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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91화 (9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91화

얼마 전에 한 번 방문했던 아귀도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컬렉터들이 여럿 보였다.

그래. 사상세계에 컬렉터가 있었다. 그게 이상할 건 없다. 컬렉터가 사상세계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이 아귀도에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 영 수상했다.

“뭐지? 못 보던 얼굴들이 여럿 보이는군.”

권지아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살짝 경계심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변에 돌아다니는 컬렉터들을 슬쩍 살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찾아오는 컬렉터가 없이 한산한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컬렉터가 많이 보이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그럴 리가.’

이쪽을 묘하게 곁눈질로 바라보는 컬렉터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책. 해답은 바로 저기에 있었다.

나는 곧바로 녀석 중 몇 개의 책을 챙겨 페이지를 넘겼다.

분량이 많았지만, 원하는 부분만 빠르게 읽기만 하면 되니 별로 수고스러울 것도 없었다.

탁.

나에게만 보이는 책을 덮은 나는 그것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리며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견제로군요.”

“견제라고? 그럴 리가…….”

“저들의 목표는 지아 씨가 아닙니다. 저를, 그리고 백화 매니지먼트를 향한 견제죠.”

사실 일전의 결투가 끝난 이후, 우리 백화 매니지먼트를 주시하는 눈이 늘어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시선들 사이에서 단순히 우리를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녀석들 말고도, 좋지 않은 목적은 지닌 놈들이 있다는 것까지도.

“저놈들. 거대 클랜에서 보낸 끄나풀입니다.”

“클랜에서 보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내 기억 속에서 그런 일은…….”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곧바로 나를 향했다.

“너로군.”

“그러니까, 아까부터 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나와 계약을 맺기 전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소문을 안 들으셨나 봅니다?”

“그건…….”

그녀의 반응도 이해한다. 애초에 똑같은 일을 몇 백 번이나 반복하다 보니, 굳이 소문을 들을 필요도 없었겠지. 뭘 해도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는 비슷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은 바로 나의 존재. 그리고 이런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변해 버린 지금의 세상이었다.

“모를 수도 있으니,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 클랜에서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를 묘하게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유야 뭐, 사상세계의 클리어 때문입니다.”

“……!”

내 말에 그녀는 몸을 움찔 떨었지만, 조금 전처럼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아마 어렴풋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맞다며, 나와 강혜림이 지금까지 몇 개나 되는 사상세계를 없애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권지아는 잠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더니, 내게만 들리게끔 작게 물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나?”

“네. 물론이죠.”

“사상세계는 클랜에서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려는 곳이다. 그걸 없애겠다는 것은 그놈들과 싸우자고 전쟁을 선포한 꼴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놈들이 저렇게 나왔다는 것은, 이제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우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어째 잘 알고 계십니다?”

“……나도 겪어 봤으니까.”

하긴, 그렇게 많은 삶을 반복했으면 대형 클랜과 반목하는 이야기 정도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겠지. 다만, 저 표정을 보면 그 결과는 생각보다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너는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다. 조금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해 나가면…….”

“성급하게? 아뇨. 틀리죠. 이건 성급한 게 아닙니다. 애초에 저희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은 지아 씨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지아 씨가 실패한 기억이 있어서 조심스러워진 것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잊으신 거 같은데, 그때의 지아 씨는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너는…… 저들과 싸울 자신이 있다는 건가?”

“싸움이 두려웠으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죠.”

지금의 세상은 잘못됐다. 그들은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이미 자신의 지척까지 접근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알려 주려고 해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들려 줘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하며 어떻게든 우리를 없애 버릴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쪽도 어쩔 수 없다. 맞서 싸우는 수밖에.

우리가 이기고, 놈들을 짓밟고, 그렇게 상하 관계가 확실하게 정해진 뒤에 진실을 말해 주면.

“그때는 듣고 싶지 않아도 저들은 듣게 될 겁니다.”

“……후우. 그래. 확실히 그게 가장 맞는 방법이겠군. 애초에 대화로 해결될 녀석들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위해서는 지아 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후와 나, 단둘이다.”

“저까지 셋이죠.”

“그거로도 부족해.”

“사람은 더 모을 겁니다.”

