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70화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
그 이상으로 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강혜림의 앞에 선 이 남자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책을 살폈다.
‘정5품. 중급 컬렉터로 치면 딱 가운데 정도지만, 그래도 중급은 중급이라 이건가.’
책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은은한 은색이었다. 그리고 책의 표지 또한 책의 아우라와 매우 흡사했다. 이것만으로도 녀석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도를 찍었다는 소리다.
보통 사람이 책의 표지와 빛의 괴리감이 큰 걸 생각하면 이 부분은 인정해 줄 만했다.
하지만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은 역시, 녀석의 행동과 특성이었다.
특성: [예술가의 혼] [붉은 셔츠의 혁명가] [카사노바]
녀석은 그래도 중급 컬렉터인데, 특성의 숫자가 상급 컬렉터와 맞먹게 3개나 됐다. 특성이 이 정도나 되면서 중급이라는 것이 놀라웠는데. 특성의 상태를 보고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의 혼은 둘째치고서 카사노바라고? 대체, 어떻게 되먹은 녀석이기에 이따위 특성을 지니고 있는 거야?’
강혜림과 똑같은 개수의 특성이지만, 특성의 내용물은 천지 차이였다.
무엇보다 카사노바의 경우에는 이게 과연 제대로 된 특성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녀석이 강혜림을 향해 던지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벗은 녀석은 그야말로 버터를 전신에 바른 것처럼 느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대놓고 강혜림에게 쏘아붙이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내가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주경수라고 합니다. 세간에는 아티스트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컬렉터죠.”
주경수는 마치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과장하듯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지니는 컬렉터들은 중급이 넘어가면서부터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하지만, 설마 이렇게나 당당하게 이런 행동을 취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남자들이야 뭔가 미묘한 거북함을 느낀다 치더라도 여성들은 그의 행동에 일일이 리액션을 보이듯 소리쳤다.
“꺄악! 아티스트! 여길 봐 주세요!”
“세상에 아티스트가 여길 찾아오다니! 저 사인 좀 해 주세요!”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리기라도 하는지. 일부는 그에게 다가오려고까지 했다. 당연히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받았는데, 자세히 보니 경호원들도 전부 다 여자다.
“훗. 이놈의 인기란.”
주경수는 이런 일에 익숙하기라도 한 듯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곳곳에서 꺄악 거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쟤는 대체, 또 뭐냐?]
‘난들 알겠냐?’
아티스트라는 컬렉터는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관심이 없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나라고 모든 컬렉터를 다 알고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니라는 소리지만, 그래도 중급 컬렉터라는 게 걸렸다.
혹시나 그에 대해서 아는 게 있을까 싶어서 옆에 있는 백서련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서련 씨. 서련 씨.’
“…….”
“서련 씨?”
“네?! 앗, 네!”
뒤늦게 몽롱해 하던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 모습에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서련 씨도 저 사람에게 빠진 건가요?”
“네, 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묘하게 갑자기 시선이 고정된다고 해야 할까. 연예인 같은 인물이 실물로 있어서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아, 아무튼 절대 한눈판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며 내게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대체 뭘 변명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잘됐다.
“저 주경수라는 남자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다만 컬렉터 중에서도 연예계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죠. 듣기로는 어지간한 상급 컬렉터들보다 대중의 인기가 더 많다 하더라고요.”
그녀는 주변에 모인 여성들을 보며 뒷말을 덧붙였다.
“주로 여자들에게 이지만요.”
“그렇군요.”
나는 왜 백서련이 주경수를 보며 순간이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뭔데? 저 녀석에게 뭐가 있어?]
‘특성 때문이야.’
[특성이라니?]
‘저 녀석. 카사노바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카사노바라는 것은 바람둥이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이름이다.
이탈리아의 출신의 자코모 카사노바.
알 사람은 다 아는 희대의 난봉꾼이자 사기꾼, 바람둥이다.
[그게 뭔데?]
다만, 아직 지구의 역사나 정보에 대해 부족한 게 많은 백련은 그 말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낌새였다.
‘그냥, 역사적으로 유명했을 정도로 문란한 남자의 이야기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면 편해.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그런 자신의 행동을 어디에 억압되지 않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는 사람이지.’
카사노바 하면 은근히 미화된 이미지가 많다.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를 즐기고 간 낭만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실태를 세세하게 살펴보면, 이 사람처럼 너저분하고 문란한 인간이 없다.
능력은 없이 입만 산 인간 그 자체인 데다가, 무엇보다 범죄자다.
‘애초에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제대로 된 인간일 리가 없잖아?’
[확실히 그러네.]
주경수는 잘생기기는 했다. 본인도 그것을 알기에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거기에 홀린 대중들은 그를 열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열광에는 어딘가 기이한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것을 녀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능력을 분석하자면 이성을 매료시키는 힘이겠지.
서련 씨가 순간이지만, 녀석에게 정신을 빼앗긴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나마 정신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니까, 저기 있는 팬들처럼 빠져들진 않았다.
“검후라는 아가씨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 그래서 혹시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는데, 이럴 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대는 훨씬 더 아름답구려. 마치, 잔잔한 호수에 피어난 새하얀 연꽃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주경수는 강혜림의 외모에 감탄하며 연신 그녀를 칭찬했다. 저런 낯 뜨거운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보통 철면피가 아니다. 그 이상으로 녀석은 자신의 특성에 휘둘리고 있었다.
‘대체 저 녀석이 왜 갑자기 이런 곳에 찾아왔나 했더니, 설마 혜림 씨를 노리고 있던 거였나.’
[설마, 강혜림이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이 타이밍이나,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을 걸 리가 없지.’
