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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85화 (8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85화

사실, 이런 제안을 받은 것이 한두 번도 아니다. 나를 귀찮게 만드는 다른 텔러들이 모두 무엇 때문에 나를 찾는지, 모를 리가 없으니까.

평소대로라면 나는 그녀의 제안을 곧바로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대답이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분명 아주 약간이지만, 내 마음속에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셀레스티얼 빙 부서라…….’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소수 정예다. 그리고 눈앞의 셀레스티나 부장의 성격만 보더라도 다른 부서에 비해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분위기가 꽤나 자유분방하다.

굳이 표현하면 천체주식회사보다는 오히려 희극단패에 어울리는 성향.

나처럼 날뛰는 녀석에게는 어떻게 보면 가장 어울리는 부서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저 정도의 부서에 소속되는 것은 상당한 이득이야.’

다른 부서에 가면 선배들의 뒤치다꺼리하고 견제를 받겠지만, 저곳은 다르다. 애초에 나 같은 괴짜들만 모인 부서인데, 내가 독특해서 걱정한다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나는 대리로 올라가면서 관심도 많이 받는 만큼 견제도 더욱 많이 받게 될 거야.’

당장에 펜타그램 부서만 해도 상대하기 벅찬데, 거기에 온갖 것들이 끼어들게 될 경우에는 꽤나 귀찮아진다. 이럴 때 부서의 존재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즉 이곳은 여타 다른 부서에 비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이 매우 크다.

제안을 곧바로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흐음. 고민하는 거 같네?”

“네, 뭐. 고민 안 하면 그게 이상하죠.”

“다른 놈들은 다 칼같이 거절하고 다닌다면서? 그래도 우리 부서가 좀 쩔긴 하지?”

자랑처럼 들리지 않고 저렇게 당당하게 비치는 것은, 역시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물어볼 게 있어요. 혹시 제가 셀레스티얼 빙 부서에 소속되면 저는 시화 장소를 지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겁니까?”

“응?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네가 거기서 하고 싶으면 계속해도 좋아. 우린 그런 거 전혀 터치 안 하거든.”

세상에. 부장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더더욱 가고 싶어졌다.

거기다 부서에 들어가게 될 경우에 천체주식회사에서 부서 특별 지원 정책이라 해서 시화를 통해 벌어들이는 포인트의 수수료를 감제해 주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가는 게 옳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나는 결국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꽤 고민하는 거 같던데. 이유가 있어?”

“이유랄 것도 사실 없습니다. 셀레스티얼 빙 부서에 들어가는 건 정말로 좋은 제안이고, 실제로 혹했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거절한 건 결국, 제 고집 때문입니다.”

그래. 거절에 구차한 이유를 붙일 필요도 없었다.

내가 이 제안을 걷어찬 것은 그저 내 고집 때문이었으니까.

그런 내 대답에 셀레스티나 부장님은 팔짱을 낀 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팔 위로 특정 부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고집? 대체, 무슨 고집?”

“그저, 이 순간에 한 번이라도 타협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그다음에는 도저히 예전처럼 뚝심을 유지할 수 없을 거 같았거든요.”

나는 처음부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가끔 부서의 존재가 크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꾹 참고 밀고 나갔던 것은 내가 그걸 바랐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 순간 흔들렸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고집은 한 번 꺾는 순간, 그다음은 너무나도 쉽게 꺾일 테니까요.”

“그러니 결국 고집 때문에 제안을 거절한 거야?”

“네. 맞습니다.”

나는 셀레스티나 부장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상대방에게 진심을 내비치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은 없지만, 그것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판단한 셀레스티나는 절대로 거짓을 입에 담거나 혹은 교만하게 구는 걸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거다.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녀에게 보여 줘야 할 태도는 이러한 진심이 담긴 것이다.

“합격.”

셀레스티나 부장님은 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완전 합격이야. 이야. 솔직히 뭐 처음 제안했을 때도 혹해서 한 거긴 한데, 거기서 거절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 게다가 요즘 다른 텔러들과 다르게 보기 드물 정도로 열정도 있고. 지금 와서 다시 말하는데, 너 완전 우리 부서에 제격이거든?”

