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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78화 (7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78화

“그렇게 까칠하기 굴지 마시고, 잠시, 대화라도…….”

“방해하면 죽인다.”

방해하면 죽인다.

사이다패스 회귀자가 자주 하는 말 중 탑5 안에 드는 대사가 나왔다. 저거, 종말 때 성령님들이 참 좋아했던 대사였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그 기색은 숨기지 못한 탓인지, 내 앞의 회귀자가 약간 의아하다는 기색이었다.

정확히는, 이 새끼는 왜 욕을 처먹고 웃지? 이런 표정.

나는 표정 관리를 하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흠. 보아하니, 이번에 수료식을 마치고 나오신 컬렉터님 맞으시죠? 저는 백화 매니지먼트에서 나온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혹시 성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백화 매니지먼트?”

내 말에 그녀는 매니지먼트의 이름에 반응을 보였다. 어지간한 건 다 알고 있을 텐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이번 회귀에서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 그런 건가?

‘잠깐만. 그러고 보니 백화 매니지먼트는 내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기는 했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눈앞의 회귀자가 수백 번 회귀를 했다면, 과연 그중에서 나 강유현이라는 텔러는 그 삶에 있었을까? 아니면 이번이 내 처음일까?

막상 깊게 생각하려고 하니, 복잡해지는 요소였다.

“그래서 백화 매니지먼트에서 내게 무슨 볼일이지?”

나의 상념은 회귀자의 거만한 말투에 끊겼다.

지금 와서 느끼는 건데 목소리가 상당히 듣기 좋을 정도로 음색이 예뻤다.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외모도 꾸미기만 한다면 미인일 것 같은데.

은근 강혜림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아, 다름이 아니라 컬렉터님께 좋은 제안을 하나 하려고요.”

“나는 바쁜 몸이다. 방해하지 말고 비켜.”

“아. 저기, 그럴 게 아니라…….”

“내가 비키라고 했지.”

회귀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살기를 확 끌어올렸다.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으려던 나는 이 이상 집요하게 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그때는 분노를 사고 만다.

내가 살짝 뒤로 물러나자, 그녀는 혀를 한번 차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나는 말 없이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야, 유현! 유현!]

나를 시끄럽게 부르는 백련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크게 울렸다.

[갑자기 뛰쳐나가서 저 여자한테 다가가다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

‘아.’

백련은 내가 상대방의 책을 보는 걸 모른다. 그 이상으로 내가 지나치게 다급하게 행동한 것이 꽤나 의아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조금 전 나는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들떴다.

하지만, 그런 걸 보면 누구라도 흥분하고 만다.

‘미안.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방금, 그 여자? 그러고 보니, 네가 영입을 제안할 정도니 꽤 능력이 있었나 봐? 아니면 미래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야?]

‘아니. 미래 지식에서도 모르는 사람이야.’

이 부분이 걸렸다. 저 정도 책을 지녔으면 분명 유명해지기 충분할 텐데,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종말 이후에도 나의 기억과 부합하는 인물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반응을 할 정도라고?]

‘어. 미래의 지식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야. 그저 본인 자체의 능력이 뛰어난 걸 짐작했을 뿐이지.’

[그런데, 이름도 말 안 하고 가 버렸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는 나의 한쪽 손에는.

회귀자가 떠나기 전 가까스로 챙긴 책 한 권이 쥐여 있었다.

* * *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백서련에게 리퀘스트를 건넸다.

“서련 씨. 이번에 훈련소 졸업 기수 중에서 권지아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번 조사해 주실 수 있습니까?”

권지아.

내가 가까스로 챙겨 든 한 권의 책을 통해 알아 낸 회귀자의 이름이었다.

물론 이 책만 있으면 백서련에게 부탁할 필요도 없이 나 스스로 알아낼 수 있겠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설마, 한 권의 책으로도 모든 정보를 다 확인하기 힘들 줄이야.’

어느 한 부분을 시작점으로 잡아 수백 번의 삶을 반복한 사람이다. 내가 손에 넣은 책에는 그녀가 회귀를 시작한 부분부터 적혀 있었다. 심지어 회귀를 시작한 것은 훈련소에 들어가기 직전. 사실상 3개월 어치밖에 안 된 것이다.

