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68화 (6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68화

“누구예요? 방금 그 사람.”

“맞아요. 되게 예쁘던데.”

“사람 아닙니다. 저랑 같은 텔러에요.”

나는 그녀들에게 조금 전 통화를 한 텔러는 내 동기라고 전해 줬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기만 했는데, 등골이 오싹한 게 왠지 꼭 그렇게 말해야만 할 거 같았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됐다. 나는 차분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동기임을 어필했다.

“진짜예요? 진짜 동기?”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요? 제가 텔러로 활동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는 텔러가 많겠습니까?”

억울하다는 감정을 담아서 말하자 두 사람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둘은 아리샤에게 관심을 껐고, 겨우 오해를 푼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소식 한번 빠르네. 바로 나한테 연락을 취했을 줄이야.’

예전에도 말했지만, 텔러들의 사이에서 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나의 동기인 뿔쟁이. 그러니까 지금은 아리샤라 불리는 그녀도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시화를 펼치고 있는데, 내가 대리로 진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정도니.

천체주식회사 내부에서는 내 이름이 진작 나돌고 있을 것이다.

[혼성계에 당신의 이름이 퍼지고 있습니다.]

제네시스 시스템이 당장 내게 이렇게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이름이 퍼진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명성이 쌓이고, 나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는 소리니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나라는 존재에게 힘이 되어 돌아온다.

이게 혼성계의 특징이다.

‘뭐, 굳이 나쁜 점을 꼽으라면 엮여서는 안 될 녀석들까지 내게 관심을 갖게 되는 정도려나?’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제네시스 넷의 텔러 게시판을 확인했다. 대리(진)이라서 이제는 대리급 게시판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됐기에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게시판 안쪽에는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 강유현이라는 텔러, 아직도 멀쩡함?]

[와. 돌았네. 어떻게 텔러가 그렇게 싸우냐. 나는 못 하겠던데.]

[그런데, 확실히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르니까 최단기간으로 승진하고 그러겠네.]

[난 3년 걸렸는데, 누군 1달이라니. 이러다 우리보다 먼저 과장 다는 거 아님?]

[꼬우면 너도 가호 포기 하던가ㅋㅋ]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내가 대단하다거나, 내가 미쳤다거나.

지금 뜨거운 이슈는 전부 다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게시판의 글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야. 봤냐? 요즘 정사원 중 몇 명 미친 짓 하더라.]

미친 짓을 하는 정사원이 나를 뜻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정반대였다.

[최근에 강유현 텔러가 가호를 포기하고, 직접 싸워서 꽤나 이슈인 건 알고 있지? 아니,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그 짓을 해서 최단기간 대리 타이틀 달 거라는 소문 쫙 퍼지니까. 지금 사원급 사이로 이상한 열풍 불고 있더라. 다들 강유현 텔러 따라 하고 있음.]

게시글의 아래로는 그게 진짜냐, 나도 봤다는 식의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뭐, 결국 이렇게 되는 거네.”

[뭐야. 지금 다들 너 따라 하고 있는 거야?]

옆에서 게시판을 훑어보던 백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헐. 진짜 양심 없네. 어떻게 그걸 따라 해?]

“따라 해도 상관은 없지. 애초에 가호를 포기하는 게 내가 뭐 특허를 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내 행동에 성령들이 신선함을 느꼈기에 내 서재에 그만큼 관심이 모일 수 있던 게 아닌가.

실패했으면 모를까 대성공을 거뒀으니, 눈치를 보며 지켜보던 다른 텔러들이 눈 돌아갈 만했다.

[뭐야. 별로 화 안 났나 보네?]

“애초에 화를 낼 필요가 없으니까.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해. 어차피 쟤들은 나 따라 한다고 해서 나처럼 성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최초라는 것은 꽤나 큰 메리트다. 이것은 일종의 선점 효과로 작용해서 가호를 포기하고 싸우는 텔러 하면, 이제 다들 나를 떠올리게 될 테니까.

내 위광에 홀딱 빠져서 나를 따라 하려는 텔러들은 아무리 잘하고 열심히 해도 결국, 내 그림자를 쫓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다.

아니, 그림자 정도만 쫓아도 선방하는 셈이다.

“무턱대고, 이게 제일 성공하기 쉽다고 생각해서 도전하면 큰코다치지.”

[하긴. 다른 텔러들이 다 너처럼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네가 보통 특별해?]

“게다가 지금 나를 따라 하겠다고 저지른 놈들은 생각이 훨씬 더 없어. 보통 텔러들은 가호를 포기했을 때 돌아오는 불이익을 계산하고 고민하며 엄청 신경 쓴단 말이야. 그런데 바로 날 따라 했다? 그냥 생각 없이 나를 따라 하면 성공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지.”

괜히 지금 나를 따라 하는 녀석들이 다 정사원인 게 아니다.

대리급 정도만 돼도 내가 벌인 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고 있고, 따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취해 온 혜택을 거부하고 목숨마저 포기하는 건 미친놈이나 저지를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 미친 짓을 저질렀잖아.]

