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60화
“뭐, 뭐야 대체.”
김한중은 어째서 자신이 누워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건성으로 싸웠냐면 그건 아니었다. 전력이었다. 그의 모든 능력치를 한계까지 폭주시켜, 피에 미친 괴물이 되는 걸 택했을 정도였다.
지금의 자신은 절대 어지간한 컬렉터에게 꿀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자부하고 있었는데.
“뭐냐고, 대체.”
어째서 유현은 아무렇지 않고 자신이 이렇게 처참하게 바닥을 뒹굴고 있는 거란 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이쪽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거란 말인가.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웃기지 마!”
김한중은 유현의 시선에 격하게 반응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단검을 휘둘렀다. 유현은 김한중의 단검을 가볍게 피한 뒤, 그대로 녀석의 턱을 발끝으로 걷어찼다.
“컥!”
뇌가 흔들리는 충격과 함께 김한중이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그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전히 의문인 것 같았다.
‘꼴에 공격의 틀은 잡혀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그게 전부.’
유현은 김한중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녀석은 분명 강하다. 움직임이 빠르고 누군가를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특히 은신의 경우 아주 위협적인 기술이었다. 책을 보는 능력이 없었으면 당하는 건 유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한중이 유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결국, 둘의 사이에는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런 스킬도 쓰지 않고, 순수하게 기본기로 싸웠다는 걸 녀석은 알까?’
김한중이 [이야기의 힘]을 끌어올려 싸운 것과는 정반대로 유현은 어떠한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순수하게 선보인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술이었다.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단련해 온 오직 그만의 기술.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걸 알기에 온갖 다양한 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온 유현에게 있어서 김한중의 싸움은 너무나도 단조로웠다.
그는 제대로 된 단검술을 구사하지 않았다. 그저 은신이라는 스킬 하나와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모든 상황을 타개해 왔을 뿐이다.
유현은 그게 너무나도 우스웠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결국 그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는 순간 무너지고 말지.’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않고 쌓아 올린 탑은 결국,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유현은 이미 김한중의 속마음을 손 위에서 주무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 싸움에 임하는 그의 태도, 상대방을 어디부터 노리는지에 대한 소소한 버릇까지.
오랫동안 쌓여 온 기량과 경험은 김한중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하고 계산했다.
바로, 지금처럼.
‘오른쪽 어깨.’
유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김한중이 유현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노리는 것은 오른쪽 어깨.
분명 빠르고 강하지만, 공격이 들어오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이상 맞아 줄 리가 없었다.
휙유현은 가볍게 상체를 뒤로 틀어 김한중의 공격을 피하고, 곧바로 녀석의 명치에 창으로 변한 백련을 찔러 넣었다.
김한중은 본능적으로 나머지 단검으로 방어에 들어갔다. 캉! 유현은 창대를 회전시키며 단검을 치는 것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창대로 녀석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빠악!
“크헉!”
깔끔하게 들어간 타격과 함께 김한중의 몸이 수 미터는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유현은 백련을 다시 검의 형태로 바꾸며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역시, 육체의 상태가 상당히 좋아.’
전생에 지녔던 [이야기의 힘]은 없었지만, 그때 한계까지 단련한 육체는 고스란히 유현에게 계승됐다. 포인트의 힘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유현의 육체는 거의 최고 수준에 육박한 상태였다.
‘여기에 얻은 포인트를 스탯에 투자하게 된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게다가 백련의 존재도 상당히 컸다.
유현은 어느 하나에 치중되지 않고 온갖 잡다한 기술들을 익혔다. 단검, 창, 할버드, 둔기, 검, 방패, 활 등등.
그는 활용할 수 있는 무기는 전부 다 사용했고, 그런 유현에게 형태와 크기, 무게가 자유롭게 변하는 백련은 그야말로 최고의 무기였다.
김한중이 유현에게 정면에서 밀린 것도 바로 이 탓이었다.
온갖 다양한 무기를 구사하는 유현을 정면에서 상대하면, 마치 수십 명이 넘는 사람과 동시에 싸우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뭐 해? 일어나지 않고. 방금처럼 자신만만하게 덤벼 봐.”
