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92화
저승의 옥졸들은 동양식 갑주를 차려입은 해골 병사들이었다. 갑옷은 관리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헤지고 낡았지만, 그 때문인지 음산한 분위기가 더욱 강하게 풍겼다.
창을 쥔 놈들의 숫자는 총 열.
2열 종대로 움직이는 녀석들은 천천히 나무로 된 길을 걸으며 유황천을 넘어왔다.
나와 권지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 몸을 숨겼다. 주변의 유황 가스가 우리의 모습을 숨겨 줬다.
‘생각했던 것보다 숫자가 더 많군.’
안쪽에 최소 수십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온 녀석들의 숫자가 저 정도라면 아마 남은 녀석들은 30은 넘게 있을 거다. 아무것도 모른 채 쳐들어갔다면 낭패를 치렀으리라.
옥졸들이 움직이는 걸 알았는지, 주위에서 들려오던 아귀들의 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끝없는 식탐에 본능밖에 안 남은 녀석들도 저승의 옥졸이 얼마나 두려운 대상인지 아는 거다.
“권지아 씨. 순찰을 나간 녀석들이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1시간. 순찰의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 그저 이 유황천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뿐이니까.”
“1시간이라. 어떻게 보면 조금 빠듯한 시간이군요.”
즉 1시간 이내에 안쪽의 옥졸들을 모두 처리하고, 더 깊은 내부에 잠들어 있는 히든피스를 챙겨야 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사상세계 클리어 방법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1시간은 많이 모자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하겠죠?”
“……내게 그걸 묻는 건가?”
“그래도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아 씨니까요. 컬렉터의 의견은 들어 봐야죠.”
“이미,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그녀는 내가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알던 텔러는 절대로 컬렉터의 의견이나 그런 걸 묻거나 동의하지 않았을 테니까.
“여기까지 온 이상, 할 수밖에 없겠지. 비록 여기까지 온 건 나도 처음이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니까.”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어느덧 옥졸 부대는 유황천의 절반 가까이 넘어온 상황이었다. 저들은 침입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귀든, 컬렉터든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순간 놈들은 분명 일사불란하게 배제하려고 들 거다.
두려움도 감정도 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지체 없이 수행하는 해골 병사들.
거의 기계에 가까운 녀석들이라, 차라리 본능만 남은 아귀를 상대하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른다.
‘저런 녀석들이 나중에 싸움에 합류하게 된다면 상당히 위험해져.’
놈들의 위험함을 알기에 아귀들마저 도망쳤다. 이 주변은 이제 완벽한 무주공산이 됐다.
‘아니. 그건 아니지.’
나는 멀리서 이쪽에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느낀 것은 권지아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는 저 멀리 잿빛 먼지바람이 휘몰아치는 회색 장막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저 너머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한 무리의 컬렉터들을 발견한 권지아가 혀를 찼다.
“사람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온 건가?”
“아마, 저들도 호기심이 들어서 온 거겠죠. 저희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곳에 아귀들이 없는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오는 도중에 아귀와의 전투를 치른 탓에 꽤나 지쳐 보였다. 서로 뿔뿔이 흩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위험을 인지하고 뭉친 것 같았다.
그렇게 모인 컬렉터의 숫자가 무려 30여 명에 육박했다.
처음 사상세계에 들어갔을 때보다 숫자가 늘어난 걸 보면, 바깥에서 추가 인원이 들어온 게 분명했다.
“저희에겐 잘된 일입니다. 저들이 순찰을 나간 옥졸 부대의 시선을 끌어 줄 테니까요.”
내가 저 컬렉터들을 보고도 가만히 놔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권지아 단둘이서 저 관아에 쳐들어가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순찰 타이밍을 노려 기습을 가하더라도 안전을 확보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용하는 게 바로, 저 사람들이었다.
권지아도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반응이 썩 좋지 않으시군요.”
“…….”
“하지만, 이건 알아 둬야 합니다. 원래 이곳은 저희 둘만 오기로 한 곳이었습니다. 멋대로 이곳에 찾아오고, 저희를 방해하려고 한 것은 바로 저쪽이죠.”
게다가 저렇게 뭉친 컬렉터들의 눈빛에는 혹시 모를 아이템을 얻을지 모른다는 욕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 녀석들도 마냥 생각 없이 따라온 건 아니라는 소리다. 결국 저쪽도 저마다 노리는 것이 있으니, 여기까지 온 거겠지.
