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06화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란이 귀를 따갑게 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누가 성추행했다나 봐.”
“와, 진짜? 간도 크네. 컬렉터 협회 본부에서 그런 짓을 해?”
“그거 진짜야?”
“몰라. 다들 그렇다는데?”
주위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눈앞의 여성의 책을 확인했다. 칙칙한 어두운 갈색 책을 펼쳐 보니, 김지유라는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행동 동기까지 전부.
‘일면식도 없는 인간이 대체 왜 이런가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어?’
내가 잠자코 있는 사이, 어느덧 김지유의 주위로 그녀의 패거리가 나타났다. 이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한 조연들이었다.
“저희도 봤어요! 저 사람이 막 우리 지유 몸을 만진걸.”
“지유야. 우리 지유 어떡해. 울지 마. 응?”
“사과하세요!”
저쪽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니, 자연스레 나를 향하는 시선이 점차 부정적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야? 와, 진짜 쓰레기네. 그런 말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맑은 물에 잉크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리듯.
점점 분위기는 색에 물 들어갔다.
순식간에 나를 중심에 두고 하나의 무대가 완성됐다.
무대의 이름은 그래 무자비한 괴한과 비탄에 빠진 여인 정도가 어울릴까?
당연하게도, 여기서 괴한의 역할은 나였다.
[야. 야야.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아무래도 누명을 쓴 것 같은데?’
[누명? 네가? 아무것도 안 했잖아.]
‘물론, 나는 아무것도 안 했지.’
문제는 상대방이 내가 했다고 외치는 지금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고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협회 내부를 관리, 담당하는 경비원들이 나섰다.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경비 아저씨. 저기요, 저 사람! 저 사람 성추행범이에요!”
“그게 정말입니까?”
경비의 시선이 순식간에 유현의 모습을 훑었다. 그들의 눈빛에 혐오감이 일었다. 멀쩡한 청년이 왜 저러냐는 듯,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에게 나는 성추행범으로 낙인이 찍혀 가고 있었다.
“잠시 저희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잠깐!”
커피를 가지러 간 내가 돌아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권지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지금 벌어진 일을 확인하고 경비의 앞을 막아서며 내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제가 성추행을 했다더군요.”
“대체, 누가?”
권지아의 시선이 곧바로 김지유를 향했다. 나는 김지유의 책을 읽었기에 그녀가 지아 씨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사람이 누구인데, 그런 거지?”
그녀는 김지유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모르는 척이 아니다. 진짜 모르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회귀자다. 당연히 일반적인 사람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훨씬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움직이는 그녀에게 김지유의 존재란 기억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다.
“……!”
권지아의 그런 말을 들은 것일까. 우는 척하는 김지유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나를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험악하게 변했다.
인파 속 너머 누군가 소리쳤다.
“아니, 경비는 뭐 해? 어서, 체포하지 않고!”
그에 호응하듯, 여기저기서 억누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아! 저런 놈들은 아주 제대로 혼쭐이 나야 해!”
“어딜 협회 본부에서 그런 짓을! 어디 소속인지 밝혀내!”
“아주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해야 정신 차리겠지.”
이미 사람들의 시선에는 내가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처럼 비쳤을 거다.
간혹 몇몇 이성적인 사람이 조심스레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야. 너무 한쪽 의견만 듣는 거 아니야? 저 사람이 그랬다는 증거도 없잖아.”
“증거는 무슨 증거! 너도 저 사람 편이냐?”
“아, 아니. 그렇다는 건 아니고.”
하지만, 이미 흥분한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오히려 중립적인 의견을 낸 사람마저 같은 동료냐, 설마 범죄자에게 동조하는 거냐고 역으로 몰아세웠다.
그 같잖은 꼴들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 저놈이 웃어?”
“저 새끼가 미쳤나!”
“야야. 참아! 싸우면 큰일 난다고!”
곳곳에서 분을 참지 못한 몇 명이 내게 달려들려고 해서 주위에서 말리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권지아는 나를 불안한 얼굴로 올려다봤다.
“어쩔 생각이지? 어서, 무고를 증명해야…….”
“지아 씨. 지금 상황에서 제가 아니라고 한다 해서, 저들이 믿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내 대답에 권지아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도 알고 있는 거다. 이미, 저 사람들은 선동이 돼 버렸다는 것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보였다.
“물론, 저도 압니다. 그리고 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거고요.”
“시간을?”
그녀가 뭐라고 되묻기도 전에 소란을 들은 것인지, 협회 곳곳에서 일하던 관계자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관리자인 최중모, 그는 지금 벌어진 상황과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
“이 정도면 관객이 다 모인 것 같군요.”
나는 씨익 웃었다. 최중모 씨가 내 미소를 보더니,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아서일까?
주위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죽어!”
“꺼져 버려!”
욕설이 일방적으로 날아왔다.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고, 그것을 정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허리춤에 찬 백련을 꺼내, 힘을 줘 지면에 찍었다.
투웅!
검 끝에 실린 힘이 지면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언가를 부수려는 것이 아닌 지금의 소란을 일시적이나마 잠재우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만.”
내가 보인 행동에 놀란 컬렉터들이 입을 쏙 다물었다. 열기를 띤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분명, 금세 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들의 분노가 재점화되기 전 먼저 선수를 쳤다.
“듣자 하니, 다들 못하는 말이 없네요. 제가 성추행범이라고요? 그래서, 제가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있습니까?”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온화하지만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제가 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냐고요.”
