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2화
사상세계 안쪽에 펼쳐진 것은 수정 동굴이었다.
오색찬란한 빛들이 은은하게 내부를 장식하는 동굴은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다양한 크기의 수정들이 곳곳에서 빛났다. 동굴 바닥을 타고 물줄기 하나가 흐르고 있었는데, 자체적으로 에메랄드빛을 내뿜고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특이한 빛을 뿜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장난 아니군.’
나는 고개를 들어 동굴 내부를 조심히 걸었다.
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피부에 닿는 공기가 쾌적하다. 조금 전까지 도시에 있다가 넘어와서 그런지 공기가 더욱 맑게 느껴졌다.
‘빛나는 수정은 그렇다 치고, 곳곳에 보이는 광물들…… 딱 봐도 돈값을 하게 생겼어.’
단순히 광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물이 깨끗해. 신비한 빛을 내는 것은, 이 동굴이 갖는 특유의 힘 때문인가? 꽤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분포해 있겠군. 게다가 곳곳에 보이는 식물들도 쉽게 찾기 힘든 것들이야. 저건 물푸레 약초인가? 나름 비싼 건데.’
일일이 돈이 될 만한 것을 억지로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눈에 밟혔다. 단순히 입구 부근만 가볍게 훑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눈이 황홀해질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초대형 노다지로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수정 동굴. 단순히 신기한 광석만 있는 게 아니라 약초까지 넘칠 정도로 있었다. 곳곳에 자라는 버섯들도 하나 같이 약재로 쓸 수 있는 귀중한 녀석들이다.
‘천장까지의 높이를 짐작건대 동굴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심지어 입구만 살펴도 이 정도로 돈벌이가 될 법한 것들이 가득하다는 건, 안쪽에는 더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겠지.’
과연. 이쯤 되면 왜 황혼의 장막 녀석들이 이곳을 쉽사리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부 몰래 이곳을 지키는 것도 이해했다. 이렇게 다양한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누구라도 욕심을 냈을 테니까.
황혼의 장막은 절대 이곳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아마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서라도 입을 막으리라.
‘놈들은 분명, 금고를 훔친 나를 찾기 위해 잔뜩 벼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내 정체를 숨긴 상황이라 황혼의 장막은 금고를 훔쳐 간 것이 나의 짓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특히 텔러인 내 소문이 퍼진 지금이라면 더더욱.
텔러란 그들과 별세계에 사는 존재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텔러가 조폭들의 사무실에 쳐들어가서 그들의 금고를 털 거라고 생각하겠는가?
방탕한 재벌 3세가 사실 악인을 벌하는 히어로라는 게 차라리 더 현실적일 거다.
‘백효야.’
나는 바깥에서 상황을 주시하는 백효를 ‘역 소환’한 뒤에 다시 내 앞으로 불러왔다.
신수의 존재는 이런 부분이 참 편하다. 계약을 맺은 이상 내가 어디에 있어도 나타날 수 있으니까.
부엉.
하늘을 날던 녀석은 동굴 안쪽의 화려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는지,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신기해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백효야. 저기 안쪽에 뭐가 있는지 한 번만 확인해 줄래?”
부엉.
녀석도 마침 궁금하던 차였는지, 별말 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동굴 안쪽으로 날아갔다.
동굴은 폭도 넓었지만, 천장까지의 높이는 거의 20m가 넘었다. 백효가 날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시야 공유에 들어갔다.
‘입구도 만만치 않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더욱 놀랍네.’
‘역시’라고 해야 할까?
동굴 안쪽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풍족한 부산물들을 품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약초들이 널렸고, 신비한 광물이 가득했다.
안쪽은 아직 황혼의 장막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았다.
파앗!
어느 순간 더 들어가니, 동굴 내부가 확 넓어지기까지 했다. 에메랄드빛 물길이 깎아지듯 하나의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폭포의 위에는 섬이 하나 있었는데, 섬 위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곳의 환상체인가?’
동굴 속 생명체라 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녀석들은 정령이었다. 몸이 물로 이루어진 환상체도 있었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생명체, 뿌리와 줄기로 이루어진 녀석도 있었다.