아직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컬렉터는 둘이나 더 있다. 즉 내가 뽑을 사람은 아직 2명이나 남았다는 거고, 그 자리 또한 강혜림이나 권지아처럼, 그에 어울리는 사람들로만 채워질 거다.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도록 하죠.”

나는 은근하게 이쪽을 견제하는 컬렉터들의 시선을 느끼며 백련을 고쳐 쥐었다.

“싸울 생각인가?”

“저쪽은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 그렇다면 저희도 굳이 거기에 반응해 줄 필요는 없겠죠. 안전하게 갑시다.”

아직은 선을 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오늘 이 아귀도에 찾아온 것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방해하기보다는 은근하게 압박감을 넣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고작 저런 거로 우리가 흔들릴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잘됐습니다. 둘이서는 조금 벅차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들을 이용할 생각이로군.”

역시 회귀자라 그런가,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처음부터 저희 둘이서 저 ‘안쪽’에 있는 녀석을 찾아가는 건 무리가 있었죠.”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쪽이 상처 없이 잘할 수 있냐는 것은 별개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될 경우에는 이쪽도 위험해지는 게 이번 ‘히든피스’였다.

“저 사람들 보이십니까?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가 움직이는 순간, 그때 맞춰서 행동하려고 하겠죠.”

방법이야 뻔하다. 우리가 사냥하려고 하는 아귀들을 저들이 먼저 잡아챈다거나, 혹은 경계선 너머로 가는 것을 길을 막아서거나 우회적으로 방해한다거나.

그들의 목적은 어떻게든 우리의 사냥을 방해하는 것.

이런 곳까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이견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포기?”

“재미있는 도발을 해 주는군.”

이런 걸 물어봤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자존심이 팍 상했다는 듯 권지아가 투기를 강하게 불태웠다. 이제 막 수료식을 끝내고 컬렉터 딱지를 단 초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한 기세였다.

“너야말로 내 발목이나 잡지 마라.”

권지아는 그대로 준비 동작도 없이 검을 쥐고서 아귀도의 안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나 또한 그녀의 곁을 바짝 따라붙었다.

“어, 어어?”

“야! 움직인다!”

“뭣들 해! 우리도 움직인다!”

뒤에서 이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잿빛 바람에 가려 그들의 모습은 진작 지워진 지 오래였다. 저들도 설마 우리가 갑자기 뛰쳐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방향은 잘 아시죠?”

“내가 여길 몇 번이나 왔다고 생각하지?”

우리가 앞서 달리자 자연스레 인기척을 느낀 아귀 몇이 앞길을 막아섰다.

끝없는 공복에 시달리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허기를 채워 줄 먹이를 찾아다니는 환상체들. 놈들은 우리를 보는 순간, 본능대로 움직이며 달려들었다.

나와 권지아는 동시에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캬아악!

아귀가 괴성을 내뱉으며 손을 휘둘렀다. 기이하게 긴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가득했다. 그것이 양쪽에서 날개처럼 덮쳐들었다. 나는 백련을 쥐고 우선 방어에 들어갔다.

백련으로 한쪽 손을 막고, 반대쪽 손목은 발을 들어 올려 휘두르지 못하게 막았다.

그 순간 권지아는 내가 이렇게 막을 줄 알았다는 듯, 아귀의 빈 몸뚱아리에 검을 박아 넣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격에 아귀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아귀의 등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약한 소란이지만, 벌써부터 세 마리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권지아는 아귀가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고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고. 엄청 공격적이네.]

백련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형상 변화로 창의 형태로 바꾼 뒤에 권지아의 지원에 들어갔다.

권지아는 검을 휘둘렀다. 검의 궤적을 따라 아귀의 몸이 찢겨 나갔다. 짐승이 거칠게 할퀴기라도 한 모양새였다. 아마, 그녀가 지닌 전투와 관련된 이야기가 분명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령들이 나지막이 감탄했다.

[성령들이 권지아의 싸움에 흥미를 품습니다.]

[일부 성령들이 그녀의 과감함에 놀랍니다.]

저 반응은 당연했다. 권지아는 아주 오랫동안 싸워 온 전투의 베테랑이다. 심지어 그녀의 싸움 방법은 자신의 목숨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아주 거칠었다.

