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93화
“후욱! 후욱! 이런 젠장! 무슨 해골 뼈다귀들이 이렇게 강해?!”
“방심하지 마! 녀석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해골이 아니야!”
“이 자식들. 되게 걸리적거리게 구네!”
유황천 외부에서 교전을 벌이던 컬렉터들은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싸움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자 내심 크게 당황했다.
분명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저승의 옥졸은 별거 아닌 녀석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숫자도 이쪽이 무려 3배 이상이나 앞섰다. 컬렉터가 일반인도 아니고 이렇게 모이면 어지간한 환상체는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녀석들은 보스급 환상체도 아니잖아!’
옥졸들의 진형은 굳건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공격은 차분하게 막아 내고 빈틈이 드러나면 귀신같이 창을 찔러 온다. 합이 맞지도 않는 반격을 허용할 만큼, 옥졸들의 방어는 느슨하지 않았다.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물리며 움직이는 병사들은 적이지만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 환상체로는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이 녀석들은 절대 평범한 해골이 아니야! 정예급이라 생각하고 싸워!”
컬렉터들의 무리 중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남자가 그렇게 외치자 다른 컬렉터들은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 우위라는 헛바람이 가시자, 그제야 컬렉터들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적당히 하지 않겠다!”
“모두 특성의 힘을 최대한 끌어 올려!”
컬렉터들은 더 이상 봐주면서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각자 기운을 끌어올렸다. 일부 컬렉터의 육체에서 반투명한 기운들이 흘러나오며 그들의 육체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 광경을 본 저승의 옥졸들은 여전히 붉은 안광을 차분하게 유지한 채, 적들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방진을 펼쳤다.
컬렉터가 진심을 내고 안 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오직 적들을 처리하는 것뿐.
설사 그 명령이 자신의 이 비루한 갑옷과 육신을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 * *
채앵! 챙!
검과 검이 충돌하며 어둠을 밝히는 불꽃을 토해 냈다.
은은한 빛이 맴도는 방 내부에서 두 존재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해골 장수가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잡고 횡으로 휘둘렀다. 명도에 실린 삼엄한 기운이 거칠게 허공을 찢어발겼다. 권지아는 칼날을 비스듬하게 세우며 공격을 흘려 냈다.
카앙!
“큿!”
힘 대부분을 흘려 냈음에도 손목을 울리는 위력에 권지아가 신음을 흘렸다. 고통은 역으로 권지아의 정신을 예리하게 붙잡았다. 권지아는 드러난 해골 장수의 빈틈을 노리며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바닥을 훑듯이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은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의 늑대 같았다.
권지아가 해골 장수의 바로 아래에서 스프링처럼 뛰어오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놈……!]
해골 장수의 붉은 안광이 폭사했다. 내질렀던 명도를 순식간에 회수하여 방어에 들어갔다.
카가강!
권지아의 날카로운 이빨이 명도와 수차례 충돌했다.
권지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공격이 막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허공에 뜬 채로, 몸을 틀어 해골 장수의 머리에 돌려차기를 날렸다.
해골 장수는 한쪽 팔을 수직으로 세워 발차기를 막아 냈다. 동시에 손을 움직여 권지아의 발목을 잡고, 벽을 향해 강하게 집어던졌다. 권지아는 허공에서 자세를 잡으며 지면에 가볍게 착지했다.
[움직임이 마치 짐승 같구나.]
해골 장수가 영혼을 떨 듯 내뱉는 말에 권지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전 날려 버린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재차 해골 장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싸움법 자체가 상대방을 물고서 절대로 놓치지 않는 짐승의 그것이었다.
해골 장수는 양손으로 명도를 쥐고서 그녀를 맞이할 자세를 취했다.
카가가강!
서로의 신형이 부딪치는 순간, 이어지는 무수한 참격들. 검과 검이 맞닿을 때마다 작은 폭죽 같은 불꽃들이 허공에서 거품처럼 일어나 사라졌다.
권지아는 상당히 짜증 어린 시선으로 해골 장수를 노려봤다.
명도를 휘두르는 해골 장수는 매우 뛰어난 적이었다. 움직임에 빈틈이 없으며, 허를 찌르는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반응했다.
2m가 넘는 거구와 그 덩치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힘이 공간을 휩쓸 때마다 권지아는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의 적수를 인정한 것처럼 해골 장수 또한 권지아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살아 있는 망자여, 네놈들은 절대 이곳을 넘보지 못한다.]
