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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82화 (8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82화

유현에게 금고까지 전부 다 털린 최덕팔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배신자의 처단이었다.

“혀, 형님. 정말 억울합니다.”

“맞습니다. 저흰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뭘 아무것도 안 해! 너희들이 안 불었으면 그 미친 새끼가 우리 사무실에 왜 찾아온 건데!”

유현에게 당해 골목길에 버려진 셋은 자신이 몸을 담고 있던 조직에 끌려와 다시 개처럼 맞았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억울하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최덕팔은 믿지 않았다.

아니, 그 말이 사실인 걸 알더라도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이 새끼들한테 일단 싹 다 덤터기를 씌워야 해! 안 그러면 내가 위험하다.’

최덕팔은 부어오른 얼굴에 냉찜질하며 배신자 셋의 목숨은 붙여 놨다. 화는 나지만 그렇다고 홧김에 죽여 버리면 이쪽이 곤란해진다.

주변에서 눈치를 보던 부하들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최덕팔은 그들을 못 미더운 시선으로 한번 보다가 이내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최덕팔의 불안함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유리창 너머로 사무실 아래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춰선 것이 보였다.

‘왔다!’

최덕팔이 곧바로 눈치를 주자 부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자리에 정렬했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 찾아온 상대방은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인물들이었다.

“여긴가?”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세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최덕팔은 곧바로 셋 중 리더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자에게 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테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다.

“오, 오셨습니까. 감독관님.”

“소식은 들었다만, 아무래도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거 같더군.”

“네, 네.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사무실의 가장 좋은 자리, 평소 최덕팔이 앉던 의자에 자연스레 앉았다. 최덕팔은 그 점을 지적하지 못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남자도 자신이 여기에 앉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이지?”

“그, 그게…….”

최덕팔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다 말했다.

그 말을 듣던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에 미약한 금이 갔다.

“그러니까, 즉 우리가 지금 비밀리에 진행하는 사업의 주요한 정보가 털렸다?”

“그,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다?”

“금고를 가져갔지만, 녀석이 그것을 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 금고에 대해서 아시지 않습니까. 함부로 열려고 했다가는 분명, 무슨 일을 당할 게 분명합니다.”

“금고를 열지는 못하겠다……라.”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중앙, 바닥을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배신자 셋을 향해 다가갔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그들은 감독관을 올려다보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놈들인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녀석이?”

“네, 네! 그렇습니다!”

최덕팔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감독관은 그렇군 하고 대답했다.

촤악!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잔상을 그리며 사라진다 싶더니, 배신자 셋의 목이 허공을 날아 바닥을 굴렀다.

히익! 정렬해 있던 조직원 중 하나가 몸을 크게 떨었다. 그들이 아무리 칼밥 먹고 산다는 짓을 하더라도 멀쩡한 사람 셋의 머리가 동시에 날아가는 일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감독관은 맨손으로 사람 셋을 죽였음에도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피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재밌는 짓을 했어.”

“가, 감독관님?”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고작 이딴 놈 셋으로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었어?”

“그, 그건…….”

최덕팔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의 얄팍한 속마음은 상대방의 끝을 알 수 없는 눈빛에 이미 낱낱이 파헤쳐진 뒤였다. 최덕팔은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어깨 위로 드리워진다고 생각에 몸을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후우. 아니. 됐다.”

“네, 네?”

“어차피 책임을 진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지. 오늘은 이 셋으로 봐주겠다는 소리다.”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최덕팔은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지만, 감독관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를 입에 담았을 뿐이었다. 여기서 최덕팔을 죽이면 그건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 현장에서 남들 몰래 부려야 할 수족들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한 번이라도 기회를 더 주는 것이 옳았다. 최 사장은 이전까지 일 처리를 잘해 왔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의도치 않은 사고가 터지고 말았군.’

감독관은 아직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사무실 내부를 살폈다. 조직원들이 최대한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아직 남아 있는 전투의 흔적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단 한 명이라고 했었나?”

“네? 아, 네! 한 명. 쳐들어온 사람은 한 명이었습니다.”

“한 명이라…….”

