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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07화 (10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07화

모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은 관객들의 뇌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사태는 순식간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비집고,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믿었던 사람에게 보기 좋게 배신당한 사람의 활화산 같은 분노. 그것이 임계점을 맞이해 폭발했다.

“쓰레기들!”

나를 욕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김지유를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저, 저저 쓰레기 같은! 할 짓이 없어서 누명을 씌워?!”

“어쩜 컬렉터가 저런 짓을 한담? 와. 진짜 같은 컬렉터라는 게 쪽팔린다.”

“저렇게 뻔뻔한 거 봐. 이거 한두 번 한 게 아닌 거 같은데?”

나를 향해 쏘아졌던 악담의 화살은 방향을 바꿔 김지유 패거리를 향했다.

그녀들은 지금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할 줄 모른 채,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변명의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이미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든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절망.

지금 그녀들의 머리 위에 떠 오르는 단 두 글자의 감정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몸을 잘게 떠는 그녀를 보며, 나는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니까 상대를 봐 가면서 덤볐어야지.’

나는 웃는 얼굴로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설마하니, 인간이 텔러를 성추행범으로 모함할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게 지금 한국 컬렉터들의 문화입니까?”

졸지에 김지유와 하나로 묶이게 되려 하자, 컬렉터들은 더욱 격렬하게 김지유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죽어 버려!”

“너희한테 컬렉터는커녕 인간이라 부르는 것도 아깝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멸시와 손가락질, 독을 품은 말들이 사방에 자욱한 안개처럼 퍼져 김지유 일행의 몸을 적셨다.

“다들 진정하세요! 그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최중모가 직접 나서서 어떻게든 조율하려 했지만, 이미 폭발해 버린 다수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

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이쪽을 향하는 김지유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녀에게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윙크해 줬다. 김지유는 얼굴이 탈색이라도 된 것마냥 하얗게 질렸다.

마음 같아서는 더 혼쭐을 내주고 싶었지만, 여기까지다.

“여러분들.”

내가 목을 가다듬고 말하자, 귀신같이 소란이 뚝 끊겼다. 그들은 처음부터 계속 나를 주시했다. 겉으로는 김지유를 욕하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곧바로 내게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내가 다시 조용해지자, 나는 마음 놓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설마, 텔러인 제가 이런 원색적인 모함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 말에 다시 사람들의 멈춘 분노에 기름이 끼얹어질 뻔했지만.

그들이 재차 김지유를 향해 욕을 내뱉는 것보다 내가 다음 말을 꺼내는 게 더 빨랐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뻔뻔하게 저분을 욕하시는 겁니까?”

“…….”

“…….”

확 꺾이는 변화구.

설마 내가 자신들을 지적할 줄 몰랐는지, 모인 사람들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조금 전 앞으로 나섰다 최중모에게 한 소리를 들은 컬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당신.”

“네, 네?”

“네. 당신. 조금 전, 이곳의 책임자인 최중모씨에게 왜 저 같은 범죄자를 두둔하냐고 했었죠?”

“네? 제가요? 저는…….”

“‘저기요. 지금 그 사람 편들어주는 겁니까? 그 사람이 성추행했다고 하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한 걸 저는 똑똑히 들었는데도?”

자신이 했던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게서 흘러나오자, 남자는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컬렉터들이 그를 질책하는 눈빛으로 쏘아봤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놈들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처음에 저를 향해 그랬죠. 범죄자. 성추행범. 꺼져라. 저는 텔러로 태어나서 그렇게 심한 욕을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정말로 놀랐죠. 그거 압니까? 진실이 밝혀진 이후, 저를 향한 사과의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는 거?”

“…….”

“…….”

“…….”

입이 열 개라도 어찌 할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있었다. 혹여 내가 자신을 지목할까 봐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피했다.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걸 원치 않는 자들의 소심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그들의 태도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는 그게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세상에 제 죄를 입증할 증거를 상대가 대는 것이 아닌, 저는 이미 죄인이고 제가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증거를 제가 대야 한다니요. 이게 하계의 법도입니까? 이게 당신들의 방식인가요?”

누구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건수 하나 잡았다고 우르르 몰려서 마녀사냥 하고, 뒤늦은 게 아니라고 밝혀지면 그때야 모르는 척, 아무것도 안 한 척 넘기는 게 여러분들의 방식입니까? 그래 놓고 본인은 타인의 악행을 지적하며 자못 정의로운 사람처럼 구는 겁니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고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본부는 넓었다. 하지만, 숨 쉬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한 협회 본부에 내 목소리가 퍼지기엔 충분했다.

“결국엔 당신들도 똑같습니다.”

자신들 또한 결국 가해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말해도 본인들은 모를 것이다. 아마 납득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도 없이 순간순간의 감정에만 휘둘리는 갈대다. 그러면서 자신이 절대적 정의라고 맹신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바람이 부는 갈대밭이었다.

