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59화
그 광경을 보던 성령들에게 감상을 묻는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본 광경은, 새하얀 명검이었던 것이 순식간에 백색의 창으로 변해 김한중을 향해 찔러 들어간 것이었으니까.
“허, 미친.”
“지금 저 검이 창으로 바뀐 거야?”
“대체, 어디서 저런 무기를?”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형태가 바뀌는 무구가 이 혼성계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가치가 높기 때문에 상당히 구하기 힘들었다.
그것을 아직 정사원급 텔러인 유현이 지니고 있으니, 성령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누군가한테 지원을 받은 건가?”
“응?”
“그 왜, 있잖아. 저 텔러의 서재에 에덴과 판데모니움이 동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허. 그게 진짜야?”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소문은 들었어. 그 딥 다크와 심지어 미카엘까지 나타났다 하더라고.”
관객에 모인 성령들의 숫자는 이미 3천을 아득히 넘어선 상태.
유현의 서재의 최대 시청령들보다 더 많이 모인 이들은, 오랜만에 벌어진 시화대전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자들이었다.
아직 유현에 대해서 소문만 희미하게 들었지, 그의 서재를 확인하지 못한 자들.
그런 성령들의 사이로 점점 유현의 서재에 대한 소식이 하나둘 퍼져 나갔다.
‘관객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다.’
그 광경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사탄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의 가치를 일찍 알아보고서 누구보다 먼저 점을 찍으려고 했지만, 본인의 필사적인 거부로 무산되었다. 그 사실이 이렇게도 안타까울 수가 있을까.
심지어 자신이 일부러 넘보지 말라고 견고하듯 행동했음에도 에덴까지 끌어들이다니.
‘참으로 매력적인 텔러란 말이지.’
이제는 독점하겠다는 욕심을 함부로 부릴 수 없지만, 그렇기에 사탄은 더더욱 불타올랐다. 그는 타락을 상징하는 성령이며,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었으니까.
‘그보다 딥 다크라니. 설마, 날 두고 하는 소리인가?’
왜 자신의 별명이 성령들의 사이에서 그렇게 불리는지, 뒤늦게 깨달은 사탄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 * *
‘이런 제길!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김한중의 구겨진 인상은 펴질 줄 몰랐다. 그는 당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날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미간을 가볍게 찔러오는 것에 흠칫하며 검을 들어 막아 내려는 순간, 창끝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방향을 틀어 그의 허벅지를 찔러 왔다.
파슷!
가까스로 반응해서 피해 냈지만, 완벽하지 못해 허벅지에 자상이 생겼다.
뒤로 크게 물러난 김한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를 악물었다.
‘검이 갑자기 창으로 바뀐 것도 놀라운데, 어떻게 되먹은 창술이야.’
김한중은 유현이 처음에 검을 지니고 있어서 검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형태가 변하는 무기는 둘째치고서 일부러 방심시키기 위해 검의 형태를 취하다니. 이 빌어먹을 새끼. 텔러 주제에 건방지게.’
김한중의 붉게 물든 눈동자에 스산한 살기가 맴돌았다. 유현이 자신을 속이고 놀렸다고 생각하니, 치솟는 살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다가가자니, 조금 전 유현이 몰아세운 공격이 꽤나 매서웠다.
‘하지만, 이걸로 녀석의 창의 간격은 대충 알았어.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조차.’
싸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향한 분석이다.
김한중이 비록 암살에 치중되어 있다고 하지만, 한쪽 분야에만 매몰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삼류나 하는 짓. 그는 스스로가 일류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거대 부서의 후원을 등에 업은 채, 지금까지 조용히 성장해온 히든카드.
겨우 이 자리에서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대충 임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너도 어지간한 텔러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그러니 이쪽도 진지하게 나서 주마.’
김한중의 그런 속내도 모른 채, 유현은 창을 느슨하게 쥐며 다음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한쪽 다리가 앞으로 나오고, 창을 쥔 오른손이 뒤로 당겨진다.
김한중은 그것이 찌르기의 자세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대비에 들어갔다.
‘멍청한 놈. 그 거리에서 닿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김한중은 지금 유현의 창끝 사거리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팔을 최대로 뻗으며 창을 찔러 온다고 하더라도 맞을 일은 없다. 그럼에도 창을 내지르려고 한다는 것은 아직 전투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진다는 소리.
‘싸우는 텔러라고 해 봤자, 경험이 얼마 되지도 않은 초짜지.’
