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72화
강혜림이 결투를 받아들이겠다고 대답이 나오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결국, 그들이 애타게 바라던 재미있는 상황이 성사된 것이다.
주경수는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기뻐했다.
‘후후. 혹시 조금이지만 거절하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역시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군.’
주경수는 벌써부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상식적으로 그가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혜림은 정식으로 컬렉터로 활동한 지 이제 1달 차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경험이 부족하다. 반면 주경수는 비록 열심히 싸우지 않았지만, 그래도 중급 컬렉터로서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멍청한 년! 내가 철저하게 벗겨 먹어 주마.’
주경수가 그런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혜림이 뒷말을 덧붙였다.
“대신.”
“음?”
“지금 바로는 안 되고, 3일 후로 하겠습니다.”
‘3일 후라고?’
주경수는 당장에 결판을 내고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일단 소문을 퍼뜨리고, 보는 눈에 많아져야 승리했을 때 취하는 그의 업적이 더욱 크지 않겠는가?
저쪽도 나름 머리를 굴린답시고 시간을 달라고 한 거 같은데, 주경수는 그것이 의미 없는 반항이라고 느꼈다.
‘귀엽기는. 꼴에 뭐라도 해 보겠다. 이건가? 뭐, 좋아.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하지.’
3일이나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주경수는 맛있는 먹이는 뒤로 미룰수록 그것을 취했을 때의 성취감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제안을 승낙했다.
“좋습니다. 3일 후에 결투하도록 하죠.”
“장소는?”
“협회에서 공지해 주는 장소를 이용하면 될 겁니다. 일단, 이번 결투의 성사에 관련한 공증인은 이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이 맡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강혜림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전부 다 유현이 알려 준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3일이라는 시간을 벌라고 유현이 귓속말로 지시를 내렸기에 그녀가 이런 제안을 건 것이었다.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걸까?’
강혜림은 유현이 어떤 사람인지, 완벽하게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의미 없는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별거 아닌 일조차도 전부 다 그가 계산하고 예측했던 일들이 이미 여러 번 있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래에서 일어난 소란을 듣고 찾아온 것일까.
신가령이 모인 인파를 보며 당황스러워하면서 유현에게 물었다.
“아, 가령 씨.”
“유현 씨. 지금 무슨 일 생겼어요? 갑자기 아래가 시끄러워서 한번 내려왔는데, 이게 무슨…….”
“주경수라는 컬렉터가 찾아왔거든요.”
“주경수요? 그 아티스트?”
그의 이름이 나오자 신가령의 표정이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을 들었는지 찌푸려졌다.
“아는 사이입니까?”
“아는 사이는 아니고, 그래도 안면은 있었죠.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요. 예전에 인터뷰를 한번 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
유현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신가령은 팔짱을 끼며 혀를 쯧 찼다.
“그래도 마스크 좋고 말 잘해서 그런가 했는데, 저한테 너무 추파를 던지더라고요. 특히 그 눈빛. 보고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게다가 미묘하게 행동 하나하나에 소름이 끼치는 이질감이 느껴졌었어요.”
“그렇군요.”
“무엇보다 클랜을 등에 업고서 좋지 않은 짓을 저지른다고 소문이 파다해요. 애초에 컬렉터들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모으는 저는 알건 다 알거든요. 저 인간 의외로 대중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저한테는 아니랍니다.”
“가령 씨는 의외로 눈이 높으셨군요.”
“글쎄요. 그보다는 취향의 차이 아닐까요? 저는 저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인간은 별로예요. 게다가 나도는 소문이 나쁜 건 더더욱. 그런 소문에는 으레 이유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굳이 제 취향을 꼽자면, 역시 유현 씨 같은 사람이려나?”
“죄송하지만 저는 텔러라서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후후. 그 점도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그 아티스트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요?”
아직 상황에 대해 전해 들은 바가 없는 신가령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유현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그냥 주경수가 혜림 씨에게 결투를 걸었을 뿐입니다.”
“그렇구나. 결투…… 네에?! 잠깐만요. 그거 큰일 아니에요?”
“굳이 말하자면 큰일이기는 하겠죠.”