“컬렉터 여러분들도 아실 테죠.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게 되면 그 이야기는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죠.”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며,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씩 둘러봤다.

누군가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자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지금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반성하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쟤는 뭔데 저런 말을 하느냐고 속마음으로 불만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당신들은 지금, 그 이야기의 힘을 함부로 낭비하며 애먼 사람을 망가뜨리려고 한 겁니다.”

나는 그들을 지적해서 탓하지 않았다.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딱 한마디만 해 주고 싶었다.

“컬렉터로서,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 * *

상황은 바로 종료됐다. 나는 곧바로 최중모에게 김지유를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전했다.

“정말 그걸로 되겠습니까?”

“뭐, 제가 더 하길 바라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건…….”

대답을 망설이는 최중모에게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 줬다.

“저는 중모 씨가 이번 일을 잘 처리해 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경비원에게 끌려 나가는 김지유를 슬쩍 보며 뒷말을 삼켰다. 그녀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이미, 그녀는 충분히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으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김지유는 자신의 죄가 탄로 나고 말았다. 소문은 이미 퍼졌을 테고, 그녀에게 속았던 사람들은 더욱 괘씸한 마음을 품고서 그녀를 매장하려 들 거다.

내가 오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어도, 할 놈들은 한다.

미래가 막힌 컬렉터의 말로란 비참하다. 그냥 악행의 벌을 받고 죽는 것보다, 성공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잔혹한 법이다.

“이번 일은…… 정말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니, 왜 중모 씨가 제게 사과를 합니까?”

“제 관할지 아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면 제가 해야겠죠.”

“저는 오히려 그쪽의 도움을 받았는데요?”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무고한 사람, 그게 텔러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니까요.”

“많이 변하셨네요.”

그래도 공익을 위해서 소수는 어떻게든 해도 좋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지금 와서는 상당히 바뀌었다. 내 지적에 최중모는 부끄러운지, 안경을 고쳐 쓰며 헛기침했다.

“다 유현 씨 덕분입니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을 떠들며 해산하는 컬렉터들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겠죠.”

깊은 한숨을 내쉰 그의 목소리는 연민에 잠겨 있었다.

“모든 사람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실제로 정의로운 사람은 극소수일 뿐, 그밖에 나머지는 자신이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져 삽니다.”

안타까움을 푸념하듯 중얼거리는 최중모의 말을 나는 잠자코 들었다.

“우리 모두가 타인을 볼 때 항상 이상적인 모습만 보려고 하죠. 저 사람은 응당 착해야 한다. 응당 정의로워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타인을 향한 저희의 우상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 놓고 그 사람이 도의적으로 살짝만 어긋나는 짓을 저지르면, 배신감에 치를 떨며 비난하기 바쁩니다.”

“…….”

“모두가 그럴 수는 없죠. 모두가 올바를 수 없습니다. 세상에 1등만 있을 수 없듯이, 결국 1등이 있다면 꼴등이 있고, 그 사이의 중간에 낀 평균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평균이 가장 많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마치, 이게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처럼 타인을 향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사실, 본인이야말로 그 기준을 가장 만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어와 이야기가 힘을 갖는 변화의 시대 이후에도 세상은 여전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항상 그래왔죠.”

최중모는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래도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

설마, 그가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줄 몰랐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중모를 다시 보게 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거.”

“그렇습니까.”

“결국, 저 부족하고 모자람이야말로 사람이라는 거죠.”

누가 모르겠는가. 텔러가 되었어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나다. 나는 모르는 게 아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사실 완벽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완벽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불완전한 존재니까.

때로는 헐뜯고, 때로는 흉보고, 때로는 질투심을 품고.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완전무결함을 찬미한다.

나는 완전하지 못하니까. 나는 깨끗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타인에게 완전함을 바라고 환상을 품는다.

그게 사람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며, 내가 구해야 할 세계의 구성원들이었다.

“그러니 미워하지 않습니다. 짜증은 나지만요.”

선과 악. 그 모든 것들이 혼용된 것이야말로 사람.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을 지닌 거겠지.

언제나 자기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생존을 갈구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것처럼.

‘그래. 그게 바로…… 사람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존재들.

어쩌면 성령들이 하계의 인간을 그토록 좋아하는 건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무결해진 자신들은 저렇게 될 수 없으니까.

그들의 이야기는 항상 길이 정해졌으니까.

그래서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보여 주자.

모두가 예측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이야기를.

내가 바라는 목표로 다가가기 위해.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 저한테 덤빈 사람까지 봐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이해해 주시길.”

어딘가 후련한 내 표정을 읽은 것일까?

최중모는 조심스러웠던 태도를 한 꺼풀 벗어던지고, 나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거, 참. 다행이네요.”

그 미소에 괜히 멋쩍어져서, 나 또한 그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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