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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73화 (7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73화

결투 당일이 찾아왔다.

바깥은 벌써부터 축제나 다름없는 분위기로 흠뻑 달아올랐다.

유명세를 떨치는 컬렉터 간 결투에 벌써부터 입방아를 찧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대규모 이벤트를 놓칠 수 없는 언론과 클랜, 협회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네요.”

나는 긴장 어린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 주려고 너스레를 떨며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강혜림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후라는 캐릭터를 유지하느라 바빴고, 백서련은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에 속이 쓰린지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긴장되세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나요?!”

결국, 참다못한 백서련이 내게 소리쳤다. 그녀는 설마 상황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줄 몰랐다는 듯 손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냥 적당한 결투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이 인파는 뭔가요? 그리고 왜 대형 언론사에서 저희 싸움을 구경하러 오는 건데요? 그리고 이야기 들었어요? 다른 클랜에서도 다들 구경하러 왔다구요!”

서련 씨의 말마따나.

3일이라는 시간 동안 판을 키우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판이 너무 커지게 됐다.

애초에 이쪽은 신가령에게 적당히 부탁하며 소문을 흘리는 것 정도만 생각했는데, 반응이 이렇게 극적인 것을 보면 그 카사노바 녀석이 생각 이상으로 날뛴 게 틀림없었다.

‘사실, 그거 말고도 이미 사람들은 잔뜩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거지.’

시화대전도 그렇지만 이 결투라는 것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주로 하급 컬렉터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파다했고, 중급 이상부터는 서로 몸을 사리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1군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2군까지 나서는 일이 없으니 사람들이 지루해할 만도 하다.

그러던 와중에 벌어진 네임드 간의 결투 성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단순히 불씨를 지핀 것 치고는 화력이 지나치게 세진 것은, 그만큼 타오를 준비가 끝난 연료들이 바닥에 쌓이고 쌓였다는 걸 의미했다.

현재 장소는 협회에서 제공해 주는 결투장의 안쪽 대기실.

바로 얼마 전까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나로서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지만, 서련 씨에게는 다른 것 같았다.

“으윽. 긴장했더니, 배가.”

“화장실 가시게요?”

“숙녀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정말! 그냥 복통이에욧!”

“뭐,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미 벌어진 일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 기회를 살려서 더욱 저희 백화 매니지먼트를 홍보해야죠.”

“말이나 못 하면.”

백서련이 나를 흘겨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한 건 빈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정말로 백화 매니지먼트의 이름값을 올리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보통 어지간한 메이저 매니지먼트는 이런 상황조차 마주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에겐 축복이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축복을 내리게끔 도움을 준 게 카사노바라는 쓰레기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백련의 지적에 나는 쓰게 웃었다.

이런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 은인도, 동료도 아닌 이쪽을 이용해 먹으려는 악역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이용해 먹을 수 있으니, 최대한 해 줘야지.’

나는 곧장 대기실 바깥을 살폈다.

아주 넓은 경기장 같은 곳의 객석은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 차 있었다.

‘거, 참. 많이도 모였군.’

일반 시민들만 모인 게 아니다.

일등석 자리에는 대형 클랜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다수 있었고, 심지어 이름 있는 컬렉터들도 몇 명 보이기까지 했다.

‘메이저 언론사 사람들도 있는 거 같고. 오, 저 사람은 협회의 중진인가? 하긴. 장소를 제공해 준 게 협회니까, 저들도 이번 결투에 나름 관심이 있다는 소리겠지.’

그만큼 지금 결투가 갖고 있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이 바닥에서 이름값 무거운 사람들이 찾아왔을 정도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서련 씨가 긴장감에 속이 쓰릴 만했군.

[넌 전혀 긴장한 거 같지 않은데?]

‘나도 긴장하고는 있어. 티를 안 낼 뿐이지.’

[어련하시겠어.]

‘정말이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싸움은 내 게 아니야. 검후의 것이지.’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기운을 가다듬는 강혜림을 슬쩍 살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걸 보면 그녀도 꽤나 많이 긴장한 거 같았다.

