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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66화 (6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66화

도망치듯 떠난 전광석 일행을 쫓아낸 우리는 다시금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방금 그 인간. 전 직장 상사라고 했었죠?”

“네. 맞아요. 사이는 당연히 좋지 않았죠. 저를 엄청 갈궜거든요.”

“서련 씨가 일을 못할 스타일은 아닌데, 왜 저랬대요?”

“일을 너무 잘해서 그랬죠 뭐. 그것도 있는데, 회식에서 저한테 술 따르게 시키고 뭐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그 이후로 은근히 저렇게 괴롭혀 왔어요. 퇴사한 이후로는 얼굴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하필 오늘 여기서 마주쳤네요.”

“와. 진짜 쓰레기다. 좀 더 조지고 나서 보낼 걸 그랬네요.”

“푸흡! 큭큭. 조진다뇨. 아, 웃겨…….”

“전 진심으로 한 소리인데.”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고마워요. 덕분에 속이 진짜 시원해졌어요. 예전부터 한 소리 하고 싶은 거 꾹 참고 있었는데, 유현 씨가 저 대신 해 줬으니 만족해요.”

“나중에 필요하면 또 말하세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나는 백서련이 뭘 물어보는지 알았다.

대놓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광석을 두들겨 팬 것이다. 내가 텔러라서 법적으로 뭘 어떻게 못 한다 하더라도, 저쪽이 내게 앙금을 품는 건 확실했다.

“어차피, 그대로 놔뒀어도 안 됐어요. 저런 인간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거든요.”

이쪽이 말로 좋게 타일렀다 하더라도 과연, 전광석이 알겠다며 물러났을까? 명백하게 이쪽을 얕잡아 보고 비웃던 놈이었다. 그런 녀석은 이쪽에 신사처럼 대하면 대할수록 더욱 기세가 살아서 멋대로 떠드는 부류였다.

“말로 통하면 저야 좋죠. 하지만 말을 해도 못 알아 처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로 하면 알아서 이쪽이 양보해 준다 생각하고 더욱 기세가 오르는 인간들이 있어요.”

“아. 알 거 같아요.”

“그러니 무력으로 들어가야죠. 아, 혹시 이런 거에 거부감 느끼시고 뭐 그러시나요?”

“아뇨. 저도 바보는 아니에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거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하긴. 그녀는 무엇보다 부당한 제재를 당해서 집안이 빚더미에 앉게 됐다.

세상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의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녀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 그렇다고 제가 아무 때나 막 이렇게 나서진 않아요. 필요하니까 그런 거죠.”

“알아요. 유현 씨가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저도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요?”

“저는 텔러인데요?”

“아이, 참. 말이 그렇다는 거죠!”

“큭큭.”

서로 농담을 주고받다 보니, 경직된 분위기도 어느 정도 풀어졌다.

나는 슬슬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그래서, 저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전 직장에서도 썩 좋은 일이 있지는 않았군요.”

“뭐, 그랬죠…….”

이어지는 서련 씨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가 한울 클랜에서 나오게 된 것도 빚더미에 앉게 된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그전까지 맡은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했던 그녀에게 해고에 가까운 통보가 내려온 것도 그때였다.

“분명…… 뒤에서 누군가가 저에게 입김을 넣은 거겠죠.”

“쓰레기 같은 놈들이네요.”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하고 그랬었죠. 그런데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당장에 집안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앉아서 좌절할 여유도 없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매니지를 차리신 거고요.”

“네. 그래도 막막했죠. 제가 제대로 된 컬렉터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결국, 이쪽도 레드 오션이라 경쟁이 엄청 강했거든요. 그래서 유현 씨에게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혜림 언니도요. 혜림 언니처럼 정말 재능이 넘치는 컬렉터는 진짜 본 적이 없거든요.”

서련 씨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웃음 저 안쪽에는 여전히 그녀를 압박하는 무거운 짐이 가득했다.

그걸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에 나 또한 자연스레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왜 이런 저를 골라 줬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요.”

“서련 씨.”

