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62화
“그, 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음? 제가 혹시 잘못 들은 걸까요?”
“아니. 제대로 들었어. 아가엘 과장. 나는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랬지.”
“헤에. 이거 참. 차아아암 재미있는 소릴 하시는 후배네요.”
설마 면전에서 대놓고 지적을 받을 줄 몰랐는지, 아가엘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철회할 생각도 없었고, 사과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아가엘은 욕을 먹어도 쌌으니까.
“지금 그거, 하극상인 거 아시죠?”
“남의 것을 멋대로 처분해 버린 것은 어디의 누구지? 펜타그램 부서는 원래 다 그런가?”
“…….”
부서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말하자, 아가엘의 웃는 표정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래. 이제야 자신의 진면모를 드러낼 생각이군. 그 가증스러운 가면 안쪽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지금 유현 후배의 말은…… 저희 부서를 모욕했다고 봐도 좋은 거겠죠?”
“정당한 이의 제기지. 진풍이 죽었잖아.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녀석은 죽을 수 없어. 그런데도 없다는 것은 누군가가 손을 써서 미리 처리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 누군가의 정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테고 말이야.”
아가엘의 이마에 약간이지만, 주름이 파였다. 설마, 내가 여기까지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다.
하긴. 나를 그렇게 우습게 봤으니까, 고작 진풍 정도나 되는 녀석을 보낸 거 아니었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당신의 상급자입니다. 그에 따른 예를 갖추세요.”
“아이고, 예의 정도야 얼마나 차려 드릴 수 있죠. 그런데 말이죠, 상급자는 상급자고, 잘못은 잘못 아니겠습니까?”
나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 수중에 있는 진풍을 멋대로 처리하셨는데, 그건 어떻게 보상하실 생각입니까? 이건 명백히 월권행위인 거 아시죠?”
이미 죽어 버린 진풍은 그야말로 물건 다뤄지듯 하고 있었지만. 뭐, 결국 이것도 녀석의 자업자득이다.
내 말에 아가엘은 표정을 관리하며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귀엽게 웃었다.
“어머. 죄송해요. 아무래도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나 보네요. 뭐, 어쩔 수 없다는 말로는 넘어갈 수 없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해 드릴게요.”
아가엘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소량의 포인트를 넘겼다.
[800TP를 획득했습니다.]
수치만 따지면 천 포인트도 안 된다. 결국, 이것은 진풍의 목숨값이었다.
물론, 녀석이 지닌 정보의 가치를 산정하면 이 가격은 터무니없는 후려치기였다.
“어때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
나를 보며 씨익 웃는 아가엘의 태도는 딱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따지거나 하지 않았다.
‘실제 진풍의 가치는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애초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아가엘이 뭘 노리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임무를 실패한 진풍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라는 것까지 전부 다.
[뭐야. 그런데 왜 굳이 찾아온 거야?]
‘덕분에 포인트를 받았잖아?’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형식적으로 따져서 조금이라도 포인트를 버는 것이 훨씬 더 낫다. 800TP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말이지.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아가엘. 그녀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가엘.’
직급은 과장. 시화실의 펜타그램 부서 소속.
작고 귀여운 요정 형태의 텔러.
하지만, 겉모습에 현혹되면 안 된다. 저 작은 몸속에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가 꿈틀거리고 있으니까.
‘역시, 펜타그램에 소속되어 있었구나.’
나는 그녀를 알고 있다. 미래에서 종말 이후에 그녀에게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미친 듯이 깔깔 웃으며, 우리를 하루가 멀다고 괴롭혔던 미친 사이코패스.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손수 머리를 터뜨려서 죽일 정도로 그녀의 악명은 자자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시련을 거부한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서, 피보라를 일으키며 미친 듯이 웃어 재끼던 그녀의 모습이. 죽어 가는 사람의 사체를 내려다보며, 벌레만도 못한 시선을 던져 왔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후우.’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니,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미 어지간한 꼴은 다 보고 자라온 나지만, 과거에 각인 된 일종의 트라우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 아가엘이라는 텔러가 증오스러웠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그녀 말고도 펜타그램 부서의 텔러들 전부가 증오스럽다.
놈들은 나의 적이고, 이 지구를 어떻게든 멸망시키려는 놈들이다.
그래서 만나러 온 것이었다. 내 무뎌진 각오를 다시 가다듬기 위해서.
‘이번에는 다를 거다.’
이제, 이 세상은 너희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나는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이 복수라는 감정을 다듬고 깎아 내며, 그 끝을 날카롭게 벼렸다.
언제든지 놈들의 심장을 찌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내 복수의 비수가 놈들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 내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신 포인트. 잘 받았습니다.”
나는 감정을 가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흐음. 뭐,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진풍이라는 녀석의 가치는 애초에 이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이야. 이거 참, 아가엘님도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설마, 이딴 녀석이 직속 부하였을 줄이야. 많이 답답하셨죠?”
“……헤헤. 유현 후배가 선배를 잘 걱정해 주시네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답니다. 저는 마음이 넓은 선배니까요. 진풍 후배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저는 그가 지금까지 일을 잘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도발에도 쉽게 응하지 않는 아가엘.
역시, 진풍과 다르게 녀석은 진짜였다.
“그렇습니까? 뭐, 펜타그램 부서에 공석이 생겨서 걱정이 들었는데. 괜한 기우였네요.”
“펜타그램 부서는 아주 거대하답니다? 고작 정사원 하나가 빈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소리죠.”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 참. 그보다 아가엘 선배님은 그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이야기요?”
“최근 엑소도스와 접촉하는 부서가 있다 하더라고요.”
“…….”
순간.
아주 순간이었지만, 아가엘의 표정은 그야말로 악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금방 펴졌지만, 그녀는 아마 속으로 크게 당황하고 있을 거다.