고요한 대기실의 내부와 다르게 바깥의 분위기는 거의 절정에 치달았다.

-자! 여러분!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세요! 곧 결투가 시작됩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백효야. 다 들리지?’

부엉.

현재 백효는 경기장 바깥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천계 부엉이의 능력 덕분에 주인인 나는 그 시야를 전부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귀를 더욱 기울여 바깥의 반응을 확인했다.

-야. 누가 이길 거 같냐?

-등신아. 당연히 아티스트가 이기지. 일단 등급이 더 높잖아.

-아니 근데, 검후도 만만치 않은데? 요즘 엄청 뜨고 있잖아.

-그래도 아직 신인이지. 경험의 차이 몰라?

-그러면 솔직히 불공평한 대결 아닌가?

-아 몰라. 우린 재밌으면 그만이지.

순수하게 즐기러 온 사람들

-아 씨, 진짜. 짜증 나. 우리 아티스트님 얼굴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자리가 넘 구려.

-그보다 상대 검후 얼굴 봤어? 엄청 예쁘더라.

-뭐래. 어차피 컬렉터는 실력으로 먹고살거든? 우리 주경수님은 실력도 출중하다고.

-솔직히 이건 결투라기보다는 건방진 후배 참교육에 가깝겠지. 난 그냥 주경수님 얼굴만 보면 그만이야.

-완전 공감. 솔직히 검후란 년 좀 재수 없지 않냐? 속 시원하게 망가졌으면 좋겠다.

강혜림을 깎아내리는 주경수의 열성 팬들.

-넌 누구 응원하냐?

-당연히 검후 빠따지!

-큭큭. 나도.

-야 솔직히 우리가 남자 응원해서 뭐하냐? 게다가 그 아티스트 평소에 겁나 느글거려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여기서 걍 개발렸으면 좋겠다.

-인정. 솔직히 예쁜 검후 빨아야지 누굴 응원해?

주경수의 안티이며 강혜림을 응원하는 사람들.

-이번 싸움 자체로 꽤나 많은 관심이 모일 거 같군요.

-벌써부터 성령님들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흐음. 헤시오도스 클랜에서 조금 문제를 크게 키우는 게 아닐까 걱정이군요.

-뭐, 어떻습니까. 저희는 여기서 챙길 것만 챙기면 됩니다.

-그 검후라는 신인, 능력이 제법이라던데.

사업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온갖 인간군상이 다 모였군.’

심지어 이미 이 경기장 전체에는 하나의 거대한 서재가 열린 뒤였다.

그 때문인지 관객석의 위, 하늘에서는 성령들이 이쪽을 내려다보며 곧 시작할 결투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상대 텔러와의 합동 시화 때문에 생기게 된 의도치 않은 합방.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경기 시작까지 앞으로 3분 남았습니다.]

그런 알림음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강혜림이 눈을 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됐나요?”

“……네.”

어딘가 망설임이 느껴지는 대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긴장하셨네요.”

“하아. 네.”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앞에서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은 부담감이 크니까.

지금까지 시화를 통해 성령님들 앞에서 싸운 적은 많았지만, 실제 관객이 있는 싸움은 그녀도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뭐, 긴장하지 말라느니. 잘하라느니. 솔직히 그런 말을 하는 건 쉽죠. 하지만 역시 그걸로는 좀 진정되지는 않겠죠?”

나는 잘 안다. 애초에 긴장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풀릴 거였으면 그런 걸 왜 하겠는가?

힘내라느니, 너를 믿는다느니.

그런 말들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욱 짐을 늘려 주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따악!

“악!”

강혜림의 이마에 평소처럼 꿀밤을 먹여 줬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아파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꿀밤에 강혜림은 정수리를 양손으로 쥐며 내게 항의하듯 외쳤다. 검후의 연기도 필요 없는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별말 않던 그녀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쌍심지를 켜며 나를 노려보는 모습마저 귀엽다.

나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프라고 때린 겁니다.”

