 따로 보낸 이유에는 셀린의 존재가 컸다.
유현의 업무를 보조해 주는 셀린은 유현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유능했다. 자료를 찾아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제대로 정리된 자료를 건네줬고, 혼성계나 천체주식회사에 대한 정보도 빠삭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신의 서재 권한을 일부 양도한 거고, 그 점을 이용해서 권지아와 강혜림이 잘하는지 지켜보라고 시킨 것이었다.
“자. 두 분도 오늘 고생했는데, 우선 전할 말이 있습니다.”
유현은 이 부분에 대해서 가볍게 넘기며 자신이 오늘 겪었던 일을 둘에게 설명해 줬다.
황혼의 장막이 몰래 숨겨 놓은 사상세계가 있으며, 그 안쪽에는 상당한 자원이 내장되어 있어 황혼의 장막은 그것을 이용해서 모종의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둘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녀석들…….”
황혼의 장막에 대해서 알고 있는 권지아는 설마 이런 짓을 저지를 줄 몰랐다며 심각한 표정을.
“그거 진짜예요?”
아직 일반적인 상식이 남아 있는 강혜림은 유현의 말의 진위 여부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만히 앉아서 셋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백서련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유현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쉽게 믿는 그녀였지만, 그 말에 처음으로 의심을 품을 정도로 지금 상황은 전혀 규격 외였다. 마치 영화나 대중 매체에서나 볼 법한 조직의 비밀이 현실에서 펼쳐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제가 굳이 거짓말로 여러분을 속일 일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중요한 건 바로 이겁니다. 저희가 과연 그것을 어떻게 빼앗아 먹을까?”
유현의 말에 결국 백서련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위험해요.”
“서련 씨.”
“지금 유현 씨가 하려는 짓은, 하나의 클랜을 완전히 적으로 되돌리는 짓이에요. 심지어 황혼의 장막 클랜이라니. 더욱 위험해요.”
백서련은 황혼의 장막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안다. 국내에는 다양한 클랜들이 존재하지만, 황혼의 장막처럼 위험한 구설수가 자주 나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소문이 났다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숨기려고 노력해도, 이쪽 업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유현을 말렸다.
“그쪽이 얼마나 악독한지는…….”
“서련 씨도 겪어 봐서 알고 있다는 겁니까?”
“…….”
유현의 통렬한 지적에 백서련은 입을 꾹 다물다가 이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긍에 권지아는 그럴 줄 알았다며 반응했지만, 강혜림은 달랐다.
“무, 무슨 일인데요? 서련이랑 황혼의 장막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거예요?”
“그건…….”
유현은 말을 하려다 망설였다. 이것은 백서련에게 있어서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의 상처다. 그것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는 것은 그녀에게 다시 상처를 안겨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현이 백서련에게 시선을 보냈다. 전적으로 그녀의 뜻에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하아.
백서련은 그 시선이 뜻하는 바를 알아내고, 무거운 한숨을 토했다.
“그렇죠.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유현 씨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지, 백서련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황혼의 장막 클랜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어찌 잊겠는가? 행복했던 그녀의 가정을 파멸로 몰고 간 자들인데.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권력은 그녀가 지닌 것보다 훨씬 더 강했고,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한둘 정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도망만 칠 수는 없으니까요.”
마음을 다잡은 백서련은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황혼의 장막 클랜은, 제 오빠의 원수예요.”
“…….”
권지아와 유현은 침묵을 유지하고, 강혜림만이 숨을 집어삼키는 가운데 백서련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들은 저희 오빠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사고사로 처리해서 오빠와 함께 동료들을 죽게 만들었어요. 그래 놓고, 오빠에게 죄를 뒤집어씌워서 모든 손해 배상액을 저희 집안에 떠넘겼죠.”
그리고 그녀에게 협박하듯이 말했다.
살고 싶다면, 입 다물고 조용히 살라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진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잔혹하게 그녀의 현실을 옭아매고 있는 진실에 백서련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위험해요. 자신들에게 거슬리면 무슨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겠죠. 이쪽 업계에서도 나쁜 소문이 퍼졌을 정도니, 실제로 들춰 보면 소문보다 훨씬 더 심각할 거예요. 그런 자들을 건드리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요.”
백서련은 주먹을 꼬옥 쥐었다.
“저는 지금 백화 매니지먼트가 정말로 소중해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제 동료예요. 그러니 부디, 위험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 잠깐만! 그럴수록 더욱 황혼의 장막을 용서할 수 없잖아! 서련이 네가 이렇게 빚더미에 안게 된 것도 그 사람들 탓이라고?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건데!”
