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03화
“어찌, 일은 잘 처리하셨나요?”
“그래.”
유현의 물음에 권지아는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면서도, 그의 주변에 펼쳐진 참상을 보고 순간이지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입고 있는 복장으로 짐작건대, 바닥의 시체는 조금 전 철창 안쪽에 갇혀 있던 컬렉터의 것이다. 하지만, 시체의 모습은 전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건가?’
권지아는 눈에 보이는 단서만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회귀를 통해 쌓은 지식이 도움을 준 영향도 적지 않게 있었다.
이곳에 갇혀 지내며 괴물이 되어 버린 컬렉터들.
유현은 혼자서 그들을 모두 정리한 것이다.
“…….”
그렇다 하더라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존재들이었을 텐데.
권지아는 이쪽을 향해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를 보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저 남자는 대체 어떤 과거를 지닌 걸까. 무슨 일을 보고, 무슨 일을 겪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걸까?
그가 회귀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
권지아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함께 활동하는 동료인데, 자신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는 유현의 그런 행동의 어딘가에 섭섭함을 느낀 권지아는 뒤늦게 자신의 속마음을 깨닫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내가 섭섭함을 느낀다고?’
감정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대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권지아는 자신이라면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하다고 자부하던 입장이었다.
그녀가 하지 않더라도,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순간 [회귀자]의 특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뭔가, 유현과 만난 이후로 권지아는 변해 가는 자신을 조금씩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씩이지만, ‘감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바뀌는 것인가? 바뀌어도 좋은 것인가?
그런 상념이 자꾸 떠올랐지만, 마땅한 해답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권지아는 애써 잡생각을 떨쳐 내며 손에 쥔 머리를 바닥에 던졌다.
당장은 상황 정리가 우선이었다.
“도망쳤던 녀석은 처리했다. 아래쪽에서 몰래 숨겨 놓은 물을 마셔서 더 강해지려고 했더군.”
권지아는 곧바로 녀석을 등 뒤에서 기습을 감행, 지하국대적이 저항도 전에 나머지 목을 모조리 참했다. 너무나도 싱거운 결말이었다.
지하국대적은 보험으로 놔둔 자신의 씨앗을 믿고서 목숨을 쉽게 허비했겠지만, 그것을 미리 안 유현에 의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지하국대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으리라.
“그러면 저희의 승리로군요.”
이곳 사상세계 클리어 조건은 보스급 환상체의 처치였으니까.
동시에 사상세계 전체에 메시지 창이 울려 퍼졌다.
[사상세계 ‘지하국’을 클리어 했습니다.]
[8,000TP를 획득했습니다.]
[사상세계의 이야기가 당신들에게 깃듭니다.]
[단둘이서 대단한 이야기를 선보였습니다.]
[보상으로 5,000TP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은 이전 아귀도와 비교하면 조금 짜다고 불러도 좋을 수준이었지만, 그때와 겪었던 난이도를 생각하면 합리적이라 해도 좋았다.
[‘치유 방해’스킬을 획득했습니다.]
[‘권선징악’이야기를 획득했습니다.]
[이야기를 흡수하여 스탯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격이 미약하게 상승합니다.]
[‘동삼을 다린 물’을 획득했습니다.]
‘오. 나쁘지 않네.’
특히 치유 방해라는 스킬은 상당히 쓸 만한 기술 중 하나였다.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상처를 내면 그것의 치유를 방해하는 심플한 기술.
당장의 싸움에서는 큰 효과를 보기 힘들지만, 장기적인 싸움에서는 이만큼 뛰어난 스킬을 찾기 힘들다.
‘격이 올라갈수록 어지간한 존재는 뛰어난 재생력과 회복력을 갖추지. 이 스킬은 사실상 그런 놈들을 파고드는 독이나 마찬가지야.’
상처의 재생이 더디면 자연스레 싸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약자에겐 쓸모가 없지만, 강자에겐 그 이상으로 효과적인 강강약약의 스킬이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좋은 걸 얻은 셈이다.
‘그리고 동삼을 달인 물.’
[동삼을 달인 물](소모품)
지하국대적에게 막대한 힘을 안겨 준 신묘한 약입니다. 섭취하게 되면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등급: 레어
-섭취 시 : 힘, 민첩, 체력 영구 증가.
아주 많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폭 증가도 아닌 일반 증가량. 하지만 근접 전투에서 빼놓을 수 없는 3개의 스탯을 동시에 상승시켜 주는 걸 감안하면 매우 빼어난 영약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니, 지금 피지컬이 부족한 권지아에게는 필수나 다름없었다.