이걸로는 회귀자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다.

“갑자기 빈손으로 오시더니, 사람 하나를 알아봐 달라고요? 혹시, 지금 말한 사람이 이번에 유현 씨가 새로 컬렉터로 영입을 할 대상인가요?”

“네. 맞습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강혜림이 끼어들었다.

“권지아라는 건, 여자 이름이네요?”

“여자니까요.”

“…….”

강혜림이 순식간에 뚱한 표정이 되었다. 나를 향한 시선에 은근한 질책이 담겨 있었는데, 솔직히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아니, 내가 여자라서 고른 게 아니라 고른 회귀자가 여자인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아무튼,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보통 인물이 아닌가 봐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보는 순간, 느낌이 확 하고 왔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라고요.”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해 주셨으면서.”

옆에서 뚱한 소리를 하는 강혜림. 나는 곧바로 ‘혜림 씨도 그랬죠.’라고 대충 맞장구를 쳐 주었다.

서련 씨는 내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다는 듯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부탁을 접수했다.

“알겠어요. 안 그래도 바쁜 와중이지만, 이번 수료식을 졸업한 사람 한 명을 확인하는 것 정도는 쉬우니까요.”

“오래 걸립니까?”

“1시간이면 충분해요.”

서련 씨는 그렇게 말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알고 있는 인맥을 통해 수소문하려는 것인가 보다.

생각해 보면 신가령도 그렇고, 은근 백서련은 이쪽 바닥에 인맥이 넓었다. 전 대형 클랜 소속인 것도 있지만, 본인의 성격이 워낙 좋다 보니 두루두루 어울린 덕분이리라.

“좀 기다리면 메일로 올 거예요.”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보통은 이런 정도는 엠바고가 걸려 있어서 함부로 취급할 수 없지만, 사실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거니까요. 게다가 수료식 전이면 모를까 이미 수료식 끝나고 다들 스카우트가 끝난 기간이라 알고 싶으면 쉽게 알 수 있죠.”

그녀의 말마따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탁했던 메일이 도착했다.

서련 씨는 곧바로 메일을 출력해서 자료로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혹시 어떤 인물인지 그녀도 궁금했는지, 눈동자를 굴리며 내용물을 빠르게 훑어보고 있었다.

“여기, 이 사람 맞죠?”

“네. 맞습니다.”

서류 가장 첫 페이지에 찍힌 증명사진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에 백서련은 뭐라고 말하기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서련 씨는 좀 아닌 것 같나요?”

“네? 아니, 그…….”

무언가 변명을 하려다 백서련은 결국 조막만 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조금.”

“조금?”

“아니요. 아주 많이요.”

그 정도인가?

나는 사무실의 손님용 소파에 앉아 권지아의 프로필을 훑어보았다. 딱히 자료가 두껍지도, 많지도 않았다. 그녀에 대한 것은 별로 알려진 것도 없지만, 굳이 알아야 할 것들도 별로 없었으니까.

맞은편에서 서련 씨가 내게 말했다.

“갑자기 이 사람에 대해 알아보라고 해서 저도 내심 기대했는데, 확인을 해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이 못 미치는 것 같던데요. 수료식을 마친 컬렉터 359명 중에서 순위는 340등. 훈련 내부의 평가가 썩 좋지 않아요.”

백서련의 설명대로 권지아의 등수는 처참했다. 여러 부분에서 분석을 했는데 개별 전투나 몬스터와의 실전에서는 꽤나 고점을 찍었지만, 인성이나 팀워크, 그리고 가진 능력의 수준이 거의 밑바닥을 맴돌았다.

나는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고, 거칠게 대하던 그 태도.

확실히 협동전에서는 도저히 못 써먹을 성격이다.

“흠. 게다가 기록을 보니까, 훈련소 내부에서 싸움을 일으켰군요?”

소소하다면 소소한 사건이지만, 보통 수료를 끝내는 컬렉터 후보생이 별 탈 없이 나오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네. 다만 놀라운 건 자신보다 등수가 월등히 높은 컬렉터를 그야말로 아작을 냈다고 하네요. 그것 때문에 수료도 못 하고 쫓겨날 뻔했다더라고요.”

