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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01화 (10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01화

[성령들이 지하국이 뭔지 궁금해합니다.]

성령들은 여전히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사실 지하국은 사상세계가 구성하는 세계의 이름이지, 실제로 관련된 설화는 전혀 다른 것이니까.

원래 설화는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다.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래 동화 중 하나이며 지하국대적 퇴치 설화에서 등장하는 괴물이다.

머리가 9개라고 해서 사람들이 히드라와 착각하고는 하는데, 히드라는 서양의 뱀과 관련된 환상체라면 녀석은 사술을 부리는 동양의 괴물이었다.

녀석의 이름은 설화에서 나온 대로 지하국대적(地下國大敵).

[공주를 구하러 간 무인] 이야기와 [머리 아홉 달린 괴물], 그리고 [홍길동전]에서는 울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했을 정도로 유명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나와 권지아가 클리어 할 사상세계가 바로 이곳이었다.

“과연. 그런 거로군.”

회귀자인 권지아는 내가 뭘 노리고 있는지, 곧바로 파악한 것 같았다.

그야 그럴 것이 이 지하국 사상세계의 클리어 보상이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로 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지아 씨도 이곳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알죠?”

“알다마다.”

이미 과거에 몇 번, 그녀는 이곳을 클리어 한 경험이 있을 테다. 굳이 시간을 들여 설명해 줄 필요는 없으니,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회귀자가 동료라 이런 부분에서 참 편하다. 둘 다 서로 모르는 것이 적다 보니, 작전 브리핑을 할 필요도 없고 척하면 척 알아먹으니까.

그래도 성령들은 이곳에 대해 잘 모르니, 나는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이 지하국은 전래 동화에 나오는 장소 중 하나이며, 지하에 존재하는 국가입니다. 물론 그렇게 큰 것은 아니고, 여기에 머무는 것은 사악한 요괴와 그 부하들이지만요.”

그중에서 머리 아홉 달린 괴물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지하국대적은 가끔 지상에 올라와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여자들을 납치해 갔는데, 이 동화에서 주인공 또한 막 결혼한 자신의 아내가 납치되어 그녀를 구하러 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연히 전래 동화답게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다른 전래 동화와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반전이 있다는 것이다.

“청년이 기껏 아내를 구하러 지하국까지 쳐들어가지만, 아내는 오히려 지하국대적에게 빠져서 남편을 배신해 버리거든요.”

물론 주인공은 거기에 절망하지만, 새로운 여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서서 괴물을 퇴치하며 배신한 아내도 끝장을 내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 붙잡힌 사람들을 풀어 주며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자신을 도와준 여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거로 끝난다.

물론 사상세계가 이야기를 완전히 똑같이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때로는 이상하게 비틀리기도 하는 곳이기에 마냥 이 지식을 믿을 건 못 되지만.

중요한 건 이곳을 클리어 했을 때 얻는 보상에 있었다.

‘바로, 동삼을 달인 물이 보상으로 주어지지.’

주인공인 청년이 지하국대적과 싸우기 위해 마신 신비로운 물.

이것을 마시면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막대한 힘을 얻게 된다. 청년은 이 물을 마셔서 지하국대적과 상대해 승리할 수 있었다.

‘권지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보상이야.’

권지아는 아직 육체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컬렉터라 하드한 트레이닝을 대신해서 포인트를 통한 스탯의 강화로 육체를 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거기에 소모되는 포인트를 버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차라리 포인트를 동시에 벌면서, 육체를 강화시킬 수 있는 보상을 얻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고른 곳이 바로 여기다.

이 물만 마시면 권지아는 적어도 이전처럼 힘을 좀 썼다고 헉헉거리거나 하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 거다.

[성령들이 어서 시화를 보여 달라고 당신을 보챕니다.]

성령들은 벌써부터 우리가 보여 줄 사상세계가 기대되는지,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와 권지아는 잠시 시선을 교환하고는 동시에 사상세계로 입장했다.

화아악!

서울 도시 외곽의 풍경은 사라지고 숲과 함께 거대한 싱크홀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 지하국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나와 권지아는 입장과 동시에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컬렉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없는 곳을 골라서 오긴 했는데, 또 클랜의 방해가 없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아귀도와 다르게 우릴 견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귀도에서 한번 크게 데인 탓일까, 아니면 방해를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곳의 소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지하국 사상세계는 당연히 몇 번이나 컬렉터들이 파티를 짜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 방문한 많은 컬렉터 중 대다수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점이다.