“그,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티스트가 아무리 그래도 중급 컬렉터라고요. 혜림 씨가 떠오르는 신성이라 하더라도 둘 사이에는 격차가 있을 텐데.”
자신이 소속된 잡지사에서 이런 문제가 터졌다는 사실에 신가령은 놀라워하면서도, 이 상황 자체가 갖고 있는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그런데, 결투를 받아들이시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성급한 게 아닌지…….”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희도 바보는 아닙니다. 다 믿고 있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렇게 행동을 한 거죠.”
“그, 그래도…….”
“무엇보다 가령 씨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오히려 이번 사건은 더욱 큰 이슈 몰이가 될 테니까요.”
“네?”
“최근 매거진에 단독 인터뷰를 실은 검후가, 중견급 컬렉터인 아티스트를 상대로 결투에서 승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대단히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유현 씨. 지금 설마 이 상황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려는 건가요?”
신가령은 입을 헤벌리며 유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 놀란 것이 조금 전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이 사태를 대하는 유현의 태도는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유현은 신가령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보시면 알 겁니다. 오히려 가령 씨는 지금 이 결투를 더욱 부채질해 주면 좋겠네요. 언론사에 끈이 닿는 데 있죠? 홍보 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 하아. 피하기는커녕 일부러 키우시겠다고요?”
“그래야 이겼을 때 얻는 게 더 크거든요.”
“정말.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치셨네요. 아, 욕은 아니에요. 오히려 칭찬이죠. 미쳤다는 건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매우 특출하다는 소리죠.”
“네! 바로 그거에요. 잘 아시네요.”
“물론이죠. 저도 미친 걸 좋아하니까요.”
유현과 신가령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백서련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언니. 유현 씨랑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았어?”
“어? 어. 서련이구나.”
“뭐야. 내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 있겠니. 너무 놀라서 그랬지.”
“흐음.”
백서련이 신가령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신가령은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알겠어요. 일단, 유현 씨가 원하시는 대로 언질은 넣어 볼게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뭐, 저야 상관은 없지만요. 무엇보다 이번 이슈 몰이 덕분에 다음 호는 꽤나 많이 팔릴 것 같기도 하거든요.”
“아마, 더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후우. 그 말 기대할게요.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죠?”
“그건 장담하지 못하죠.”
“네에?”
“하지만, 분명 재밌는 일이 될 겁니다.”
확신이 담긴 유현의 말에 신가령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결투의 날짜와 시간을 전부 정한 강혜림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주경수는 아직 떠나지 않고 이쪽을 잠시 주시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저거 저 봐. 아주 자기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눈치네.]
‘그러겠지.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을 테니까. 녀석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놈이거든.’
[어떻게 보면 너랑 비슷하네?]
‘나라고 항상 이기는 싸움만 하려는 건 아니거든?’
유현은 멀어져 가는 주경수의 등을 보며 싸늘한 안광을 빛냈다.
‘다만, 지금은 이긴다고 확신하고 있지.’
결투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이쪽도 나름의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 * *
검후와 아티스트의 대결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몰고 왔다.
‘아티스트와 검후가 싸운다!’
‘그래서 검후가 누구인데?’
아직 강혜림에 대해 모르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이룩했던 업적이 하나둘 밝혀졌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조만간 유명해진다니까?’
‘검후 코인은 떡상한다.’
‘헉헉. 검후님 이겨 주세요!’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의 반향을 보며 나는 계획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작게 만족했다.
강혜림이 인기를 얻으며 백화 매니지먼트에 대한 이름도 퍼져 나갔다. 그 덕분인지 때문인지, 이쪽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는 백화 매니지먼트에도 몇 번이지만, 기자들이 문을 두드렸을 정도다. 서련 씨가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아서 직접 찾아오는 사람은 사라졌지만, 바깥에서 대기하며 이쪽의 동태를 살피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하아. 정말이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서련 씨는 안 그래도 업무 처리로 바쁜데, 기자들까지 꼬이니 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사건이라는 것이 다 이렇게 예상 밖의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거죠.”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죠!”
어떻게든 변명하려는 내게 서련 씨가 홱 돌아보며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앗 뜨거’ 하는 반응을 보이며 몸을 사렸다.
“후우. 애초에 말이죠. 이런 사건에 휘말리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요!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건가요?!”
