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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65화 (6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65화

백서련에게 아는 척하며 다가온 남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샐러리맨이었다.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웃는 낯짝치고는 어딘가 비열해 보인다는 인상이었다.

“이야. 여기서 옛 얼굴을 만나게 되네. 어? 아주 반가워.”

“어? 아, 안녕하세요.”

웃는 남자와 달리, 서련 씨의 반응은 아무리 봐도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떨떠름하면서도 상대하기 껄끄러운지, 눈을 피하며 애써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말을 걸었다.

“서련 씨가 우리 클랜 퇴사하고 나서 많이 아쉬웠어. 그래서 요즘은 좀 괜찮아? 듣자 하니, 개인 매니지먼트 하나 차렸다면서?”

“네, 네. 뭐 그랬죠.”

“어휴. 그 쥐꼬리만 한 돈으로 자그마한 사무실 하나 얻어서 뭐 장사가 되긴 하겠어? 어? 그러게 왜 클랜을 나가. 그냥 힘들어도 꾹 참고 있으면 됐잖아.”

“집안 사정 때문에요.”

아무리 봐도 일방적으로 친한 척, 아니 친한 척하는 것도 아닌가?

이쪽을 괴롭히려고 드는 남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서련 씨. 이분은 누굽니까?”

“아, 그게……. 전 직장에서 아는 사이였어요.”

“에이. 서련 씨도 참 너무하다. 아는 사이라니. 우리가 고작 그 정도 사이였나?”

끝까지 나를 염두에도 두지 않는 말투에 나는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적어도 가만히 앉아 있는 우리 쪽에 멋대로 다가와서 끼어드는 그쪽이 그렇게 좋은 사람 같지는 않군요.”

“어, 어허허!”

남자는 설마 내가 직설적으로 말할 줄 몰랐다는 듯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가느다란 눈동자가 내 모습을 빠르게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려는 시선이었다.

“어, 크흠. 이거, 참. 컬렉터셨구나?”

아무래도 상대는 내가 가진 검을 통해 내가 컬렉터라고 지레짐작한 것 같았다. 굳이 그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자니, 다시 남자의 화살이 서련 씨를 향했다.

“이야. 서련 씨가 능력이 좋아?”

“네?”

“컬렉터 말이야. 뭐, 어디서 뭘 하는 누구신지는 모르겠는데. 용케 구했잖아. 요즘 안 그래도 엄청난 인력난이라서, 어지간한 개인 매니지는 채 몇 주를 못 넘기고 쫄딱 망하던데. 그래도 서련 씨가 운이 좀 따라 주나 봐?”

나는 곁눈질로 남자의 동료들을 살폈다. 그들은 근처를 서성거리면서 이쪽에 시선을 줬지만, 딱히 끼어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는 것을 구경한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똑같은 놈들이다.

“아, 그. 전광석 선배님. 죄송한데. 저는 지금 미팅 중이라서 나중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서련 씨가 애써 그렇게 돌려서 말했지만, 전광석이라 불린 남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에이. 뭐야. 지금 서련 씨 자기 파트너 챙겨 주는 거야? 이야, 이거 너무 섭섭한걸. 그래도 우리가 남남은 아니었잖아.”

“…….”

“보아하니, 계약 관련 건인가? 서련 씨 매니지 수준에서 컬렉터님들 케어는 할 수 있겠어? 용케 계약은 따낸 거 같은데. 그 방법이 참 궁금하네. 응?”

음흉한 어조로 묻는 남자의 말에 내 표정이 팍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와, 이 새끼 선 제대로 넘네…….]

그 뜻을 이해한 백련도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나는 더 이상 옆에서 족제비 같은 놈이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전광석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래. 전광석 씨라고 했었죠?”

“아, 이거 참 자기소개를 안 했었네. 예예. 한울 클랜 소속 전광석이라고 합니다. 저희 클랜 이름은 들어 보셨죠?”

한울 클랜이라면 대한민국에 있는 클랜 중에서도 꽤나 상위권에 속하는 곳이다. 규모도 크고 여러 하청 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데다가, 정3품 이상 컬렉터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요?”

“아아. 못 들어 보셨구나? 혹시 성함이?”

“강유현이라고 합니다만.”

“강유현? 음. 못 들어 본 이름인데, 최근에 컬렉터가 되신 분이셨구나?”

그렇게 말하는 전광석의 눈빛은 나를 상당히 깔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컬렉터라 조금 긴장했지만, 별 볼 일 없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태도를 전환한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일반인이 컬렉터에게 이렇게 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정확히는 저 뒤에서 구경하는 동료들을 믿고 있는 거겠지.