“아, 네.”

갑자기 이어지는 폭풍 같은 칭찬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괜히 기분을 띄워 주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전부 다 진심이었다.

“사실, 뭐 제안을 해도 거기에 칼같이 알겠다고 했으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 보니까 알겠네. 네가 어떤 녀석인지. 그리고 왜 영감님이랑 친하게 지내는지.”

“그런가요?”

“인제 와서 다시 제안해도 결과는 똑같겠지?”

“네, 뭐. 제가 한 말을 바꿀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직은, 말이지.”

내가 하고 싶은 뒷말까지 꺼내다니. 역시 부장은 부장이라 이건가.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하지만, 그렇다고 셀레스티얼 빙 부서와 친해질 기회가 없는 건 아니죠.”

“뭐?”

설마 내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는지,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황당함이 깃들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를 일종의 프리랜서, 혹은 외부 용병으로 기용해서 기회가 되면 같이 일을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소립니다.”

“하. 이 당돌한 녀석 좀 보게? 그렇다는 건 지금 개인이 부서 하나와 맞먹으려 드는 거야?”

“싫습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셀레스티나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평범한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다면 곧바로 아구창을 날려 버렸을 거다.”

“…….”

어, 방금 내가 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뭘 날린다고? 아구창?

이분 머리카락 색깔마냥 아주 성격이 아주 화끈하시네.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 아주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을 거 같단 말이지.”

“……하하. 그런가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그래. 뭐, 서로 나중에 돕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그리고 너라면, 언젠가 또 금방 승진할 테고. 이제라도 이렇게 연을 만들어 놓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아. 음, 그래.”

그녀는 팔짱을 풀더니, 내게 척하니 손가락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너는 근래에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재미있는 녀석이거든! 이대로 놓치면 나도 섭섭하지!”

“하, 하하.”

“물론, 그렇다고 조건 없이 도와주는 건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 기브 엔 테이크가 있어야지. 그건 너도 동의하지?”

“네. 저도 무작정 베풀거나 도움받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마음이 맞아서 좋네! 그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진득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난 이만 영감님 좀 만나야 해서 가 봐야겠다.”

“네. 살펴 가세요.”

그렇게 헤어지려는 찰나, 막 떠오른 것이 있는지 셀레스티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 그보다 너 지금 지구에서 시화하고 있다고 했지?”

“네.”

“그렇다면 거기에 펜타그램 부서 녀석들 있겠네? 조심해라. 그 녀석들 분명, 너 같은 텔러를 가만히 놔두려고 들지 않을 거니까.”

설마 이런 조언을 받을 줄은 몰랐지만,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 보였다.

사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펜타그램과 완전히 척을 져서 적대 관계로 들어섰다. 인제 와서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도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그놈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박살을 내 줄 생각이니까.’

그래도 기껏 나를 걱정해서 해 준 조언이기에 나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전했다.

* * *

출발하고 다시 지구의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는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오전 일찍 나갔다가 해가 저물 때쯤에나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다만 언제 온다고 정확히 공지한 적이 없는데,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폭죽이 터지며 세 사람이 나를 축하해 줬다.

“유현 씨! 대리 승진 축하드려요!”

“축하 축하!”

“축하해요!”

“어, 네. 감사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깜짝 서프라이즈라 놀랐지만, 일단 고맙다고 전해 뒀다.

그보다 의외의 사람이 하나 더 끼어 있었다.

“신가령 씨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어머. 저는 뭐 오면 안 되는 사람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풀네임으로 부르기엔 우리가 이제 서로 남남이라 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평범하게 가령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저도 편하게 부를게요.”

내가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백서련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녀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축하 파티할 준비하러 외출했다가 언니와 만났어요.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찾아오셔서는…….”