‘각각 대지, 물, 식물의 정령들인가?’
이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니, 환상체가 정령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백효는 섬 주위를 날아다니며 주변에 대한 것들을 더욱 세세하게 살폈다. 그러다 문득 백효와 공유하고 있는 내 시야에 수상한 것이 하나 스쳤다.
‘백효야 잠깐. 저 섬의 중앙 좀 확인해 줄래?’
부엉.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섬의 중앙, 그곳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시야를 더욱 키워 집중해서 살펴보니. 각자 흰색, 푸른색, 녹색으로 빛나는 돌조각들이었다.
얼핏 보면 지천으로 널린 수정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나는 그것의 진가를 놓치지 않았다.
‘자연석!’
자연석이란 자연의 기운이 풍족한 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이 축적되어 돌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뜻했다.
자연의 기운이 풍만한 곳에서, 사람의 새끼손가락 마디만 한 것이 하나 만들어지는 데만 무려 5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저 자연석은 아무리 적게 쳐도 어린아이의 주먹만 했다.
심지어 종류도 무려 3가지다. 이곳의 환경을 생각하면 확실히 납득이 갔다. 이곳의 환상체는 그 보기 드물다는 정령이었으니까.
‘이 귀한 것이 있다고?’
내 시선은 3개의 자연석에 빨려 들어가듯 고정됐다. 백효의 시선도 자연석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비록 새끼라 하더라도 녀석도 신수라서 저 돌이 갖는 힘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백효는 자기도 모르게 고도를 낮춰 자연석에 다가가고자 했지만, 그 순간 불청객이 하나 나타났다.
‘백효야 피해!’
내 외침과 동시에 백효가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 행동은 정답이었다. 만약에 백효가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그 가녀린 몸은 지면에 추락해 순식간에 피떡이 됐을 테니까.
화아악!
황급히 회피 기동에 들어가는 백효의 시야 속에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백효가 안전한 고도를 회복하고 나서야 녀석의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뱀?’
그냥 뱀도 아니다. 몸통은 나무의 줄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비늘로 추정되는 돌기는 새하얀 암석으로, 그리고 정수리부터 등을 타고 꼬리까지 물의 기운을 품은 지느러미 같은 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녀석은 잠시 백효를 노려보더니, 이내 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몸을 숙여 자연석 근처에 몸을 돌돌 말았다.
가만히 있으니 숲과 동화되어 있어서, 다가가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였다.
‘저것이 이곳 사상세계의 보스급 환상체인가?’
3가지 자연석의 기운을 머금은 거대한 뱀. 아니, 저쯤 되면, 그냥 용이 되기 직전의 이무기에 가까웠다.
녀석을 확인해 보니, 확실히 지구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다른 차원, 정확히는 판타지스러운 세계의 이야기가 사상세계로 구현된 것이리라.
‘백효야. 우선, 물러나자.’
부엉.
녀석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삼색 뱀을 한번 강하게 쏘아봤다. 조금 전 자신을 위협한 것에 대해서 적잖게 화가 난 것 같았다.
백효의 시야 공유를 통해서 나는 동굴의 입구부터 가장 깊은 안쪽까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히 구조만이 아니다. 어디에 어떤 약초가, 어디에는 어떤 수정이, 또 어디에는 어떤 광석이 있는지.
그것의 파악을 끝내는 순간, 내 시야에 다른 무언가가 펼쳐졌다.
[라플라스의 파편 활용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분석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해당 사상세계의 정보를 보여 줍니다.]
라플라스의 악마.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활용할지 은근 막막했던 녀석이 눈을 떴다.
‘역시, 발동 조건은 현재의 다양한 정보를 모으는 건가?’
라플라스의 악마는 가만히 있다고 해서 발동하지 않는다. 이게 파편이라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이 스킬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정보를 확인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 둬야 할 것.
즉 이 수정 동굴 사상세계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우선 이곳에 대해서 기본적인 정보는 취득해야 한다는 소리다.