“나라고 생각 없이 즉석에서 저지른 건 아니지.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포인트를 미리 모아 뒀어. 만약에 첫 전투에서 포인트가 부족했으면 나도 바로 죽었을걸? 아마, 두고 보면 알 거야. 저쪽도 곧 정신을 차리겠지.”

나의 예상은 고스란히 들어맞았다.

며칠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단 하루만 지났을 뿐인데, 텔러 게시판은 벌써부터 시끄러워졌다.

[어? 유현아. 이건…….]

“그래. 결국, 예견했던 대로 사고가 터진 거야.”

나를 따라 가호를 포기하고 사상세계에서 검을 쥐고 싸우던 텔러 하나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당시 있었던 일을 지켜보던 성령이 해당 장면을 저장해서 제네시스 네트워크에 풀어놓은 것이 화제가 되었다.

-흐아악! 사, 살려 줘!

-뭐, 뭐 하는 거야! 도망치지 마!

-닥쳐! 컬렉터인 너는 뭘 하는데! 어서 싸우라고!

-이런 미친! 싸울 줄도 모르는 데, 왜 이 짓을……! 크억!

-아, 안 돼!

화면은 흔들리고 소리도 시끄러웠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와 혜림 씨를 따라 하겠다고, 단둘이서 사상세계에 들어갔다가 컬렉터도 텔러도 둘 다 사망해 버린 것이었다.

죽은 컬렉터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지고, 텔러는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텍스트로 변해 사라졌다.

멋들어지게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겁에 질려 도망치다 처절하게 죽었다.

[와……. 이거 심각한데.]

“내가 말 했잖아. 따라 할 수 있으면 따라 해 보라고. 결국, 이게 정상이라니까?”

텔러와 컬렉터가 죽었지만, 내게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저들의 꼴을 보니,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도전한 게 여실히 보였다.

게다가 컬렉터의 차이도 있었다. 혜림 씨는 무려, 주인공급 특성을 3개나 지닌 불세출의 천재다. 그런데 저 컬렉터는 아무리 좋게 쳐줘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저들과 나는 마음가짐은커녕 시작 지점부터 달랐다는 거다.

“애초에 내가 따라 하지 말라 해도, 할 놈들은 해. 그럴 바에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아.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면 알 일이거든. 그 결과가 결국, 이 꼴이지.”

그리고 해당 영상은 나를 보며 헛된 희망을 품던 사원급 텔러들에게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다.

[역시, 저건 함부로 따라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말 했잖아. 가호 포기하면 그냥 뒤진다니까?]

[그러면 강유현 텔러는 왜 멀쩡한데?]

[그쪽은 사전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겠지. 싸우는 거 보니까 그냥 급이 다르더만.]

[그냥, 그쪽이 재능이 있는 천재라 그런 거임. 우리 같은 킹반텔러는 따라 하면 다리 찢어진다.]

[아 진짜 개망했다. 나 가호 포기했다고.]

[엌ㅋㅋㅋㅋㅋㅋ 쌤통이죠? 날로 먹으려다 망했죠?]

[목숨…… 터졌다고…….]

[아, 닥쳐. 안 그래도 빡치는데, 아오.]

[가호 포기한 놈들은 알아서 잘해 봐라ㅋㅋㅋㅋㅋ 그거 신청해도 복구 안 될걸? 시스템에 정식으로 복구 신청 넣으려면 최소 부장급은 되야 하는데 그럴 빽이 있음?]

[되 말고 돼. 좀 맞춤법 좀 맞춰라.]

[왼않되?]

[극혐;;]

[아니, 그러니까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멍청이들아. 가호 포기하면 망한다니까?]

[그러면 강유현 텔러는 왜 그런데?]

[걔는 미친놈이니까.]

게시글의 댓글은 상당히 부산스러웠다. 이는 사원 게시판 말고 대리 게시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사원 게시판과 다르게 대리 쪽은 조금 더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

[뭐,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가호는 함부로 포기하는 게 아니야.]

[단순히 가호 포기했다고 성공했으면 누구나 다 했지. 지금까지 우릴 지켜 준 가호를 함부로 포기하는 게 이상했어.]

[어차피 지켜보면 슬슬 각이 나온다니까. 결국, 할 수 있는 놈만 한다는 거지.]

[아무튼, 이번 일로 조금은 헛바람 들이킨 놈들도 정신 차리겠네.]

‘과연. 대리부터는 그래도 나름의 경험과 연륜이 있다는 소리인가?’

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정사원과 다르게, 대리급 텔러들은 내 업적을 인정해 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러지 않은 소수도 더러 있었다. 내가 성공한 건 순전히 새로운 시도를 했을 뿐이고, 운이 따라 줬다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던 녀석들도 이번에 터진 사고를 보더니, 결과적으로 입을 쏙 다물고 나를 인정하는 추세였다.

‘아마, 과장급 정도도 이번 일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겠지.’

