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77화
내가 나갈 채비를 끝내자 혜림 씨도 나를 따라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칼같이 그녀를 제지했다.
“혜림 씨는 안 돼요. 저 혼자 갈 겁니다.”
“네? 왜요? 저도 데려가요!”
“안 됩니다. 애초에 혜림 씨가 지금 나가면 어떻게 될지 알고는 있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백화 매니지먼트 바깥에는 기자들이 쫙 깔렸다. 혹시라도 그녀가 움직이지 않을까 밤을 새우면서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지금 강혜림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기자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특종 덩어리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그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저 하이에나들이 입맛을 다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안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인데, 거기에 혜림 씨가 따라오면 업무에 차질을 빚게 될 거다.
사방에서 검후를 보겠다고 몰려올 거고, 사인해 달라며 귀찮게 굴겠지.
“이번 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빠르게 끝내야 하거든요. 그리고 한동안 혜림 씨는 사무실에 가만히 있어야 할 겁니다. 아마 밖에 나오는 순간 파파라치가 집요하게 따라붙을걸요?”
유명세를 얻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귀찮은 일도 몰고 온다.
특히, 어떻게든 검후에 대해 특종을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켠 언론인들이 그러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였다가는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에 대한 사생활까지 확실하게 확인하려 들 거다.
‘뭐, 컬렉터 정보 보호법에 의거해서 너무 심하게 구는 경우에는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런 짓을 벌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알려고 하는 호기심은 상대를 향한 배려를 쉽게 밀어낸다.
기레기가 괜히 기레기라 불리는 게 아니다.
“혜림 씨는 새로운 거주지가 정해질 때까지는 이 사무실에 얌전히 있어야 합니다.”
안 그래도 기존에 지내던 고시원도 나온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련 씨네 원룸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데, 조만간 새로운 집을 구하면 거기서 지낼 예정이었다.
“으으.”
강혜림도 그걸 알기에 앓는 소리를 냈다. 본인의 위치를 자각했다는 거겠지.
그녀도 마냥 인기가 많아진다고, 모든 게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다.
‘뭐, 그녀를 위한다는 건 사실 변명이지만.’
[다른 뜻이 있다는 거야?]
백련에 내게 물었다.
‘사실 혜림 씨 끌고 가면 귀찮으니까, 그런 거야.’
[……너 정말로 못 됐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해 줘.’
백련의 잔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몇몇은 나를 발견하고는 눈에 광채를 뿜어냈다. 백화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정체불명의 남성. 사실 강혜림 말고도 나 또한 저들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어? 나왔다!”
“저기 있어!”
지겨운 잠복을 계속한 기자 중 몇몇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거, 참. 사방팔방에 광고할 일이라도 있나? 나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으며 곧바로 가까운 골목길로 들어갔다.
“도망칠 생각인가?”
“쫓아!”
뒤에서 기자들이 나를 따라왔지만, 내게는 정체를 은닉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기척 죽이기]
차원 상점에서 파는 하급 스킬 이야기 중 하나인데, 사용자의 기척을 확 줄여 주는 기술이다.
컬렉터나 환상체에게는 잘 먹히지 않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효과가 끝내줬다.
“뭐, 뭐야? 어디로 사라진 거지?”
“어서 찾아봐!”
그들은 바로 앞에 있는 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잘못된 곳을 헤집었다. 단순히 모습을 숨기는 것이 아닌, 기척을 줄이는 것임에도 그들은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나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 사람이 붐비는 바깥쪽을 쳐다봤다.
차가 빽빽하게 들어선 8차선 도로 너머에는 매우 큰 부지를 지닌 건물이 있었는데, 저곳이 바로 컬렉터들을 배출하는 협회 소속 교육 기관이었다.
‘저기가 바로 훈련소인가?’
국가 공인 정식 명칭은 서울 컬렉터 양성소.