내 서슬 퍼런 기세에 눌린 몇몇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몸을 주춤했다. 누구는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다만 분노에 몸을 맡긴 소수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김지유 패거리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증거라니! 우리 지유가 울고 있잖아!”
“뻔뻔한 거 봐! 사과하지 못할망정 아닌 척을 해?!”
김지유를 둘러싼 패거리가 그렇게 외쳤다. 목소리에 서린 한을 보면, 내가 진짜 나쁜 짓을 저지른 줄 알겠다. 정돈된 연기라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역할에 몰입해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녀들의 말에 다시 주변 사람들이 다시 하나둘 웅성거렸다. 내 기세에 겁을 먹었는지 조금 전처럼 고성으로 외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한번 박혀 버린 나쁜 이미지의 잔재는 여전히 그들의 눈동자에 남아 있었다.
“잠깐만요!”
그때 나선 것이 최중모였다. 사람들은 이곳의 관리자 중 하나인 그가 나선 것을 확인하자 당연히 나를 연행하려는 걸로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최중모가 보인 행동은 그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아무 잘못도 안 한 사람을 몰아세우다니!”
역시, 그는 눈치가 빨랐다. 설마 최중모가 내 편을 들어줄 줄 몰랐는지, 다들 뜨악 하는 표정이었다. 보다 못한 몇몇 컬렉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기요. 지금 그 사람 편들어 주는 겁니까? 그 사람이 성추행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당신이 그걸 봤습니까?”
“네? 그게…….”
“당신이 직접 봤냐고 묻는 겁니다.”
목소리를 무겁게 내리깔고 최중모가 몰아세우자, 기세 좋게 나섰던 남성 컬렉터는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도!”
최중모가 호통을 치며 컬렉터들의 면면을 훑어봤다.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까?”
“…….”
“…….”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봤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뭐, 뭐 하는 거예요! 당신! 협회 사람이 범죄자 손 들어줘도 돼요?!”
“맞아! 언론에 신고할 거야! 그쪽 범죄자도 고소할 거라고!”
상황이 점차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인지했는지, 김지유 패거리가 다급하게 외쳤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적반하장의 행동이었다.
그러니 이젠 내가 나설 차례다.
“제가 그랬다고 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 몰락하길 바라는 악당에게 향한다.
그들의 눈빛에는 혐오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난 이 자리에서 그걸 보기 좋게 깨부술 것이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며 물었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제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쪽을 만집니까?”
“뭐, 뭐라고요?!”
“하!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쪽 정말 뻔뻔하시네요!”
내 말에 김지유 패거리가 이때다 싶어서 나를 물어뜯었다. 나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제 말뜻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제가 뭐 하러 ‘인간 따위를’ 만져야 하냐는 것이죠.”
“뭐? 그게 무슨…….”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당황하며 되묻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큭큭. 설마 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저한테 그런 누명을 씌우려고 했던 겁니까?”
나는 이 분위기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인간 따위?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뭐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내가 이런 말을 내뱉을 줄 몰랐는지, 주변 반응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이 기묘한 연극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잘 들으세요.”
언젠가는 내 정체를 밝힐 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필요한 순간에 내 정체를 밝힐 가장 적합할 때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설마, 그때가 이렇게 일찍 찾아올 줄 몰랐다. 그것도 내 의도와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마련된 무대는 썩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나를 매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지만.
그렇기에 그것이 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줬다.
“제 이름은 강유현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니 보기 좋게 이용해 줘야겠지.
“텔러입니다.”
나는 담담하게 내 정체를 밝혔다.
내 목소리가 퍼져 나가고 난 뒤, 순간이지만 세상이 멈춘 줄 알았다.
경악으로 물들어 버린 고요함.
모두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정적 속의 유일한 화자(話者)였다.
“천체주식회사 시화실 소속 대리죠.”
뒤늦게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그들은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이 상황의 진실을 증명해 줄 사람을 찾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최중모에게 집중됐다.
지금 그 말이 진실이냐고, 정말로 그가 사람이 아니라 텔러냐고.
모두가 최중모가 무슨 대답을 할지, 기대감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네. 사실입니다.”
결국, 최중모는 한숨을 내쉬며 그 말이 사실이라고 모두의 앞에서 공표했다.
그 한마디의 대답이 무대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어, 어?”
“진짜?”
곳곳에서 경악 어린 기함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눈을 크게 뜨고, 또 누군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갑자기 딸꾹질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것은 나를 매장하려 했던 김지유 패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텔러?”
“지, 지금 장난하는 거지? 그렇지?”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경직된다. 지금 눈으로 마주하는 이 상황이, 마치 기분 나쁜 악몽처럼 보일 것이다. 침을 삼켜도 목이 타고 입술이 바싹 메마르겠지.
특히, 당사자인 김지유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너 설마 일부러 그랬던 거야?]
‘글쎄.’
말해 두겠지만, 이 무대를 만든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일은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를 짓자.
“여러분.”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분위기는 이제 나의 것이다. 모든 관객이 오직 나라는 배우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
내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저는 오늘, 이 자리의 오해를 바로잡고자 말합니다. 저 강유현 텔러는, 절대 저 인간 여성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러니 이 말이 갖는 무게감으로 상대방을 보기 좋게 짓눌러 주리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말로써 사람을 해하려는 자, 말로서 똑같이 당하리라.
‘상대방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려다 실패했으면, 자신이 떨어질 것도 각오하고 있었어야지.’
나는 사색이 된 김지유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언제나처럼 겁도 없이 달려든 자들을 볼 때마다 항상 지어지는 내 참을 수 없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