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71화 (7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71화

컬렉터들 사이에 벌어지는 결투가 있다.

텔러들이 서로 경쟁을 위해 시화대전을 치르는 것처럼, 컬렉터들도 서로 의견의 차이나 상대방과 마찰이 생길 경우에는 결투를 벌이는 것으로 승패를 가르는 것이었다.

현대에서 무기를 들고 목숨을 걸며 싸우는 컬렉터이기에 허락된 방법이었고, 결투를 신청하는 방법도 매우 간단했다.

그저 상대방에게 자신의 나름대로 결투를 신청하겠다고 의견을 표명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잠깐만. 그게 성립이 된다고?]

‘충분히 돼.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꽁한 채로 헤어져서 나중에 무슨 더러운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유현은 백련에게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애초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도 권장하는 부분이야.’

[아니. 대체, 왜? 정부는 보통 이런 싸움을 말려야 하는 입장 아닌가?]

‘만약에 컬렉터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해 봐. 일반인이야 홧김에 주먹다짐으로 끝난다고는 하지만, 일반인보다 훨씬 더 강한 컬렉터가 싸우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확실히 큰 문제가 생기겠지.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민폐가 될 거고.]

‘그뿐만이 아니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싸우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지. 만약 상대방에게 앙심을 품고서 사상세계에 몰래 따라 들어가 인적이 없는 곳에서 일을 벌인다고 생각을 해 봐.’

그렇게 되면 반드시 사망자가 나오게 된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몰래 뒤를 밟아 살인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범행이 밝혀지지 않고 묻힌 사건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오히려, 이런 사건이 스캐빈저의 짓으로 치부되는 일이 파다했다.

‘등급이 낮은 녀석들이야 뭐 무슨 꼴을 당해도 신경을 안 쓴다고는 하지만, 중급끼리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연히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어. 중급 이상의 컬렉터는 중요한 인력이니까’

그래서 생긴 것이 바로 상호 간에 생긴 문제를 엄격한 규칙 아래에서 원만하게 풀게끔 만드는 결투였다.

‘무기 들고 싸우는 컬렉터들에게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어울리는 해결법이 없는 거지. 애초에 서로 칼 들고 있는데, 뭘 사이좋게 법정에 서서 말로 싸우겠어? 그냥 마음 편하게 칼질하고 말지.’

[그래도 말로 해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녀석들도 있지 않을까?]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말로 다 해결하려는 녀석이 컬렉터를 할 리가 없잖아. 결국, 다 저마다 싸울 각오가 됐으니 컬렉터가 된 거고, 특히 중급까지 올라간 녀석들은 오히려 싸우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의 어딘가가 이상하거든.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일반인들과는 확연히 달라. 중세 귀족한테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꼴이나 다름없지.’

[……생각해 보니, 그러네.]

‘일단 표면적으로 승패를 갈라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는 것도 있는 데다가, 또 어느 정도 수준이 된 컬렉터끼리의 대련이나 결투는 성령들에게도 큰 구경거리가 되거든. 컬렉터끼리의 분쟁에 텔러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으니까. 돈이 되지.’

[이른바 보여 주는 쇼라는 거지? 격투기와 같은 스포츠처럼?]

‘그래. 성령들이 많이 모일수록 그곳에 유통되는 포인트가 늘어나. 텔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이슈 같은 것들이 늘어나면 고마운 셈이야. 그만큼 페이가 늘어나거든.’

[그런 거치고는 너는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당연하지. 애초에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라,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걸어오는 거잖아. 게다가 저 싸가지 없는 녀석이 멋대로 하는 제안을 받아 주고 싶지도 않아.’

유현이 화가 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애초에 주경수가 일방적으로 이쪽에 시비를 걸듯이 행동하고 무례를 저질렀다. 그 부분을 지적했을 뿐인데, 결투를 신청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주경수의 잘못이 컸다.

‘문제는…….’

“세상에! 결투야!”

“아티스트가 검후에게 결투를 신청했어!”

“꺄악! 주경수님! 꼭 이기세요!”

주변의 반응은 유현과 다르게 그리 싸늘하지 않다는 거였다.

그것은 주경수가 지니고 있는 [카사노바]라는 특성의 힘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가 지금까지 쌓아 온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오히려 전후 사정 모르는 사람이 이 상황을 본다면, 역으로 주경수의 편을 들어주겠지.’

사람이 지닌 이미지라는 것은 의외로 크게 작용한다.

