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74화 (7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74화

[시작하기에 앞서 룰을 설명하겠습니다. 승패는 어느 한쪽이 항복을 외치거나 전투 불능이 될 경우 끝납니다. 이 점은 이해했습니까?]

주경수와 강혜림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이 결투는 단순히 대인 결투만 놓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규칙에 대해서도 잘 숙지하고 계시겠죠?]

다른 규칙은 강혜림도 알고 있다. 여기에 오르기 전에 유현에게 전해 들은 참이었다.

결투는 단순히 싸움으로만 승부를 판별하지 않는다.

컬렉터의 결투에는 다른 요소가 충분히 끼어들 수 있었다.

애초에 사람들도 알고 있다. 강혜림과 주경수의 싸움이 애초에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걸.

그렇기에 불리한 강혜림도 이길 수 있도록 이 대결에 다른 요소를 추가한 것이었다.

[결투가 시작되면 필드가 전개됩니다. 장소는 숲이고 거기에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몬스터를 처치 시 포인트가 지급된다. 몬스터의 수준에 따라 들어오는 포인트는 다르며, 특히 필드에 존재하는 보스급을 쓰러뜨리면 가장 큰 포인트가 들어온다.

[결투에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은 총 3시간. 만약, 3시간이 지날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에는 보유한 포인트로 결과를 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역전의 기회였다.

대인 전투가 상대방에 비해 밀린다고 판단이 된다면, 싸우는 것을 피하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으로 이기는 방법을 고를 수 있었다.

적어도 허무하게 패배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살인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협회의 주도 아래에 가장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두 분 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주의해 주시면 됩니다.]

시화대전의 데스매치와 다르게 이쪽은 그래도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부분만 놓고 보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자, 그러면 결투를 시작합니다!]

심판의 선언과 동시에 경기장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적당한 운동장 크기였던 곳에 공간이 확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커지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나무가 자라나 울창한 숲을 이뤘다.

곳곳에서 짐승의 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심지어 은은하게 바람이 부는 것이 정말로 숲에 온 것 같았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진짜야.’

강혜림은 피부에 와 닿는 풍경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이곳은 [이야기의 힘]으로 인해 구성되는 또 다른 필드였다. 어떻게 보면 [사상세계]와 매우 흡사한 곳이었다.

듣기로는 정부 소속의 상급 컬렉터 중 하나가 만든 곳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주경수와 결투를 벌여야 했다.

* * *

“와 씨. 드디어 시작됐다.”

“완전 기대되는데?”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공간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강혜림과 주경수의 모습에 집중했다.

“근데 솔직히 둘이 정면 대결은 힘들겠지?”

“아무리 그래도 차이가 좀 있지. 검후가 이기려면 아티스트를 피해서 몬스터를 파밍 할 수밖에 없어.”

“하긴. 그나마 그게 이길 방법이 높겠네.”

사람들은 이미 강혜림이 주경수와 정면에서 싸운다는 생각을 지웠다. 그들은 강혜림이 포인트를 모아서 3시간을 버티는 방법을 선택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컬렉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만이 아닌 눈썰미가 뛰어난 전문가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물론, 주경수도 작정하고 포인트 싸움으로 맞불을 놓는다면 검후가 불리해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하지만, 그건 녀석에게 귀찮은 일이야. 분명 어떻게든 검후를 찾으려고 들거나, 혹은 검후를 유인하려고 들겠지.”

“과연, 함정에 빠지는가 아니면 버티는가. 눈치 싸움인가?”

기대했던 결투와 다르게 맥이 빠지는 진행이 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정당한 승부 자체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는 것은 이 승부 자체가 갖는 즐거움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약자가 불리함을 딛고서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쓰러뜨린다.

이런 그림이야말로 성령들은 물론이거니와, 대중들이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주경수는 시작과 동시에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가장 가까운 몬스터를 발견해 의도적으로 마력을 흩뿌리며 요란스럽게 싸웠다.

