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64화
사실 데이트를 하러 가자고 말했지만, 연인의 그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 참. 업무 관련된 일이라고 진작 말씀해 주시지.”
내가 말한 뜻의 진위를 알아들은 서련 씨는 힘없이 웃었다.
현재 그녀와 나는 대형 마트에 방문한 상황이었다. 대형 마트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컬렉터와 관련된 물건을 판매입하는 곳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요?”
“아니기는 한데,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소리죠.”
“다르게라뇨. 서련 씨는 어떻게 들었는데요?”
“네에?”
나의 노골적인 질문에 백서련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 귀여운 반응에 나는 큭큭 거리며 웃었다.
서련 씨가 내게 눈을 흘겼다.
“유현 씨도 참 짓궂으세요. 꼭 언니가 있는 곳에서 그렇게 말했어야 했어요?”
“그래야 재미있으니까요.”
데이트하러 간다는 말에 혜림 씨가 보였던 반응은 지금 떠올려도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다.
눈에 불을 켜고서 내 멱살을 잡을 기세로 왜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하냐고 고래고래 따지던 그녀의 모습.
요즘 또 자꾸 기가 사는 거 같아서 장난기가 들어서 한번 놀렸는데, 제대로 홈런을 친 기분이었다.
“그리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데이트는 데이트죠. 업무와 관련된 데이트.”
“말이나 못 하면.”
거짓말은 아니다. 애초에 내가 백서련과 이곳을 찾아온 건 정말로 업무에 필요한 일 때문이었으니까.
“최근 부산물 처리하는 것에 대해서 애를 먹고 있었죠?”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죠. 뭐,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지만. 아직 이름값이 낮은 매니지먼트와 선뜻 계약하려는 업체가 요즘 구하기 쉽겠습니까?”
“……부정할 수 없네요.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죠. 최대한 빠르게 계약을 체결해야 서로의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단축될 테니까요. 제가 가자고 한 건 이거 때문입니다. 도와드리려고요.”
“하지만, 이건 제 일인걸요. 유현 씨는 텔러인데…….”
“텔러도 이것저것 듣는 것이 있어서 아는 게 많죠. 게다가 서련 씨 혼자서 행동하는 것보다는 적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 더 있으면 편하잖아요?”
물론, 강혜림은 예외다.
그녀는 할 줄 아는 일이 싸움에만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그냥 사무실에서 백효랑 같이 놀면서 쉬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게다가 텔러가 직접 나타나면, 업체에서도 서련 씨를 쉽게 무시하지는 못하겠죠.”
“…….”
정곡을 찌르는 말에 서련 씨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도 잘 안다. 애초에 이쪽 바닥의 생리야 오래전부터 봐 왔으니까.
사상세계 부산물을 처분해 주는 업체는 기본적으로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지만, 결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건 다른 장사치들과 다를 바 없다.
어떻게든 더 좋은 조건에 좋은 계약자를 찾고 싶은 그들의 시선에 서련 씨가 눈에 찰 리가 있나.
뭐, 앞으로 백화 매니지먼트의 성장력을 생각하면 지금 무시하는 저 치들이 뒤늦게 손을 내밀어 오겠지만. 그때까지 이쪽이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이런 상황에서는 텔러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니까요.”
“좋은 태도입니다. 괜한 고집보다는 이렇게 융통성 있는 게 훨씬 더 좋죠. 그래서 미리 생각해 둔 업체는 있습니까?”
“네. 몇 군데 있기는 한데…….”
백서련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저 반응을 보면 바라는 것과 다르게 무슨 차질을 빚고 있는 것 같았다.
“뒷사정이 있어 보이네요. 설명해 주실 수 있죠?”
내가 아울렛 근방에 있는 카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서련 씨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각자 마실 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시켰지만, 서련 씨는 한 잔에 5,000원을 가볍게 넘는 커피의 금액을 보고는 손을 바르르 떨었다.
“여, 여기 원래 이렇게 비싼가요? 어떻게 커피 한 잔이 이 정도나 하지? 200원이면 종이컵에 타 먹을 수 있는데…….”
“됐으니까, 그냥 시키세요.”
