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96화
[찬란한 빛을 닮은 자가 1,000TP후원!]
[지금 진심입니까? 싸울 생각이세요?]
내 행동만으로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챈 미카엘이 당황하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던 성령들은 꽤나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그야 그럴게,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성령들이 아무리 봐도 이 일은 무리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도망치는 것을 추천합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어서 빨리 떠나라고 보챕니다.]
평소에 나의 도전을 즐기는 성령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 나와 권지아가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나는 내 곁에 선 권지아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검을 쥔 그 순간부터 다짐했다. 나는 이 무대의 주인공이며, 절대로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이것은 그러한 내 신념의 연장선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1,000TP 후원!]
[방법은 있는 거겠죠?]
“있습니다.”
나는 상당히 먼 곳까지 떨어진 명부의 말뚝을 주시하며 말했다. 말뚝에서는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며, 해골 장수가 말뚝의 곁에 선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분명 그렇게 보였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무너지는 지면과 뒤틀리는 지축. 천지가 떨리며 대기는 불안정하고 먹구름은 끝없이 굉음을 토해 냈다.
하지만, 아귀도의 붕괴는 완전히 진행되지 않았다. 유예 시간은 있다.
그러니 데드라인이 오기 전에 저 말뚝을 뽑아야 했다.
“지아 씨도 할 수 있죠?”
“……해야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기까지 도달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설마, 아무런 방안도 없이 무작정하겠다고 저지른 건가?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낸 그녀는 살짝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왜 이렇게 많은 회차를 반복한 건지, 계속 납득이 가게 됐다.
이렇게 어중간한 회귀자니, 그랬던 거였지.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그녀를 고른 거였고.
“방법은 제게 있습니다.”
나는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짜내서 방법을 물색했다.
그리고 또 내가 지니고 있는 스킬 중 하나인 [전장의 승리자]가 있다.
그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로 이끄는 길을 보는 중요한 스킬이.
“그게 정말인가?”
“대신, 이번 일에 정말 중요한 건 지아 씨의 역할입니다. 지아 씨.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걸고서?”
“할 수 있다.”
내 진지한 목소리에 그녀도 그에 호응하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만족스러운 대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이걸 받으세요.”
“이건……?”
권지아는 내가 백련을 건네주자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백련도 마찬가지였다.
[야! 강유현! 너 미쳤어?! 날 지금 버리겠다는 거야?!]
‘버리는 게 아니야. 그냥 빌려주는 거지. 백련아. 부탁한다. 네가 지아 씨를 도와줘야 해.’
[지금 내 주인도 아닌 녀석이 날 멋대로 만지도록 놔두라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나도 죽어.’
[너……!]
백련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화가 났음에도 거절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진짜 두고 봐.]
‘응. 미안해.’
나는 백련에게 사과하며 권지아의 손에 백련을 강제로 쥐어 줬다.
“받으세요.”
“이, 이건…….”
“무기, 부러졌잖습니까. 지금 지아 씨에겐 훌륭한 무기가 필요합니다. 이거라면, 저 미치광이 해골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죠?”
“그러면 너는…….”
“저는 저기서 허둥대는 인간들을 도우러 가야죠. 뭐, 미워도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죽을 정도로 잘못한 사람들은 아닌데. 그러니 저 사람들 걱정은 하지 말고 제게 맡기세요. 지아 씨는 그저 저 말뚝을 어떻게 하는 것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다.”
“좋습니다.”
휘익! 나는 휘파람을 불어 허공을 부유하는 백효를 불렀다. 녀석은 곧바로 내 어깨에 안착했다.
“백효야. 이번에도 네 도움이 필요하다.”
부엉.
“저기 빛나는 말뚝이 있는 곳 보이지? 지아 씨를 저곳까지 데려다 주렴.”
부엉! 부엉!
녀석은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자 결국,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말도 잘 알아듣고, 참 똑똑한 부엉이다.
권지아는 내 어깨에 앉아 있는 백효를 보며 살짝 당황했다.
“이 부엉이, 아직 새끼가 아닌가? 이렇게 작은데, 나를 어떻게 데려다 놓으려고…….”
“지아 씨는 천계 부엉이에 대해서 잘 모르시군요? 비록 우리 백효가 새끼라 하더라도, 신수의 혈통입니다. 다른 짐승과 같은 선상에 놓으면 곤란하죠.”
물론, 지금은 내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긴 하다. 그래서 지금은 순간밖에 지속하지 않지만, 그래도 쓸 만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백효야. 조금 느낌이 이상해도 참아.”
[각인사 칭호를 발동합니다.]