직접 탐사하지 않는 이상 그런 기본 정보를 쌓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 기본적인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면?
그 결과물이 바로 내가 보는 세계였다.
[알로란의 수정 동굴.]
-사테란 세계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수정 동굴입니다. 이곳에 서식하는 거대한 뱀이 수호자로 머무는 곳으로,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공간입니다.
훗날 뱀이 존재의 격을 끌어올려 용으로 승천하게 되고, 그 여파로 일어난 지진으로 내부가 붕괴하어 더 이상은 그 잔재를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족함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설로 남아, 또 하나의 세계로 구현되었습니다.
사상세계 구성원: 정령(식물, 대지, 물)
사상세계 클리어 조건: 보스급 환상체의 토벌.
라플라스의 파편은 이곳이 과거에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어떤 환상체가 있고 또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이 무엇인지까지 전부 다 알려 줬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곳에서 획득할 수 있는 부산물의 종류까지 다양하게 알려 주는 것을 본 나는 막대한 정보량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다.
‘완전 공략집이나 다름없군.’
어느덧 내게 다가온 백효가 나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나는 녀석에게 수고했다며 부리 아래의 턱을 손가락으로 간질여 주었다.
‘놀랍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라플라스의 파편에 대해서 완전히 감을 잡을 수 있게 됐다.
‘기본적인 정보 몇 개를 주워 담으면, 그것을 알아서 분석해서 더욱 심화된 정보를 보여 주는 건가?’
심지어 정보는 내가 원하면 보여 주고 그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사라져 줬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조절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무엇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만 보인다는 것이 상당한 메리트였다.
‘이렇게 보면, 내가 지니고 있는 책을 보는 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생각해 보면 원래는 쓸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렇다는 것은 내 책을 보는 능력과 라플라스의 파편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라플라스의 힘으로 알아낼 수 있으려나?’
하지만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라도 자신의 근원을 파헤치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인지. 이에 대한 정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오늘 새로이 얻은 수확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혼의 장막이 이렇게 좋은 사상세계를 하나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이 안쪽에서 자라나는 부산물만 챙겨서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장에 풀리게 된다면 엄청난 값어치를 가지게 된다.
특히, 나의 관심을 계속 자극하는 것은 이곳의 보스급 환상체이자 수호자인 삼색 뱀이 지키고 있는 자연석이었다.
‘그 3개의 가치는 이곳에 있는 모든 부산물을 싹 다 끌어모아도 절대 비빌 수 없을 정도야.’
지구에서는 그 가치를 쉽게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차원 상점이라면 다르다.
차원 상점에 올리는 순간, 이것은 성령들조차 눈독을 들일 만한 물건이었다. 포인트로도 쉽게 환산하기 힘든 가치를 지닌 셈이다.
‘아직 황혼의 장막 녀석들은 이 안쪽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는 거 같고.’
흘러가는 상황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클랜인데, 녀석들이 몰래 사용하는 사상세계에 뭐가 있는 지까지 전부 알아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걸 어쩌면 좋겠냐는 건데.
‘협회나 정부에다가 대놓고 신고를 때려 버려?’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명, 신고하게 된다면 황혼의 장막 클랜에 크나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녀석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곳을 폐쇄해도 좋았고, 완전히 들켜서 벌금을 물고 세무 조사까지 한번 세게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먹을 것이 없단 말이지.’
적이 취하는 이득만 없애는 것은 하책이다.
그들이 이득을 취하는데, 거기에 몰래 끼어서 이쪽도 이득을 취하는 것은 중책이다.
진정으로 놈들을 엿 먹이려면, 녀석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해 손해를 보게 만들고, 이쪽은 중요한 것을 다 취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상책(上策)이다.
내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한 계획이 차근차근 구성되어 갔다.
‘때마침 무대에 오를 조연들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고. 무대도 구상이 끝났으니, 끝내주는 시나리오 하나만 있으면 되겠군.’
음. 이번 연극의 이름은 대충 이렇게 지으면 되겠다.
“황혼의 장막. 사상세계 영원히 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