“용케 수료는 끝냈군요.”

“그렇죠. 등수가 높은 컬렉터를 상대로 이긴 걸 보면, 가진 실력은 확실히 뛰어난 것 같아요. 다만, 이미 나쁜 소문이 쫙 퍼진 마당인지라. 보니까 다른 클랜이나 매니지에서도 영입 대상에서 제외한 것 같더라고요.”

“흐음.”

다행인 점을 꼽자면, 굳이 이 회귀자를 두고 경쟁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려나?

하지만, 역시 태도가 문제다. 단지 말을 걸었을 뿐인데도, 무슨 방해꾼을 보는 것 같은 눈빛과 태도. 은근 전생의 최도윤 녀석이 겹쳐 보이는 건 내 착각이 아니리라.

진중한 눈빛으로 자료를 읽는 내게 강혜림이 물었다.

“유현 씨는 정말로 그 권지아 씨가 제격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제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확실한데, 거짓말 안 하고 혜림 씨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에이. 거짓말.”

“진짜예요.”

내 말을 그냥 과장이라 치부하겠지만,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권지아가 지닌 무지갯빛 책. 한 권의 책이 아닌 수백 권이 누적되어 발하게 된 그 빛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찬란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검후 강혜림보다 권지아가 훨씬 더 뛰어난 인재다.

물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어서 비슷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보다 여기 적힌 대로라면 성격이 장난 아닌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흠. 그러게요. 잘못하다가 칼침을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에이. 농담도.”

장난 같은 말이지만, 진짜다. 본인 본래의 성격인지, 아니면 회귀자라는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접근하면 칼침을 맞을지도 모른다. 순간이지만, 내게 내비친 그 살기는 분명 진심이었으니까.

그래도 도전할 가치는 충분했다.

[곧바로 진행하게?]

‘아니. 일단, 시간은 천천히 두고.’

[왜?]

‘왜긴 왜야. 이제 곧 진급식이니까 그러지.’

아무리 그래도 며칠 안 남은 진급식 전까지 권지아를 설득하는 건 나라도 불가능하다.

목표는 진급식 이후, 내가 대리를 달았을 때 본격적으로 영입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따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도 하나 더 있기도 하고.’

이제 슬슬 그 사람을 만날 차례였다.

* * *

나는 사람이 없는 골목길의 한적한 식당의 앞에 섰다.

이번에는 백련도 없고 평소에 나를 따라다니던 강혜림도 없다. 오직, 나 혼자 찾아온 곳이다.

[의문망 분식]

‘의문망(倚門望)이라.’

문에 기대고 서서 애타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평범한 분식집의 이름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이 분식집의 주인이 어떤 상황인지를 생각하면 꽤나 적절한 이름이다. 그 이상으로 어느 정도 지식적인 소양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소리겠지.

‘여기가 그 최도윤 녀석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인가?’

진급식을 앞두고 내가 시간을 내서 찾아온 곳은 바로 최도윤의 어머니가 계신 곳.

한 번쯤은 나와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지만, 최근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던 차에, 겨우 찾아올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쪽은 좁았다. 골목길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그렇게 인테리어가 깔끔하지도 않았다. 안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없는지, 식당 주인이 곧바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한 분이세요?”

내게 그렇게 묻는 사람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셨다.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젊어 보이고 고우신 분이셨는데, 심적인 고초를 겪어서 그런지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분명 그녀가 최도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겠지.

“저기.”

나는 망설이다가 내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얼마 전에 아드님과 관련해서 연락드렸던 사람입니다.”

“……아.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죠.”

나는 적당히 빈자리에 앉았다. 가계의 한쪽 벽면을 바라보니, 여러 개의 액자가 있었다. 액자 속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최도윤.’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지 어머니와 찍은 사진만 있었는데, 밝게 웃으시는 아주머니와 다르게 이 녀석은 이때부터 어딘가 심통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만 봐도 아주 건방짐이 뚝뚝 묻어져 나온다. 그런데 또 잘생기긴 오지게 잘생겨서 어울리긴 또 어울린다는 게 화가 났다.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앞치마와 장갑을 정리한 아주머니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런 나를 대신해서 먼저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도윤이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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