붉은 마력이 넘실거리며 전신에 가시가 가득 난 고릴라를 마구잡이로 베었다. 나무가 베이고 쓰러지며 소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뿌연 먼지가 일어나고 몬스터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와아아아!

“꺄아아악! 오빠 너무 멋져요!”

“아티스트! 아티스트! 아티스트! 아티스트!”

사람들은 그 화려한 모습에 감탄하며 환호성을 내질렀고, 주경수는 그런 반응이 당연히 올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포즈를 잡으며 소소한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반면,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 반대였다.

“아티스트 저 녀석, 일부러 자신을 과시하고 있는 건가?”

“여유를 부리고 있군요. 대놓고 자기가 이곳에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어요.”

“그만큼 상대방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소리겠지.”

나는 이곳에 있다. 그러니 올 수 있으면 와 봐라. 그게 아니라면 겁쟁이처럼 도망쳐라.

주경수는 분명 강혜림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컬렉터 관계자들은 모두 그렇게 듣고 있었다.

‘그렇다면 검후는?’

‘검후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혜림을 비추는 화면을 향했다.

강혜림은 결투가 시작됐음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오히려 눈을 감으며 깊은 명상에 빠져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비쳤지만, 관계자들은 그녀의 속셈을 읽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포기한 건가?’

‘무슨 계획을 세우는 중이지?’

그런 생각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주경수가 잔뜩 난동을 피우는 소리가 강혜림이 비치는 화면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번뜩!

검후가 감았던 눈을 떴다.

파직!

유현은 그 광경을 보며 소리 없이 씨익 웃었다.

‘주경수. 너는 지금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어.’

그는 강혜림이 결투가 시작되면 몸을 사리며 포인트를 버는 것에 집중할 거라고 판단했다.

자신을 피해서 어떻게든 몬스터 사냥에 집중하며, 최후에는 3시간을 버티는 게 목적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이쪽의 힘을 과시하면서 강혜림을 정신적으로 몰아넣으면 이길 거라고.

저쪽에서 알아서 지쳐 나가떨어질 거라고.

그렇게.

‘멋대로 착각했지.’

하지만, 그는 틀렸다.

‘오히려 몸을 사려야 했던 건, 네 쪽이었던 거야.’

유현이 지켜보는 강혜림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파지지직!

그녀의 몸 주위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은 아주 자그마한 스파크였다. 그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불꽃과 불꽃이 이어지고 하나의 선이 됐다.

영롱한 빛을 내뿜는 그 선은 점차 커져 갔다.

어느덧 그녀의 전신에는 푸르스름한 번개가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

“저, 저건……!”

컬렉터 관계자들이 그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몇몇은 자신의 격해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안목은 강혜림에게서 일어난 이변이 범상치 않은 것이라는 걸 인지했다.

푸른 번개를 몸에 휘감다니. 도저히 들어 본 적이 없는 능력이었다.

모두가 경악하며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혜림이 움직였다.

파지지지직!

거대한 푸른 섬전이 숲을 가로질렀다.

녹색의 숲에 눈부신 푸름의 선이 그어졌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상관없었다. 바위를 부수고, 나무를 베어 내고, 몬스터를 태우며.

강혜림은 오직 일직선으로 쭈욱 내달렸다.

그녀가 향하는 목적지는 자신의 위세를 전혀 숨기려 들지 않은 주경수가 있는 곳이었다.

“설마,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건가!”

“이렇게 갑자기?!”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강혜림은 멈추지 않았다.

거리만 따지면 2km가 넘었지만, 전신에 푸른 번개를 휘감은 그녀의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잔상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허공에 잔류하는 스파크만 남아서 그 궤적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콰과과과!

전신이 번개로 이루어진 한 마리의 용이 주경수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며 나아갔다.

“뭐, 뭐지?!”

