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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10화 (11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10화

유현이 관조자의 방에서 셀린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권지아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사무실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오늘 있었던 싸움을 복기하고 있었다.

백서련은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보이지 않았고, 강혜림만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서 유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

“…….”

둘은 서로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아서 사무실은 고요했다. 둘 다 백화 매니지먼트에 소속이지만, 막상 권지아와 강혜림은 서로를 향한 동료 의식이 별로 없었다.

그게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딘가 서먹하고 불편한 사이였다.

권지아는 타인이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적응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긴말하지 않고, 이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강혜림은 그러지 못했다.

‘……불편해.’

그녀는 권지아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숨이 턱 하니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권지아와 서먹한 관계라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인지하지 못했다.

‘바깥에라도 나가 보고 싶지만, 그러면 귀찮은 일이 생길 테고.’

목을 슬쩍 빼서 창밖을 힐끔 본 강혜림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기자들은 그녀의 취재를 위해 바깥에서 24시간 내내 대기 중이었다. 유현이 사무실 입구 근처에 각인을 새기고 창문에도 새긴 덕분에 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도, 이곳의 일이 밖으로 세어 나가는 일도 없지만.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 하더라도 친하지 않은 사람과 단둘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검이네.’

강혜림은 권지아의 옆에 비스듬히 놓인 [명도]를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그녀가 지닌 살라딘의 검보다 더 좋아 보이는 물건이었다. 도신에서 흐르는 예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기운이 달랐다.

그것이 최근 유현과 단둘이서 사상세계를 가서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것임을 깨닫고 괜히 침울해졌다.

강혜림은 괜한 부러움을 씻어 내기 위해 [명도]에서 시선을 뗐다.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싸움을 집중해서 복기하고 있는 권지아의 얼굴을 향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꾸미지 않아서 꾀죄죄했던 외모는 조금만 손을 봤을 뿐인데도 물기를 머금은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게 피어나 있었다.

‘예뻐…….’

강혜림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감탄했다. 아직 자존감이 확립되지 않은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혜림에게 연기도 없이 언제나 당당한 권지아의 태도는 롤 모델로 삼아도 충분할 정도였다.

고작 흉내나 내는 자신과는 확연히 다른, 타고난 카리스마.

‘얼굴도 예쁘고, 카리스마도 있고. 역시 유현 씨에게는 저런 컬렉터가 필요했던 걸까?’

강혜림은 괜히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첫 번째일 텐데도, 두 번째인 권지아에게 보기 좋게 밀려났다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버려지는 걸까? 나는 유현 씨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그저 받기만 할 뿐, 아무것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강혜림은 계속 곁눈질로 권지아를 살폈다. 들키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시선이 느껴지는군.’

싸움을 복기하던 권지아는 반대로 강혜림의 시선을 느끼고는 반응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이런 침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혜림의 눈빛을 한번 인지하는 순간, 그 뒤로는 도저히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뭐지? 왜 자꾸 나를 보는 거지?’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이쪽을 향하는 시선이 거두어지는 것도 아닌지라, 권지아는 처음으로 약간이지만 ‘불편하다’라는 것을 느꼈다.

괜히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권지아는 옆에 놔둔 명도를 손에 쥐고서, 손수건을 꺼내 그것을 손질하듯 닦았다.

앞으로 함께할 자신의 애병을 손질하는 것은 회귀자가 된 이후로 생긴 그녀의 오랜 취미이자 버릇이었다. 애초에 이것 말고 할 일이 없던 것이 크게 한몫했다.

‘뭐, 뭐지? 자기 이걸 얻었다고 자랑하는 건가?’

반면, 강혜림은 권지아의 그런 태도를 [명도]를 보란 듯이 자랑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녀의 눈동자의 떨림이 더욱 격해졌다. 강혜림의 시선 속 권지아가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비쳤다.

‘나, 나도.’

그녀는 황급히 자신의 애검인 [살라딘의 검]을 가져와 권지아처럼 손질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질 수 없다는 맞시위였지만, 그 모습을 슬쩍 살핀 권지아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역시 검후. 나와 같은 취미를 지닌 건가?’