혼자서 이곳에 쳐들어와, 수십이 넘는 조직원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한 데다가 여기에 껴 있는 컬렉터 하나까지 초죽음을 만들어 놨다는 소리다. 심지어 그 과정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전문가다. 그것도 능력이 아주 뛰어난.’

이곳에 배치된 컬렉터는 현장에서 뛰지만, 그 실력은 정8품에 가까웠다. 정8품 컬렉터는 등급이 낮게 여겨지겠지만, 평균적으로 일반인보다 아득히 뛰어난 힘을 지녔다.

프로 격투 선수 10명이 동시에 덤벼도 정8품 컬렉터에게는 안 된다. 그런 녀석이 무기를 쥐고 맨손인 상대에게 졌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방은 최소 정7품, 아니 일 처리의 속도를 보면 정6품까지도 가능해 보였다.

‘무엇보다 방어 처리가 된 금고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했지.’

감독관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곁에 선 측근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상당한 실력자의 짓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혼자서 이곳을 찾아온 것도 그렇지만, 망설임 없는 일 처리가 가장 걸렸습니다. 분명 상대는 저희들처럼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경험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뒤에서 이 일을 종용한 녀석들이 있겠죠.”

감독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상대방은 분명 이곳에서 뭘 하는지 알고 쳐들어왔음이 분명했다. 알면서 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도 믿는 배후가 있다는 소리다.

‘어디의 짓이지? 네메시스? 헤시오도스? 크라잉 소드? 아니면 협회의 끄나풀?’

짐작되는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무엇보다 걸리는 것은 바로 녀석의 인상에 대해서 모른다는 점이었다.

조직원들은 그런 꼴을 당하고도, 상대방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최덕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까지 나눴음에도 유현의 얼굴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인식을 저하시킨 건가? 그만한 이야기를 가졌다는 것은, 이곳에 들이닥친 녀석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틀림없다.’

그런 자가 금고를 가져갔다면 보안을 보장할 수 없었다. 분명히 어떤 방법으로라도 금고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니까 가져갔을 테니까.

‘큰일이로군.’

이쪽의 치부가 담긴 자료가 누군지 모를 적의 손에 넘어갔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상 이쪽은 어떻게든 최대한 할 수 있는 대비를 해야만 했다.

“일단, 철수한다. 그리고 이 동네에 들인 사무실도 모두 철수시켜.”

“네, 네? 하, 하지만…….”

최덕팔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감독관의 서슬 퍼런 시선에 곧바로 알겠다고 크게 외쳤다. 감독관은 다시 의자에 앉으며 도열해 있는 조직원들에게도 경고를 날렸다.

“이번 일에 대해서 떠벌리고 다니는 놈들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 얼굴을 다시 보게 될 거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말이지.”

“며, 명심하겠습니다!”

“알았으면, 어서 움직여라. 그리고 저 시체 셋은 알아서 처리하고.”

“넷!”

조직원들이 시체를 가지고 우르르 빠져나갔다. 감독관은 측근 2명을 곁에 낀 채로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툭툭 건드렸다.

“감히 겁대가리 없이 우리 황혼의 장막 클랜을 건드리려 들다니.”

그는 시종일관 냉정하게 행동했지만, 그 속마음만큼은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쪽의 일을 방해한 정체불명의 남자를 향한 끝없는 분노를 최대한 눌러 담았다.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 주지.”

* * *

감독관이 자신에게 분노를 불태우는 것도 모른 채, 우주 열차에 몸을 담은 유현은 바깥에 펼쳐진 풍경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이것도 두 번째 보는 거지만, 여전히 대단하기는 하네.’

전생에서도 우주 열차를 탑승한 적은 있었다. 그것을 포함하면 경험이 완전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저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의 정경을 보면 언제나 도시에 갓 상경한 촌뜨기의 그것이 되고 만다.

끝없이 펼쳐진 무한한 검은 공간. 그곳을 배경으로 삼아 형형색색의 별무리와 성운이 가득한 모습은 도저히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기면서도 유현은 기쁨의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큭큭.”

[얘, 아까부터 자꾸 이상하게 구네. 무슨 좋은 일 있어?]