나는 탁자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서련 씨를 고른 건 단순한 변덕도, 그저 생각 없이 운으로 고른 게 아니라. 서련 씨가 가장 이 일에 제격이고 잘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저를 이렇게 높게 쳐주시는 건가요?”

“실제로 그러니까요.”

나는 여전히 많이 남은 커피를 빨대로 한 모금 빨았다. 얼음이 녹아서 맛이 밍밍해졌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었다.

“아십니까? 저는 텔러입니다. 그리고 텔러는 컬렉터와 계약을 맺고, 성령님들께 이야기를 보여 주는 존재죠. 그런 텔러에게 필요한 게 뭐일 거 같습니까? 사람을 보는 눈입니다. 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재능이 넘치는지, 얼마나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우리 텔러들은 그걸 보는 겁니다. 그런 제 눈에는 서련 씨는 정말로 훌륭한 매니저로 보입니다. 이건 절대 빈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이미 다른 대형 클랜에서도 밉보이고 있는걸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부산물을 처분하는 업체에 대해서 최근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그거 때문이에요. 저는 이미 찍혀 버렸거든요. 그래서 다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저를 쉬쉬하는 거고요.”

“알고 있습니다.”

모처럼 큰마음을 먹고 고백한 그녀였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서련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보더니,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유현 씨는 뭐든지 알고 계시군요.”

“별거 아닌 일입니다. 서련 씨처럼 유능한 사람이 이 정도의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필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조금 전 전광석이라는 인간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백서련은 이쪽 업계에서 견제를 받고 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오른 거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다. 굳이 책임의 소재를 묻자면 그녀의 오빠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오빠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집안이 빚더미에 앉고 백서련은 기존의 직장을 잃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오빠의 그림자는 백서련에게 드리워 그녀를 계속 가리고 있었다.

“오빠를 원망하십니까?”

“처음에는.”

백서련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많이 미워했었죠.”

“그랬군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왜냐면 오빠는 정말로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니까요. 오빠는 그저 자기 일에 열중했을 뿐인데, 그게 높은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른 거겠죠.”

“알고 계셨습니까?”

이건 의외였다. 혹시나 이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어떻게 말해야 그녀의 상처가 덜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는 꿈에만 젖어 사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결국, 알건 다 알아요. 하지만 알면서도 그것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틀린 걸 틀렸다고 따질 수도 없었죠.”

“……그렇군요.”

이 끔찍한 진실을 알면서도 백서련은 그것을 따지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힘없는 개인이고, 그녀의 상대는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은 다수였으니까.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비난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입을 막고서 비명을 삼켜 왔다.

이 부당한 현실이 언젠가는 맑게 갤 거라고 희망을 품으며, 참고 또 참아 온 것이다.

어리석게도.

“서련 씨. 그거 아십니까?”

“뭐가요.”

“서련 씨의 상황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고, 또 이 일 자체가 불합리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죠. 서련 씨의 행동은 정말로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건…… 그렇죠. 저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계속 참아야죠.”

“아뇨. 제가 바보 같다고 한 것은 서련 씨의 그 태도입니다.”

“네?”

백서련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빛을 보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이 부당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그런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하, 하지만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네 맞습니다. 서련 씨 혼자서는 뭘 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가 있는 겁니다. 서련 씨. 서련 씨는 지금 너무 순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그랬다간 잡아먹히고 맙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요? 세상이 손가락질한다고요? 그럴 경우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검지를 펼쳐 보였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한 방 먹여 주는 거죠.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고개를 들고 따박따박 대들면서 보란 듯이 깽판을 치는 겁니다.”

“네?”

“너무 허황된 말처럼 들리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건 힘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맞습니다. 힘없는 사람은 못 하죠. 그리고 서련 씨 혼자서는 힘들 겁니다.”

“그러니…….”

“그래서 제가 힘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

두려움에 질려 고개를 숙이는 짓은 사양이다.

누군가 내게 잘못됐다고 말하며 나를 찍어 누르려고 한다면, 나는 보란 듯이 녀석을 역으로 찍어 줄 거다.

그게 내 모토다.

“당장은 힘들다는 건 압니다. 그래도 하나씩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실 테죠.”