강혜림은 권지아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훌륭한 컬렉터로 성장했다. 괜히 검후라는 이명이 붙은 게 아닐 정도로 그녀는 검을 잘 썼다.

‘듣자 하니, 척준경의 이야기를 지녔다고 했나? 그렇다면 검에 애착을 지닌 게 당연하겠군.’

권지아는 강혜림이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음?”

“으, 응?”

마치, 서로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빛.

둘은 자기도 모르게 동시에 그런 목소리를 냈다.

강혜림은 어색한지 시선을 피했지만, 이내 그녀는 여기서 물러나면 완전히 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권지아와 눈을 마주했다.

‘무, 무서워!’

[회귀자]의 특성을 지닌 권지아는 타인이 보기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뚝뚝하고 어딘가 날카로운 모습이 없잖아 있었다.

강혜림은 본인이 평소에 연기하는 그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자신은 결국 꾸며 낸 모습이고, 저쪽은 네츄럴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연스레 그녀의 카리스마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강혜림도 목숨을 걸고 싸워 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눈빛은 피하지는 않았다. 다만, 계속 마주 보기에는 그래서 자연스레 시선을 떨어뜨려 권지아의 손에 쥔 [명도]로 향했다.

권지아는 그 태도를 다르게 착각했다.

‘이 검에 흥미를 품는 건가?’

검후라고 하니 검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무기에도 관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권지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이렇게 타인과 무언가 연을 맺는다는 행위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먼 과거,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초창기의 회귀 때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다 잊어버린 뒤였고, 그 기억의 잔재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곤란하군.’

그래서 권지아는 여기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강혜림과 같은 매니지먼트 소속이 됐다. 좋든 싫든 둘은 동료였다. 무엇보다 강혜림은 이곳에서 그녀의 선배나 마찬가지.

권지아는 딱히 그녀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지라, 나름 관계의 호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그 녀석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려만.’

자연스레 유현을 떠올린 권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언제나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처리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만난 지 오래되지도 않은 유현을 먼저 떠올렸다는 사실에 그녀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렇게나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서 유현이 둘 사이를 윤활유처럼 부드럽게 끼어들어 사이를 완만하게 해 주는 게 적합했다.

하지만, 권지아의 감정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강유현을 떠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꽤나 당황한 상태였다.

흠칫!

‘뭐, 뭐지?! 기분이 나빴나?!’

반면 굳어진 권지아의 표정을 본 강혜림은 자기도 모르게 쭈뼛 얼어붙고 말았다.

‘여, 역시 너무 노려봤나? 너무 노골적이었나? 설마 째려본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권지아의 속마음을 모르는 강혜림은 그녀의 굳어진 표정이 자신 때문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대화를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둘이기에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오해가 쌓여 갔다.

권지아 또한 결과적으로 어색한 공기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강혜림은 명목상 이번 회차의 그녀의 선배다. 그리고 같이 일을 하는 동료기도 했다.

동료끼리는 친목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완만한 사이는 필요하다.

권지아의 판단은 그랬다.

“저기…….”

잠시 고민한 권지아는 대화의 물꼬를 틀 주제로 검을 꼽았다.

강혜림은 검후니까, 이 주제에 대해서 흥미를 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 검, 보고 싶은 건가?”

손에 쥔 [명도]를 내밀며 묻자 강혜림은 명도와 권지아를 번갈아 살피더니 당황했다.

‘뭐, 뭐지? 설마, 나한테 자랑이라도 하려는 건가?’

강혜림의 뇌 내 필터링을 통해, 권지아의 행동은 ‘훗. 어때? 내 검 좋지? 네 것보다 훨씬 더 좋을걸?’이라고 멋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검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 검을 보지 않겠냐고 뜬금없이 물었을 리가 없으니까.

강혜림은 고민했다.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어떻게 대꾸해야, 그래도 건방지지 않고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강혜림이 내민 선택은.

“바꿔서…… 볼래?”

나 또한 ‘내 검도 좋아!’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쥔 살라딘의 검을 내미는 것이었다.

“…….”

“…….”

둘은 서로의 칼을 교환해 손에 쥐게 됐다. 그 기묘한 교환식의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보고 있었으면 답답해 가슴을 치거나,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몰랐다.

