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63화
‘승진이라고? 그러면 곧바로 대리로 올라가는 건가?’
내가 막 궁금해하던 것을 대답해 주기라도 하듯,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다.
[대리로 진급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놀라운 업적! 당신은 최단 기간으로 장기 미션-대리 승진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TP를 획득했습니다.]
[대리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진급식을 치러야 합니다.]
[진급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직급이 대리(진)으로 고정됩니다.]
[대리(진)의 특전이 주어집니다.]
그 말과 동시에 빛이 내 몸을 가볍게 휘감았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혜림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내 어깨에 앉아 있던 백효가 화들짝 놀라서 날개를 퍼덕였다.
[현재 당신의 직급은 대리(진)입니다.]
[이후 진급을 위해서는 본사에 방문하십시오.]
[대리 진급으로 인한 완전한 보상은 이후 주어집니다.]
나는 승진으로 잔뜩 들떴던 기분이 식는 걸 느꼈다.
에이 뭐야. 좋다 말았네.
“유, 유현 씨. 이게 대체 어쩐 일이에요?”
“아무래도 제 승진이 정해진 거 같더라고요.”
“네?! 정말요? 축하드려요! 그러면 이제 대리가 되는 건가요?”
“네. 다만, 지금 당장은 아닌 거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대리의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는 본사, 천체주식회사로 가서 진급식을 치러야 한다. 그래야만 시스템이 승진의 조건을 인정하고, 나를 대리로 만들어 주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분명 진급식에 대해서 들었었지. 이제야 떠올랐다.’
진급식은 그냥 가서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굳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진급이 되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미션은 달성해서 대리(진)으로 바뀌었다.
‘대리(진)이 된 것만으로도, 신체를 구성하는 이야기가 더욱 늘어났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용물도 조금 첨가되어 늘어났고.
굳이 따진다면 격이 늘어났다고 해도 옳은 말일 것이다.
대리(진)이 이 정도라면 대리가 될 경우 더 늘어날 거다. 직접 싸우는 나에게 있어서는 좋은 소식이었다.
“지금 뭐 따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가요?”
“완전히 승진하려면 따로 할 일이 더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면 본사로 다시 올라가 보셔야 하는 거예요?”
“뭐, 어차피 조만간 한번은 다시 들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본사에 찾아가서 진급식을 하겠다고 해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왜?]
‘진급식이 하고 싶다고 해서 곧바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거든.’
진급식이라는 것은 일종의 정기적인 이벤트 같은 거다.
남들이 다 못하고 나 혼자서 뭘 잘했다 하더라도 혼자만 덜렁 즉석에서 승진하지 않는다. 승진한다는 조건만 일단 준 다음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진급식이 열려야 참여하게 만드는 거니까.
[뭐야. 그러면 지금 당장은 대리(진)에서 멈춰 있어야 한다는 거야?]
‘아마, 내가 너무 일찍 조건을 만족시켜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말았다.
보통 텔러가 정사원에서 대리로 올라가려면 최소 2년은 잡아야 한다. 그 최소 2년마저도 부서에서 지원을 받으며 쑥쑥 커가는 녀석들이 가까스로 달성하는 수치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1달 만에 이 모든 것을 달성했다.
전례가 없는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다.
당연히 천체주식회사에서 이런 나를 위해 진급식을 미리 준비했을 리가 없다.
‘보통 진급식이 분기별로 열리거든? 간혹 예외를 두고 1달 뒤에 열릴 때도 있어. 그런데 문제는 진급식이라는 게 최근에 있었던 내 입사식 전에 열렸었단 말이지.’
입사식으로부터 오늘까지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다음 진급식이 아무리 빨리 열려도 최소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 엄청나게 말도 안 되는 속도였네.’
[……나야 최근에 합류했다지만, 역시 너는 정상이 아니구나.]
‘뭐가 어찌 됐든 당장에 내가 진급을 위해 본사로 찾아갈 수 있지는 않다는 소리야.’
그리고 이것을 강혜림에게도 알려줬더니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네요. 전 또 유현 씨가 지난번처럼 갑자기 떠나는 줄 알았어요.”