“닥쳐.”
권지아는 몸속에 욱여넣은 힘을 일으켰다. 폭풍처럼 흐르는 기운을 오른손으로 모아, 그것을 정면을 향해 방출했다.
콰르르릉!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거친 광풍이 몰아쳤다.
뿌연 먼지가 일어나 해골 장수의 모습이 가려졌다. 권지아는 해치웠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에 미치는 순간, 무언가를 느끼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쿠웅!
권지아가 서 있던 자리에 해골 장수가 허공에서 떨어지며 명도를 내리찍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그녀는 정수리가 관통됐을 거였다.
[사술을 부리는구나…….]
“다 죽어 버린 해골 주제에 말이 많구나.”
[이곳은 사자의 땅. 생자는 결코 이곳에 와서는 안 되느니…….]
권지아는 해골 장수의 말을 무시하며 그의 등 너머에 있는 문을 노려봤다. 조금 전 충돌의 여파로 장지문은 갈가리 찢겨 지금까지 숨겨 왔던 안쪽의 자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해골 장수가 지키려는 좁은 방의 중심에 옥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말뚝 하나가 지면에 반쯤 박혀 있었다.
‘저것이…… 이 아귀도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
[명부의 말뚝]
저승의 옥졸들이 이곳에 관아를 짓고 이 근방을 돌아다니며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물건.
아귀도의 클리어 조건은 바로 반쯤 박혀 있는 저 명부의 말뚝을 완전히 회수해야 하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거대한 해골 장수부터 쓰러뜨려야 했다. 애초에 히든피스인 명도를 얻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말뚝을 뽑으려 해도 녀석과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귀찮게 됐어.’
권지아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현은 어떤지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이 녀석과 결판을 내지 못하는 동안, 유현이 잘 버티고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유현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버텨 주고 있었다. 아니, 버티는 것을 넘어서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다.
‘저 무기.’
형상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백련을 본 권지아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평범한 검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렇게 모습이 바뀌는 것은 의외였다. 그 이상으로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는 유현의 실력도 놀라웠다.
‘애초에 텔러가 저렇게 잘 싸울 수 있을 리가.’
그가 종말을 살다 넘어온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 종말에서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른다.
‘녀석은 대체, 어떤 삶을 산 거지……?’
그녀도 종말을 겪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유현처럼 그 끔찍한 세상에서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회귀를 반복했으니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권지아는 잡생각을 떨쳐 내며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자세를 잡은 해골 장수는 아무리 때려도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보였다. 그녀는 저 괴물과 단독으로 사투를 벌여 승리를 쟁취해야만 했다.
“다시 간다.”
그녀는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해골 장수와의 승부를 짓기 위해 달려들었다.
* * *
권지아가 싸우는 것을 보니, 내가 우려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녀는 잘 싸우고 있었다. 다만 그 이상으로 상대도 만만치 않아서 문제였지.
‘저만한 해골 장수가 보스급 환상체라니. 일반 환상체 아귀와 갭이 너무 크잖아.’
보통 사상세계는 보스급 환상체가 아무리 강해도 일반 환상체와 그렇게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아귀와 해골 장수. 둘을 가만히 놓고 비교하면 해골 장수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격차가 컸다.
‘아무리 히든피스가 있다 하더라도 난이도가 너무 높아. 역시 신화 계열 이야기라 그런가?’
그런 생각을 품는 사이 내 머리를 노리고 창이 찔러 들어왔다.
“이크!”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창을 피하며, 백련을 창으로 만들어 곧바로 녀석에게 찔러 넣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무색하리만치 옆 녀석이 내민 방패에 막혀 버렸다.
내가 창을 회수하는 사이 방패가 옆으로 치워지며 재차 옥졸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는 뒤로 살짝 물러나며 혀를 찼다.
“귀찮은 녀석들.”
[야, 유현! 집중해! 저 녀석들 진짜 장난 아니니까!]
“나도 알아.”
저승의 옥졸들은 개개인의 전투력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문제는 녀석들이 뭉쳐 있을 때였다.
공포라는 감정이 없는 녀석들이 모여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가장 최적의 수를 망설임 없이 수행한다.
포악한 짐승마저 강자를 알아보며 두려움을 품는데, 저 녀석들은 그게 없다.