살라딘의 검을 받아든 권지아는 강혜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검을 좋아하는 거였군.’

반대로 강혜림은 권지아를 경계했다.

‘무, 무서운 아이. 방심할 수 없겠어!’

그리고 때마침 유현이 관조자의 방에서 돌아왔다.

“어라? 두 분 뭐 하시는 겁니까?”

그는 서로 무기를 교환한 채, 오묘한 시선을 교환하는 권지아와 강혜림을 보며 물었다. 대체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지금 이 현상을 머릿속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둘은 그에 대해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고, 유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막상 입을 열기에는 분위기 자체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오해는 그렇게 더욱 깊어 갔다.

* * *

유현이 정체를 밝힌 뒤, 그의 이름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으로 부상했다.

컬렉터와 함께 움직이는 텔러. 심지어 사상세계에 들어가서 같이 등을 맞대고 싸우는 텔러라니.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초유의 존재였다.

‘에이. 그게 말이 돼?’

‘그런 텔러가 세상에 어디 있어.’

텔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컬렉터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치하고, 그들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이라고 말을 하니. 반신반의했던 사람들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강유현이라는 텔러의 소문은 순식간에 컬렉터들 전체로 퍼졌다.

특히 백화 매니지먼트의 움직임에 잔뜩 신경을 기울이고 있던 클랜들은 이번 정보를 접하고 상당히 난처해했다.

“뭐? 그 남자가 텔러였다고?”

“아니. 그럴 수가 있는 건가? 잠깐만. 그게 가능은 해?”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 모를 백화 매니지먼트 출신의 남자. 유현의 정체가 텔러임을 확인한 클랜의 사람들은 모두 이걸 어쩌면 좋을지 골머리를 감쌌다.

현재 컬렉터들에게 텔러의 존재는 그만큼 무게감이 컸다.

원래대로라면 백화 매니지먼트의 행동에 슬슬 무력으로 제재를 가하려고 했던 클랜들은 그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보다 텔러를 건드릴 수는 있나?’

텔러는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신들의 전령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연히 그들의 태도는 거만했고, 거기에 반감을 품는 사람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텔러는 제네시스의 가호를 지니고 있었고, 하계에서 어떠한 위협에도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현이 보여 주는 모습은 도저히 가호를 지닌 텔러의 그것이 아니었다.

“젠장! 그 텔러는 나를 직접 손으로 때렸다고!”

백서련이 소속되었던 한울 클랜의 전광석은 유현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직도 그때의 수치심과 고통이 잊히지 않았다.

밤중에 눈을 감기만 해도 그때의 일이 선명하게 떠올라, 전광석은 자기도 모르게 유현에게 맞았던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고 말았다.

“이런, 개 같은 텔러 자식……!”

전광석은 그때의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텔러한테 맞았다고 하소연을 한들, 누가 그걸 들어준단 말인가?

유현도 유현이지만, 최근 백화 매니지먼트가 승승장구하는 것도 배알이 꼴렸다.

그곳의 대표인 백서련은 한때이기는 했지만, 그의 밑에서 일을 하지 않았던가?

‘좀 예쁘게 봐줬더니, 기어오르기나 하고!’

전광석은 백서련에게 잘해 줬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인지 부조화를 일으킨 그는 백서련이 잘해 줬는데도 자신을 무시하고 깔봤다고 착각했다.

그는 백서련에게도 강렬한 적대감을 품었다.

‘그 연놈들을 어떻게 하지?’

이대로 두기에는 그 둘을 향한 그의 분노가 너무나도 강렬했다.

하지만,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한쪽은 매니지의 대표고, 다른 한쪽은 무려 텔러다.

‘어?’

그러다 문득, 전광석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텔러 그러고 보니, 나를 때렸었지.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야?’

유현이 가호를 지니고 있다면 구태여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나?

가호가 텔러를 보호해 주는 것은 맞지만, 반대로 텔러가 인간을 건드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가호를 지닌 텔러가 인간을 해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말이 가호지, 그것은 중계와 하계를 긋는 벽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벽이 없다는 것은?

‘그 텔러, 마음만 먹이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전광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부정의 뿌리는 서서히 그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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