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89화 (8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89화

“뭐, 뭣?!”

눈에 띄게 당황하는 그녀에게 나는 심드렁하게 쏘아붙였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본인도 회귀자면서.”

“너, 너……!”

그녀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우리 둘의 대화가 바깥으로 세어 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는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미 주변에 각인은 끝냈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소리가 흘러 나갈 일은 없죠. 다만 움직이는 건 눈에 띄니까, 너무 그렇게 초조한 티는 내지 말아 주시겠어요?”

“……각인까지 익힌 건가? 그 귀한걸?”

“운이 좋았죠.”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각인사라는 것이 아니다.

“제가 당신의 특성을 알아본 것이 신기합니까? 사실, 그쪽도 조금은 예상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저라는 존재가 당신에게 이번 회차에서 처음이었을 테니까.”

“…….”

권지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해서 대답을 완전히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때로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답을 말해 주니까.

“제가 이렇게 밝힌 것은 저와 당신이 지금 나누는 대화에서 가식이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가식……이라고?”

“적어도 당신이 아는 텔러와 저는 다른 걸 보여 주고 싶었거든요.”

권지아가 아는 텔러가 대부분 어떤 존재인지 안다. 그들은 교활하고 가식적이며,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다른 뜻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은 이 세계에 종말이 찾아왔을 때.

나도 안다. 그녀가 본 것을 나도 봤고, 그녀가 겪었던 것을 나도 겪었다.

“……너는 인간이었나?”

“그랬었죠.”

숨길 것도 아닌지라,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사실도 숨겼겠지만, 상대는 나와 같은 회귀자. 아니, 나보다도 훨씬 더 오래, 많이 살아온 회귀자다.

어쭙잖게 대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낳게 된다.

“저도 당신과 같습니다. 이 지구가 한 차례 종말이 찾아오고, 거기서 치열하게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을 쳤죠. 하지만 결국 선택받지 못한 인간의 최후가 으레 그렇듯, 저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했군.”

“다만, 시간의 역행은 아니었죠. 저는 과거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제가 아닌 이렇게 텔러로서 다시 태어나게 됐습니다. 뭐가 어찌 됐든 놀라운 일이죠.”

“그렇다면 과거의 너는 어떻게 됐지?”

“멀쩡히 있더군요. 아, 물론 좀 다릅니다. 이 시대의 저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더라고요.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권지아 씨, 지금 저희가 나눠야 할 중요한 이야기는 이게 아니죠.”

“…….”

나의 지적에 권지아가 잠시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네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나는 회귀자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래서 뭐. 네가 나와 같은 회귀자라고,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그녀가 내 허를 찌르듯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감히 네가? 고작 1번 죽은 네가 나를 이해한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번이 첫 회귀입니다. 권지아 씨처럼 오래 반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과 다르게 여기서 죽으면 다시 회귀할 수 없을지도 모르죠. 저는 제 회귀가 왜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거든요.”

“마치, 나는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적어도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자신을 무리하듯 혹사시켰겠죠.”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권지아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럼에도 뭐라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는 것은 결국, 본인도 납득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저는 권지아 씨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심정인지 모릅니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있을 리가 없죠. 제가 권지아 씨처럼 수백 번이 넘는 죽음과 삶을 반복한 것도 아니니까요. 아뇨. 제가 그렇게 됐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겠죠. 왜냐면 저는 당신이 아니니까.”

그래.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같은 일을 겪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결국 삶은 개개인 저마다의 것이다.

타인이 함부로 잣대를 매기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쉽게 남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말한다면 이해자가 되는 흉내 정도는 해 줄 수 있습니다.”

“너……!”

내 말이 그녀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권지아가 처음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감히, 이해자를 자처한다고?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치 오장육부가 뒤틀리기라도 하는 듯. 그녀는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였다.

“절대. 모른다고.”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메마른 바람이 내 몸을 삼키고 지나간 착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쌓이다 못해 고여 버린 마음의 상처가 나라는 존재로 인해 헤집어지고 터지고 말았다. 그 안에 썩어 버린 증오는 고스란히 이성이라는 접시 위로 넘쳐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정면에서 마주하자 나 또한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러는지…….”

“네. 모르죠. 말 안 해 줬는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

“애초에 저도, ‘이해하는 척’ 떠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만큼 역겨운 것도 없죠. 당신이 그걸 바란다고 하더라도 이쪽에서 거부했을 겁니다. 그런 건 결국 안 하니 만도 못 한 거니까요.”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해해 주는 척도 싫다.

참 곤란하기 짝이 없는 요구 사항이다.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녀를 살폈다.

어쩌면 이 또한 그녀에게는 말뿐인, 그저 허울뿐인 주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런 말로 그녀가 나를 믿고 받아들여 달라고 바라지 않는다. 이런 가벼운 동정으로 신뢰를 바라다니. 그거야말로 구역질이 치미는 일이 아닌가?

내가 그녀의 삶을 읽었다 해도,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권지아가 아니라, 강유현이니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바꾸고 싶은 거 아닙니까?”

“……!”

내가 마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마냥 권지아가 눈을 크게 떴다. 늘어진 앞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어떻게?’라고 묻고 있었다.

“당신이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필사적이더군요. 아직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나약한 육체로 어울리지 않는 싸움법을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본인은 아마 깨닫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바뀌고 싶다고.”

