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69화 (6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69화

나와 강혜림, 백서련이 찾아온 곳은 잡지사 본사였다. 컬렉터와 관련된 정보들로 가득 채운 월간지 콜렉팅을 출판하는 곳이었다.

미리 언질을 받은 게 있었는지, 입구에서부터 사원 한 명이 나와서 우리를 안내해 줬다.

서련 씨는 따로 처리할 일이 있어서 로비에서 헤어졌고, 그렇게 나와 혜림 씨 둘이서 인터뷰를 하러 건물의 상층으로 이동했다.

“되게 큰 곳이네요.”

우릴 안내해 주는 직원에게 들리지 않게끔, 강혜림이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컬렉터와 관련된 사업은 꽤나 크거든요. 단순히 매거진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탑3 안에 들 정도로 큰 곳이니까요.”

게다가 잡지만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컬렉터와 관련된 사업용 용품을 팔기도 한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중소기업보다는 더 큰 곳인 건 확실했다.

내 말에 그녀는 기가 눌리는지, 살짝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줬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혜림 씨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아 마땅한 컬렉터입니다.”

“제가요?”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그럴 거니까요.”

“고마워요.”

강혜림이 헤프게 미소 짓다가 이내 직원이 우릴 살피려 하자 곧바로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남성 직원은 그녀의 모습에 혼이라도 빼앗긴 것마냥 시선이 고정되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여기서부터는 담당자와 만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혜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거로 대신 대답했다.

그런 태도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워낙 그녀의 모습과 어울리고 자연스러워서 그런지 남직원은 불만조차 갖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준 것이 고마운지 헤벌쭉 웃기까지 했다.

으음. 과연, 그녀의 본성을 알아도 저런 반응이 나올까?

“어머. 어서 오세요.”

인터뷰의 담당자는 근사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젊었고, 짧은 머리카락의 고양이상 미인이었다. 무테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해 주는 눈웃음이 매력적이었다.

“우선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아뇨. 별거 아닙니다. 어차피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닙니까?”

혜림 씨 대신 내가 나서며 대신 답하자, 그녀의 시선이 이채를 띄었다.

“그쪽 신사분은?”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강혜림 컬렉터를 보좌해 주고 있죠.”

“어머. 우리 서련이 말고 매니지 직원분이 하나 더 계셨구나.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신가령이라고 해요. 보잘것없지만, 콜렉팅 매거진을 도맡는 부서의 팀장 일을 하고 있죠.”

서련이라고? 서련 씨가 말했던 지인이라는 사람이 이 사람이었나.

“그보다 팀장이요? 그런 분이 왜 인터뷰까지…….”

“후훗. 원래 잡지에 실을 컬렉터분들은 제가 직접 보고 판단하거든요. 그냥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보시면 돼요. 인터뷰를 하는 컬렉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잖아요?”

“그렇군요.”

흐음. 일단, 마인드는 합격이다. 혹시라도 아직 강혜림이 명성을 쌓기 전이라서 그녀를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 이상으로 강혜림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오히려 흥미를 품는 걸 보면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서 안목도 있을 테고.

“자. 두 분 다 여기 앉으세요. 혹시, 음료 드실래요? 커피? 아니면 녹차?”

“괜찮습니다.”

“혹시, 긴장하시거나 그런 거 아니죠?”

“아닙니다.”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강혜림의 태도에도 신가령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 온 컬렉터들의 수는 많았고, 그중에서는 강혜림보다 더한 성격의 인물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리라.

하기야, 상급 컬렉터들은 하나 같이 콘셉트가 과하게 정해져 있으니. 그들에 비하면 강혜림은 진짜 선녀겠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인터뷰 시작하면 저는 잠시 나가야 합니까?”

“아니요. 여기 계셔도 돼요. 혹시라도 제가 무례한 질문을 하지 않는지, 감시해 주시면 고맙고요.”

그걸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다니.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을 시작해 볼까요?”

업무에 들어가는 순간, 신가령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원래부터 고양이상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야말로 먹잇감을 노리는 살쾡이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사상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온 강혜림은 거기에 위축되지 않고 검후로서 모습을 잘 유지했다.

“흠흠. 최근 다른 컬렉터들과 달리 사상세계만 여러 개를 없앴다고 하셨죠.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전례가 없는 일이었는데,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는데,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컬렉터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혜림 씨의 주 무기는 무엇이고, 혹시 특성을 밝히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주 무기는 검입니다. 특성은 검과 관련된 특성이라고만 알아 주시면 됩니다. 그 이상은 밝힐 수 없어서.”