“뭐, 덕분에 이슈 몰이 해도 좋지 않습니까? 사람이라고는 저와 혜림 씨 둘만 찾아오는 이 사무실에도, 그래도 나름 손님이 찾아왔으니까요.”
“네?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어요.”
사람이 없다는 말에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련 씨는 이 이상 추궁해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걸 알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게다가 언니는 또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이렇게 일 처리를 하게 만드는 건가요?”
“신가령 씨요?”
“그 언니 원래 보통 엉덩이가 무거운 게 아니거든요? 은근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겉으로는 웃으며 대해도 진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탁받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요.”
“아. 그랬습니까? 좋게 보여서 다행이네요.”
“다행히 아니거든요? 언니가 그래도 일 처리 하나는 정말로 확실해서, 유현 씨가 부탁한 대로 움직였다면 지금 정말 소문이 쫙 퍼졌을 거라고요.”
“바라던 바입니다.”
애초에 일부러 그녀에게 부탁해서 이슈 몰이를 한 것이 아니다. 다 이쪽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 일을 저질렀다.
그 주경수라는 카사노바가 원하는 대로 싸우는 것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은 녀석과의 대결에서 보란 듯이 깨부숴 주면 그만이다.
‘아니, 오히려 이 싸움은 내가 바라던 바였어.’
주경수는 컬렉터로서 실력은 이류에 가까스로 턱걸이하는 수준이었지만, 그가 지닌 인기는 일류에 가까웠다.
녀석이 결투하겠다고 다짐한 순간, 많은 사람이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쪽에서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녀석도 알아서 열심히 홍보를 해 주고 있는 것 같고.
‘혜림 씨가 성령들에게 나름 인지도는 쌓았지만, 아직 사람들에게는 그 이름이 제대로 퍼지지는 않았지.’
인기를 얻기 위한 과정으로 컬렉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콜렉팅 매거진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던 차에 주경수가 나타나 알아서 기회를 던져 준 것이다.
‘본인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이쪽을 찍어 누를 생각이었겠지만.’
그것은 조만간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녀석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헤시오도스 클랜이라.’
주경수가 소속된 헤시오도스 클랜은 거대 클랜 중 하나다. 이름에서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를 모토로 하고 있는 이곳은, 대성군 올림포스의 성령들에게 꽤나 많은 후원을 받고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클랜의 이름을 신통기의 저자 헤시오도스로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대체 주경수 같이 문란한 녀석을 클랜에서 왜 데리고 있나 했더니, 올림포스와 관련되어 있다면 단번에 납득이 가네.’
신화를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그쪽이 보통 성적으로 문란한 게 아니지 않던가?
카사노바 이야기는 올림포스 신화의 원류를 지닌 판테온의 신좌에 앉은 자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기의 재롱에 불과하다.
‘뭐가 어찌 됐든 대형 클랜은 대형 클랜이지. 저쪽도 나름대로 강혜림을 어떻게든 찍어 누를 생각이니, 최대한 관객을 크게 잡으려 들 거야. 텔러도 마찬가지고.’
판을 깔아 준 것도 고마운데, 판을 키워주기까지 했다.
내가 3일이라는 유예를 둔 것도, 판이 최대까지 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헤시오도스 클랜도 분명 자기들 딴에는 나름 노리는 것이 있어서 한 행동이겠지만, 나한테는 원플러스 원 행사에 맞먹는 퍼 주기에 가까웠다.
나는 슬쩍 사무실의 구석에서 자신의 기를 가다듬는 강혜림을 곁눈질로 살폈다.
바닥에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몸 주위로, 미약하지만 푸른 전류가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이쪽도 준비는 만전이로군.’
전생의 검후.
아니, 지금의 강혜림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컬렉터가 될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안겨 준 [천뢰검]이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니까.
‘과거의 그림자를 쫓는 거로는 부족해.’
이제는 지나간 뒤를 쫓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필사적으로 따라잡고 더욱 앞서 나가서, 종래에는 최고였던 자신마저 초월해야 한다.
곧 벌어질 결투는 그것을 위한 위대한 여정의 첫 발자국이었다.
‘이건 그러기 위한 싸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