“저들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선택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는 본연이 본인의 책임이죠. 그래도 그들을 동정하십니까?”
“아니. 동정하지 않는다.”
권지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미약한 망설임을 읽어 냈다.
수백 번이나 같은 삶을 반복하고, 무한 회귀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지녔음에도 저런 반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회귀자와는 많이 달랐다.
나는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고 넘기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병력이 줄어든 이 기회에 남은 적들을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했다.
나와 권지아는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 채 컬렉터 무리를 주시했다.
“백효야.”
나의 부름에 허공에서 백효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백효에 대해서 전해 들은 권지아는 놀란 기색은 없었지만, 그래도 신기한지 백효를 빤히 주시했다.
“부탁한다.”
부엉. 부엉.
백효가 내 말을 알아듣고 곧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윽고 백효와 시선 공유가 이뤄지며 컬렉터들의 모습이 훨씬 더 잘 보였다.
“후우. 뭐야.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그보다 그 녀석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뭐가 어찌 됐든,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물러설 수도 없겠지. 그보다 저 너머에 뭐가 있는 거 같은데.”
“이봐. 보상이 나오면 공평하게 나눠 갖는 거, 잊지 않았지?”
이미 여기까지 오면서 저들끼리 합의가 됐는지, 벌써부터 그런 대화가 오갔다.
“뭐, 이렇게 뭉치는 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이런 사상세계는 애초에 처음 와 보는데. 그 백화 매니지먼트인가? 거기서 뭔가 하려는 걸 보니, 분명 좋은 게 있겠지.”
“크흐흐. 제발 우릴 실망시켜 주지 않았으면 좋겠군.”
벌써부터 탐욕 때문에 잘난 듯이 떠드는 몇 놈도 있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의 말을 감청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 이제 곧 벌어질 일은 너희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거다.
오히려 그 이상으로 너희들을 경악시키게 만들 테니까.
“둘이 곧 부딪칩니다.”
“그래.”
내 말과 컬렉터 무리가 유황 가스를 뚫고 나오는 옥졸 무리를 발견하는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 어어?”
“뭐야? 아귀가 아니잖아?”
컬렉터들이 옥졸을 발견한 것처럼, 옥졸들 또한 컬렉터 무리를 발견했다. 막 유황천을 건너온 옥졸들은 침입자를 발견하자마자 반응했다.
스릉.
그들의 뻥 뚫린 검은 눈동자 사이에서 붉은 안광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녀석들은 쥐고 있는 무기를 꺼내 들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방진을 펼쳤다.
숫자는 옥졸 부대가 열. 컬렉터는 서른이 넘는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전력이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옥졸들에겐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외부의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
“어? 뭐야. 저 자식들. 우리와 싸우려는 건가?”
“다들 무기 챙겨! 안 그래도 아귀 녀석들이랑 드잡이질 하느라 짜증 났는데, 마침 잘 됐다.”
“어딜 해골바가지들이 감히 겁도 없이 개겨?”
옥졸들의 모습을 본 컬렉터들이 그런 외침을 토해 냈다. 원래라면 기세에서 밀렸을 그들이었지만, 숫자가 많은 것이 용기를 준 덕분에 저쪽도 잔뜩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거라면 어느 한쪽이 쉽게 무너지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 거다.
척척척.
저승의 옥졸들은 진형을 유지한 채 창을 내밀고 천천히 컬렉터들을 향해 다가갔다. 컬렉터들 또한 각자 무기를 쥐고, 자신의 힘을 끌어올리며 싸울 준비를 끝마쳤다.
서로 지척까지 접근한 두 집단이 충돌했다.
“저희는 지금 움직이죠.”
“……그래.”
권지아의 대답이 조금 늦게 돌아왔지만, 내가 움직이자 그녀는 행동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나를 따라왔다.
저들은 싸움에 한눈이 팔려서 이쪽에 관심을 가지지도 못했다. 나와 권지아는 곧바로 옥졸들이 건너왔던 길목을 통해 관아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곳곳에서 유황 가스가 터져 나오며 조금 호흡에 지장이 왔지만, 일반인이 아닌 우리에게는 그리 큰 타격이 아니었다.
뒤에서 비명과 함께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우리는 그것을 등으로 느끼며 관아의 정문에 도달했다.
입구를 지키는 녀석들이 없어서 우리는 대문을 열었다.