“제가 떠나긴 뭘 떠납니까?”
“아니, 그 있잖아요. 가장이 ‘돈 벌어 올게.’라며 집을 떠나고 갑자기 돌아오지 않는다던가. 그리고 홀로 남은 여인은 독방 살이를 하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거죠.”
“무슨 근현대문학에서 나올 법한 전개를……. 그리고 제가 왜 남편입니까?”
“아이, 참. 저도 몰라요.”
부끄러운지, 자신의 뺨을 가리며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퍽퍽 치는 강혜림. 너무 까분다 싶어서 정수리를 손으로 꾸욱 눌러주니, 꺅 하고 소리 지른다.
이 아가씨가 또 무슨 스위치가 들어갔나.
아무래도 내가 시화대전에서 승리한 것이 어지간히도 기뻐서 들뜬 거 같다.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백서련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줬더니, 그녀는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와! 축하해요! 저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자기 빼고 우리가 꽤나 심각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거 같았다.
웃으며 말하지만, 나를 지그시 노려보는 눈빛은 ‘대체 왜 그런 짓을 함부로 저지른 건가요!’라고 타박하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뭐,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적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계약을 맺은 텔러와 컬렉터가 사상세계에 가서 포인트 벌어 온다고 나갔다가 난데없이 시화대전을 겪고 왔다는 걸 들은 제 기분을 아시겠냐구요.”
“죄송합니다.”
“혜림 언니도요!”
“네. 죄성합니다.”
“후우. 두 분 다 반성하는 거 같으니, 잔소리는 하지 않겠어요. 무엇보다 이기고 돌아왔으니, 이보다 다행인 일이 어디 있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는 거치고는 백서련의 기분은 어쩐지 좋아 보였다.
입꼬리가 아까부터 움찔움찔하는 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미소를 억누르려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은근하게 기대하는 저 눈빛.
제발 나에게 물어봐 달라는 눈빛을 보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혹시, 무슨 좋은 일 있었습니까?”
내가 그렇게 질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련 씨가 대답했다.
“아이, 참! 제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유현 씨가 이걸 또 어떻게 알고 궁금해서 미칠 거 같다고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아뇨. 딱히 궁금해 미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그게 말이죠…….”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없군.
“오늘 드디어 월급이 정산됐답니다!”
백서련은 모니터에 뜬 정산 내역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
거기에는 현금이 오간 내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그때인가? 요즘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모르고 있었다.
“어, 정산이라면 그거 맞죠?”
“네 맞아요. 언니가 이번 달에 벌어 온 금액! 그게 제대로 들어온 거죠.”
“어디 보자. 꽤나 많이 벌었네요?”
강혜림이 아직 초보자였을 때 번 거라서 그렇게 크게 벌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다르게 액수가 꽤나 크다. 단위가 수천만 원대였다. 생각보다 들어온 돈이 컸다.
“일단, 혜림 언니가 벌어온 금액은 총 6,300만 원이고요. 여기서 세금 좀 떼고 정산 비율에 따라 이렇게 나누면…… 언니한테는 이 정도 들어가네요. 이미 통장에 넣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헉!”
강혜림은 자신의 통장에 새겨진 막대한 금액에 입을 쩍 벌렸다.
얼마 전까지 고시원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녀로서는 난생처음 만져 보는 거금이었다.
금액을 확인하는 혜림 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유, 유현 씨 저 어쩌죠? 저 완전 부자 됐어요.”
“수천만 원으로 부자라고 자신하는 혜림 씨의 검소함이 부럽네요.”
뭐, 그녀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매 끼니 2천 원도 안 넘는 식사를 하던 사람에게 이 정도 금액이 갑자기 들어온 셈이다. 기뻐서 날뛰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줄 만하다.
“아무래도 사상세계 클리어를 한 덕분에 국가 보상금이 꽤나 들어온 것 같네요.”
이번에 정산된 금액은 거의 다 보상금이 차지하고 있었다.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면서 얻은 각종 재료나 아이템의 경우에는 아직 처분도 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서련 씨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것도 조만간일 거 같고.