“씨이. 너무해!”

“그래도 어때요? 조금 전보다는 어깨에 힘이 빠졌죠?”

“어, 네? 아…….”

한번 크게 놀라게 해 주면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었다. 강혜림도 그 걸을 깨달았는지, ‘아.’ 하고 탄성을 흘리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게슴츠레하게 노려봤다.

“미리 말이라도 해 주시지.”

“미리 말하면 효력이 떨어지거든요.”

“그렇다 해도 이번 건 너무 아팠어요!”

“아파야 정신 차리죠.”

“씨이. 나중에 유현 씨도 긴장하기만 해 봐. 제가 똑같이 해 줄 거예요.”

“오. 그거 기대할게요.”

그래도 내 응원 같지 않은 응원이 효과가 있었는지, 강혜림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더 누그러졌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주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강혜림은 피식 웃더니, 다시 표정 관리를 하며 대기실을 나갔다.

[선수들 입장!]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경기장의 위로 두 사람이 동시에 등장했다.

한쪽은 화려한 복장과 외모를 지닌 미남자 아티스트 주경수.

다른 한쪽은 주경수에 비하면 수수하지만, 그렇기에 고결하고 청렴해 보이는 검후 강혜림.

둘 다 외모만 놓고 보면 훌륭한지라, 시민들의 반응은 극에 달했다.

“혜림 언니는 분명 잘하겠죠?”

“네. 잘할 겁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경기장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일단, 싸움의 구성이나 배경 자체는 얼마 전에 내가 겪었던 시화대전과 비슷하다. 애초에 이 컬렉터간의 결투가 시화대전에서 파생된 거라 비슷한 게 당연했다.

차이점을 꼽자면, 객석에 있는 관객이 성령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거겠지.

성령들은 그보다 더 위, 서재의 바깥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령들이 두 사람의 싸움을 잔뜩 기대합니다.]

[성령들이 검후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우리 쪽 서재의 시청령들이 잔뜩 몰려와 응원하고 있었다.

현재 합방을 통해 모인 성령들의 숫자는 약 4,500명. 지난번 시화대전 이후로 또다시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승리하는 자가, 이 자리에 모인 성령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게 될 거다.

* * *

경기장의 위에서 두 사람이 마주 봤다.

“하하. 레이디. 오랜만이군요.”

“고작, 3일입니다.”

“저에겐 당신을 보지 못한 3일은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답니다.”

“…….”

주경수의 간드러진 말에도 강혜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무미건조한 모습에 주경수는 속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여전히 건방진 태도로군.’

보통 이런 상황까지 오면 어지간한 컬렉터는 긴장하는 게 당연했다. 주경수야 언제나 이런 관심을 받아 왔기에 적응했지만, 강혜림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군다는 것은 그만큼 당당하다는 걸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어쩌면 필사적으로 그런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주경수는 강혜림이 마지막 경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경기장은 싸움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주변과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이라 서로의 대화가 흘러 나가는 일은 없었다.

주경수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내가 좋게좋게 했을 때 왔으면 얼마나 좋아.”

주경수는 평소와 같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으로는 강혜림을 향해 적대적인 말을 읊고 있었다.

주변에서 보면 그가 마치 웃으며 덕담을 건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여튼, 건방진 후배 년이 최근에 막 치고 올라왔다고 기세가 살았어요.”

“그게 문제입니까?”

당돌하게 묻는 강혜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문제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것들이 설치면 당연히 보는 눈이 안 좋지 않겠어?”

그 말에 강혜림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곧바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경수는 그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여기까지 나온 거 같은데.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후회는 누가 하게 되는지 곧 알게 되겠죠.”

“와. 진짜 끝까지 한마디도 안 지네.”

“소중한 분에게 그렇게 배웠거든요.”

“올.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봐? 큭큭. 이거 더 불타오르는데?”

주경수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강혜림의 몸을 훑었다.

“어디 언제까지 그런 고고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자고.”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때마침 심판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곧 시작합니다. 두 분 다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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