나는 아귀들과 싸우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서 호흡이 턱 밑까지 치밀어 올라도 검을 놓지 않았다. 눈앞의 적을 어떻게든 죽이고 승리를 쟁취하려 들었지만, 시선은 적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을 보고 있었다.

과연,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향해 애타게 손을 뻗는다.

그녀의 싸움은 적어도 내게 그렇게 비쳤다.

“하지만, 본인은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나, 나는…….”

“이거 하나는 알아 두세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부터 인지해야 합니다.”

테이블 아래로 내린 권지아의 손이 주먹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하면서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바꾸고 싶으십니까? 그걸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지아 씨의 몫입니다. 적어도 지아 씨가 이 끔찍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행하는 방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허공에 손을 뻗어 조금 전 없앴던 계약서를 다시 내 손으로 불러왔다.

나는 그녀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제가 도와드리죠.”

나는 그녀가 걸어온 길이 잘못돼 온 거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몇 백 번의 죽음을 겪고도 바꾸지 않았던 그녀에게 현실을 보여 줬다.

분명, 미움 받아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바뀌길 원한다면.

그녀가 정말로 이 현상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저는 언제든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습니다.”

선택을 내리는 순간이 올 거다.

“…….”

권지아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계약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계약의 건은 곧바로 답을 내려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거절했다고, 치졸하게 매달리지도 않겠습니다. 거절하면 거기서 끝. 저도 깔끔하게 권지아 씨에게 손을 떼겠다고 약속하죠. 하지만 이건 알아 두세요. 저는 당신의 회귀를 알기에 당신이 죽음을 통해 다시금 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회귀자는 마음만 먹으면 자살을 통해 몇 번이고 자신의 선택을 강제로 되돌릴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거절해도, 다음 회차에 수락할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저는 미리 말하겠습니다. 이게 제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입니다.”

다음 기회는 없다. 아마 다음 회차의 나는 이번 회차의 그녀의 책을 읽은 순간, 그녀를 택하지 않을 거니까.

나는 나를 안다. 강유현은 그런 녀석이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회귀로도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최후통첩이다.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려 주시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를 남기고 계산을 끝낸 뒤, 가게를 나왔다.

권지아는 떠나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마디도.

* * *

해가 창창하게 떠있는 대낮에 나는 사무실에 앉아 내 서재와 관련된 설정을 만지고 있었다. 내가 시스템 창을 킨 채로 손가락을 막 움직이니, 그것을 궁금해 하던 백서련이 물었다.

“유현 씨. 지금 뭐 하세요?”

“잠시 서재 설정 좀 만지고 있습니다.”

“서재 설정을요?”

“저도 이제 대리가 됐고, 저희 서재에 시청령이 벌써 4천이 넘었거든요. 이 상태로 놔두면 서재를 운용하는 데 좀 귀찮아져서요. 성령님들을 위한 아이템 같은 것도 내야하죠.”

“아이템도 있어요?”

“사업 아이템 할 때 그런 거예요. 성령님들이 무료로 쏘는 메시지는 간접으로, 포인트를 투자해서 쏘는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아시죠?”

“네. 들어는 봤어요.”

“매번 직접 메시지 쏘려고 포인트 소모하는 건 좀 그러잖아요. 그래서 구독령 한정해서, 직접 메시지 정액제를 만드는 거예요. 기간은 일주일, 한 달, 세 달 짜리로 해서. 포인트를 지불하면, 원할 때마다 직접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죠.”

“와. 그러면 상당히 편해지겠네요.”

“물론 그냥 했다가는 미친 듯이 방사하시는 분도 있을 테니, 쿨타임은 걸어 놔야겠죠. 게다가 최근 저희 서재에 광고를 넣고 싶다고 문의가 오기도 해서요.”

주 광고주들은 [차원 상점]과 연관이 돼 있는 자들이다. 혼성계에서 온갖 다양한 물품과 이야기를 판매하는 그들은 타고난 우주 상인이라, 자연스레 나처럼 큰 서재를 가진 텔러에게 광고 외주를 넣고는 한다.

서재가 커질수록 텔러가 포인트를 많이 버는 것도, 이러한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입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시간이 난 참에 이러한 것들을 정리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혜림 씨는 휴가인데 왜 사무실에 나와 있습니까?”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강혜림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거의 내게 찰싹 달라붙듯이 앉아 있었는데, 뭘 당연한 걸 묻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제가 나오면 안 되나요?”

“휴가인데 좀 쉬시지.”

“여기도 편해요.”

“제가 안 편해서 그럽니다.”

“유현 씨는 제가 불편해요?”

“그건 아닌데요.”

“그럼, 됐죠?”

아니, 이 아가씨가?

나는 눈썹에 힘을 한 번 줬다가 이내 인내심을 갖고서 견뎌 냈다. 그래. 바쁜 내가 참고 말지.

그렇게 서재에 대한 여러 가지 정리가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똑똑.

누군가가 고요했던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응? 누구지? 설마, 또 기자가?”

“아뇨. 그게 아닙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곳에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야 그럴 것이, 문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책의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문을 열어 줬다. 그리곤 약간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권지아를 보며 반갑게 웃어 보였다.

“기다렸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