“그쪽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여기 이쪽이랑 제가 아는 사이고, 그냥 만나서 반가워서 말을 건 거예요. 뭐, 그런 김에 겸사겸사 세상살이 이야기 좀 건넸을 뿐이고요.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고요. 어우. 눈빛 한번 살벌하시네.”

“…….”

“그래서 컬렉터 등급은 어떻게 되십니까? 대충 무기만 챙기고 다른 장비는 없어 보이는데, 한 정9품은 되려나? 이제 막 수료식 졸업하신 건 아니죠? 저기 뒤에 저분들 보이시죠? 다 저랑 만나서 계약 맺으신 컬렉터분들이에요. 하나같이 다 종7품 이상이죠.”

이쪽을 명백히 비웃는 어조에, 나는 그를 보며 핫 하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이거 제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왜 웃으시는…….”

“야.”

순식간에 내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하자, 전광석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내가 반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야? 야아? 아니, 당신 누군데 초면에 대고 야라고…….”

“뭐긴 뭐야 자식아. 별 같잖은 거로 위세나 떨려고 하는 족제비한테 한 소리인데.”

“뭐, 뭐?”

“됐고. 내가 지금 영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적당히 하고 꺼져.”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전광석은 기가 막힌 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뒤에 컬렉터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기세등등해져서 내게 따지듯 말했다.

“이봐, 당신. 당신이 뭔데 나한테 꺼지라 마라야? 엉? 딱 봐도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게…….”

“그래서 뭐.”

“뭐?”

“나이가 어려 보이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 이……! 지금 말 다 했어?!”

“아니. 말 다 안 했는데? 솔직히 마음만 같아서는 댁 이 자리에서 먼지 나게 줘 패 주고 싶거든? 근데 이쪽의 서련 씨 봐도 좀 참아 주려고 했는데, 어째 못하는 말이 없네? 어이 전광석이. 내가 말 다 했으면 어쩔래? 내가 말 다 했으면 어쩔 건데.”

“어, 어…….”

설마 내가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전광석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아마 평소에는 이렇게 위세를 등에 업고서 무슨 말을 해도 상대가 고개를 숙여 왔을 거다. 그것이 항상 제대로 먹혀들어 왔으니, 내게도 똑같이 행동한 거고.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너는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어.

“다, 당신 내가 어디 클랜인지 몰라? 어? 한울이야 한울! 어디 이름도 없는 컬렉터가, 어? 한울 클랜에 소속된 나를 겁박하려고 들어?”

“겁박은 무슨 겁박. 말 좀 세게 했다고 그게 겁박인가? 아니면 겁이라도 먹으셨나? 그쪽이 은근하게 이쪽 먹이려고 한 건 아무것도 아니고?”

“유, 유현 씨……!”

서련 씨가 나를 말리려 들었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서련 씨가 욕을 먹는 것은 저를 욕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라고요?”

“허, 허허. 뭐, 뭐야. 둘이 그런 사이였어? 이야. 서련 씨도 참 대단해. 뭐, 능력껏 잡은 줄 알았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잡은 거였어?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회사에 있을 때 도와달라고 할 걸 그랬어.”

명백하게 이쪽을 모욕하는 말에 백서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말로 타일러서 보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러게 뭣도 없이 이 바닥에 멋대로 끼어드니까 이런 꼴을…….”

“야.”

“어?”

“이 꽉 물어라.”

내 주먹이 곧바로 전광석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커헉!”

전광석이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몸이 앞으로 꺾였다. 하지만 나는 이 한 대로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녀석의 머리카락을 쥐어 고개를 뒤로 확 젖힌 다음에 그 건방진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내가, 적당히, 하고, 꺼지라고, 그랬지.”

뻐억! 뻑! 퍼억!

안경이 튕겨 나가고, 섬뜩한 소리가 카페에 울려 퍼졌다. 전광석이 손을 휘저으며 반항을 했지만, 내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녀석의 드러난 빈 몸통에 집요하게 주먹을 내다 꽂았다.

그의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을 때, 나는 그대로 녀석의 발목을 걸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쿵!

빠악!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녀석의 드러난 복부를 그대로 강하게 걷어찼다. 가죽을 두들기는 경쾌한 소리가 매우 시원하게 느껴졌다.

“어, 어어? 이봐! 뭐 하는 거야!”

“이 자식이!”

뒤늦게 한울 클랜 소속 컬렉터들이 이쪽으로 다가와 나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사이에 나는 이미 전광석을 시원하게 두들겨 팬 이후라 뒤로 슬쩍 물러나는 거로 대신했다.

“저, 전광석 씨. 괜찮으세요?”

“아니, 저게 지금 미쳤나……!”

흉흉한 기세를 뿌리는 컬렉터들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이며 놈들을 도발했다.