“……뭘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선은 서련 씨를 억누르는 그 그림자부터 치우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잡아 이끌었다.

“어, 어딜 가시려고요.”

“우리가 처음에 가려고 했던 곳이요.”

카페를 나온 우리는 부산물 매입장으로 이동했다. 곳곳에 보이는 간판과 부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나는 그중에서 적당해 업체를 하나 잡아 그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 뭐야.”

매장의 주인은 서련 씨의 얼굴을 알아보고 자연스레 인상을 구겼다.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나도 안다. 이곳은 서련 씨가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아 가면서도, 필사적으로 계약을 맺기 위해 찾아왔던 곳이니까.

“유, 유현 씨.”

“걱정 마시죠. 여기서부터는 제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백서련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다. 그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몰고 왔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의 노력만큼은 절대 탓할 생각이 없었다.

백서련의 노력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일까?

분명,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분명 나와 혜림 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욕심 때문이 아닌, 이제는 한 가족이 된 우리를 위해 노력했다.

‘정말, 바보 같아.’

우리가 알아 주지 않아도 된다며, 스스로 상처를 안고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자기희생이란 말인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제일 다급했으면서.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는 거지.’

결국, 내가 백서련을 매니저로 선택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단순히 능력만이 아닌,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내가 아주 예전부터 봐 왔던 백서련이라는 인간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빚이 있었지.’

분명, 지금의 그녀는 전생의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다. 나에 대한 기억도 없고, 종말 이후의 경험도 없다.

이 빚이라는 것도 결국 나 스스로 만든 마음의 짐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회귀한 지금의 나는 굳이 그녀에게 빚을 갚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와 관계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라도 아니, 그런 그녀이기에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그녀가 힘겨운 싸움은 한다면 손을 거들어 준다. 설사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우린 이제 한배를 탄 동료니까.

“자자. 너무 그러지 마시고. 조건이나 한번 들어는 보시자고요.”

나는 이쪽을 쫓아내려는 주인장의 앞에 상태 창을 띄우며 말했다.

나는 그녀를 돕는다.

우직하게 부딪쳐 보는 백서련의 방법과는 다르게 음흉하면서도 합리적인 나만의 방법으로.

* * *

“어이쿠. 거래 감사합니다.”

나의 말에 완전히 휘말린 매입장 사장은 자신이 뒤늦게 누구와 계약서에 사인을 맺었는지 알고서 낙담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계약서는 작성된 뒤다.

비슷한 방법으로 부산물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곳만 무려, 세 군데.

이로써 백서련을 괴롭히는 문제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발등에 떨어진 불 정도는 끌 수 있게 됐다.

“정말, 정말 놀랍네요. 제가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던 일이었는데. 무슨 마술이라도 쓴 건가요?”

“그런 걸 쓸 수 있었으면 저도 좋겠네요. 마술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죠.”

“……이쯤 되면 매니저인 제가 필요한지가 의문이네요.”

“서련 씨가 여기에만 약했을 뿐입니다. 보세요. 이것 말고는 나머지 일은 전부 다 완벽하게 처리하셨잖아요.”

“그래도…….”

“다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겁니다. 자, 서련 씨. 이제 아시겠습니까? 저희가 한배를 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오늘 백서련의 과거에 대해서 그녀에게 직접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큰 짐을 떠맡고 있는지도 전부.

혹시나 내가 그걸 알면 떠나지 않을까, 그녀가 고민했다는 것 정도는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녀에게 행동으로 보여 줬다.

나는 절대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을.

“후회하셔도 몰라요.”

“후회하더라도, 저지르고 후회하자는 주의라서.”

“나중에 정나미가 떨어질지도 모를걸요?”

“그러면 지금이라도 더 정을 많이 주고받는 게 좋겠네요.”

“분명히 엄청 방해받을 거예요.”

“그거 좋네요. 시련이 있어야 더욱 불타오르죠.”

“정말…… 한마디도 안 지시네요.”

“그런 성격입니다. 제가.”

백서련은 퉁명스레 말한 거치고는 표정이 아주 가벼웠다.

나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처음 봤을 때 비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참 다행인 거 같아서, 나도 그녀를 마주 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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