“아. 이해해요. 보통 특성은 텔러분들 밑천이니까요. 최근 검후라고 불리시는 거 같은데, 여기에 대한 소감은? 그리고 향후 계획은 있으신가요?”

“네. 그 부분은…….”

인터뷰는 막힘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사전에 강혜림에게 언질을 준 덕분인지, 그녀는 대답에 있어서 필요한 것만 말하고 중요한 것은 잘 감췄다.

혹시라도 중간에 실수가 하나씩 나오는 것들은 옆에 있는 내가 적당히 보조하면서 그 부분을 메워 줬다.

그렇게 인터뷰는 별다른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끝맺게 됐다.

“호호. 이거, 참. 두 분이 워낙 말씀을 잘해 주셔서 딱히 문제 될 건 없네요.”

“다른 컬렉터들은 그러지 않았나 보죠?”

“어휴. 말도 말아요.”

내 질문에 신가령은 안 좋은 일이 떠오르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꼴에 컬렉터라고, 잔뜩 분위기 잡는 사람은 양반이에요. 인터뷰 좀 하겠다고 하면 자기가 뭐라고 된 것마냥 젠체하거나 아니면 인터뷰에서 대놓고 저한테 추파를 던지거나 한다니까요? 꼴사납게 정말.”

“이런. 힘드셨겠어요.”

“뭐, 남자들이야 그렇지만. 여자도 만만치 않아요. 자기가 고작 이런 곳에서 인터뷰를 해야 하냐며 대놓고 면전에서 싸가지 없이 구는 사람도 있거든요. 물론 착하고 성실한 컬렉터분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좀 적죠.”

“하하. 사람을 만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그 치들에 비하면 혜림 씨는 정말 얌전해서 오히려 좋네요. 대답도 잘해 주고. 물론 정말 궁금한 것들은 숨기고 있지만요.”

“그건 기업 비밀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까, 더 아쉬운 거랍니다.”

신가령은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레 웃으며 내게 은근한 시선을 던졌다.

“그보다 강유현 씨는 검후를 보좌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하신 거 같은데요?”

“그렇게 보이셨나요?”

“네. 무슨 보모인 줄 알았어요. 게다가 말씀도 되게 잘하시고.”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가 풀어지는 순간, 신가령이 본론을 꺼냈다.

“제가 얼마 전에 소식을 하나 들었거든요.”

“어떤 소식이요?”

“……?”

분위기를 잡는 그녀의 모습에 나와 강혜림이 의문을 품는 순간이었다.

“텔러 하나가 인간들과 섞여서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

“재미난 이야기죠? 보통 텔러들은 안 그러잖아요. 그 가호인가 뭔가의 힘을 받아서, 인간들은 건드릴 수도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들. 그게 텔러인데 가호를 포기하다니. 그리고 컬렉터 하나와 함께 사상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과연. 강혜림의 인터뷰에 나까지 따로 남게 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뭔가요?”

“혹시 그런 텔러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자그마한 바람일 뿐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집요하게 나를 훑고 있었다. 이미, 그 텔러가 나인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내가 말해 줘도 안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벌써부터 나인 걸 확신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맞습니다. 그 도시 전설처럼 퍼지는 소문의 텔러가 저죠.”

“어머, 역시!”

“이미, 다 알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그래서 저를 여기에 계속 남겨 놓은 거고요.”

“후훗. 미안해요. 이쪽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주워듣는 게 많거든요. 그래서 궁금했을 뿐이에요. 소문의 텔러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아, 너무 상심하지는 마세요. 애초에 원래 목적은 검후의 인터뷰가 맞으니까요.”

“텔러인 저는 겸사겸사입니까?”

“원래 디저트가 가장 달콤하다 하잖아요? 뭐, 겸사겸사 묻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모두에게 알리기 위한 저널리즘보다도 제 개인적인 호기심이 우선이었거든요.”

“솔직하시네요.”

“그만큼 진심이랍니다.”

끼를 부리듯 윙크를 하는 그녀에게 나는 못 이기겠다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서 궁금한 게 뭡니까?”

“아, 이거 잡지에 실어도 되나요?”

“당장은 좀 곤란합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지금은 별로 드러난다고 해서 좋을 게 없거든요.”

“……아, 대충 뭔지 알겠네요.”