과연. 그래서 강혜림이 아까부터 조금 저기압이었구나. 적어도 최소한 사무실에서만큼은 검후를 연기하지 않고 진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예상 밖의 손님이 찾아와서 그마저도 안 된 거다. 속으로는 엄청 답답해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신가령을 쫓아낼 수는 없다. 내가 승진한 걸 알고 축하해 주러 온 사람을 모질게 대하는 건 도의에 어긋나니까. 억울해도 강혜림이 참아야 한다.

“후훗. 그보다 놀랐네요. 설마, 유현 씨가 이전까지 정사원이었다니.”

“그렇습니까?”

“네. 무슨 풍기는 분위기만 보면 최소 차장은 되는 줄 알았어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옆에서 백서련이 거들었다. 강혜림은 입을 꾹 다문 채, 백효를 끌어안고 쓰다듬고 있었다. 백효는 내 어깨 위로 올라오고 싶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백효야 네가 고생 좀 해라.

부엉. 녀석이 내 눈빛을 읽어 내고 힘없이 울었다.

“그래도 놀랍긴 하네요. 그렇게 빠르게 승진한 텔러는 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이거 참.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축하의 의미로 찾아온 것도 있지만, 감사 인사도 하고 싶은 이유도 있어요.”

“감사요?”

“이제 곧 나올 콜렉팅 매거진 있잖아요. 유현 씨가 광고를 해 준 덕분에 벌써부터 기대감이 장난 아니에요. 예약된 수량이 평소에 3배는 뛰었다니까요? 지금까지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덕분에 경쟁 잡지사를 시원하게 재낄 수 있었어요.”

“그거 다행이네요.”

“그래서 선물도 마침 가져 왔답니다. 짜잔. 이런 날에 술이 빠지면 섭섭하잖아요?”

신가령이 가져 온 것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와인이었다. 나와 강혜림은 살짝 감탄했고, 그 진짜 가치를 알아본 백서련은 손발을 부르르 떨었다.

“세, 세상에 한 병에 백만 원이 넘는 와인을…… 저거 하나면 종이컵에 커피를 대체 몇 잔을 타 먹을 수…….”

퐁!

실성한 사람마냥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백서련의 말을 무시하고, 신가령은 바로 마개를 따 버렸다. 비싼 술이 잔에 흘러 들어가자 백서련은 완전 패닉에 빠져 버렸다.

“자자. 서련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시겠어? 그냥 마셔 마셔!”

“아풉!”

신가령이 백서련에게 강제로 술을 먹였다. 가장 귀찮은 적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눈빛에 보였다. 나와 강혜림은 그 광경을 어색하게 지켜보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축하해요.”

강혜림은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백서련과 신가령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내게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 또한 마주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혜림 씨 덕분입니다.”

“제가 무슨. 다 유현 씨가 잘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한 건 없어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았지.”

“혜림 씨도 제게 도움을 줬습니다. 본인은 아직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만, 저 또한 혜림 씨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

설마 내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는지, 그녀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눈가를 초승달처럼 휘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거기 둘! 뭐 하고 있어요? 오늘 같은 날은 마셔야죠!”

신가령이 이쪽을 부르기에 나와 강혜림은 황급히 시선을 떼고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서련 씨를 쓰러뜨리고 자기도 한잔했는지, 신가령의 얼굴은 미약하지만 홍조를 띄우고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와인이 담긴 잔을 내밀었다.

“자. 주인공이 마시지 않으면 섭섭하죠. 마시세요.”

“저 술 잘 못 하는데.”

“에이. 튕기신다. 걱정 말고 드세요.”

“그럼, 조금만.”

사실, 내가 술이 센지 약한지는 나도 모른다. 갓 성인이 됐을 때 종말이 벌어졌고 술은 입에 대지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했는데, 오히려 그 말 때문인지 나머지 여성들이 내게 기를 쓰고 술을 먹이려고 들었다.

[마셔라. 마셔!]

심지어 백련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시끄럽게 호응했다.

‘그래. 적어도 이 분위기만큼은 즐겨도 되겠지.’

나는 어깨에 힘을 빼고, 신가령이 건네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오늘 하루 정도는 진장 취해도, 나쁠 건 없을 거다.

그렇게 축하연의 밤이 천천히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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