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95화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권지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귀도의 클리어 조건? 그건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저도 자세히는 모르거든요. 미래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해도 워낙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 애초에 아귀도라는 사상세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흐음. 뭐. 굳이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귀도의 어딘가에 유황천이 있는데, 거기에 숨겨져 있는 명부의 말뚝을 뽑으면 되니까.’
‘명부의 말뚝이라…….’
그녀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곳을 지키는 저승의 옥졸들이 있을 거다. 놈들을 뚫고 가야만 말뚝에 도달할 수 있겠지. 나도 거기까지 직접 도달한 적이 없어서 본 적은 없지만, 듣기는 했다.’
‘역시, 보통 말뚝은 아니겠죠?’
‘옥석을 깎아서 만든 것 같은 커다란 말뚝이라더군. 그리고 반쯤 박혀 있다고만 알고 있다.’
‘반쯤?’
‘그래. 그것을 뽑아야 사상세계가 클리어 된다.’
나는 문득 떠오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뭔가?’
‘만약, 그 반쯤 박힌 말뚝이 뽑히지 않고 완전히 박히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죠?’
‘그건…….’
권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명부의 말뚝은 아귀도와 염부제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염부제는 아주 거대한 세계다. 아귀도는 그에 비교하면 매우 작지. 그대로 둘이 존재한다면, 아귀도는 자연스레 저승에 먹혀 사라지고 말 거다. 말뚝이 반만 박힌 것은 그거 때문이지.’
‘……일부러 아귀도가 사라지지 않도록 느슨하게 박혀 있던 거였군요.’
‘그렇다. 그것이 있기에 아귀도는 염부제와 붙어 있으면서도 별개로 존재할 수 있지. 그 말뚝은 어떻게 보면 아귀도를 유지해 주는 장치에 가깝다. 사실 말뚝이 사라져도 별로 상관은 없을 거다. 중요한 건, 그 말뚝이 완전하게 박혔을 때지.’
말뚝은 아귀도를 떠나가지 못하도록 고정해 놓는 거라고 했다.
다만 아귀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는지, 말뚝을 반만 박아 놓은 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말뚝이 완전하게 박혀 버린다면.
‘그때는 아귀도는 염부제와 완전하게 이어져, 그 거대한 세계의 인력에 이끌리게 되겠지.’
단순히 이끌리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한 아귀도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쉽게 무너지고 바스러질 거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뜻했다.
쿠구구구궁!
천지를 가르는 굉음이 나의 의식이 다시 현실로 불러 왔다.
이곳을 지켜야 하는 해골 장수가 최후의 발악으로 말뚝을 완전히 박아 넣었고, 동시에 아귀도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결국,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콰드득! 쿠구궁!
목재로 이루어진 건물이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가까스로 잔해를 피하니, 이번엔 지면에 거미줄같이 촘촘한 금이 가더니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펼쳐지는 자연재해에 컬렉터들은 당황했고, 그것은 나와 권지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스러져라!]
해골 장수와 말뚝이 있던 지면이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이내 손을 닿아도 뻗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세계가 뒤집히고 있었다.
“지아 씨!”
나는 그녀와 내가 선 지면이 좌우로 갈라지려 하자, 황급히 권지아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권지아가 딛고 서 있던 지면이 저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건물의 잔해와 바윗덩어리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미친…….”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무너진 지면의 저 아래에는 끝도 없는 어둠의 무저갱이 있었다. 한 줌의 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저런 곳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뼈도 못 추리는 수준이 아니다.
저 아래에는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이 잠들어 있었다. 저곳에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죽음을 넘어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말소될지도 모른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동양 세계의 지옥에 강한 흥미를 품습니다.]
“죄송하지만, 보여 드릴 수는 없을 거 같네요.”
누가 지옥의 가장 밑바닥 코퀴토스 호수에 자리 잡은 성령 아니랄까 봐, 이런 데에 묘하게 호기심을 품고 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쿠구구궁!
지진은 점차 그 위력을 키워 나갔다.
치이익! 거미줄처럼 금이 간 지면의 틈새로 유황 가스가 터져 나왔다. 일부 땅덩어리는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평지에 가까웠던 아귀도는 융기와 침강을 반복하며 부서진 입체 퍼즐 같은 불규칙적인 형태로 변해 갔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유지되지 않을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귀도 전체가 붕괴되어 사라질 테니까.
이 대로면 모두 죽는다.
“지아 씨. 물러납시다!”
“하, 하지만…….”