“혜림 언니. 언니가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세상에는 안 되는 싸움도 있는 법이에요.”
힘없이 중얼거리는 백서련의 목소리에 강혜림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말한, 안 되는 싸움도 있다는 것은 강혜림의 심기를 가장 난폭하게 찌르는 말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려던 강혜림은 어깨를 붙잡는 손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현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마치, 여기는 자기에게 맡기라는 듯.
“서련 씨가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니까…….”
“그러니, 더더욱 이렇게 해야 합니다.”
“네? 지금, 그게 무슨…….”
“서련 씨가 저희를 소중한 동료라 여기듯, 저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 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서련 씨가 힘들게 지내는데,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무리죠. 당했다면 당한 만큼, 아니 당한 것 이상으로 되갚아 줘야 합니다.”
백서련이 뭐라고 반박하는 것보다도 유현이 그녀의 말을 가로채는 것이 더 빨랐다.
“그리고,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는 지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저희가 다른 클랜과의 충돌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저희를 내버려 두지 않겠죠. 어떤 방법으로든 방해를 하려고 들 겁니다. 결국, 서로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설사, 이쪽에서 숙이고 들어간다 해도 말이죠.”
부딪치는 것을 피하려고 하면, 이쪽이 고꾸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거기서 끝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방법은 오직 하나다. 둘 중 하나, 승자와 패자를 가르게끔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이다.
싸움을 건다면 받아 준다. 그리고 철저하게 밟아 준다.
그게 유현의 주장이었다.
“동감한다.”
권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현의 뜻에 동의했다.
그녀는 황혼의 장막 클랜이 얼마나 악독한 곳인지 알았다. 실제로 전생의 그녀와 가장 큰 마찰을 빚은 곳을 꼽자면 압도적인 지분을 지닌 곳이었다.
특히, 황혼의 장막이 사회의 암중에 무슨 짓을 꾸미는지 잘 아는 권지아는 그들을 반드시 치워야 할 사회적 암 덩어리라 간주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강혜림도 분노를 삭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백서련을 괴롭힌 황혼의 장막 클랜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정해진 싸움에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는 것은 그녀의 성향에 전혀 맞지 않았다.
두 명의 컬렉터와 한 명의 텔러가 싸우겠다고 말했다. 백화 매니지먼트의 대표인 백서련으로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저는…….”
“서련 씨.”
떨리는 백서련의 눈동자가 유현과 마주쳤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 차분한 시선이 백서련은 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그들이 위험한 것도,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만을 가지고 계속 겁을 집어먹은 채 살 수는 없어요.”
“그건…… 저도 알아요.”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별개죠. 제가 보기에는 서련 씨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백서련도 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이 계속 그녀를 괴롭혔다. 자신의 오빠를 죽이고 집안을 박살 내버린 그 증오스러운 녀석들에게 복수라는 감정조차 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드는 두려움은 기껏 키워 온 자신의 회사가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것.
그것이 백서련의 선택을 가로막고 있었다.
유현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꿰뚫고 있었다.
“서련 씨. 이것 하나만 확실하게 떠올리세요. 당신과 함께하는 저희는 고작 그런 녀석들에게 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요.”
이곳에는 검후가 있다. 미래의 일을 하는 회귀자가 있다. 그리고 한때는 인간이었던 텔러도 있다.
어디를 가도 한 명 찾기 힘든 자들이 무려 셋이나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정면에서 부딪치면 승산이 없어요.”
“그건 저희도 압니다.”
강혜림과 권지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지만, 아직 하나의 클랜에 대적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적어도 이쪽도 인원이 1~2명 정도 더 추가되고, 나머지가 시간을 두고 강해진다면 그때는 충분하겠지만.
“그러니, 지금 당장에는 계책을 세워야 하겠죠.”
“무슨 생각이 있나요?”
“방금 막 떠올랐습니다.”
유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상대방을 안심시키려는 그런 부드러운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적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품었을 때만 짓는 유현 특유의 잔혹한 미소였다.
백서련은 처음 그 미소를 봤을 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었다.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저 남자의 이면 아래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포악한 내면이 잠들어 있다고.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현의 저 웃음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백서련은 주먹을 꽉 쥐었던 손을 풀었다. 그래. 언제까지고 겁에 질려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이제 하나의 회사를 이끄는 대표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의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 용기와 함께,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황혼의 장막을 향한 분노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유현 씨.”
“네. 서련 씨.”
“한다면, 확실하게 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표의 승인까지 떨어졌겠다.
유현은 더는 거리낄 게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