오히려 위험한 적일수록 더욱 철저하고 확실하게 싸움에 임했다.
가까이 붙지 않고 멀리서 활을 쏘다가, 적당히 가까워지면 창을 내지른다. 나머지 녀석들은 방패를 들고 혹시 모를 아군을 보조해 주기까지 한다.
“집단의 이점을 철저하게 살리고 있어.”
보통 이쪽이 혼자고 저쪽이 다수면 방심이라도 할 법도 한데, 이미 죽어 있는 저 녀석들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아마 일반적인 컬렉터가 놈들과 싸웠다면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서서히 말라 죽었을 거다.
이쪽은 지치는 반면, 저들은 지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내게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지.”
녀석들이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면, 나는 그 이상으로 놈들의 허를 찔러 주면 그만이었다.
“백련.”
[알았어.]
나는 곧바로 백련을 채찍의 형태로 변환시켰다. 부피와 질량은 한계점 이상으로는 늘릴 수 없지만, 채찍 정도라면 10m까지는 늘릴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채찍을 휘둘러 뒤에 선 궁병을 노렸다. 설마 내가 이런 공격까지 할 줄 몰랐는지, 방패를 든 녀석들의 반응이 굼떴다. 궁병은 곧바로 옆으로 회피했지만, 내가 손목을 틀자 채찍의 끝이 기이하게 휘어지며 궁병 하나의 허리를 휘감았다.
촤아악!
……!
채찍을 쥔 손을 휘둘러 궁병 녀석을 거칠게 흔들었다. 자연스레 녀석이 있던 후열의 진형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검을 쥔 옥졸이 채찍을 잘라 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뱀처럼 꿈틀거리는 채찍을 쉽게 벨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견고하던 녀석들의 진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채찍을 회수해 이번에는 건물의 천장, 지붕을 받쳐 주는 서까래를 채찍으로 감았다.
“건물까지 튼튼한 건 아니지.”
곧장 힘을 줘서 채찍을 당기자 서까래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무너진 서까래가 옥졸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 옥졸들은 방패를 들어 올렸고, 일부는 무기를 버려 두 손으로 떨어지는 잔해를 받아 냈다.
나는 하나에서 그치지 않았다. 옥졸들의 머리 위에 있는 서까래를 하나씩 분지르며 놈들의 머리 위로 붕괴시킨 지붕의 잔해를 계속 떨어뜨렸다.
천장 일부가 무너지며 어두운 내부에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몰아치는 유황의 냄새가 확 풍겨 왔다.
‘바로, 지금…….’
나는 즉시 백련을 다시 검의 형태로 바꾼 이후 옥졸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나 하나를 막기 위해 유지하던 진형은 이미 완벽하게 파훼 됐다. 녀석들의 패착은 튼튼하지 못한 실내에서 나를 상대하려 했다는 거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평야에서 싸웠다면 불리한 건 나였겠지.
촤아악!
나는 여태까지 견제받아 온 한을 풀기라도 하듯 옥졸들을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녀석들도 이제 진형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각자 무기를 쥐고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개싸움이라면 이쪽이 환영이었다.
* * *
“후우. 드디어 끝났군.”
“이 빌어먹을 뼈다귀 자식들! 우릴 우습게 보고 앉았어!”
“다들 거기까지! 피해 보고는?”
“사망자는 없는데, 부상자가 일곱이나 됩니다. 다만, 위급한 정도는 아니고 전투에 약간 지장이 가는 수준입니다.”
“으음. 그런가.”
가볍게 이겨야 할 싸움을 오래 끌어서 지친 것도 모자라 부상자가 일곱 명이나 생겼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이상으로 얻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저 안쪽의 건물, 분명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그렇겠죠. 이 해골들도 저 안쪽에서 나온 거 같고.”
“이곳에 유황천이 있었을 줄이야. 아귀도는 아무리 파밍 해도 먹을 게 없어서 신경 끄고 있었는데. 위에서 내려온 명령대로 움직인 거치고는 뜻밖의 수확이야.”
모두가 시선을 교환했다.
별로 오고 싶지 않았던 아귀도에 이런 장소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저 관아 안쪽에 혹시 모를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의 눈은 욕망으로 물들었다.
“저기에 뭐가 있는지, 한번 확인이라도 해 보자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황천의 중심에 있는 관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