그녀는 이 상황 속에서도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흔들었다.
“여기 있으면 다 죽어요!”
나라고 이대로 포기하고 나가는 것이 아쉽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도를 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과는 급이 다른 문제였다. 그것은 적어도 세계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아직 완전히 붕괴되지 않은 지금 이때 도망가지 않으면, 우리는 저 어두운 황천의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이상 이곳이 사라질 일은 없다.
결국, 우리는 영원히 지옥에 갇히게 되는 거다.
“큭. 알겠다.”
“어서 가죠.”
다행히도 아직 붕괴는 완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진행되는 속도를 보건대, 시간은 남아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면 어떻게든 들어왔던 입구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아, 안 돼!”
“사, 살려 줘!”
“제발 누가 좀 도와줘!”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여러 개의 균열 너머 대지 위에서 컬렉터들은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하고 있었다.
아직 20명이 넘게 남아 있는 컬렉터들은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하고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이쪽을 보고는 애타게 손을 뻗어 왔다. 거기에 이성적인 판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쪽에서 도망치라고 외쳐도, 저들은 어리둥절하다 죽게 될 거다.
“…….”
권지아의 시선이 컬렉터들에게 머물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살려 달라고 비는 컬렉터들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권지아를 보챘다.
“뭐 하십니까? 어서 가지 않고.”
“나는…….”
뒤늦게 그녀의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알게 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사람들 말입니까? 설마,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건…….”
나는 대답을 망설이는 그녀의 태도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지아 씨. 지금 상황을 보세요. 이 대로면 아귀도 사상세계는 붕괴합니다. 붕괴한 채로 유지되면, 우린 영원히 이곳을 떠돌아야 한다는 소리예요.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나도 안다. 하지만…….”
주먹을 꽉 쥐는 그녀를 보고 나는 왜 그녀에게 지금까지 묘한 이질감을 느꼈는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말았다.
“……구하고 싶은 거군요. 저 사람들을.”
회귀자 권지아.
그녀는 다른 회귀자와 다르게 너무나도 착했다.
감정이 마모되어야 할 사람임에도 타인을 향한 마음만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가 알던 회귀자와 다르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리고 동시에 어째서 회귀자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지닌 그녀가 이렇게나 많은 실패를 겪었는지도 깨달았다.
내 반응을 의식한 것인지, 권지아는 망설이듯 말했다.
“너는 먼저 떠나라. 괜히 여기 있다간 죽을 테니까. 나는 괜찮다. 어차피 죽어도, 다음이 있으니까.”
“지금 진심입니까?”
“네가 보기엔 이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도 그렇다. 저 사람들을 보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저들이 비록 선한 사람은 아니라 하더라도 악인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죽는 걸 내버려 두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옥죄듯 아파 와.”
“…….”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같이 가기로 했는데, 벌써 약속을 어기게 될 줄이야. 분명 다음에 네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널 볼 면목이 없겠지.”
그녀는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미어지게 할 정도로 처연한 미소였다.
“분명 희망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니었던 거야.”
설마, 나를 향해 걱정 말라며 웃어 보일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그녀는 분명 이곳에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거다.
내가 떠나간 뒤에도 말이다.
“…….”
회귀자는 보통 자기만 아는 부류가 많다.
남을 위해 살지 않겠다느니, 오직 나만을 위해 살겠다느니, 혹은 대의를 위해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성향 속에서도 회귀자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절대 잔정을 베풀지 않는 것.
타인을 도와줬을 때, 돌아오는 것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인 생각만 하는 회귀자들에게 대가가 없는 선행은 금기시되는 행위였다.
도움도 안 되는데, 왜 도와주지? 차라리 그럴 바에는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하고 말지.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권지아는 예외였다.
‘처음에는 특성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야.’
분명, 그녀는 회귀자 특성이 지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는 특성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그녀 본연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자신보다도 타인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이타심이었다.
“권지아 씨…….”
나는 그녀를 불렀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나는 이타심이 사람을 얼마나 망치는지 잘 안다.
종말을 직접 겪어 왔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이 어떤지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았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면 그것을 빌미로 어떻게든 이쪽을 뜯어내려는 이기심. 자신보다 잘 나가면 어떻게든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자신과 같은 진흙탕으로 끌고 내려가려는 어두운 욕망. 앞에선 웃지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악의를 품는 비열함.
그게 내가 봐 온 사람들의 본질이었다.
“당신은…….”
그런 나보다도 그런 것을 많이 봐 왔고, 본인이 가장 뼈저리게 느꼈으면서도.