여기서 나에 대해서 밝힌다면 역으로 강혜림의 존재감이 잡아먹히고 만다. 아무리 나한테는 좋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나와 계약을 맺은 강혜림이 나 때문에 묻히면 그건 본말전도다.

최우선은 강혜림의 명성이고, 나는 그다음에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게 이상적인 구도다.

“설마,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무엇보다 컬렉터를 매우 아끼시는 것 같던데.”

“그렇게 보이셨나요?”

“네. 대화를 나누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거든요. 제가 본 다른 텔러들은 건방지고, 컬렉터들을 무슨 도구처럼만 대했었는데. 유현 씨는 완전 다르네요. 솔직히 본인이 맞다고 대답을 안 했으면 텔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뭐, 세상에 온갖 인간군상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텔러도 마찬가지예요. 저 같은 텔러도 결국, 하나 정도는 있다는 거죠.”

“쿡쿡. 그걸 본인 입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쨌든 메인 인터뷰는 강혜림의 것인 건 변함이 없다. 나는 굳이 한다면 한 2달 뒤에는 하는 게 적당하겠지.

“그러면, 따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오프 더 레코드로.”

“뭔가요? 딱히 문제가 아니라면 대답해 줄 수는 있어요.”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는 이유. 뭔가 있나요?”

“흐음.”

설마, 여기서 저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네.

“이유야 뭐 있겠습니까. 그게 가장 효과적이니 그렇죠.”

“인기를 얻는데?”

“컬렉터에게 인기만큼 중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저지를 일은 아닌 거 같아서요.”

그건 신가령의 말이 맞다. 사상세계를 클리어 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컬렉터들을 적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

단순히 인기를 얻고, 포인트를 얻자고 하기에는 돌아오는 역풍이 강한 게 맞다.

분명, 그녀는 남들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장은 안 됩니다. 굳이 한다면 나중에 하죠.”

“왜죠? 지금은 안 된다는 건가요?”

“알면 좀 그렇거든요.”

“남들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요?”

“스스로가 그걸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내가 진지하게 대답하자 신가령이 입술을 다물었다. 옆에서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강혜림도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나를 돌아봤다.

“지금은 제가 뭘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가령 씨도 저희가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아니까 말씀해 드리는 겁니다. 분명히 개인적인 목적은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큰 걸 보고 있습니다.”

“…….”

“초면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좀 웃기네요. 아무튼, 대답은 충분히 됐으리라 믿습니다.”

결국, 신가령이 한숨을 내쉬며 항복을 선언했다.

“이거, 참. 좋은 소재를 얻으려다가 마음의 짐만 잔뜩 얻은 느낌이네요.”

“그래도 오늘 만남은 꽤나 즐거웠습니다.”

“저도 그래요. 뭐, 그건 별개로 유현 씨와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고 싶네요.”

“네?”

너무 당당한 그 말에 나는 당황하고 강혜림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가령을 찌릿 쏘아봤다.

“후훗. 농담이에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정작 본인은 부드럽게 상황을 흘려 넘겼다. 으음.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다.

뭔가 백서련이 다른 방향으로 잘 성장하면 딱 저렇게 될 거라는 느낌?

어찌 됐든 인터뷰는 문제없이 끝나게 됐다. 신가령의 배웅을 받으며 1층 로비로 내려오자 우릴 기다리던 백서련이 합류했다.

“인터뷰는 어땠나요?”

“무난하게 끝난 거 같았어요.”

“저 언니 그래도 장난기가 심한데, 무슨 심한 짓을 당하지는 않았죠?”

“딱히 그러진 않았습니다. 그보다 어째 주변이 뭔가 바빠 보이네요?”

1층 로비에는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방금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를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은데.

“아. 그게, 갑자기 유명한 컬렉터가 방문하려고 하나 봐요.”

“유명한 컬렉터요?”

“네. 주경수라는 정5품의 중급 컬렉터에요. 등급은 딱 중간이지만, 꽤나 외부 활동을 열심히 해서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케이스래요.”

“그만한 사람이 갑자기 왜?”

“그건 저도 모르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로비의 입구가 열리더니, 딱 봐도 화려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의 주위에는 보디가드가 있었는데, 솔직히 컬렉터가 무슨 보디가드가 필요한가 싶었다.

‘딱 봐도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로군.’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저거 왜 이쪽으로 와?’

선글라스를 낀 녀석은 정확히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이쪽의 앞에 서더니, 선글라스를 벗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내가 아닌 강혜림에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레이디.”

이 자식은 뭐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