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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80화 (8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80화

“우, 우릴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사람들이 오가지 않은 싸늘한 골목길.

바닥에 쓰러진 깡패 하나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악에 받친 듯 말했다. 적당히 손을 풀던 유현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꼭 저런 녀석들은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게만 돌아가면 전매특허의 말을 가감 없이 내뱉었다.

“너희들은 혹시 무슨 매크로라도 돌리냐? 아니면 대본이라도 외우는 거야?”

“뭐, 뭐라고?”

“어떻게 하나같이 다 내뱉는 말이 똑같을까?”

“이 자식이 지금…….”

우득!

유현이 그대로 녀석의 정강이를 가볍게 지르밟아 주자, 녀석은 이를 악물며 비명을 삼켜 냈다. 목에 핏대가 올라오고,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녀석을 보며 유현은 작게 감탄했다.

“그래도 깡패짓 하는 놈이라 맷집은 좋다 이건가?”

“허억. 허억.”

가볍게 발을 떼자, 깡패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유현은 그런 녀석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마주 봤다.

“너희가 오늘 누구를 잘못 건드렸는지, 이제 감이 와?”

“…….”

리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를 악물고, 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상대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저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뒷배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유현은 이 녀석들을 제압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끝날 것 같지 않음을 직감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저대로 깡패놈들이 최도윤의 어머니에게 폐를 끼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여기서 멈췄다간, 녀석들은 오히려 악감정을 품고 더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힐 것이 확실했다.

잡초를 뽑기로 결심을 했으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듯, 일을 시작했으면 제대로 끝맺어야 한다. 그게 유현의 지론이었다.

“너희 사무실. 말해.”

“…….”

“두 번 말 안 한다.”

“그걸 말할 거라고 생각했냐? 왜. 인제 와서 후회라도 해?”

“후회? 재밌는 말을 하네.”

유현은 피식 웃으며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녀석을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강렬한 시선으로 놈을 주시했다.

“내가 뭐 너희들 손봐 준 거 사과하려고 사무실 물어본 줄 알아?”

“그, 그럼…….”

“그럼, 뭐긴 뭐야. 당연히 나머지 녀석들도 싹 다 뿌리를 뽑을 생각이니까 그러지.”

유현의 눈빛에 담긴 진심을 읽어 낸 것인지, 남자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유현이 정말 한 치의 허세도 없이 저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미친놈.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줄 알아? 네가 날뛰면 경찰이 움직일 거다.”

“깡패가 경찰을 논하네. 하긴, 이렇게 대낮부터 이 짓거리를 하는 걸 보면 그쪽이랑 관련이 없을 리가 없겠지.”

“그러니까…….”

“그래서, 뭐. 내가 경찰 때문에 겁이라도 먹을까 봐? 내가 그걸 두려워할 거 같아?”

“……공권력이 도전하겠다고? 그렇게 하면 컬렉터 전담반이 출동할 거다.”

협박성 어린 말에 유현은 작게 킬킬거리며 웃었다. 아직도 자신의 정체를 짐작조차 못 한 눈앞의 어리석은 남자를 보니,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해. 그런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너희 사무실 어디 있는지, 전부 다 말해.”

“말할 거 같아? 엿이나 처먹어!”

“흐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상대의 반응에도 유현은 이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초에 묻는다고 바로 대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현도 대답을 바라고 묻는 게 아니었다.

“흐음. 어디 보자. 너희 사무실이 설화로 72번지 건물에 있구나?”

“뭐?”

유현의 입에서 나온 정보에 남자는 눈을 부릅떴다. 대체, 그걸 어떻게?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아차 하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이미 유현에게 들킨 뒤였다.

“왜? 내가 알고 있는 게 이상해?”

“너, 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어디서 보낸 거냐! 누가 사주한 거야?!”

처음부터 이쪽에 대해서 다 알고 접근한 거라 착각한 남자는 유현이 다른 곳에서 보낸 히트맨 정도로 생각했다. 유현으로서는 그렇게 착각을 해 주면 오히려 고마웠기에 굳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누가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나는 처음부터 너희 사무실이나 너희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소리지.”