그것 때문에 셀 수도 없는 실패를 겪고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럼에도 사람들을 지키려는 겁니까?
그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해, 이곳을 탈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 보는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나는 결국 납득하고 만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선의를 지닌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강직한 마음을 지녔는지.
‘정말로…… 회귀자답지 않잖아.’
이게 무한 회귀자의 본질이라고?
몇 백 번이 넘는 죽음을 겪고 실패를 겪으면서도.
나약함을 떨치지 못한 채, 모질지 못한 저것이?
고요했던 내 마음 위로 커다란 돌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옛날의 광경이 떠올랐다.
보이는 것은 등을 보이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최도윤의 등.
나는 항상 그 뒤를 쫓으며 그의 등을 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앞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멈추는 일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 뒤를 쫓기 바빴다.
문득,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본 것은 주저앉아 쓰러진 채, 이쪽을 애타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세계의 잔혹함에 스러져 가던 사람들.
텔러들의 농간에 속아 성령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사람들.
최도윤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매도하며 무시했다.
‘반면, 나는 어땠지?’
나는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내가 손을 뻗었던가?
그들을 동정했다. 하지만 선의를 베풀었던가?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나는 저 컬렉터들을 버리려고 했다. 결국 그들이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 생각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들이 죽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결국 가치 없는 자들의 최후라고.
‘이래서야,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최도윤 그 녀석과 다를 바가 없잖아.’
언제부터였을까? 사람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누군가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세상에 아무렇지 않게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합당한 죽음은 없지만, 나는 그래도 최소한의 이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휩쓸린 채로 죽어 가는 것은 내가 그토록 동정하던 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마음으로 타인의 죽음을 슬프게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성령들은 가만히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와주지도 않고 저주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주변에 굉음이 가득해서 분명, 우리들의 대화는 저들에게 들리지 않겠지.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려 권지아와 눈을 마주 봤다.
그리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지아 씨. 우리는 분명, 같은 종말을 겪어 온 피해자예요.”
언제 완전히 무너질지 모르는 이 세상 속에서 내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이런 상황에서 속 편하게 대화를 나눌 때인가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내 본능이 외쳤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별들의 광대가 되어 싫어도 웃으며, 괴로워도 이를 악물고 견뎌 내야 하죠.”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의 삶이란 아주 존귀한 것이고, 그것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살인은 끔찍한 중죄이며,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사실 살아간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로운데.”
죽음이 얼마나 가볍고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그것은 그저 두려울 뿐이지, 절대 무겁지 않다는 걸.
죽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잔혹하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아요.”
나도 알고, 그녀도 안다.
“그럼에도 당신은 사람을 살리는 길을 택하겠다는 건가요?”
“……그래.”
“그것이 지아 씨의 이 끝없는 삶의 굴레를 반복하게 하더라도?”
“그래.”
“그렇군요.”
흔들림이 없는 단호한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풀리지 않는 해답을 들었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녀를 보면서 가슴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던 것, 나는 그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아 씨. 당신은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도우려 하는군요.”
“그게 잘못된 건 나도 알…….”
“잘못된 게 아니죠. 당신은 이기적이고 잔혹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강혜림의 불만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을 때도, 첫 만남에서 협박을 했을지언정 실제로 죽이려 들지 않은 것도.
“당신은 그저 한 명의 선한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결국 사람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선의라는 감정을 앞세운 정의로운 사람.
그 해답이 나오자,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지아 씨. 제가 왜 당신을 골랐는지 궁금하죠?”
“그건 내가 회귀자라서…….”
“아뇨. 사실, 그건 핑계에 불과해요.”
처음 그녀가 회귀자라는 사실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나서부터는.
회귀자라는 것은 사실, 이제 어찌 돼도 좋았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당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확고한 목표를 지닌 사람이라서 에요.”
백서련도, 강혜림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확고한 믿음과 강직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선택했다. 그들의 마음을 믿었기에.
그건 권지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그건, 지금 내 편을 들어주겠다는 소린가?”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단지, 꿈꾸는 자들의 편이죠.”
나는 꿈을 꾼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무엇을 꿈꾸는지 명확하게 모르지만, 분명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몽상가(Dreamer)였다.
그리고 몽상가들은 꿈이 끝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멈추지 않는다.
“갑시다.”
이미, 대화를 나누는 사이 퇴로는 붕괴해서 인제 와서 도망친다 한들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였다.
“저 사람들을 구하고, 이 세상을 끝냅시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