“모, 못해요!”
거의 발작을 일으키려 해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것까지 대신 계산해 줬다.
백서련은 내게 무슨 큰 죄를 저지른 사람마냥 고분고분해졌다.
“이, 이런 거금을 제게 투자하시다니.”
“아니, 애초에 이 정도 금액은 그냥 쓸 수 있죠.”
“대체, 텔러에게 그런 돈이 어디서 난 건가요?!”
“포인트도 버는 저희인데 지구의 돈이야 뭐, 원하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은 아니고 이쪽도 나름의 포인트를 지불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야 포인트가 지금 엄청 쌓여 있는 데다가 이 정도 돈이야 별거 아니었으니, 선뜻 투자할 수 있었다.
적당히 한적한 자리에 앉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서련 씨는 이런 카페는 별로 안 오셨나 봐요?”
“네에. 애초에 올 필요를 느낀 적이 없어서요.”
“따로 매니지먼트를 차리기 전에 이쪽에서 일을 좀 하셨다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다만, 제가 하는 일은 주로 사내에 앉아서 근무하는 쪽이라서 이런 곳에 찾아올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퇴사 이후에도 하루하루 돈에 쪼들린 탓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장에 고등학생, 대학생도 가볍게 오가는 곳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여유도 돈도 없었다.
“예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혹시 집안에 무슨 사정이 있나요?”
“어, 그게…….”
“굳이 대답하기 민감하시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혹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거니까요.”
내 말은 진심이다. 백서련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 일을 할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다.
그런 그녀가 힘든 일이 있다면 동료로서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은…….”
백서련은 결국 지금껏 알지 못했던 그녀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우리 집도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그래도 나름 유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이었죠. 어머니가 없이 아버지 밑에서만 자랐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문제는 저희 오빠와 관련해서 사고가 하나 터진 뒤에 발생했어요.”
“오빠가 계셨나요?”
“네. 지금은 없지만요.”
“이런, 죄송합니다.”
“아니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미 지나간 일인걸요.”
‘다만.’ 하고 말을 이은 백서련의 목소리는 매우 무겁고 씁쓸했다.
“저희 오빠가 나름 유망주라 불리던 컬렉터였어요.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다니면서 꽤나 잘나가기도 했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오빠가 사고로 죽어 버린 거예요.”
컬렉터가 사상세계에 가서 죽는 일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것이 분명 슬픈 일이지만,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고 서련 씨가 말했다.
“오빠 말고도 컬렉터 여럿이 죽었어요. 심지어 다친 사람도 다수가 나왔고요. 그중에서는 대형 클랜 소속도 있었대요. 그런데 그쪽에서 저희 쪽에 소송을 건 거예요.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저희 오빠의 짓이라고.”
“그건…….”
컬렉터 여럿이 죽고 다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전부 한 명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제지하지 않고 일단 가만히 듣기로 했다.
“애초에 오빠는 죽어서 없는데, 법원은 소송을 건 대형 클랜의 손을 들어 줬어요. 그래서 저희 집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게 됐죠.”
[뭐야. 그게 가능해?]
나와 같이 이야기를 듣던 백련이 반응했다. 지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백련이지만, 나와 지내면서 나름 주워들은 것이 있었다.
그런 백련조차 서련 씨의 말에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것이다.
‘가능하고 자시고, 벌어진 일이잖아.’
[아니. 애초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인데, 왜 그 가족이…….]
‘책임의 소재를 누군가에게 묻기는 해야 한다는 소리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렸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기는 하지. 하지만 생각을 해 봐. 한쪽은 평범한 집안이고 다른 한쪽은 사회적인 입김이 강한 대형 클랜이야. 만약에 서로 법적으로 싸우게 된다면,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줄 거 같아?’
[그거야 옳은 쪽을…… 하, 제길.]
백련은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결국, 그녀도 이 세상의 실태를 알고 있다는 거였다.
‘대형 클랜이라면 소속된 컬렉터도 많겠고, 협업하는 텔러도 여럿이 있겠지. 정부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친해지고 싶으면 더 친해졌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서련 씨의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오빠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선량하고, 가족을 끔찍하게 아꼈죠. 어디서 사고를 치거나 그럴 사람은 아니었어요. 다만 다른 컬렉터들과 다르게, 지금 이 사회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고는 말했었죠.”
