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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75화 (7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75화

강혜림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뢰검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몇 번이고, 이 힘을 가다듬기 위해 홀로 연습해 왔다.

더 섬세하게. 더 강력하게. 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은인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보지 않는 곳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 노력이 이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파지지직!

이 강렬한 전류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주인의 명령을 벗어나 쉽게 폭주한다. 이를 잘 억누르고 자기 뜻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집중력과 이 파괴적인 힘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검술이 필요했다.

강혜림은 그것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거야.’

그녀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주경수는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는 상태로 필사적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거나 피했다.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한 공격이 그의 옷을 태우고 피부를 그슬었다.

번개를 담은 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숲의 일부가 도려 졌다. 나무가 타고 잘려 나가고 땅에 커다란 상흔이 그어졌다.

‘내가 원하던 것.’

강혜림은 가슴 속에서 가득 부풀어 오르듯 차오르는 기쁨에 몸을 떨었다.

싸움. 서로의 모든 것을 건 건곤일척의 싸움.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나락의 저 아래까지 떨어지는 상황에서 검을 자유롭게 휘두른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해방감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꾸욱 참고 있던 것을 모두 해방하는 기분이었다. 제발 자신을 꺼내서 써 달라는 천뢰검의 뇌기를 이 순간만큼은 억누르고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특성 3개를 완전히 개방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부유감.

강혜림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흘렸다.

“하핫.”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희열에 떨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주경수의 반응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은 처음의 위세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바깥의 반응도 똑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강혜림의 패배를 점쳤고, 다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 현실을 보라.

‘이런 기분이었구나.’

강혜림은 어째서 유현이 상대를 기만하며 여러 싸움을 벌였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이길 거라 확신을 품고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을 역으로 쓰러뜨린다는 것은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쾌감을 선사했다.

눈앞에 절망에 빠진 주경수의 표정은 강혜림을 새로운 감각에 눈뜨게 했다.

파슷!

고개를 옆으로 튼 주경수의 뺨에 상처가 생겼다. 뺨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 선혈에 주경수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가 입을 벌려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감히, 내 잘생긴 얼굴을……!”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밥벌이 수단인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주경수는 눈이 뒤집히며 분노했다. 이제는 봐주지 않겠다, 그런 생각으로 검을 휘두르는 순간, 공격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막히고 말았다.

챙!

“무슨…… 케흑!”

당황하는 주경수의 얼굴에 강혜림의 무릎이 틀어박혔다.

뻐억! 그의 코가 주저앉고, 앞니가 부러졌다. 쌍코피를 터뜨린 주경수의 몸이 뒤로 몇 바퀴나 구르며 튕겨 나갔다.

“꺄아아아악!”

“아티스트님!!”

여성 팬들은 주경수의 모습에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반면, 이 싸움 자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강혜림의 호쾌한 공격에 두 손을 들고 기뻐했다. 특히 검후에 빠져든 남성 팬들의 반응은 극성에 달했다.

“좋았어! 더 해 버려!”

“아이고 통쾌해라!”

[성령들이 강혜림의 싸움에 감탄합니다.]

바닥에 쓰러진 주경수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확인하더니, 괴성을 내질렀다.

“이 개 같은 년이이이이이!!”

“시끄럽습니다.”

강혜림은 주경수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일어선 주경수를 향해 [천뢰검]의 묘리를 선사해 줬다.

눈이 아프게 반짝이는 번개의 속에서 그보다 훨씬 더 번뜩이는 검광이 주경수의 몸에 상처를 하나씩 늘렸다.

점점 늘어나는 고통에 주경수의 이성이 뒤늦게 되돌아왔다.

‘아, 안 돼! 이대로는 내가 진다!’

이 싸움은 오롯이 그의 것이어야 했다. 모두가 그만 바라봐야 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가 챔피언이 돼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 주경수는 자신이 곧바로 이기는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다고?’

하지만, 이 꼴이 대체 뭐란 말인가? 바닥은 몇 번이나 굴러 옷이 더러워지고, 머리카락 일부는 타기까지 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이미 거하게 망가진 뒤였다.

싸움에서 승리 이상으로 자신의 멋을 챙기는 주경수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이익!”

주경수는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썩어도 중급 컬렉터였다.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름 도가 튼 사람이었다.

이성을 되찾고 나니, 나름 강혜림의 공격을 읽어 내고 거기에 반응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강혜림에게 다시금 변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행동하는 거였군요.”

“뭐?”

강혜림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작게 중얼거리더니, 그녀의 공격 방법이 바뀌었다.

날카롭고 강력하게. 그러나 단조롭게 베어 들어오는 검이 어느 순간 부드럽게 휘어지며 변화를 일으킨 것이었다.

주경수는 그 모습을 보고 턱이 빠지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즉석에서 상대방의 검을 보고 자신의 싸움에 변화를 가한다고?’

이건 거의 천재들이나 하는 방법이 아니던가?

싸움법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기존의 버릇을 처음부터 전부 뜯어고쳐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던가.

그런데, 강혜림은 그것을 즉석에서 단순한 깨달음으로 펼치고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재능이었다.

그 이상으로 주경수를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이년. 지금 일부러 이 싸움을 끝내지 않고, 질질 끌고 있어.’

조금 전부터 그를 계속 자극하고 있던 이질감을 뒤늦게 깨달았다.

강혜림은 처음부터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싸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보란 듯이 주경수의 몸에 자그마한 생채기를 하나씩 늘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큰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주경수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강혜림은 처음부터 그를 탈락시키지 않을 수준으로 공격을 하고 있었다. 묘하게 힘을 조절하며 어떻게든 주경수가 반응을 하게끔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부러 그를 가지고 노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미쳤어!’