다르게는 프롤로그라고 부르는데, 모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주인공이 탄생한다고 해서 그렇게 붙였다고 했다.
‘그 옆에 맞닿은 다른 건물은 미성년자 컬렉터를 교육하는 컬렉터 아카데미일 테고.’
평소라면 손님이 없어야 할 저 넓은 부지에는 오늘따라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매 분기 열리는 수료식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힘든 훈련과 시험을 치르며 엄선된 컬렉터들이 자격을 취득하고 사회로 나오는 때이기도 하다. 당연히 축제에 버금가는 수료식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인파 대부분은 그저 이 과정을 즐기려는 일반인들. 그 외 나머지는 수료식을 끝마친 컬렉터들의 가족, 지인,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매니지나 클랜으로 영입하려는 사람들이다.
[유현아 저길 봐. 하늘에 다른 텔러들도 있어.]
“응. 보이네.”
전도유망한 인재를 찾는 것은 텔러들도 마찬가지인지라, 부지 위 허공을 보면 가호를 받은 여러 텔러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수료식을 끝마친 컬렉터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렇게 경쟁자가 많은데, 제대로 된 사람을 찾을 수는 있겠어?]
백련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보아하니, 판이 엄청 크네. 텔러뿐만이 아니라 인지도 있는 매니지먼트나 대형 클랜 소속 사람들까지 전부 모인 걸 보면.]
“그렇지.”
[그쪽은 이미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왔을 텐데, 너는 아직 아무런 준비도 안 했잖아. 영입하려는 사람이 겹칠 경우에 정면충돌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신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보통 더 큰 클랜을 선택할 거 같은데.]
백련의 지적은 정확했다. 현실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았다 하더라도 다른 클랜이나 매니지와겹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들도 사람을 뽑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최소한 보는 눈은 있을 테니까.
“그건 그래.”
[그런데, 그런 여유작작한 태도라니. 미래의 지식에서 여기에 누가 나오기라도 해?]
“아니? 이번에는 안 나와.”
[뭐?]
미래의 지식이라고 완벽한 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없는 걸 만들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당장 보러 온 이유가 없잖아.]
“애초에 나는 그런 검증된 사람만 찾으려는 건 아니거든.”
재능이 있다면 당장에 영입한다. 미래에 내가 아는 사람만 입맛대로 고를 수는 없었다.
“네 말마따나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게 된 셈이네.”
[정보를 손에 쥔 클랜과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어?]
이미 어지간한 클랜들은 이번 졸업 기수의 순위를 분석하고 최적의 영입 대상을 정해 놨을 것이다.
내부에서도 시험은 여러 차례 치러지고, 그에 따른 등수는 진작 매겨져 있다.
훈련은 얼마나 잘했는지,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특성이 무엇인지, 실전 감각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별해서 결과를 낸 것이다.
사실상 클랜은 등수만 보고 판별하면 그만이었다.
“그건 알아 둬. 혜림 씨도 처음에는 클랜에서조차 눈독 들이지 않은 영입 불가 판단을 받았다는 걸.”
[그건…….]
“물론, 등수가 높을수록 능력이 뛰어난 건 맞겠지. 하지만 아무리 국가에서 정한 훌륭한 커리큘럼이 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재능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는 거야. 세상에 완벽할 정도로 촘촘한 그물망은 없거든.”
훈련소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낸 순으로 사람이 성공하는가?
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겨진 순위는 당장에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 사람의 잠재력, 미래의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그 사람이 어떤 가능성을, 어떤 재능을 지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로 찾아온 거다.
[그런데, 사람 진짜 많다.]
“그러게.”
다만, 나도 예상하지 못한 점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저렇게 많이 돌아다니면 책들 또한 복잡하게 섞인다는 소리다.
3층의 카페 테라스에서 아래를 확인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인파에 눈이 복잡해졌다. 한꺼번에 모든 책을 확인할 수도 없는 데다가, 여기저기서 빛을 내는 책들 때문에 제대로 확인조차 힘들다.