나는 백효의 등 뒤에 각인을 새겼다. 새기는 각인의 종류는 3가지. 속력 증가, 저항 감소, 성장 촉진. 그것을 백효에게 각인했다.
삼중 각인, 그것도 생명체에게 하는 것이다. 물건에 각인을 새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됐다. 심지어 영구 지속이 아닌 일회성인데도 이 정도다.
‘생물에게 하는 각인은 처음인데, 만만치 않네.’
나는 대량의 포인트를 소모해 백효에게 각인을 끝냈다. 백효는 각인이 새겨질 때 묘한 느낌을 받았을 텐데도 내 말을 잘 듣고 얌전히 있었다.
각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백효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2m나 되는 거대한 부엉이로 변했다.
귀엽던 사라지고, 그야말로 밤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근엄한 모습이었다.
촤악! 백효가 날개를 활짝 펼치니, 양 익폭만 무려 4m가 넘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래도 태울 수 있는 사람은 1명이 최대라는 거다.
거기에 타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가세요. 지아 씨.”
“……알겠다.”
권지아는 백효의 등 뒤에 올라탔다. 백효는 커진 덩치에 적응하기 위해 몇 번 날개를 펄럭이더니, 이내 쏜살같은 속도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촤악!
순백의 부엉이는 허공에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순식간에 저 높은 곳을 향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자, 저쪽 일은 저쪽에 맡기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 볼까?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패닉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은 이제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붕괴되는 지면을 피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타앗!
나는 자리를 박차고 균열을 뛰어넘으며 컬렉터들을 향해 다가갔다.
* * *
거대한 풍압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권지아는 얼굴을 강하게 때리는 바람 속에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엄청난 속도다……!’
백효는 과연 신수라 불릴 만한 천계 부엉이다웠다. 날개를 한 번 펄럭일 때마다 거대한 몸체가 바람을 쏜살같이 가르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권지아는 깃털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거친 잿빛 바람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됐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그녀는 적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었다.
‘저기다!’
적란운처럼 몰아치는 잿빛의 폭풍 속에서 옥색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콰르릉! 아귀도의 붕괴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는지,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소리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에서 섬뜩한 섬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저쪽으로!”
백효는 권지아의 말을 알아먹기라도 했는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즉시 한쪽 날개를 펼친 채, 반대쪽을 접으며 옆으로 급선회했다. 고공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비행에 권지아는 깃털을 꽉 쥐었다.
촤아악!
활강하듯 펼쳐지는 날개. 그것을 막아서기라도 하듯 지축이 굉음을 내며 치솟아 올라 정면에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위험……!”
권지아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백효는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몸체만 2m, 익폭까지 4m가 넘는 거대한 덩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순식간에 회전하듯 움직여 옆으로 통과한 권지아와 백효는 안도감을 느낄 틈도 없이, 이후 펼쳐지는 광경에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구궁!
“무슨…….”
조금 전 솟아오른 지면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 연달아서 정면의 지축이 무섭게 치솟아 올랐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 하지만 그러한 바위기둥들은 보란 듯이 권지아와 명부의 말뚝 사이를 막아섰다.
거대한 힘에 휩쓸린 아귀도가 무자비한 조각으로 나뉘며 우연히 만들어진 천연의 방벽. 마치, 명부의 말뚝 자체가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서 손을 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저것을 피해서 멀리 돌아서 움직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권지아는 이를 악물었다.
* * *
“흐어억! 사, 살려……!”
콰득!
자신이 딛고 선 지면이 무너지자 균형을 잃은 컬렉터 하나가 허공에 애달프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가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만 했다.
본능적으로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컬렉터는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왔음을 깨닫고 절망에 빠지려 했다.
타악!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아 주는 한 남자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남자, 유현은 손을 강하게 당겨 떨어질 뻔한 컬렉터를 구출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컬렉터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가만히 있어! 흩어지면 지축이 붕괴해서 모두 죽는다!”
“다, 당신은…….”
“살고 싶은 녀석들은 모두 내 근처로 모여!”
컬렉터들은 유현이 가장 경계해야 할 백화 매니지먼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상황 속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 모습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컬렉터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여긴 대충 정리가 된 거 같고. 지아 씨는…….’
유현은 컬렉터들을 한자리에 모은 걸 확인한 뒤에 곧바로 시선을 돌려 권지아를 찾았다. 평야였던 아귀도는 험준한 산골짜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지형이 변해 있었다.
거기에 끝없이 몰아치는 잿빛 바람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 거의 폭풍을 방불케 했으며,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의 사이로 번개가 몰아쳤다.