주경수의 생각대로였다. 강혜림은 처음부터 이 싸움을 곱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는 주경수에게 맺힌 것이 많았다.

자신을 향해 보냈던 그 끔찍한 시선도, 은근하게 자신을 압박하려고 든 행동도.

“절대로 용서 못 해.”

그녀는 이 자리를 빌어서 주경수를 철저하게 박살을 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뽐낼 것이다.

퍼억!

“켁!”

검을 휘두르다가도 불현듯 날리는 주먹이 주경수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복부나 다리를 가격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주경수가 얼굴을 아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일부러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주경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강혜림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뻐억! 퍽! 퍽!

이미 잘생긴 주경수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망가졌다.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은 다 나가고, 여기저기 피멍이 들어 부어오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경수는 쉽게 항복을 외칠 수 없었다.

‘내, 내가 항복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

주경수는 자신의 얼굴이 더 망가지는 꼴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항복을 외치려고 입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강혜림의 무차별한 폭력이었다.

그녀의 주먹이, 발길질이, 항복을 채 외치기도 전에 주경수의 얼굴을 가격하며 절대로 허락해 주지 않았다.

‘아, 안 돼!’

주경수는 어떻게든 발악을 하며 저항이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그는 마치 수렁에 서서히 빠져드는 감각을 느꼈다.

뭘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정도로 강혜림과 주경수의 차이는 컸다.

분명,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잔뜩 깔보던 상대방에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망가지는 상황.

주경수는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어, 어어?”

“이건…….”

끝나지 않은 싸움이 계속 지속되자 처음에는 열띤 응원을 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반응이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상대가…… 안 되잖아?”

치열한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결투는 일방적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서, 검후 강혜림이 주경수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싸움은 애초에 싸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어, 음.]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어야 할 진행자조차도, 마이크를 쥐고서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도저히 이 상황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강혜림의 무자비한 폭력은 계속됐다.

“뭐야. 주경수 엄청 센 줄 알았는데. 입만 살았잖아?”

“맨날 잘난 척은 다 하더니. 까 보니까 별거 없었네.”

“그냥 외모만 믿고 설치던 거였어.”

주경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싸늘해졌다. 잔뜩 커진 그들의 기대감을 주경수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니, 그에게 오히려 짜증만이 든 것이었다.

반대로 주경수에게 빠진 일부 여성 팬들은 도저히 못 보겠다고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주경수가 망하라고 빌던 남자들은 오히려 지독하게 당하는 주경수의 모습에 동정심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보다 검후. 소문보다 더 대단한데?”

“진짜 저거 미쳤다.”

역으로 강혜림의 대한 대중의 평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오늘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녀의 싸움에 매료됐다. 번개를 담긴 검을 휘두르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강함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호기심에 찾아온 컬렉터들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클랜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이 상황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헤시오도스 클랜이었다.

“이런 젠장! 저 싸움을 멈추지 않고 뭐 하는 거야!”

“그, 그게 안 된답니다. 저 검후라는 여자, 항복을 외치기도 전에 미리 막고 있어요!”

헤시오도스 클랜은 이번 싸움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일부러 판을 키워 왔다.

뚜껑을 열어 보니 싸움의 결과는 그들의 바람과는 전혀 달랐고, 그들이 애써 확장한 거대한 판은 역으로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 돌아왔다.

설마, 이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이제 쏙 들어갔다.

헤시오도스 클랜에서 이번 일과 관련된 사람들은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역풍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뻐억!

‘아…….’

또다시 얼굴을 얻어맞은 주경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더 이상 자리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맷집은 한계에 달했고, 그 이상으로 정신력이 무참히 깎여 나갔다.

강혜림은 그의 몸도 마음도 전부 철저히 짓밟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쌍할 정도로 망가진 주경수는 정신 줄을 놔 버리고 말았다.

털썩.

주경수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강혜림은 이 정도는 됐다 싶었는지, 쓰러진 주경수를 그대로 놔뒀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자, 눈이 마주친 심판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겨, 결투 종료! 검후 승리!]

그토록 바라던 승리에 만족감을 느끼며 강혜림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주경수를 살폈다.

얼굴이 너무 엉망으로 망가져서 이걸 다 치료하는 데 막대한 포인트나 금액이 소모될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꺾인 것이 가장 심각했다.

앞으로 주경수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전의 인기를 복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성들을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고 발작할 테고, 무너진 자존감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컬렉터로서 주경수의 인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었다.

‘아.’

강혜림은 뒤늦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는 듯 쓰러진 주경수의 사타구니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기도 전기로 지졌어야 하는데. 얼굴만 노리느라 깜빡했다.’

정작 그녀는 죄책감 따윈 하나도 없이, 오히려 아쉽다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이 말을 들었다면 유현이라도 소름 끼쳐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겼네. 유현 씨도 보고 있겠지?’

자신의 승리 과정을 유현이 전부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강혜림은 전신이 희열로 떨려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힘들 거라 생각한 결투를 이겼다. 그것은 일전 유현이 시화대전에서 보여 준 모습과 똑같았다.

‘아아, 정말 최고야.’

강혜림은 자신과 유현이 마치 하나가 된 기분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 * *

“유현 씨! 언니가 이겼어요!”

“네. 기쁜 건 알겠으니, 너무 방방 뛰지는 말아 주세요.”

백서련은 조금 전까지의 스트레스가 싹 가셨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유현의 팔을 잡으며 기뻐했다. 유현도 강혜림이 이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처리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지.’

모처럼 만들어진 자리다.

최대한 이용해 먹지 않으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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