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79화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나는 최대한 상대방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어떤 말을 꺼낼지, 찬찬히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저는 아드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아주머니의 반응은 차분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모양. 어쩌면 본인은 최악의 경우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제 아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분명 살아 있다는 거겠죠?”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살아 있습니다.”
“그……렇군요.”
행방불명된 아들이 그래도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 그런 걸까? 그녀는 처음 봤을 때보다 눈에 띄게 어깨의 짐을 덜어 낸 느낌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황급히 티슈로 눈가를 닦으며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를 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닙니다.”
나는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최도윤 녀석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녀의 성격은 아들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고 차분하다. 이런 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어디 대학교의 교수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분위기였다.
“어머님께서 상심이 컸겠군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러고 보니, 은인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강유현입니다. 그리고 은인이니, 그런 거추장스러운 말씀은 삼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저 일개 텔러일 뿐이고, 이곳에 찾아온 것도 최도윤이라는 분의 가족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으니까요.”
“아. 그런가요.”
“별로 놀라시지는 않으시네요.”
“이런 세상이니까요.”
의외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다.
참고로 호기심 때문에 찾아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최도윤의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 번쯤은 만나 뵙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처음에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사람이기에 그런 아들을 낳았냐고, 따지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장에 내가 전생에 그 녀석과 맺은 악연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이해할 거다.
하지만 실제로 본 녀석의 어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진짜 친엄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제 아들에 대한 소식은 어떻게 들으신 건가요?”
“저희 텔러들은 지구 말고도 다른 세계를 떠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차원, 다른 행성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주워들을 수 있죠.”
내가 떠올린 변명은 바로 이것이었다.
“최도윤이라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뿐입니다. 제가 마침 이곳 지구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니, 그 이름의 양식이 이곳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호기심 차에 확인했던 거고요.”
“제 아들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나요?”
“…… 아마 엄청나게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사실, 나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최도윤이 거기서 뭘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른다. 무슨 소설 속 주인공 같은 녀석이니까, 책으로만 따지면 거의 20권에 가까운 장대한 여정을 겪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은 결국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서 이 지구로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종말이 터져 버린 지구에.
‘막상 상황을 정리해 보니, 최도윤 녀석도 참 불쌍하긴 하네.’
물론, 아주 쬐끔. 아아아아주 쬐끔만 불쌍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의 그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성격은 자신의 고향이 완전 망해 버렸다는 사실이 크게 기인했을 거라는 점.
그렇다는 건 내 눈앞에 계신 이 아주머니도.
‘종말의 시련이 시작하면서…… 죽었다는 소리겠지.’
최도윤이 이세계에서 얼마나 구르고 얼마나 지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종말의 시작과 동시에 선보인 능력을 보면 분명 아주 오랫동안 갈고닦아 온 게 분명했다.
녀석은 그 세상에서 지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노력해 왔겠지.
“아드님과…… 사이가 좋으셨나요?”
나는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네. 그랬죠.”
“남편분은…….”
“도윤이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떴어요.”
“이런.”
“괜찮아요. 이미 오래전 일이니까요.”
사진은 여러 시간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부터 유치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그리고 가장 마지막은, 녀석이 베니싱으로 사라지기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 도윤이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의젓했거든요. 아빠 없이 자라서 걱정했는데 말도 잘 듣고, 제 속을 썩인 적이 없었어요.”
“……그랬습니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잘했죠.”
역시. 최도윤 이 녀석은 엄친아가 분명했다.
“그래서 항상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어요. 제게 불평 한마디 안 했지만, 제가 도윤이에게 못 해준 게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리 의젓해도, 결국 아이는 아이죠. 갖고 싶은 것도 있을 거고, 하고 싶은 것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래도 도윤이는 싫다고 내색한 적이 없었어요.”
최도윤이라면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자신이 싫거나 짜증 나는 일이 있더라도 자존심 때문이라도 참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다 도윤이가 행방불명 됐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답니다.”
“…….”
“제게는 이제 유일한 혈육이 이 아이밖에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죄책감이 가장 컸어요. 저는 어미로서 제 아들에게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아이를 떠나보낸 거였으니까요. 그나마 유현 씨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소식을 듣게 되어 한시름 놓았지만요.”
“아닙니다.”
“유현 씨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제게는 천금보다 귀한 말 한마디였어요. 비록 다른 세상이지만, 제 아들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네요. 하지만 여전히 아들에게 미안한 건 사실이에요. 어쩌면,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잘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죠. 이런 돈도 없이 가난한 분식집이나 하는 집에 와 봤자, 뭘 하겠…….”
“그건 아닐 겁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서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자 놀라신 듯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얌전히 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꼭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아드님께 죄책감을 지니고 계신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시는 건 너무 나갔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드님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시지 않습니까?”
아주머니가 아들인 최도윤에게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겠다.
주변 환경만 봐도 그렇다. 좁은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분식집. 분명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돈도 제대로 벌기 힘들 것이다. 내가 부모였어도 자식이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면 미안할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최도윤은 이런 곳에서 자라면서 그 불평 한마디를 안 했다고 했다. 그것은 분명 녀석이 의젓한 탓도 있겠지만.