시체를 발견한 것도 아니라 사망 처리로 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사라진 거다.

그런 소문이 퍼진 탓에 이곳에 찾아오는 컬렉터들은 없었다. 파밍에 어울리지 않는 곳인 이유도 한몫했다.

아마 클랜에서 이번에 사람을 보내지 않은 건, 지하국 사상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이겠지.

‘없으면 우리야 더 편하지.’

적어도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움직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니까.

나는 권지아에게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고, 그녀도 주위에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내 곁에 섰다.

“아래로 바로 내려갑시다.”

거대한 구멍은 끝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깊었다. 들여다보면 어둠밖에 보이지 않아서 마치,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이대로 그냥 떨어지면 죽겠지만, 당연히 지하국과 지상을 오가는 장치가 있기 마련이다.

[지하로 향하는 바구니]

직경이 3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바구니가 도르래에 매달려 있었다. 사람 수십 명이 한꺼번에 타도 멀쩡할 정도로 튼튼해 보이는 게 딱 원반형 엘리베이터처럼 생겼다.

나와 권지아는 그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얼마나 내려갔을까? 어둠 속에 시야가 적응할 무렵 아래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턱.

바구니가 멈췄고, 나와 권지아는 즉시 바구니에서 내려왔다.

태양 빛이 통하지 않는 지하국은 그 안쪽에 존재하는 발광석으로 사물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시선 끝에 보이는 것은, 고래 등같이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다.

저 안쪽에 지하국의 환상체와 이곳의 보스인 지하국대적이 있다.

“그럼, 가 볼까요?”

“그러지.”

나는 백련을 쥐었고 권지아 또한 이번에 새로 얻은 명도를 꺼내들었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기와집의 대문을 박차고 안쪽으로 들이닥쳤다.

“누구냐!”

“적이다! 지상의 놈들이 쳐들어왔다!”

“건방진 놈들! 전부 죽여 주마!”

지하국대적은 기와집 안쪽에 있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놈의 부하들, 아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징그럽게 생긴 놈들이 우릴 보며 눈을 번들거렸다.

“여자 하나! 남자 하나다!”

“남자는 죽인다! 여자는 두목에게 바친다!”

놈들은 우릴 보며 기세 좋게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권지아에게 물었다.

“쟤들이 저렇게 지껄이는데, 어쩔까요?”

“어쩌고 자시고.”

권지아는 곧바로 명도를 휘둘러 가장 가까이서 떠드는 환상체 하나의 목을 날렸다.

아귀도 클리어 보상으로 여러 이야기를 받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빨라진 움직임이었다.

“싹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참 마음에 드는 답변이네요.”

그래. 이게 바로 회귀자의 올바른 마음가짐이지.

막아서는 놈들은 싹 다 죽인다.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 일인가?

“침입자가 우리 동료를 죽였다!”

“죽인다! 죽인다!”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환상체들은 꽤나 위협적이었지만, 아귀도에서 싸웠던 저승의 옥졸들과 비교하면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철저하게 적을 죽이기 위해 싸우는 훈련받은 병사들과 약자들을 약탈하기만 하는 도적 떼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촤아악!

권지아의 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환상체 최소 둘에서 셋이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조금 더 자신의 힘을 끌어내서 싸울 수 있는 게 기쁜지, 신나서 날뛰었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그녀의 곁에 서서 그녀를 보조하듯 싸웠다. 모습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백련의 특성을 이용해 환상체 녀석들을 손쉽게 농락하며 놈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키익! 침입자들이 너무 강하다!”

“두목! 두목을 불러라!”

실력의 격차를 확실하게 보여 주니, 놈들은 곧바로 전의를 상실했다. 몇몇은 눈치를 슬쩍 살피다가 도망을 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했다.

저놈들 하나하나가 다 포인트 덩어리다. 잡는다고 별로 많이 주지는 않지만, 전부 다 잡으면 들어오는 포인트도 나름 쏠쏠하게 쌓인다.

그래서 도망치지 못하게 대문 쪽을 막아서듯 놈들과 싸우던 때였다.