‘그나마 입구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게 낫지. 결국에 사람들은 이쪽으로 빠져나올 테니까.’
나오는 사람들의 책의 색깔만 빠르게 확인을 하면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 책은 동색이라서 조금이라도 특출난 책이면 바로 눈에 띈다는 점이려나?
‘최소 금색이면 바랄 게 없을 텐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에도 내가 바라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축제는 점점 끝나가고, 사람들도 슬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한 명 정도는 나올 법도 한데.
‘으음. 설마 없는 건가?’
내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
나는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그걸로 모자라 자리를 박차고 건물을 나왔다. 뒤에서 내가 챙겨 든 백련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나는 홀린 듯 밖으로 뛰쳐나와 사람들이 나오는 입구를 보았다.
이제는 뜸해진 인파 속에서, 나는 내가 방금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빛이 보였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나는 그 빛을 향해 다가갔다.
나는 보통 재능이나 잠재력, 혹은 지금까지 살아온 가치의 한계가 찬란한 금빛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동색, 은색, 금색. 그중에서 금색이 가장 높으며, 그 한계치는 금빛의 세기가 전부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대체, 뭐야?’
나는 금빛보다 찬란한 빛을 내뿜는 그것을 보며 말문을 잃었다.
오색찬란한 광채가 한데 뒤섞인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지개 색깔이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 책을 지니고 있는 것은 누구도 함께하는 이 없이 홀로 터덜터덜 길을 걷는 음침한 여성이었다. 흘러나오는 빛과 현실의 모습이 끔찍할 정도로 비교됐다.
나는 그녀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히 그녀의 책이 대단한 빛을 뿜어내는 것도 놀라웠지만, 내가 가장 경악하는 것은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책의 상태였다.
‘저건 대체…… 몇 권이야?’
보통 사람이 1권의 책을 지니고 있다면.
내 앞의 그녀는 최소 수백 권은 되는 책을 지니고 있었다.
나의 강렬한 시선을 느낀 탓일까?
길을 걷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머리카락은 부스스하고 제대로 정돈하지 않아 앞머리가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틈새로 언뜻 보이는 그 눈동자는 한겨울의 서릿발처럼 차갑고 강렬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세상에 나와 그녀 단둘만 남은 착각이 들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행인들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늘어졌고, 오직 나와 그녀만 자리에 선 채 서로를 마주 봤다.
실제로는 1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지만, 내게는 1시간처럼 느껴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책장을 지닌 그녀였다.
“잠깐만요!”
나를 그냥 지나가려기에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녀를 붙잡고 말았다.
내가 다시 앞길을 막아서자 그녀는 자리에 멈춰서 고개를 살짝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로부터 엄청난 기세가 흘러나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지만, 기세만큼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폭력적. 그야말로 흉포한 짐승의 그것처럼 매우 난폭했다.
나는 그 기세를 몸으로 받으면서도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무지개 책. 아니, 무지개 책장이라고 해야 하나. 한 사람당 하나씩만 있는 책을 이만큼 가졌다는 건…… 무한 환생? 아니면 무한 회귀?’
환생이라고 하자니, 어딘가 상처 입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저 모습이 걸린다. 그렇다는 것은 적어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맞다는 소리다.
회귀자.
그녀는 나와 비슷했지만,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회차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눈빛으로 내게 대답을 촉구하는 그녀에게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그쪽의 성함은…….”
“꺼져.”
그녀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툭 쏘아붙였다.
보통 초면에 저런 말을 듣게 된다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일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확신에 가득 차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자 맞네.’
그것도 단순히 2회차니 3회차의 수준이 아니다. 저 수백이 넘는 책의 권수가, 바로 그녀가 겪어 온 인생의 횟수였다.
나는 직감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다니던 원석이, 바로 눈앞의 여자라는 것을.
그녀가 바로 내 서재의 2번째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