아름답고 유려하지만, 은근 효율을 중시하는 강혜림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싸움 방법이다.

검으로 베었음에도 상처의 단면이 불규칙적이다. 힘으로 찢어 버린 것처럼,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짐승의 짓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가녀린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싸움법.

그 갭의 차이가 성령들을 매료했다.

[성령들이 권지아 컬렉터에게 후한 평가를 내립니다.]

[3,200TP를 후원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아귀 셋까지 마저 정리하고 한숨을 돌리는데, 뒤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릴 쫓아오던 다른 컬렉터들도 아귀와 마주친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생명체를 탐지하는 기능이 달린 아귀는 자연스럽게 다른 컬렉터들을 먹잇감으로 노리고 분산됐다. 덕분에 나와 권지아의 움직임이 훨씬 더 수월해졌다.

“뭐, 뭐야!”

“젠장 아귀다! 모두 싸워!”

‘쯧쯧. 그러게 누가 멋대로 따라오래?’

처음 저 컬렉터들이 이쪽에 찾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조금 거슬리는 정도였지만, 지금 와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아귀의 시선이 분산되었고, 이쪽은 훨씬 더 무난하게 목표로 했던 곳을 향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나와 권지아는 거친 황야를 가로지르듯 건넜다. 중간에 몇 번 아귀가 등장했지만, 숫자가 위협적이지 않아서 무난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귀는 겉모습만 징그럽지, 실제로 그렇게 위험한 녀석들이 아니다. 등급만 따지면 종9품밖에 되지 않는 권지아가 찾아올 수 있는 곳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 안쪽은 다르다.

후우우웅!

조금 경사진 능선을 넘어서자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나의 피부를 자극했다. 나는 잠시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열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피부를 태울 기세로 몰아치던 바람이 잦아들자 나는 팔을 내리고 정면에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치이익!

뜨거운 유황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악취를 풍겼다.

그 유황으로 이루어진 지면 위로는 나무를 이어 붙여 만든 길이 하나 있었고, 길 너머에는 커다란 관아처럼 생긴 기와집이 보였다.

유황 길 너머에 보이는 건물이라 그런지 꼭 괴물이 살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겨 왔다.

“저곳이 바로…….”

“그래.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곳이지.”

권지아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진 시선으로 기와집을 노려봤다. 이미 전생에서도 몇 차례 겪어 온 일이었기에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훨씬 더 잘 아는 그녀였다.

이제 우리가 상대해야 할 녀석들은 회귀자인 그녀가 긴장할 정도로 꽤나 위협적인 녀석이라는 소리다.

[대체, 뭐가 있길래 그래?]

‘저승의 옥졸.’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귀도는 아귀만 존재하는 거로 알겠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아귀도는 저승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염부제와 연결된 곳이기 때문에 그곳을 관장하는 염라의 직속 부하들이 관리 차원에서 돌아다닌다.

그저 그런 환상체에 지나지 않는 아귀와 다르게, 저승의 옥졸은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아마, 저 안쪽에 이곳의 히든피스가 잠들어 있겠지.’

그리고 히든피스를 지키려는 저승 옥졸의 숫자는 최소 수십은 넘을 거다.

옥졸 하나가 아귀 열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최소 수백이 넘는 아귀 부대와 맞먹는 힘을 지닌 것이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거다.

그 정도로 명부를 지키는 저승의 병사는 환상체라 하더라도 강력하다.

‘무엇보다 이 유황 길을 뚫고 가야 한다니.’

저쪽으로 갈 수 있게끔 길이 놓여 있지만, 아무리 봐도 나무가 낡아서 위태로워 보였다.

발을 조금이라도 헛디디게 되는 순간, 저 유황천에 빠지게 될 거다.

괜히 컬렉터들이 이곳에 안 오는 것이 아니었다.

[뭐야. 그러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아니. 기회는 있어.’

[기회?]

‘이곳의 옥졸은 시간이 지나면 일부가 아귀도의 순찰을 돌 거든. 유일하게 내부의 경비가 느슨해질 때야.’

나와 권지아는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얼마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을까?

저 멀리 보이는 관아의 정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안쪽에서 장창을 쥐고 걸어 나오는 옥졸을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드디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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