“누가 감히 내 땅에서 시끄럽게 구느냐!”

가래가 끓는 포악한 외침이 장지문을 뚫고 나왔다. 기와집 안쪽에서 거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침입자가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감히, 이 지하국의 대왕인 내게 덤비려 들다니!”

놈은 3m가 넘는 거구였다. 피부는 탁한 잿빛이었고, 목 위에는 이쪽을 노려보는 9개의 머리가 있었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아 하반신에 거적때기 하나만 둘렀다.

녀석이 바로 이곳의 보스급 환상체인 지하국대적이다.

지하국대적은 침입자라는 소리에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을 잔뜩 찌푸리다가, 권지아를 보더니 안색을 활짝 피며 외쳤다.

“허어! 어디서 저런 여자가! 크흐흐 이거 잘 됐군! 네년을 내 색시로 삼아 주마!”

“…….”

면전에서 대놓고 저런 말을 외칠 줄 몰랐는지, 권지아는 기분이 아주 상한 듯했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알았다. 원래 무표정한 얼굴이 평소보다 더 딱딱하게 보였다.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할 거다. 방해하지 마라.”

“그러죠.”

전신에서 가공할 만한 투기를 뿜어내는 그녀를 내가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하국대적과의 싸움은 전부 그녀에게 일임했다.

“크하하하! 이런 시건방진 놈들을 봤나!”

지하국대적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권지아 혼자만 나선 것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나를 상대하는데, 고작 한 명이 덤비려고 들어? 그것도 가녀린 여자를? 내가 색시로 삼아 준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시끄럽고.”

권지아는 명도를 들어 올려 지하국대적의 머리를 가리켰다.

“덤벼. 그 머리가 다 땅에 떨어지고도, 다시 그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고.”

“이 건방진 계집년이!”

지하국대적이 자신을 모욕한 권지아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도 전이었다. 권지아는 전신에 힘을 두르며 지하국대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가 움직인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어느덧 그녀는 놈의 지척에 서 있었다.

“엇?!”

지하국대적이 그녀의 움직임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움찔거린 순간, 웅크리고 있던 권지아의 이빨이 녀석의 목덜미를 노렸다. 빛살 같은 쾌검이 공간을 찢으며 뻗어 왔다.

촤아악! 지하국대적은 가까스로 목을 틀어 냈지만, 녀석의 아홉 머리 중 하나가 깔끔하게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놈!”

녀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잘린 목의 단면을 살피더니, 곧바로 손에 쥔 대검을 휘둘렀다.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서 동삼을 우린 물을 마신 지하국대적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무기다. 정면에서 방어하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공격이 권지아를 향했다.

카앙!

그러나 놀랍게도 권지아는 지하국대적의 대검을 간단하게 튕겨 냈다. 비스듬하게 세운 명도가 충격을 고스란히 바깥으로 흘려 냈다.

“별거 아니네.”

권지아는 무료함을 숨기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때 싸웠던 해골 장수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해.”

“이, 이익!”

도발할 생각조차 없는 그 혼잣말에 지하국대적은 재차 검을 휘둘렀다. 대검에서 흘러넘치는 에너지가 바람을 일으켰다. 우람한 녀석의 팔뚝에 근육이 꿈틀거렸다.

지하국대적은 광란의 춤사위를 벌이는 것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권지아는 그 자리에 없었다.

“뭐지? 벤 느낌이 없는데?”

아직 8개나 남은 지하국대적의 머리가 곧바로 주변을 살피다가 동시에 위를 올려다봤다.

자신이 휘두른 대검의 끝자락, 그곳에 권지아가 올라탄 채 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촤악!

권지아의 신형이 지하국대적을 스치듯 지나갔다.

투둑. 툭.

이번에는 머리 3개가 나가떨어졌다.

순식간에 9개의 머리 중 4개나 잃은 지하국대적은 꽤나 당황한 듯싶었지만,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년! 내가 이런 거로 죽을 줄 알았더냐!”

녀석이 그렇게 외치자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다시 날아와 붙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어림도 없지.”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 왔던 재를 뿌렸다. 잘린 단면에 재가 끼얹어진 괴물의 머리는 다시 붙지 못한 채,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

설마 잘린 머리가 붙지 않을 줄 몰랐는지, 녀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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