“으아아아!”
김한중은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훔쳤다.
그의 전의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유현을 미치도록 기쁘게 만들었다.
‘그래.’
어떻게 마련한 무대인데, 여기서 벌써 무너지면 안 되지.
‘너는 나를 더 즐겁게 만들어 줘야 해.’
김한중은 제물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유현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줄 제물.
그러니 벌써부터 포기하는 것은 유현도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덤벼.”
유현은 김한중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도발을 날렸다.
* * *
‘세상에.’
강혜림은 유현이 보여 준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일반적인 텔러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건 알았다. 무기를 들고 싸울 때부터, 그는 타고난 싸움꾼처럼 느껴졌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정말 강한지에 대한 것은 그녀도 의문이었다.
처음 유현이 싸웠을 때는 콘스탄티노플 공성전.
유현은 그곳에서 꽤나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지만, 주역은 사실상 그녀나 다름없었다.
그다음 이어진 것은 테오돌란트 습지 공략.
그곳에서 스캐빈저와 만난 것을 제외해도 여러 번의 전투가 있었지만, 결국 보스급 환상체 레프라를 쓰러뜨린 것도 강혜림이었다.
이 2번의 일 때문일까. 강혜림은 자기도 모르게 유현은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약할 거라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결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현이 김한중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내가 유현 씨와 싸운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강혜림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그녀는 강하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유현이 자유자재로 다루는 온갖 다양한 병장기는 분명 그녀의 손발을 엉키게 할 것이고, 노력한 사냥꾼인 강유현이 그 빈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끝까지 유현 씨를 믿지 못했구나.’
이 모든 불안감은 결국 불신에서 나온 감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어리석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직접 타박하지 않고 행동으로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현의 배려에 고마움마저 느꼈다.
‘이제는 믿어.’
그는 은인이자, 세상의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빛 같은 존재.
강혜림은 허리를 쭉 펴고서 흔들림이 없는 시선으로 싸움을 지켜봤다.
* * *
“제, 제길!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무슨 일인 거냐고!”
무대의 바깥에서 일련의 사태를 모두 지켜본 진풍은 불안감에 손끝이 덜덜 떨려 왔다.
유현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김한중의 모습에 답답함과 분노가 이는 것과 동시에 이대로면 끝장이라는 불안감마저 맴돌았다.
“왜! 왜 저딴 텔러 하나 이기지 못하는 건데!”
그 이유를 몰라 미칠 것만 같았다.
김한중이 사실은 겉만 번지르르한 녀석이었나? 그럴 리가. 김한중의 실력은 진풍 본인도 직접 봤었다. 그는 펜타그램 부서에서 작정하고 몰래 키워온 컬렉터다. 가지고 있는 특성도 상급이고 기본적인 스펙도 매우 출중하다.
심지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암흑가에서는 남들 몰래 실전 경험까지 쌓았고, 실적을 냈었다.
아무리 봐도 절대 유현에게 밀릴 만한 스펙이 아니었다.
“애초에 상대는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잖아! 그, 그런데 대체 뭐란 말이야! 저 능숙한 싸움법은!”
그것이 진풍을 미치게 만들었다.
유현은 능숙했다. 능숙해도 너무 능숙했다. 마치 지옥 같은 전장에서 수십 년은 구르고 구른 노장 같은 노련함이 느껴졌다.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진풍마저 그렇게 느꼈는데, 다른 자들은 어떻겠는가?
‘아, 안 돼.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녀석이 패배하면 나는 파멸하고 말아.’
자신이 이길 거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건 데스매치를 신청했다.
처음 유현이 역으로 그것을 제안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잡아먹어 주마. 그래서 훨씬 더 커져서,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게 만들어 주마.
그렇게 생각했는데.
‘잡아먹는 쪽은 내가 아니었어……!’
그는 처음부터,
유현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녀석은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유현은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진풍의 장단에 맞춰 주고, 판을 깔았다.