그러고 보니, 뒤늦게 떠오른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종말이 찾아오기 전의 일이었는데, 아주 방탕한 한 컬렉터 하나가 정치인의 딸을 잘못 건드려서 크게 문제가 됐다고 했던가?
해당 정치인의 입김 때문에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아서 순식간에 사라진 소식이었지만, 분명 기억이 났다. 결국, 대단한 컬렉터라 하더라도 이 현대에 사는 입장에서 정치인에게 안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했었으니까.
잠깐만, 설마 그렇다는 건 이 녀석이 그 당사자라는 소리잖아?
그리고 여성과 관련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이 강혜림을 노리고 있다고?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내가 나섰다.
“그만하시죠. 이쪽이 곤란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음? 너는 뭐지?”
“이분 매니저입니다만?”
나는 강혜림을 두둔하며 그녀의 앞에 섰다. 혜림 씨도 꽤나 당황스러웠는지, 내 등에 살짝 붙었다. 그 광경을 본 주경수는 나른한 눈동자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볍게 훑었다.
“미안하지만, 방해하지 말아 주겠어? 나는 지금 운명의 상대를 만났거든. 이 소중한 시간을 남에게 간섭받고 싶지 않아.”
“운명의 상대고 자시고, 멋대로 타인에게 접근해서 들이대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굳이 대화를 주고받고 싶으면, 정식으로 백화 매니지먼트에 찾아오셔서 하시죠.”
나와 주경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이 녀석이 혜림 씨에게 접근하게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우리 혜림 씨가 싸움만 잘하고 다른 건 젬병인 데다, 조금만 느슨해지면 건방질 정도로 헤실헤실 풀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순수한 내 사람이다.
저런 더러운 녀석이 손을 대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하아. 고작 매니저 따위가 지금 내 앞을 막은 거야? 완전 어이가 없네.”
녀석은 자신이 작업을 거는 것을 내가 막아서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마치, 자신의 잘못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양 행동하는 그 모습에 나는 자연스레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나 몰라? 나 주경수야. 아티스트 주경수. 전국적으로 유명한 컬렉터라고.”
“당신이 누구고 얼마나 유명하고는 관계없습니다. 저희 컬렉터에게 멋대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본인도 싫어하지 않습니까.”
“하! 세상에 날 싫어하는 여자는 없어.”
“그거, 참. 뻔뻔하시네요.”
“많은 여성이 나에 대해서 아직 모를 뿐이지.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내가 친절하게 알려 주면 돼.”
그렇게 말하는 주경수의 시선은 내 어깨너머의 강혜림을 향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숨길 수 없는 끈적한 음욕이었다. 강혜림은 그 시선이 싫은지, 더더욱 내 뒤에 숨었다. 평소라면 당당히 나설 그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한 거 같았다.
“훗. 아무래도 부끄럼을 타는 것 같군.”
“……눈이 진짜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게 대체 어디가 부끄러움입니까? 누가 봐도 싫어하는 건데.”
“그거야 그쪽이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미치겠다. 이 녀석, 말이 안 통한다.
[이럴 경우에는 그냥 뚝배기를 날려 버리자!]
‘그렇게 될 경우 이쪽에 문제의 소지가 생겨.’
저쪽이 재수가 없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먼저 선빵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에. 살면서 처음으로 종말 이후의 때가 그리워지다니.’
적어도 법이 완전히 사라진 종말에서는 조금이라도 싸가지 없게 굴거나 재수가 없으면 곧바로 목이 날아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서로 마주쳐서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 싶으면 몸을 사리거나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주경수는 달랐다. 그는 이런 짓을 해도 된통 당할 일이 없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네요. 멋대로 저희 쪽 컬렉터에게 성추행하려고 하다니. 이 일은 그쪽 클랜에 정식적인 이의를 제기할 겁니다.”
“……아까부터 매니저 주제에 쫄랑쫄랑 시끄럽네. 됐으니까, 너는 저리 꺼져. 나는 그쪽 아가씨에게 볼일이 있으니까.”
“아 그러니까,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집요하게 그의 앞을 막아서자 주경수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다.
녀석은 나를 노려보며 눈동자에 살기를 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어쭈. 내가 일반인이니까, 기세로 제압하겠다. 이건가?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하자 녀석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자신이 위압을 가하는 것이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너 뭐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설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먼저 손을 쓸 생각은 아니겠지?”
“…….”
녀석도 바보는 아닌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나를 노려봤기에 나도 지지 않고 노려봤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하고, 둘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씩 험악해지려는 순간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강혜림이 나섰다.
“그만두세요. 여기서 이러는 건 민폐입니다.”
강혜림이 결국 앞에 서자 주경수는 순식간에 표정을 풀고는 곧바로 그녀에게 느끼한 시선을 보내왔다.
“하하. 우리 아름다운 레이디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 들어줘야지. 그보다 혹시 시간이 되면 나와 차 한잔하지 않겠나?”
“미안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요.”
“하하. 거절하지 않아도 괜찮다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혹시 컬렉터로 일하면서 뭔가 불편한 건 없어? 선배로서 내가 조언은 해 줄 수 있는데?”
“없습니다.”
칼같이 대답하는 강혜림의 모습에 나는 뒤에서 그녀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저 놈팡이 같은 녀석의 외모에 속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녀는 보기 좋게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이쯤 됐으면 녀석도 정신을 차리겠지.’라고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나는 주경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너무 무르게 판단했다는 걸 뒤늦게 후회했다.
“후우. 진짜 좋게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주머니에서 새하얀 면장갑을 꺼내 강혜림을 향해 집어던졌다.
“검후.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것은 분명 중세 귀족들이 무례를 저지른 상대방에게 결투를 신청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주경수의 뜬금없는 행동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친놈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