“흐, 흐음? 그건 어디서 들은 소식인가요?”
“뭐,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라 서요. 남들보다는 아는 것이 많다는 소리죠.”
“헤에. 그러셨군요. 음. 네. 참 유능한 후배네요.”
“아무튼, 혹시 모르니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엑소도스 녀석들과 엮이면 뭐, 좋은 꼴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어라? 유현 후배는 대체 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누가 들으면 저희가 엑소도스와 연관이라도 있는 줄 알겠어요.”
“아하하.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저는 혹시 그쪽에서 다가올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한 거였습니다. 아이고. 그렇게 들렸으면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는 말 한마디 마디에 뼈를 담아 아가엘의 속을 긁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의 뺨이 움찔거리며 경련하고 있었다.
딱 봐도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하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상쾌함을 느꼈다.
더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튼, 저는 진풍의 서재와 관련해서 소유권을 양도받아야 해서 지금 가 봐야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유현 후배도 수고하세요.”
우리는 서로 웃는 낯으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등을 돌리는 순간, 내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아가엘. 확실히 진풍과 다르게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알고, 어떻게든 펜타그램 부서의 정보를 은폐하려고 든다.
그 3대 세력 중 하나인 엑소도스와 관련이 있다는 것부터 펜타그램 부서가 만만치 않은 세력을 지녔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당장, 성령들 몰래 김한중이나 되는 인물을 키워 낸 것만 봐도 그렇다.
분명, 나 혼자서는 쉽게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라.’
대기실을 나와 콜로세움의 복도를 걷는 나의 오른손에는.
아가엘의 책이 쥐어져 있었다.
* * *
[시화대전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5,000TP를 획득했습니다.]
[성령들이 당신의 싸움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3,000TP를 획득했습니다.]
[혼성계에 당신의 이야기가 조금씩 퍼져 나갑니다.]
[상대방의 서재 소유권을 획득했습니다.]
[기존 서재에 새로운 서재가 합쳐집니다.]
[서재의 최대 수용치가 증가합니다.]
대기실로 돌아오자 마침 정산이 끝났는지, 알림 창이 우수수 떠올랐다.
“와, 와. 이것도 보상 만만치 않네요.”
강혜림도 일단은 나와 계약으로 묶인 관계다 보니, 직접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꽤나 많은 포인트를 받았다. 물론, 직접 싸우고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그보다 유현 씨! 정말로 멋졌어요! 세상에 그렇게 잘 싸울 줄이야!”
“제가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생각보다 강하다고요.”
“헤헤. 저는 역시 믿고 있었다니까요!”
“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불안해하시더니.”
“그, 그런 적 없거든요!”
내 표현이 조금 직설적이었는지, 강혜림이 얼굴을 붉히며 빼액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몸 성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었다.
[괜한 걱정을 끼쳤구나.]
‘하지만, 이제 알겠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거 참. 자신의 가치를 행동으로 증명하다니. 심지어 그것도 텔러가 말이야. 아무래도 나는 정말 터무니없는 주인을 만난 거 같네.]
‘그래서, 싫어?’
[아니! 완전 좋지! 아무렴 평범한 녀석은 재미가 없거든. 너처럼 똘기가 넘치고, 신념이 확고한 녀석이랑 함께 해야 훨씬 더 재미있어.]
‘신념은 알겠는데, 똘끼는 뭐냐 똘끼가.’
[왜?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이 자식이.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왼쪽 어깨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정찰을 나갔던 백효가 돌아왔는지 내 어깨에 앉아 있었다.
부엉.
“그래. 너도 잘했어. 백효야.”
부엉.
녀석은 내 칭찬이 기쁜지 내 뺨에 머리를 비벼 왔다. 아직 새끼라서 가만히만 있어도 귀여운 녀석이 애교까지 부려오니, 이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이구. 우리 백효.”
나는 녀석을 손목 위에 올린 후에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백효는 내 따스한 손길에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으며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
옆에서 강혜림은 그 광경을 부럽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왜요? 혜림 씨도 백효 쓰다듬고 싶어요?”
“아뇨. 저도 유현 씨에게 쓰다듬받…… 아아아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자 멍하니 말하다 자신의 말실수를 인지하고, 얼굴을 붉히며 제자리에서 날뛰는 강혜림.
나는 그녀가 옆에서 무슨 일인 콩트 쇼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백효를 쓰다듬는 것이 집중했다.
[콜로세움이 사라집니다.]
손님들이 모두 나가자 시화대전을 위해 생성된 콜로세움도 사라졌다.
콜로세움 대기실에 있던 나와 강혜림, 백효는 당연히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오게 됐다.
“이제 끝인 건가요?”
“네. 일단은 끝이죠.”
무엇보다 시화대전을 제대로 끝낸 터라 오늘은 이 이상 서재를 개방할 수도 없다. 뭐, 연다면 성령들이 좋아라 찾아오겠지만. 내가 지쳐서 안 되겠다.
이미 얻을 것들은 충분히 얻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메시지 창 한구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듯 반짝이는 글자를 살폈다.
[장기 미션]
그것을 클릭하자 팡파르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반짝이는 글자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장기 미션을 달성했습니다.]
[장기 미션-대리 승진]
-필요 공적치 3,000(완)
-필요 포인트(TP) 10,000(완)
[보상으로 소량의 포인트와 함께 승진할 수 있게 됩니다.]
승진.
그 단어에 나는 ‘드디어.’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 보니 포인트는 진작 달성했지만, 공적치가 아직 부족해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진풍과의 시화대전에서 승리한 덕분에 부족한 공적치 200 이상을 모두 채웠고, 결과적으로 대리로 승진하기 위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