“…….”

“그런데도 내가 너희들한테 아는 걸 물어본 이유가 왜일 거 같아? 그저 내가 아는 정보가 맞는지, 틀렸는지 재확인하려고?”

“…….”

“천만에. 나는 너희에게 기회를 준 거야. 그래도 어? 현장직에서 구르는 녀석들인데 뭣도 모르고 당하면 억울하잖아. 그치?”

유현의 말에 그 말을 듣고 있던 깡패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뱀처럼 그들의 몸을 타고 올라와 목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뇌를 뒤흔드는 것 같았고, 등골을 타고 흘러내려 전신에 소름이 돋게 했다.

“그런데, 이 모양 이 꼴이니. 뭐, 어쩔 수 없지.”

“우,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할 생각은 없는데? 어차피 지금 몸 상태로 움직일 수 있을 리도 없고, 어디 몇 주는 요양을 해야겠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뭐라고?”

“하지만, 너희 사무실 동료들은 다르겠지?”

유현의 말에 무언가 눈치챈 것이 있는지, 남자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

“나는 이대로 너희 사무실에 찾아가, 안쪽을 난장판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대체 누구냐고 외치는 녀석들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겠지. 너희 셋의 이름을 부르고, 너희들 덕분에 쉽게 찾아올 수 있었다고 말이야.”

“뭐, 뭐?! 이런 미친 새끼!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아?!”

다른 한 명이 악에 받쳐 외쳤지만, 그것은 현실 부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너희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한 사람에게 사무실이 쑥대밭이 되고, 도저히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에서 내가 한 말에 녀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셋이 우리를 배신했다. 녀석들이 조직의 위치를 불었고, 그 때문에 이렇게 돼 버렸다.

그렇게 되는 순간, 다음으로 이어질 과정은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알리라.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너희도 알겠네? 배신자에 대한 처분이 어떻게 내려오는지.”

“이, 이 미친 새끼!”

“응. 난 그 말에 참 좋더라.”

유현은 방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셋의 휴대 기기는 전부 박살을 냈고, 녀석들은 팔다리가 성한 곳이 없어서 무슨 짓을 해도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경찰을 부르는 사람도 없다. 굳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을 고른다면, 경찰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들이겠지.

“기대해. 나는 한번 정한 거는 꼭 지키거든.”

“야, 야 이 미친 새끼야! 대체, 왜! 우리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남자는 뒤늦게 밀려오는 억울함 때문인지, 떠나가려는 유현을 붙잡으려는 듯 그렇게 외쳤다.

“우리가 너한테 뭘 했는데! 대체, 왜 이 지랄이냐고!”

“조금 전에 했던 짓, 기억 안 나?”

“서, 설마 고작 그 정도로…….”

가게에서 시비를 걸어서 쫓아내려 했던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 남자는 얼이 빠져 버렸다. 설마, 고작 그거 때문에?

“그게 전부는 아니지. 하지만 너희는 결국 나를 건드린 거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애초에 이런 짓을 하다 보면, 언젠가 똑같이 될 거라고 다 감내하고 하는 거 아니었어?”

“…….”

“그 반응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네. 아쉬워. 그러니 이 기회에 알아 두도록 해.”

유현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남자들에게 등을 돌렸다.

“고작,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이 일을 벌이면 어떻게 되는지.”

뒤에서 필사적으로 소리 지르는 고함은 유현의 옷깃조차 잡지 못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골목 바깥으로 나온 유현은 즉시 골목길 근처에 모종의 작업을 취했다.

보유하고 있는 일부 텍스트를 이용해 벽에 글자를 새긴 것이었다.

그것은 백련을 깨우면서 새롭게 얻게 된 [각인사]라는 칭호의 능력이었다.

각인사는 물체에 각인을 새김으로써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주로 사용하는 것은 텍스트를 이용한 글자의 조합이었다.

유현이 이번에 한 것은 소리를 차단하는 일종의 방음 막이었다.

당연히 텍스트 포인트가 소모됐지만, 그 양은 매우 미미해서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런 소량의 포인트만 있으면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각인]을 사용할 수 있어서 범용성만 놓고 보면 아주 최고의 능력이었다.