주경수는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거대한 소음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내 이쪽으로 공포스러운 속도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뭔가가 온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주경수는 황급히 자신의 힘을 체내에서 끌어올려 바깥으로 꺼냈다.

붉은 기운이 그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양손에 쥔 곡도에도 붉은 마나가 깃들었다. 마치 붉은 셔츠를 덧대 잎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특성 [붉은 셔츠의 혁명가]

주경수가 지닌 3개의 특성 중에서 유일하게 전투와 관련된 특성이었고, 싸움을 자주 하지 않는 그가 중급 컬렉터로 올라갈 수 있게 도움을 준 힘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웅이자 혁명가인 ‘주세페 가리발디’

그 이야기가 담긴 특성은 주경수에게 거대한 힘을 선사해 줬다.

파지지지직!

동시에 우거진 숲을 부수며 거대한 전류의 폭풍이 주경수를 집어삼켰다. 이빨을 쩍 벌린 전류의 용이 주경수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주경수는 이를 악물고 쌍검을 휘둘렀다. 그는 뒤늦게 자신을 공격하는 적이 강혜림임을 깨달았다.

놀라움이 분노로 치환됐다.

“감히!”

자신을 두고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려고 찾아오다니!

주경수는 그녀의 행동이 자신을 얕잡아 본다고 생각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후회하게 해 주마!”

그의 붉은 기운이 담긴 검과 번개를 휘감은 강혜림의 검이 충돌했다.

두 기운이 부딪치며 거대한 충격을 낳았다. 주위로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몰아치며 땅을 뒤집고 나무를 사방으로 날렸다. 대지를 딛고 있던 주경수의 두 다리가 지면에 파묻혔다.

비등해 보이는 힘겨루기에서 우세를 차지한 것은 강혜림이었다.

“무, 무슨……!”

파지지직!

검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강렬한 번개의 힘에 주경수는 팔이 따끔거리며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다. 땅을 딛고 서 있는 굳건한 두 다리가 저릿해지고 있었다.

최대로 일으킨 [붉은 셔츠]는 천뢰검에 조금씩 구멍이 뚫리며 공격을 하나씩 허용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

주경수는 경악에 담긴 눈동자로 강혜림을 향했다. 이쪽은 필사적으로 기운을 일으키며 저항하고 있는데, 정작 공격을 가하는 강혜림의 표정에는 별로 다급함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차갑고 고고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경수는 그것을 보고 화를 낼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감정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다.

파스스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전류가 그의 뺨을 스쳤다. 그의 종아리, 허벅지, 팔뚝, 허리.

가랑비에 젖기라도 하듯 주경수의 몸 곳곳에 강혜림의 힘이 찔러 들어왔다.

쿠웅!

강혜림이 수직으로 휘두르는 검을 주경수는 쌍검을 교차하며 방어했다. 강혜림은 한 손으로 휘둘렀는데, 정작 주경수가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쿠웅! 주경수를 중심으로 미처 흘리지 못한 충격이 땅을 타고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갔다.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지면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갔다.

주경수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 차오르면서도 반격을 꾀할 수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다리가 욱신거리고 두 팔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강혜림의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주경수는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강혜림은 그런 움직임마저 예측했다는 듯 곧바로 따라붙었다. 시간 차는 거의 없었다.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연격에 주경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아! 세상에! 여러분! 보이십니까! 갑자기 벌어진 초근접전! 그리고 예상과 다르게 우위를 점하는 것은 검후입니다! 대체, 전신에 가득 찬 저 푸른 번개는 대체 무엇인가요!]

진행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질렀다.

관객들은 거기에 반응하지 못하고, 홀린 듯이 둘의 싸움을 구경했다.

싸움을 지켜보는 컬렉터 관계자들과 클랜 사람들은 모두 강혜림의 검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체, 대체 저 능력은 뭐지?”

“검후. 대단하다고 말은 나와서 소문만 무성하다고 생각했는데.”

“저 검술. 망설임 없는 행동. 믿기지 않아.”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강혜림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