의도치 않게 내가 꽤나 큰 문제를 몰고 왔지만, 솔직히 여기에 내 잘못은 없다.

내가 한 게 좋아 보여서 따라 한 놈들이 문제지.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심하고 또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야.”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나를 다시 보는 성령들이 늘어났을 것이다.

이번 일은 무엇보다 성령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을 테니까. 결국, 아무리 맛집을 따라 한다고 해도 원조의 맛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내게 집중되는 것이었다.

“그쪽 게시판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영 아쉽네.”

[친한 몇몇 성령한테 물어보지 그래?]

“이런 거로 물어보기에는 좀 그래서 그래.”

애초에 친한 것도 아닌 데다가 고작 게시판 내용 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기에는 상대들의 급이 너무 높다.

게다가 직위도 직위인지라, 이런 사소한 부탁 하나로 이쪽의 코가 꿰이는 것은 사양이다.

분명, 사소한 부탁을 하기만 해도 옳다구나 하고 나를 물려고 들걸?

[……너도 참 고생이네.]

“알아 주면 고맙고. 어쨌든 이번 사건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느낌이네.”

나를 따라 했다가 실패한 컬렉터가 나타나면서 역으로 나의 위상이 더욱 올라가 버렸다.

가호를 포기하고 뭐라도 할까 고민하던 녀석들은 바로 꼬리를 말고 몸을 사렸고, 이미 가호를 포기한 놈들은 뭐…… 애도라도 해 줘야겠지.

그래도 몸만 사리면서 활동하면 나쁘진 않을 거다. 그거 나름대로 수요가 또 있어서 이전보다는 시청령도 늘어날 테고.

개고생하는 텔러의 이야기. 의외로 재미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 일은 여기까지. 슬슬 이쪽도 나갈 채비를 갖춰야 하니까.”

[안 그래도, 저쪽도 막 도착했네.]

현재 나는 홀로 백화 매니지먼트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어딜 갔냐고 하면 바로 인터뷰를 위해 단장을 하러 갔다.

서련 씨가 이전부터 잡지사의 관계자와 인터뷰에 관한 시간을 조율했고, 날짜가 정해진 것이 얼마 전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인터뷰 당일이었다.

당연히 인터뷰를 해야 하니 우선 이쪽이 제대로 꾸밀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서련 씨가 혜림 씨를 데리고 메이크업 숍을 찾아간 것이었다.

“우리 왔어요.”

“아. 왔습니까?”

당당하게 들어오는 서련 씨와 다르게 혜림 씨는 어딘가 매우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 참. 언니. 고개 좀 드세요. 모처럼 한 화장인데, 안 보여 주면 아깝잖아요.”

“뭐, 뭔가 부끄러운데.”

혜림 씨야 이런 걸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보니, 돈을 내면서 자신을 꾸미는 것에 묘하게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이상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화려해진 모습이 적응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백서련이 그런 강혜림의 양어깨를 꽉 쥐며 말했다.

“언니.”

“으, 응?”

“언니가 어떤 기분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말이죠. 저는 오늘 언니를 꾸미기 위해 제 피 같은 돈 수십만 원을 날렸다고요? 그 돈이 얼마냐. 대중교통을 100번을 넘게 이용할 수 있고, 컵라면을 박스째로 저기 한쪽 벽에 쌓을 수 있을 정도인데.”

그렇게 말하는 서련 씨의 눈동자는 마치, 빨려들 것처럼 공허해 보였다.

“그러니 뽕을 뽑아야 하는데, 언니가 벌써부터 그러면 저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거죠? 네? 언니. 대답해 주세요.”

“아, 알았어! 제대로 할게! 제대로 한다니까!”

“아. 그러면 됐어요.”

서련 씨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방금 그 모습, 자신의 피 같은 돈이 나간 그녀의 모습은 분명…… 종말을 겪어 온 나조차도 일순 몸을 떨었을 정도였다.

앞으로 절대 서련 씨를 화나게 하지 말아야겠다.

“어, 어때요?”

내 앞에 다가온 혜림 씨가 쑥스러워하며 물었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평소에 착용하던 의복 대신, 능력이 없지만 조금 더 화려해 보이는 백색의 옷은 그녀를 마치 날개옷을 입은 선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도도하게 느껴지는 차분한 기조의 화장과 단정하게 정리해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까지.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지금껏 꾸몄던 그녀의 모습보다 수십 배는 더 예뻤다.

“좋네요. 아주 잘 어울려요.”

“저, 정말요?”

“네. 진짜로요. 이전에도 예쁜 건 알았는데, 오늘은 훨씬 더 하네요.”

“헤, 헤헤.”

내 칭찬에 강혜림이 자신감을 회복했는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서련 씨는 나를 향해 ‘우와. 완전 선수네.’라고 어이없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자. 준비도 끝났으니 한번 가 봅시다.”

검후를 더욱 유명인으로 만들기 위한 그 과정의 첫 번째가 바로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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