“대충 이렇게 하면, 소리가 새어 나갈 일은 없겠지.”

삶을 향한 애통한 절규는 골목길 바깥에 흘러나가는 일이 없이 안쪽에 갇힌 채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저 골목 안쪽에서 목이 쉬라고 소리를 질러도, 바깥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들은 어둡고 축축한 골목길에서 악에 받친 전 동료들을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게로 돌아가자 조금 전부터 걱정이었는지, 최도윤의 어머니가 바깥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현을 발견하더니, 황급히 뛰어오며 물었다.

“괘,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그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좋게 타일러서 보냈으니까요.”

“그, 그래요?”

“제가 텔러다 보니, 이런 일을 처리하는 건 간단하거든요. 그리고 어머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저 사람들이 이쪽에 찾아올 일은 없을 테니까요.”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 몰래 손가락을 움직이며 [각인사]의 힘을 발휘했다.

장소는 분식집의 문 앞. 각인의 내용은 침입자를 저지하는 것과 혹시 모를 상황이 찾아오면 자신에게 신호가 오는 알림.

이중이나 되는 각인이라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

손가락을 까닥이자, 그 끝에서 흘러나온 활자들이 문장으로 조합되어 분식집 문 앞에 문신처럼 새겨지다 이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아주머니는 그 과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글자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드는 게 조금 귀찮기는 한데, 은근 괜찮네?’

유현은 텔러가 된 덕분인지, 이런 텍스트를 활용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졌다. 이거라면 전투에서도 상대방의 허를 찌를 때 활용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품으며 유현은 아주머니께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게 되고, 유현의 발걸음은 곧바로 다른 곳을 향했다.

“자, 그러면 나머지 일을 처리하러 가 볼까?”

[각인사]의 칭호의 능력도 가볍게 확인을 끝낸 유현은 곧바로 녀석들의 책에 적혀 있는 사무실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동했다.

* * *

지역 재개발 관련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축 사무실.

건장한 남자 십수 명이 모여 있는 사무실의 문이 거친 소음과 함께 박살이 났다.

“뭐, 뭐야!”

“적이다!”

“어떤 새끼야!”

다들 험악한 인상을 구길 대로 구기며 침입자를 노려봤다. 다수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상대방은 오직 한 명이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키는 꽤나 크고 이목구비가 훤칠한 미남. 하지만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가 어딘가 상당히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저 당당한 태도.

아무리 봐도 뭔가가 있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막내 역할을 맡던 녀석이 눈치껏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그의 거구가 허공을 수 미터나 날아 벽에 처박혔다.

쿠웅!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지며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본 깡패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범상치 않은 근력에서 상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컬렉터다!”

“이런 미친! 컬렉터가 갑자기 왜!”

상대가 컬렉터인 걸 알게 된 이상 이쪽은 함부로 덤볐다간 뼈도 못 추리게 된다. 그 광경을 본 유현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은근 놀란 것 치고는 전의가 살아 있었다.

“내가 처리한다.”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 날아간 녀석이 뭣도 모르고 덤볐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뭐야. 너도 컬렉터네?”

상대는 컬렉터였다. 설마 컬렉터나 돼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이상할 법했지만, 일찍이 텔러와 계약을 맺지 못한 일부 하급 컬렉터는 이런 쪽으로도 많이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일반인보다는 확실히 강하기 때문에 힘을 써야 할 일은 타고났으니까.

“그래도 컬렉터 정도 되는 녀석을 부릴 정도라면, 역시 뒷배가 좀 보통이 아니겠네?”

유현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상대방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손에 쥔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일반인이 휘두르는 배트도 위험하지만, 컬렉터가 휘두르는 건 더욱 위험하다. 맞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거로 끝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콰득!

유현은 맨손으로 휘둘러지는 배트를 잡았다. 말도 안 되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깡패들을 향해, 유현은 가볍게 웃어 줬다.

“의도치 않게 내가 대어를 낚았어.”

뒤이어 무자비한 폭력이 그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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