효율적으로 그를 잡아먹기 위해. 그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기 위해.
“나, 나는 대체 누굴 건드린 거지?”
절망감에 가득 찬 그의 목소리가 선수 대기실에서 허무하게 울려 퍼졌다.
* * *
웅성웅성.
성령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이 싸움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전부.
전부 다 느껴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처음 내가 이 콜로세움의 위로 올라왔을 때, 성령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나를 잘 알아서 즐거워하는 자들,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들은 바가 있어서 흥미를 품는 자들, 소문을 믿지 않아 나를 의심하는 자들, 내가 고꾸라지길 바라는 자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싸움이 계속 지속되면서 그들의 평가는 한쪽으로 쏠리게 됐다.
“대, 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지?”
“텔러? 설마 소문이 진짜였다고? 싸우는 텔러라니!”
“이런 제길! 왜 지금까지 이걸 모르고 있었지? 강유현 텔러라고? 그 서재에 당장 찾아가 봐야겠어!”
나를 향한 성령들의 시선이 바뀐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대면하고 있는 김한중도 마찬가지였다.
“오, 오지 마!”
녀석은 내게 수차례나 얻어맞고, 바닥을 몇 번이나 뒹군 탓에 몸이 엉망진창이었다.
곳곳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고, 옷은 찢어지고 먼지투성이다. 옷 안쪽에 겹쳐 입은 방어구는 그 역할을 잃은 지 오래였다.
화이트 채플의 살인마라 불리는 잭 더 리퍼의 힘을 다룬 자치고는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김한중은 마음마저 꺾인 채, 나를 두려움에 가득 찬 시선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 대체 뭐야! 대체 뭐냐고! 여긴 분명 내 무대였어야 했어! 내가 주인공이어야 했다고! 너는, 너는 그저 나를 돋보이게 만들어 줄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체, 왜 내가 이런 꼴인데!”
김한중은 현실을 부정했다. 분명, 그가 여기에 오기 전에 약속받은 것은 승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의 어디가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녀석은 이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다. 녀석은 결국, 미치광이 살인마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녀석은 앞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겠지.’
김한중은 앞으로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다. 그게 녀석의 본성이니까. 그게 녀석이 좋아하는 짓이니까.
‘그러니 여기서 끝낸다.’
나는 김한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히, 히익!”
김한중은 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어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시계탑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녀석에게 도망갈 길은 없었다.
성령들이 숨을 죽이고서 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래. 놀랍겠지. 너희들이 지금까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던 텔러가, 이런 일을 벌였으니까.’
한계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게 정해진, 일종의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
한계는 분명 나 자신이 긋는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세상의 사람들이 선을 긋기도 한다.
김한중을 향하는 나의 앞으로 여러 개의 선이 그어졌다.
그것은 나를 향한 세간의 평가였다.
너는 딱 여기까지야. 너는 더 이상 이 선을 넘으면 안 돼.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앞의 선을 본 사람들은 결국 넘는 것을 망설이고 만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으니, 자신도 결국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납득한다.
웃기는 일이다.
사실, 이것만큼 넘기 쉬운 것이 없는데.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 그어 놓은 한계선은 그저 내 눈에만 보이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것도 모른 채, 멋대로 그어 놓은 낙서일 뿐이다.
저벅.
선을 넘는다.
내 앞을 가로막을 듯 그어진 선이 지나치는 순간 가루처럼 흩어진다.
저벅. 저벅.
그저 가볍게 또 경쾌하게 발을 내디딘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선들이 하나씩 산산이 흩어진다.
그렇게 마지막 선을 앞두고, 나는 김한중의 코앞에 서 있었다.
“결국, 넌 자신의 힘에 취해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 그게 네 패인이야. 잘 봐 둬. 너를 쓰러뜨린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이 자리의 승자가 누구인지. 이 무대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사, 살…….”
“이게 너희들이 지금까지 무시해 왔던, 나의 가치다.”
나는 검을 휘둘러 김한중의 목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내 앞을 가로막던 마지막 선이 잘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