‘주경수가 저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멋대로 착각하고 만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강혜림이 먼저 무례를 저질렀다고 멋대로 확대 해석하는 사람마저 생기는 것이었다.

‘그게 대중이니까.’

사람들은 주경수가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으로 결투를 신청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중급 컬렉터 중에서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가, 최근 급격하게 성장을 보이고 있는 신인 검후에게 결투를 신청했다는 것.

시시비비를 따지기 이전에 이 사건이 갖는 여파가 너무 컸다.

‘이슈로 전후 사정을 전부 다 덮다니. 저 자식. 일부러 노렸군.’

유현은 자신만만한 주경수의 태도를 보고 확신했다.

주경수는 처음부터 이 상황을 노리고 있었다.

‘느끼하고 멍청한 것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머리를 굴릴 줄 안다 이건가?’

그런 유현의 예상대로, 주경수는 지금 흘러가는 상황에 속으로 웃고 있었다.

‘저 놀란 꼬락서니 좀 보라지.’

그는 굳이 말하면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교활하고 잔머리를 쓰는 쪽에 가깝다.

주경수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이 인기를 활용할 줄 알았다.

애초에 3개의 특성 중에서, 전투와 관련되지 않은 특성이 2개인데도 중급 컬렉터로 올라간 것도 바로 그러한 영향 때문이었다.

‘컬렉터가 뭣 하러 싸워서 등급을 올려? 이렇게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 것만으로도 등급이 오르는데 말이야. 멍청한 새끼들.’

무엇보다 사람들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주경수는 자신의 몸에 커다란 힘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사람들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온다는 건, 주경수의 이야기가 퍼진다는 소리다.

혼성계에서는 이야기가 힘을 갖기에, 거대한 명성을 지닌 자는 이야기의 힘을 입어 더욱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포인트로 강해지는 것 말고도, 이런 식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괜히 힘들고 귀찮게 사상세계 같은 데를 오갈 필요가 없잖아? 머리가 좋으면 몸이 고생할 필요가 없지. 겸사겸사하고 싶은 것들도 하고 말이지.’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는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등급이 높아지고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갈수록, 주경수는 그것을 이용해서 발밑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용해 먹었다.

‘특히 여자들. 정말이지 너무 편해 죽겠어. 그냥 미소 한 번 지어 주면서 간드러진 말만 걸면 좋아서 껌뻑 죽는 그 꼴이란.’

주경수는 여성 편력이 매우 문란한 남자였다. 그는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아이돌은 물론이고, 등급이 낮아 자존감이 낮은 저등급 컬렉터를 손댄 전적이 있었다.

전부 화려한 외모와 말발, 그리고 특성의 힘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그 이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그의 사회적 명망도 크게 적용했다.

‘뭐, 이 검후라는 년이 설마 내 매혹이 안 통할 줄은 몰랐지만.’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신력이 강해서, 자신이 아무리 들이대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들.

검후 강혜림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뭐, 대다수 컬렉터가 그러긴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공략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거든.’

주경수는 히죽 웃었다.

이런 1차원적인 방법이 먹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른 방법을 쓰면 그만이다.

바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압박을 가하는 거다.

그가 지금 신청한 이 결투가 바로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였다.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투를 신청하며 그는 일부러 소문을 퍼뜨리게 만들었다. 상대가 아무리 어이가 없다 하더라도, 주위에 보는 눈이 많은 이상 섣불리 거절하는 것은 어렵다.

‘컬렉터처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거든.’

컬렉터에게 인기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유명해져야 돈을 벌고, 유명해져야 강해질 수 있다.

그게 변혁의 시대 이후 변해 버린 지금 사회다.

무엇보다 강혜림은 최근 급상승하는 신인이다. 그런 그녀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투를 받았는데, 거절을 한다? 그 자체만으로 그녀의 명성에 흠집이 생기게 된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린 만큼, 넘어졌을 때 받는 충격은 크다. 컬렉터라면 특히나 이런 부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있다면 거절했을 때, 자신이 받는 불이익을 전부 다 깨닫고 있을 터.

강혜림은 절대로 이 결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뭐, 당연히 내가 이길 테고.’

그는 비록 전투와 관련된 특성이 1개밖에 없지만 썩어도 중급 컬렉터다. 아직 그보다 등급이 낮은 강혜림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긴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결투를 신청한 것이었다. 상대가 최소 자신과 동급이었어도 그는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다.