하지만, 섣불리 검을 뽑지는 않았다. 먼저 무기를 뽑아드는 순간, 법에 먼저 저촉된다는 건 저쪽도 알기 때문이었다.

“광석 씨. 정신 차리세요.”

“여기 안경. 세상에 얼굴 좀 봐.”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들은 전광석이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그는 냅다 나를 향해 삿대질을 날렸다.

“다, 당신 미쳤어? 이러고도 괜찮을 줄 알아?”

“내가 뭘?”

전혀 잘못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묻자, 전광석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컬렉터가 일반인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너 이 새끼! 너 잘 걸렸다! 너 같은 새끼는 콩밥을 먹어야 해! 시민에 대한 폭행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지? 인제 와서 잘못했다고 빌어도 늦었어! 고소할 거야! 고소할 거라고!”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던가.”

“뭐야?! 내가 못할 줄 알고?! 현석 씨. 특수반, 특수반 불러 빨리!”

“아, 네!”

“그거 불러도 소용없을걸.”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는 녀석들에게 나는 비아냥이 잔뜩 남긴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나는 전혀 법에 저촉되지 않거든.”

“이 미친놈이 갑자기 그게 무슨…….”

“왜냐면 나는 컬렉터가 아니니까.”

“뭐?”

나는 내 시스템 창을 연 이후, 녀석들에게 보이게끔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천체주식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나의 사원증이 떠 있었다.

“애초에 텔러인 나를, 너희들이 어떻게 법적으로 처벌할 건데?”

“테, 텔러라고?”

“이게 무슨…….”

내 정체를 확인한 한울 클랜 컬렉터들이 믿을 수 없다며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내게 실컷 두들겨 맞아 엉망진창인 전광석도 마찬가지였다.

“테, 텔러가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한가? 내가 아무리 너희들을 두들겨 패도, 너희는 나를 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하지.”

“…….”

“왜? 아까 했던 말 계속해 보시지? 뭐? 정9품 컬렉터냐고? 고소할 거라고? 해 봐.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라니까? 그래서 텔러인 나를 무슨 무슨 법으로 처벌할 건데?”

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자, 몇몇 컬렉터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아무리 그쪽이 텔러여도 적당히…….”

“적당히 뭐.”

나는 이름 모를 컬렉터가 하는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쪽은 적당히 했나? 멋대로 아는 척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을 하면서, 적당히 하고 가라는 말을 들었었나? 안 들었지? 꺼지라고 해도, 오히려 보란 듯이 따지고 들었잖아.”

“그건…….”

“텔러인 내가 그래도 좀 친절을 담아서 가라고 했는데도, 그 말을 안 듣고 아득바득 들러붙은 게 누구인데? 오히려 이 정도에서 끝난 걸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컬렉터들은 내 말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와. 유현아 쟤들 표정 봐. 너한테 꼼짝도 못하네.]

백련은 그 모습에 속이 시원한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아무리 커다란 클랜에 소속된 컬렉터라 하더라도 텔러인 내게는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때는 텔러라는 존재가 컬렉터나 일반적인 시민들에게 매우 크게 비춰지니까.

거의 신들의 전령 취급이라고 보면 편했다.

“알았으면 좀 꺼지지? 그리고 앞으로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도 말고.”

“그쪽이 아무리 텔러라도 말이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심한 건 그쪽의 양심 상태겠지?”

“……적당히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쪽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녀석들이 일부러 무기를 보이며 말하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꼴에 대형 클랜이라고, 목에 힘을 줄 정도는 된다 이 말인가?

“무기 뽑아 봐. 그거 알아? 대신, 뽑는 순간…… 너흰 내 손에 죽어.”

내가 막대한 기세를 내뿜으며 말하자, 무력으로 시위를 하려던 컬렉터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런…….”

“왜? 못할 거 같나? 아니면 여기서 보여 줘야 하나?”

내가 백련을 흔들며 말하자, 조금 전까지 입이 살아 있던 녀석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전부 다 내 기세에 압도된 것이었다.

흔히들 [위압]이라 불리는 힘인데, 굳이 스킬로 구매하지 않아도 적정 수준만 되면 자연스레 펼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였다.

이 위압에 가장 집요하게 노출된 전광석은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꺼져. 다 죽여 버리기 전에.”

그들은 내 말에 떨어지기 무섭게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특히, 내게 된통 두들겨 맞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놀리며 도망치는 전광석의 꼴이 상당히 우스웠다.

음. 아쉽다. 이 광경을 시화로 성령님들께 보여 드렸으면, 그래도 포인트 좀 벌었을 텐데.

그래도 내가 한 행동에 후회는 없고, 오히려 만족스러워서 나는 멍하니 이쪽을 보는 서련 씨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어때요? 믿음직스럽죠?”

이쪽을 보며 어이없는 시선을 향한 그녀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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