“분명, 아주머니를 생각해서 본인도 견뎌 왔을 겁니다.”
“저를…… 위해서요?”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준 것이 없어 미안하게 여기는 것처럼, 자식도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지 못해 죄스러워하니까요.”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다시 주어진 이 기회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분명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저는…….”
“제가 잘살고 있다고는 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사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도윤은 왜 그만한 힘을 지녔으면서 다시 지구로 돌아왔을까. 분명, 그 정도 실력이라면 그쪽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녀석은 돌아왔다.
어째서?
그것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걸 바랐을까? 가난하고 빚이 가득한 집안에 무슨 애착이 있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이 세상이 대체 뭐가 좋아서?
“가족이 있으니까.”
내 마음을 대변하듯 본심을 담아 말했다.
“분명, 최도윤도 하나뿐인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 돌아오려고 애를 쓰고 있을 겁니다.”
그래. 이유니 뭐니, 그런 거 필요 없다.
가족이라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소중한 가족이니까, 필사적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거다.
부도 명예도 권력도 필요 없다.
손에 쥐어진 찬란한 빛보다도
비록 낡고 녹슬었지만, 추억이 지닌 그 희미한 빛이.
훨씬 더 따뜻하니까.
“…….”
아주머니는 눈을 크게 뜨시더니, 이내 눈물이 차오르셨다. 그녀는 황급히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유현 씨 말이 맞아요. 제가 바보같이 굴었네요. 그렇죠. 가족이니까,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우리 도윤이도 마찬가지였어요. 고마워요. 덕분에 제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달았어요.”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방금 한 말을 되감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인가?’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녀석의 심정에 공감한 것은.
분명, 녀석에 대해서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든 싫든 10년 가까이 함께 지냈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맺어진 관계고, 이쪽은 일방적인 악연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그 누구보다도 우린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하. 거, 참.’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어쩐지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내게 드리워진 녀석의 그림자를 치워 낸 기분이었다.
“그보다 유현 씨는 우리 도윤이에 대해서 왠지 잘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저 그렇게 들었을 뿐입니다.”
나는 아차 하면서도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 거죠.”
“우리 도윤이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나 싶어서요.”
“그럴 리가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뭔가를 눈치채신 느낌이다.
우리 어머니 신은숙 여사도 그렇고, 자식을 지닌 어머니들은 참 눈치가 빠른 것 같았다.
“아무튼, 저는 볼일도 끝마쳤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괜찮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든든히 먹고 와서요.”
“아쉽네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 못한 식사는 그때 하죠.”
“네. 그래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닫혀 있던 가게의 문이 열리더니, 험악한 인상의 남자 3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건 또 뭔가 싶은데, 아주머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선두의 남자가 건들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이, 아줌마. 우리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가게 빼라고?”
“……당신들이 뭔데 자꾸 그러는 건데요.”
“어허. 우리? 우리는 우리 일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섭섭해. 아줌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런 거였나?
자연스레 깡패 녀석들의 시선이 분식집의 유일한 손님인 나를 향했다.
“이봐, 형씨.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어서 여기서 꺼져.”
“손님한테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아줌마는 빠져 있어. 이건 이 형씨와 우리 일이지. 안 그래?”
이쪽을 보며 씨익 웃는 녀석의 입가에 금니가 보였다. 나는 아주머니께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겠다.
“그래. 이건 우리 일이지.”
“어쭈? 허허허. 이 당돌한 놈 보게?”
녀석은 내가 겁먹지 않고 마주 보며 웃을 줄 몰랐는지, 살짝 기분이 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왜 이 시간에도 손님이 한 명도 없나 했더니, 과연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요새 너무 컬렉터와 관련된 일만 처리하다 보니, 지금 현실이 어떤지 깜빡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후우. 녀석에게 선심을 쓰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자식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그래도 아주머니 얼굴을 봐서, 조금은 도움을 줘야겠지.”
컬렉터도 아닌 일반인 셋 정도야, 내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덥석.
나는 그대로 녀석의 옷깃을 잡아 든 다음에 적당히 힘을 줘 열린 문밖으로 녀석을 집어 던졌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던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 각각 한 놈씩 멱살을 쥐며 분식집 바깥으로 날려 버렸다.
“유현 씨.”
“괜찮아요. 이런 일은 제게 맡기세요.”
나는 이쪽을 걱정스럽게 보는 아주머니께 괜찮다고 말해 보이며 가게 바깥에서 몸을 일으키는 깡패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뭐, 뭐야! 컬렉터가 왜 여기에!”
“이 미친놈! 컬렉터가 함부로 민간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래도 머리에 든 건 있는지, 내게 소리 지르는 놈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어디 어떻게 되는지, 알게 해 봐.”
“뭐?”
“그야 그럴 게, 난 컬렉터가 아니거든.”
무엇보다 나는 잘 안다.
이런 놈들은 적당히 밟아 준다고 해서 절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아작을 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말에서 내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해 온 일이기도 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깡패 녀석 셋은 내 미소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