백서련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게다가 기쁜 일은 이것 하나가 아니에요. 혜림 언니가 최근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광고를 의뢰하는 요청이나 재료의 수급, 그리고 인터뷰를 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요!”
컬렉터의 주 수입은 사상세계에서 획득하는 아이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광고 촬영이다. 당장에 바깥에 거대 전광판만 봐도 유명한 상급 컬렉터가 화장품 광고를 하고 있었다.
혜림 씨라면 조만간 좋은 광고를 하나 따낼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성격은 둘째치고서 외형 하나만큼은 일단 완벽하니까.
“언니. 이거 보이세요? 이번에 제대로 고른 광고의 계약 금액만 무려 2억이에요!”
“이, 이이이이 이억?!”
“후, 후후후. 이거라면 우리 사무실의 빚은 물론이거니와, 매 끼니 라면에 단무지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다고요!”
“다, 단무지까지!”
한쪽은 잔뜩 흥분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잔뜩 놀랐다.
2억을 벌어서 한다는 짓이 기존 끼니에 반찬 하나 추가라는 것이 그녀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가난에 찌들 듯 살았는지, 단편적으로나마 보여 주고 있었다.
두 여성진의 콩트 같은 대화를 보고 있자니, 내 옆에 기대듯 놓인 백련이 혀를 찼다.
[거 참. 이게 뭐 하는 꼴인지.]
‘내버려 둬. 둘 다 이전까지는 돈 없이 자라서 그래.’
물론,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게 흥분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만간 추가로 들어올 금액 때문인지, 서련 씨의 눈이 어지럽게 팽팽 돌았다.
“후, 후후. 이 돈이 들어온다면 이제 사무실에 맥심 커피뿐만 아니라 녹차도 들일 수 있어. 예전에는 피눈물 흘리면서 시켰던 커피를 이제 3박스나 시킬 거야. 라면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단무지랑 김치까지 해서! 무, 물론 김치는 직접 담그지 않으면…….”
“대체, 얼마나 포부가 작으신 겁니까.”
기껏 저 돈을 벌어서 한다는 짓이 커피 박스 추가 주문이라니. 나중에 마음만 먹으면 카페 하나 정도는 그냥 인수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김치 정도는 반찬 가계에서 사 드세요.”
“그런 부르주아 같은……!”
“맞아요. 유현 씨!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너무하잖아요!”
“제가 보기엔 댁들 정신 상태가 제일 너무하거든요?”
시간이 흐르자 둘 다 진정이 됐는지, 거칠어졌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조금 전 추태가 부끄러운 건 아는지, 서련 씨와 혜림 씨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튼, 대충 좋은 상황이라는 건 확실하군요.”
내 승진도 그렇고 강혜림이 벌어들인 돈이 정산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백화 매니지먼트에 흥복이 가득하다.
심지어 지금만 버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번에 벌어들인 금액은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나중에는 어마어마하게 벌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다만,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많이 남아 있어요. 인터뷰 스케줄도 조절해야 하고 찍게 될 광고 콘셉트도 따로 만나서 정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사상세계에서 얻어온 부산물은 아직 처분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도 하고요.”
“요컨대 앞으로 더 바빠질 거라는 소리로군요.”
“바로 그거죠.”
“흐음. 확실히 그때가 되면 서련 씨도 꽤나 힘들겠네요.”
“네에. 뭐, 그건 상관없는데. 이제 조만간 언니도 업체 사람들이랑 만날 필요도 있으니까요.”
인기가 많아지면 그만큼 일이 많이 들어오고 하릴없이 바빠지게 된다.
뭐 마음만 같아서는 그런 거 신경 끄고 시화에만 열중하고 싶었지만, 나와 다르게 강혜림은 현실을 사는 사람이지 않은가.
시화는 지금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고, 그 외 시간은 현실의 업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이왕 말 나온 거 지금 바로 움직이죠. 서련 씨. 지금 시간 되시죠?”
“네? 아, 네. 지금은 되는데, 왜요?”
“데이트나 하러 갑시다.”
“네?!”
나의 말에 서련 씨는 물론이거니와,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혜림 씨도 격하게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