“어? 그야 당연히 좋은 일이 있지.”

[승진하는 거 말고도? 솔직히 나는 좀 걱정된다. 얘가 나갔다가 오더니, 뭐 좋은 일 있다고 그렇게 웃는지.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거든?”

유현은 자신이 최덕팔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금고에 뭐가 담겨 있는지, 굳이 알려 주지 않았다. 일단은 상자 속에 담긴 선물처럼 자신만 알고 있을 생각이었다.

‘아직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정하지 않았으니까.’

유현에 이번에 얻게 된 자료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아마 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거대한 사회적인 파란을 몰고 올 것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그렇기에 이것을 아주 제대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저쪽도 어떻게든 이번 실책을 얼버무리려고 움직이고 있겠지. 하지만 과연 그게 쉽게 될까?’

앞으로 벌어질 재미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차오르는 즐거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백련은 그런 유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의 공간을 가로지르던 우주 열차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천체주식회사야?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정거장에서 내리자 백련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왜 굳이 귀찮게 우주 열차를 이렇게 바깥 정거장에 놓게 한 거야? 정거장에서 회사로 가려면 또 따로 움직여야 하네.]

‘그야 보안을 위해서지. 천체주식회사는 함부로 외부 인원을 출입하게 놔두지 않거든.’

우주 열차 정거장을 바깥에 논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천체주식회사 정거장에는 검은 갑주를 입은 텔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수호실 소속의 텔러들이었다.

‘저렇게 석상처럼 서 있는 텔러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를 격퇴하는 일을 하지.’

[너랑 같은 텔러지? 저들도 너처럼 이야기를 가지고 싸우는 부류야?]

‘아니. 수호실 소속 텔러들은 나와 좀 달라.’

[다르다고?]

수호실 소속 텔러들은 시화를 선보이는 다른 텔러들과 다르게 싸우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직접 TP를 모으고 스탯을 올린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저들이 입고 있는 갑옷. 저게 바로 수호실 소속 텔러들의 진짜 무기야.’

전신을 가리는 검은 갑옷.

통칭 수호 갑옷.

수호실 텔러들은 본인이 직접 강해지는 대신 장비를 착용한다. 수호 갑옷을 착용하면 갑옷 자체에서 막대한 힘을 소유자에게 빌려줘 적들과 싸울 수 있게 되는 구조였다.

[뭐야. 무슨 파워 슈트나 마찬가지네?]

‘굳이 말하면 그렇지.’

하지만, 수호실에서 지급해 주는 수호 갑옷은 겉보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천체주식회사 안쪽에서 만큼은 저 수호 갑옷은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수호 갑옷도 텔러의 직급에 따라 급이 나뉘는데, 과장급 수호실 텔러에게 주어지는 수호 갑옷은 홈그라운드 버프를 받을 경우 2세대 성령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다.

차장, 부장까지 올라가면 그 강대한 1세대 성령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내수 한정이지만. 바깥에 가져가면 제대로 쓸 수 없을걸?’

[흐음. 그렇군.]

유현은 백련에게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며 정거장의 게이트를 넘어 본사에 도달했다. 입사식 이후로 두 번째로 보는 풍경이었다.

여전히 회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스케일이었다. 유현은 자신에게 온 메일에 그려진 약도를 통해 길을 찾아 움직였다.

딱히 장소랄 곳도 없었다. 섬의 중앙, 가장 높이 솟은 거대한 마천루로 쭈욱 향하면 됐으니까.

[저긴 어디야?]

‘내가 이번에 승진하러 가야 하는 곳.’

얼마나 높은지, 꼭대기를 보기 위해 들어 올리는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가장 우뚝 솟은 거대한 마천루의 첨탑의 끝, 저곳이 바로 천체주식회사의 회장이 기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회장이라.’

유현은 언젠가 자신도 저곳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능한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지금 당장은 무리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품는 것도 잠시, 유현은 자신이 보고 있는 빌딩의 꼭대기에서 이쪽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뭐지?’

곧바로 시선의 주인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인가?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어서 가야지.’

유현은 고개를 저으며 진급식이 열리는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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