“…….”
그녀의 뒷말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서련 씨의 오빠는 혹시 사상세계를…….”
“유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죠.”
“그랬군요.”
이제 전부 다 알겠다. 백서련이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지, 그리고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건데?]
‘결국, 간단한 일이야. 사상세계를 하나씩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던 정의로운 청년이 변화를 거부하는 이 사회와 충돌한 이야기지.’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여타 소설 속의 해피 엔딩과 다른 배드 엔딩이다.
‘어째서 대형 클랜이나 되는 놈들이 서련 씨네 집안에 소송을 걸었는지 수상했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군.’
[아니, 뭔데! 너만 알게끔 말하지 말고, 알아듣게 좀 알려 줘!]
‘서련 씨 오빠가 사상세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는 건 방금 들어서 알고 있지?’
[어. 그런데?]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사상세계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해. 기존의 것이 사라지면 거기서 주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재료나 포인트의 파밍이 힘들어지는 데다가 사라진 사상세계를 대신해서 새로운 사상세계가 나타나거든.’
새로운 사상세계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부를 탐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인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극악의 확률로 기존에 사라진 사상세계보다 더 나은 물건들이 나오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가 과연, 확실치 않은 확률에 도박을 할까?
정부나 대형 클랜의 입장에서 지금 사상세계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당연히 서련 씨네 오빠의 주장은 그들을 거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마, 서로 이 전부터 몇 차례 충돌했겠지. 서련 씨네 오빠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 사실을 숨겼을 테고. 그러다 상황이 극한까지 치닫게 되고…….’
이건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녀의 오빠가 죽은 것은 평범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에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뭐야, 대체…… 그런 일이…….]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다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서련 씨의 집이 빚더미에 떠안게 된 것도, 직장이 있던 그녀가 결국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쪽 바닥으로 뛰어든 것도.
이제야 궁금증이 전부 풀렸다.
‘아무래도…… 조만간 내 쪽에서도 따로 알아봐야겠어.’
가만히 놔두자니, 여간 걸리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상대 클랜은 사건의 당사자가 이미 죽었음에도 그 가족에게 집요하게 소송을 걸어서 파멸시키게 만들 정도로 악질적인 녀석들이다.
과연, 그녀가 다시 백화 매니지먼트를 일으킨다고 해서 놈들이 가만히 있을까?
분명, 움직일 거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화살은 서련 씨뿐만이 아니라 나와 혜림 씨에게도 향하겠지.
[이거, 참. 이런 문제점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이야.’
안 그래도 펜타그램 부서의 일도 있어서 골치가 아팠는데, 여기서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기게 될 줄이야.
[할 일이 늘어나서 힘들겠어?]
‘아니.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어. 굳이 서련 씨와 관련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상세계를 하나씩 없애는 우리의 행보를 거대 클랜에서 가만히 놔두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당장에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직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혜림 씨가 점점 명성을 쌓아 가고, 그녀의 존재가 커지고 있는 지금. 그쪽도 분명 무언가 행동을 취하려고 할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몰래 물밑에서 작업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마 서련 씨가 부산물을 처분해 주는 업체를 구하는 데 애먹는 것도, 이번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지도 모르지.’
[참 나쁜 놈들이네.]
‘나쁜 놈들이지. 그리고 그런 나쁜 놈들이 이 사회에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애초에 나는 종말 이전의 세상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지금의 세상도 어떻게 보면 힘과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세상을 지키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지구가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죽음을 부여하려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될 서련 씨에게는 차라리 이딴 세상이 망해 버렸으면 좋을지도 모르지.’
[……끔찍한 이야기네.]
‘그러게 말이야. 딱 엑소도스 녀석들이 원할 스토리군.’
나도 마냥 기분이 좋은 건 아닌지라, 조심스레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을 때였다.
“어? 이게 누구야? 서련 씨 맞죠?”
마침, 카페에 들어온 무리 중 한 남성이 백서련을 알아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