그야말로 세계의 종말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어디지?’
유현의 눈동자는 그 속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며 한 존재를 찾아냈다.
어둡고 침침한 이 세상 속에서도 마치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것 같은 부엉이 한 마리와 그 위에 올라탄 여인이 보였다.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권지아의 앞을 막아선 뒤틀린 지층을 보는 순간, 유현은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즉시 원거리 통신으로 권지아에게 외쳤다.
‘피하세요! 그대로 가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돌아서 가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권지아의 대답에 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저것을 옆으로 우회해서 돌아가기엔 아무리 봐도 시간이 부족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말뚝을 지키는 해골 장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유현이 속으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려 애를 쓰는 순간, 권지아가 답했다.
-이대로 돌파하겠다!
“예?!”
자기도 모르게 육성으로 그런 소리가 나왔다.
권지아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더욱 비행에 속도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이 눈을 크게 떴다.
‘부딪친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백효가 날개를 접으며 바위기둥의 좁은 틈새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경은 산전수전을 다 뛴 유현조차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새하얀 광점이 곡예와 같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바위 벽들의 틈새로 길을 뚫고 나갔다.
부딪칠 듯 말 듯 이어지는 하나의 춤사위와 같은 움직임.
유현은 그 아슬아슬한 광경에 넋을 잃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시스템 창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성령들이 권지아의 용기에 감탄합니다.]
[성령들이 그녀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성령들이…….]
[…….]
모두가 입을 모아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것은 불가능을 위해 달려 나가는 한 몽상가의 목숨을 건 싸움.
유현은 자신이 강혜림과 함께 오스만 대군을 뚫고 나가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와 같은 그림이 지금 권지아와 백효를 두고 똑같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때의 흥분이 기억과 겹쳐져, 유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발.’
성공해라.
그런 유현의 기도가 닿기라도 하듯, 속도를 줄이지도 않은 채 말도 안 되는 곡예비행을 선보인 백효는 뒤틀린 지층의 미로를 거의 벗어났다.
‘끝?! 아니, 아직이야!’
아직, 마지막 벽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앞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거대한 바위 벽. 도저히 옆으로 돌아서 피할 수 없는 크기였다.
부엉!
신수인 백효도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괜찮다.”
권지아는 당황함에 근육이 굳어 버린 백효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계속 나아가라. 걱정하지 말고. 쭈욱.”
자신의 주인도 아닌 기수의 목소리에 용기를 받기라도 한 것일까. 백효는 경직된 날개에 힘을 주며 그대로 속력에 박차를 가했다. 이대로면 저 바위 벽에 충돌해 피떡이 되고 말 것이다.
권지아는 두 다리에 힘을 줘 백효의 등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친 바람이 그녀의 전신을 때렸지만, 힘으로 그것을 버텨 내며 균형을 잡았다.
그녀는 백련을 뽑아 들고,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지금의 상태에서 펼칠 수 있는 건 겨우 1식뿐. 그러니 부탁한다. 백련.”
권지아는 검 형태의 백련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패도 적인 기세가 흘러넘쳤다. 그것은 백련에 날에 한 점으로 모이더니, 이내 거대한 짐승의 발톱과 같은 오러를 뽑아냈다.
그것은 지금의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격을 넘어선 무언가.
그득!
권지아은 이를 악물고 끌어올린 오려 필사적으로 제어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이 짐승의 발톱은 적이 아닌 그녀를 향하게 될 것이다.
전신에 가해지는 엄청난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괴롭다.’
평소의 그녀라면 여기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하면 되겠다’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품었을 거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서.
앞을 가로막는 것이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부수고 뛰어넘어 보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니 견뎌야 했다.
이따위 고통은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의 공허함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아압!”
강렬한 기합성과 함께 짐승의 발톱이 벽을 찢어발겼다.
콰아아앙!
거대한 바위가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듯 사방으로 흩날리고,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부서진 바위 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졌다. 권지아와 백효는 그 중심을 뚫고 나와 말뚝의 바로 위까지 도달했다.
그녀는 피하기는커녕 저 거대한 벽을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었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맙소사.”
“저걸, 뚫었다고?”
유현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던 컬렉터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타앗!
권지아는 말뚝이 가까운 곳에 보이자, 그대로 백효의 등 뒤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떨어지면서 해골 장수의 정수리를 향해 백련을 휘둘렀다.
“하아압!”
[이놈!]
해골 장수는 명도를 들어 올려 백련을 막아 냈다. 카앙! 두 검이 충돌하고, 두 시선이 검 사이에서 교차했다.
붕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최후의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