‘뭐, 결투 자체가 부당하다거나 그런 말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애초에 대중들은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고, 협회 쪽에는 돈 좀 찔러 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주경수는 거대 클랜 중 하나인 헤시오도스 소속이었다. 당연히 클랜의 위광을 등에 업은 그는 어지간한 자잘한 문제는 권력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거대한 팬클럽이라는 팬덤이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는 뭘 해도 껌뻑 죽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있으니 주경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팬덤으로 찍어 누르는 거야 아주 쉽지.’

그는 항상 이런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해 왔다.

그것이 얼마나 비겁한지는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주경수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이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큭큭. 이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 검후라는 년의 기를 좀 꺾어 주고, 그때 가서 타이르며 내게 빠지게 만들면 그만이지. 아아. 벌써부터 군침이 도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유현은 벌써부터 승리의 도취감에 취해 있는 주경수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뻔한 일이지. 컬렉터로 쌓아 온 명성이 있는 녀석일수록,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알기 쉽거든. 왜냐하면,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

상대방이 교활한 것을 알기 때문에 유현은 주경수가 어떤 방법을 택할지, 아주 잘 알았다.

무엇보다 녀석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사상을 지녔으며, 이러한 일을 벌인 일에는 무슨 배경이 있는지도.

‘전부 다 뻔히 보이거든.’

유현은 손에 쥐어진 주경수의 책을 덮었다.

주경수가 혼자서 멋대로 승리의 망상에 빠져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유현은 그의 책을 순식간에 속독해 버린 것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짓을 저질렀나 했더니. 그래도 나름의 배경은 있던 건가?’

이 일은 주경수 혼자 멋대로 벌인 일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뒤에 나름 배후가 있었다.

우선 주경수가 소속된 헤시오도스 클랜에서 최근 떠오르는 검후라는 인물을 경계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바로 주경수와 계약을 맺은 텔러가 유현을 견제하려던 것이었다.

‘대리급이라고 했던가. 저 아래에 있던 후배가 갑자기 고개를 짓쳐들면 놀랄 만도 하겠지. 결국 클랜에서도 멋대로 사상세계를 없애는 검후를 좋지 않게 보고 있고, 텔러도 눈엣가시 같으니 이 기회에 밟아 주겠다는 소리고.’

그 일을 처리하기에 가장 제격이 주경수였을 뿐이다.

물론, 본인도 원해서 이 일을 지원했다. 아름다운 여성이면 눈이 돌아가는 주경수에게 강혜림은 아주 매력적인 먹잇감이었으니까.

개인의 욕망, 클랜의 견제, 텔러의 경계.

이 모든 것이 얽히며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너희 쪽 아가씨는 꽤나 당황한 거 같은데?]

백련의 지적대로 강혜림은 면장갑을 받아드는 순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멋대로 제안을 받아들이자니 자기 멋대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주변에 보는 눈이 많은 것이 걸렸다.

여기서 결투를 거절하면 도망자, 혹은 겁쟁이라는 표식이 새겨질 게 뻔했다.

무엇보다.

‘싫어.’

강혜림은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아.’

만약에 그녀 혼자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결투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멋대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유현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혜림은 대답을 바라는 시선을 유현에게 던졌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을 따를 생각이었다.

‘도망치는 것은 죽도록 싫지만.’

그것이 유현의 결정이라면, 그녀는 그 끔찍한 쓴맛을 감내할 생각이었다.

‘맞아. 확실히 이건 상대방이 유도한 상황이야. 여기에 멋대로 승낙하면 그건 바보나 할 짓이지.’

강혜림은 자신을 납득시키며 유현을 봤다.

그 또한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대답할 거라 생각하고서.

하지만, 유현의 반응은 그 반대였다.

‘……!’

유현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만 움직이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락하세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강혜림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잊은 채, 자기도 모르게 활짝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

“허…….”

“미친.”

그리고 주변에서 그 광경을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강혜림의 미소를 보는 순간 주위에 꽃잎이 휘날리는 착각을 느꼈다.

가만히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기만 해도 이미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그녀였는데, 거기에 진심이 담긴 미소가 더해졌다.

주경수에게 잔뜩 빠져들었던 여성들은 자기도 모르게 강혜림을 멍하니 바라봤고, 남자들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일부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 또 일부는 오히려 강혜림에게서 고개를 돌려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회피했다.

“받아들이겠어요.”

강혜림은 주변 반응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렇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