[성령들이 이번에도 당신의 시화에 만족합니다.]
[12,400TP를 후원받았습니다.]
유현은 들어온 포인트를 보며 속으로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이전 아귀도에서 너무 방대한 양의 포인트를 벌어들인 탓에 이번 금액은 별로 차지 않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 벌이는 맞는데, 뭔가 가슴을 간질이는 만족감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다른 텔러가 이 말을 들었으면, 내 멱살을 잡아 버렸겠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냐고.’
파스스!
사상세계가 활자 조각으로 흩어졌다. 이미 수차례나 보는 광경이었지만, 이렇게 이야기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는 모습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끝났네요.”
보상이 정산되고 세계가 사라지자 유현과 권지아는 어느덧 처음 입구로 들어왔던 장소에 되돌아와 있었다. 권지아와 펼친 2번째 시화로 완성된 책은 바로 서재의 책장으로 향했다.
“헉!”
“도, 돌아왔어!”
먼저 빠져나온 세 명의 인질들이 바깥의 풍경에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유현은 그들이 얼마나 저 안쪽에 갇혀 있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하는 반응을 보건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유현과 권지아가 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러지 마시고, 가족들에게 먼저 찾아가 보세요.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요.”
생환한 자들의 상태를 생각하면 경찰을 불러야겠지만, 유현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저들도 알아서 자신의 복귀를 알릴 테고, 그렇게 사건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떠났군.”
다만 권지아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묘하게 침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방금 저자들. 결국엔 다시는 컬렉터로 활동하지 않겠지?”
유현은 방금 떠나간 세 남자를 떠올렸다. 그들 이 쪽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 태도의 어딘가에는 사상세계에 갇혀 지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꼴을 당했으니,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고통과 두려움에 무너지는 건 당연한 반응이죠.”
“당연한…… 반응인가.”
권지아는 쓰게 웃었다. 그녀는 몇 백 번의 죽음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서 이렇게 싸웠다. 그러나 저들은 결국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고 말았다.
이미 정상인이라 부르기 힘든 컬렉터지만, 일반적인 컬렉터들은 실패의 절망감을 견디지 못한다. 권지아는 그것이 못내 씁쓸했다.
그것은 저 사람들이 모자라고 부족한 것에 대한 질타가 아니었다. 이상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권지아는 자신이 저들과 다르며, 스스로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말았다.
‘나는…….’
유현이 떠나가는 생존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저들에게 강제로 일어서라고 보채며, 다시 싸우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결국, 남은 자들만이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지아 씨나 저 같은 괴짜들에게 제격이죠.”
그 말은 분명 현실을 그대로 가져와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권지아는 유현이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자신이 괜한 고민을 했다며 속으로 자조의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건 우리의 역할이지.”
“오. 이해해 주시는군요?”
“그런데, 한 가지 정정하지. 괴짜는 너 혼자다. 그건 확실히 하도록.”
“네? 은근슬쩍 혼자 빠져나가려 들지 마시죠. 저나 지아 씨나 다 똑같은데요.”
“시끄럽다. 가서 정산이나 받자.”
“아. 말 돌리지 마세요.”
유현과 권지아는 티격태격하면서 사상세계 클리어에 대한 보상을 받으러 협회를 향했다. 유현은 겸사겸사 권지아의 등급 상승도 신청할 생각이었다. 2개나 되는 사상세계를 클리어 했으니, 권지아의 등급을 최소 2개는 올릴 수 있을 거다.
둘은 곧바로 택시를 타고 컬렉터 본부로 향했다.
“뭐지?”
컬렉터 본부의 근처에서 내린 둘은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두 사람의 시선 끝, 한 시위대가 협회 본부 근처에서 떼로 모여 피켓을 들고 고성으로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간악한 컬렉터들은 신의 시련을 받아라!”
“도망치지 마라! 그럴 거면 컬렉터니 뭐니, 다 때려치워라!”
“거룩하신 신의 뜻을 따라라! 누구 덕분에 너희가 그렇게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냐!”
지나다니는 행인들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연스레 시위대를 피했고, 협회 본부를 지키는 경비원들은 시위대의 근처에 서서 혹시나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이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었다.
[와. 저 사람들은 왜 저러는 거야? 무슨 이유가 있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백련이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종교 때문이야.’
[종교?]
‘그래. 변혁의 날 이후로, 세상은 많이 변했잖아. 저들도 그중 일부지.’