쿠웅!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좌우로 크게 열렸다. 동시에 안쪽 마당을 배회하던 일부 옥졸들이 우릴 발견했다.
“지아 씨!”
“말 안 해도 안다.”
선수 필승.
특히나 우리가 기습을 가하는 입장에서 더더욱 필요한 행동이었다.
옥졸들은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짜 맞춰진 기계처럼 우릴 보는 순간, 곧바로 무기를 쥐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권지아 그리고 옥졸들이 서로 충돌했다.
이쪽에 찔러 들어오는 창을 상반신을 틀어서 회피. 곧바로 녀석의 안쪽까지 빠르게 파고든다.
상체를 숙이고 지면에 몸을 밀착시키며 돌진했다. 옥졸은 당황하지 않고, 창대를 움직이며 손잡이로 내 머리를 쳐 내려고 했다.
거기까지 움직임을 읽은 나는 백련을 들어 녀석의 창대를 옆으로 흘려 냈다.
옥졸의 움직임에 빈틈이 드러났고, 나는 거기에 있는 힘껏 백련을 휘둘렀다.
촤악!
갑옷과 함께 안쪽의 뼈가 시원하게 잘려 나갔다. 옥졸의 붉은 안광이 커지며 신체가 허물어졌다. 옆을 보니, 권지아도 옥졸을 처리한 뒤였다. 옥졸의 몸에 짐승이 할퀴기라도 하듯 거대한 상흔 세 개가 나 있었다.
동시에 시선을 마주한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왔다.
문지방을 넘자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 긴 창을 내밀어 우릴 저지하려 들었다.
감정이 없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반응이 빠르다.
나와 권지아는 방해꾼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관아의 안쪽은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한 내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 옥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안광들이 둥둥 떠 있었다.
끼기기긱.
“……!”
무언가를 강하게 당기는 소리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백련을 방패로 바꿔 권지아와 내 몸을 가렸다.
티티티티티팅!
어둠 너머에서 날아온 화살이 백련을 거칠게 두드렸다. 설마 궁병까지 내부에 배치하고 있었을 줄 몰랐다.
그보다 순찰 나간 녀석들을 제외하면 안쪽도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내부에 병력이 더 있었다는 건가?
‘이거 컬렉터 무리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르겠군.’
화살 세례가 멈추고 방패를 치우자, 권지아가 기다렸다는 듯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근거리가 되자, 활을 쏘던 녀석들은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고 응전에 들어갔다.
나도 곧바로 [밝은 눈]스킬을 발동시켜 권지아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이 어둠 속에서도 적들이 보이는지, 잘 싸우고 있었다. 아니,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다. 그저 옥졸의 눈동자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듣고 상대방의 공격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저것이 수많은 죽음을 겪어 오며 극한까지 단련된 감각인가?’
심지어 저것은 [스킬]이나 [이야기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순전히 경험을 통해 완성한 기술이다. 아무리 나라도 저건 절대 따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앞을 막아서는 옥졸들을 하나씩 처리하며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몇 개의 문지방을 넘고, 얼마나 되는 녀석들을 처리했을까?
커다란 방이 우리를 반겨 줬다.
지금까지 우릴 막아서던 옥졸들은 없었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옥졸과 다르게 화려한 갑옷을 차려입은 해골 병사 하나가 정좌한 채 앉아 있었다.
아니. 녀석은 병사가 아니었다. 덩치도 옥졸들보다 훨씬 더 거대했고, 입고 있는 갑주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녀석은 이곳의 지휘자이자 보스급 환상체인, 해골 장수였다.
[침입자인가…….]
녀석은 우릴 발견하자 스산한 소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일반적인 물건과 다르게 반투명한 흰색 아우라를 뿜어내는 명검이었다.
[배제한다…….]
[명도(冥刀)]
저것이 바로 아귀도 사상세계에 존재하는 히든피스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녀석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해 보이는 환상체.
녀석이 바로 이곳의 보스였다.
문밖에서 무언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관아 내부를 지키는 나머지 옥졸들이 소란을 듣고 몰려오고 있었다.
정면에는 보스급 환상체.
뒤에는 남은 적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등을 맞대며,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노려봤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저 장수 녀석과 싸움은 권지아에게 맞기고, 나는 그녀의 뒤를 지키는 것이다.
“내 발목이나 잡지 마라.”
그리고 내게 돌아온 대답은 참 회귀자 다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