변혁의 날은 단지 지구에 컬렉터와 사상세계만 만들지 않았다.
종교의 득세도 세상의 변화와 함께 딸려 온 결과였다.
이전까지 지구에 다양한 종교가 있었고, 그 권세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구분할 건 구분한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인식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을 이성과 과학으로 생각했던 때였고, 종교는 이성이 아닌 믿음의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변혁의 날 이후, 물질계였던 지구가 혼성계에 들어서게 되며 그것은 크게 바뀌고 말았다.
‘자신들이 그렇게 믿었던 신화의 신들이 실제로 존재한 걸 알게 됐으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겠어?’
[어. 음. 아주 좋아 날뛰었겠지? 아니면 벌벌 떨거나?]
‘그 정도면 양반이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종교의 입김이 강해진 거야.’
본래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도, 종교는 현대에서 큰 영향력을 지녔다. 그것이 근래에 와서는 훨씬 더 강해진 것이다. 그것도 정부에서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이.
평소에 신에 대해서 믿지 않았던 무신론자들조차, 성령들의 존재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품고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확실히 늘었다.
자연스럽게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를 함께 끌고 나타났다.
특정 종교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진 무속 신앙이나 일반적인 신화에도 새로운 종교 분파가 생긴 것은 예사다.
근래에 들어서 광신도와 사이비가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건 역시 컬렉터들과 종교 집단 간의 갈등이려나?’
[응? 둘 사이에 뭐 싸울 이유가 있나?]
‘컬렉터에겐 없지만, 저 종교인들에게는 있거든.’
종교인들은 사상세계가 신들이 내린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컬렉터들은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기보단 그것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이용해 먹기 바빴다.
당연히 종교 집단의 입장에서 신이 내린 고귀한 시련을 거부하는 컬렉터의 행동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들로선 컬렉터가 신의 뜻을 반대하는 이단인 셈이지. 그래서 서로 자주 싸웠고.’
[뭐어? 어휴.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애초에 성령이 무슨 신이야?]
백련의 입장에선 성령들을 저렇게 치켜세우는 시위대의 모습이 꼴불견처럼 비쳤다. 성령이 위대한 존재는 맞지만, 그들은 ‘신’이라 불릴 정도로 전지전능하지는 않았다.
유현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저기 모인 사람들의 입장이 그러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개미의 입장에선 인간이 신처럼 보이지. 저 사람들에겐 위대한 별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신처럼 보이는 거야.’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위대의 행위는 더 격해졌다. 일부 과격한 시위대는 컬렉터 본부로 들이닥치려 해서 경비원들에게 제지됐고, 거기에 또 흥분해서 달려드는 시위대가 한데 엉켰다.
결국 우려하던 충돌이 벌어졌고, 근처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몇몇 컬렉터들이 짜증 어린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혀를 찼다.
“아오. 저 종교쟁이 놈들 난리네 난리야.”
“하여튼. 저것들 가만히 놔둬야 한다는 게 열 받아.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저것들 요즘 따라 왜 저 지랄이야?”
유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뒤늦게 지금 상황의 이질감을 깨달았다.
‘맞아. 그래도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뭔가 더 심해졌어.’
[더 심해졌다고?]
‘어. 전생에서도 내가 기억하기론 컬렉터와 종교인 사이에 관계는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험악하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저렇게 충돌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야. 단순히 이슈가 안 됐을 뿐일까?’
[흐음. 네 말대로라면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거야?]
‘그럴지도 몰라. 아니, 확실해.’
바뀐 걸 인지한 것은 유현뿐만 아니라 권지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유현에게 말했다.
“뭔가 이상하군. 종교인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과격해졌다. 이전에도 몇 번 시위는 벌인 기억이 있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역시 그런가. 아무래도 무언가가 저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 같다.”
그 순간 시위대 중 하나가 경비의 벽을 넘어오다 들고 있던 피켓을 지면에 떨어뜨렸다. 자연스레 유현과 권지아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피켓에 적힌 문구를 향했다.
[검후처럼 사상세계를 없앨 수 있는데, 왜 안 없애냐!]
그리고 밑에 자잘하게 적인 글자는 지금 컬렉터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문구였다.
하지만, 유현과 권지아는 검후라는 글자에 집중했다.
“검후?”
“왜 혜림 씨가 저기에…….”
“설마…….”
둘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나, 때문인가?”
이전까지 가만히 유지되던 사상세계. 그것을 하나씩 격파해 나가는 유현의 움직임이 종교 집단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