이대로 녀석의 창 아래로 파고들어, 두 단검으로 허벅지를 그대로 찔러 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계까지 당겨진 유현의 창이 일직선으로 내질러졌다.
파앙!
창끝이 공기를 터뜨리며 허공을 빠르게 갈랐다.
얼마나 빠르고 강렬한 찌르기인지, 주변의 안개가 와류에 휘말리며 터널처럼 길을 열었다.
유현이 노려 오는 곳은 김한중의 상체. 그는 일부러 뒤로 빼는 척하면서 즉시 반동을 줘 앞으로 파고들 생각이었다.
‘어차피, 녀석의 공격 사거리는 여기까지 닿지 않…….’
푸욱!
“크아악!”
어깨에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김한중은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당혹감을 벗어 내지 못했다.
유현이 내지른 창끝이 그의 왼쪽 어깨를 제대로 찌른 것이었다. 김한중은 즉시 몸을 뒤로 뺐다.
“크윽! 대, 대체 어떻게?”
평범해 보이는 의복의 안쪽, 자신의 몸을 지켜 주는 특제 갑옷마저 일격에 뚫렸다. 그나마 이것이 있어서 관통상은 면할 수 있었지만,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까부터 눈을 계속 굴리면서 내 공격을 파악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유현은 그런 김한중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창으로 변한 백련을 양손으로 화려하게 회전시켜 보였다. 허공을 가르는 백련은 그럴 때마다 길이가 자유자재로 들쭉날쭉해지고 있었다.
“이런 건 예상 못했나 봐?”
설마, 형태의 변환뿐만이 아니라 길이마저 바꿀 수 있었다는 건가?
“크윽. 이런 비겁한…….”
“안쪽에 좋은 아이템을 껴입고 자신에게 유리한 필드를 깔고 간 녀석이 할 소리는 아니지. 탓할 거면 모자란 네 실력을 탓해라.”
“닥쳐!”
김한중은 지면을 박차고 유현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창이 길어지면 안쪽으로 파고들면 그만이야!’
창이라는 것은 꽤나 긴 사거리를 지녔지만, 그렇기에 초근접전에서는 제대로 써먹기 힘들다. 창대로 후려치는 방법이 있지만, 이쪽은 양손에 쥔 단검이다. 누가 유리한지는 뻔했다.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
김한중의 단검이 드러난 유현의 허벅지를 향해 빠르게 내질러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루어진 일격. 단검이 유현의 허벅지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의해서 강제로 튕겨졌다.
투웅!
“크윽!”
김한중은 자신의 단검을 튕겨 내며, 동시에 인중을 강하게 때리는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욱신거리는 코에서 쌍코피가 흘러내리는 와중에 그가 확인한 것은 방패였다.
‘방패? 방패라고?’
대체, 어디서 방패를 꺼냈단 말인가?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유현의 손에는 어느 순간 창이 사라졌다는 소리였다.
‘웨폰 체인징?’
무기를 빠르게 갈아 끼는 스킬이 있다는 건 들었다. 설마, 그런 부류의 기술인 걸까?
하지만, 김한중은 이어지는 유현의 공격에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방패가 재차 모습이 바뀌더니, 창으로 변해 그를 찔러 왔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필사적으로 뒤를 향해 몸을 던지자, 유현이 그럴 줄 알았다며 자연스레 그에게 달라붙었다. 김한중이 발악을 하듯 단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 맺힌 붉은 기운이 허공에 그어지며 유현을 향해 쏘아졌다.
티티티팅!
창은 어느 순간 검으로 바뀌더니 김한중의 공격을 모두 쳐 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척까지 접근한 유현이 검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김한중이 두 단검을 교차하듯 들어 올리는 순간, 생각했던 것 이상의 충격에 무릎이 꺾였다.
‘무, 무슨 무게가!’
무게뿐만이 아니다. 휘둘러지던 검은 어느 순간 무시무시한 철퇴로 바뀌어 그를 단검째로 내리찍었던 것이다.
김한중의 몸이 휘청였다. 유현은 즉시 철퇴를 회수, 몸을 회전시키며 거대한 할버드로 바꿔 풀 스윙으로 휘둘렀다.
콰앙!
김한중의 몸이 할버드에 맞고 뒤로 볼링핀마냥 튕겨 나갔다. 그러나 뒤로 날아가던 그의 몸은 채찍으로 변한 백련에 붙잡혀 다시 앞으로 당겨졌다.
그대로 앞으로 끌려온 김한중의 복부에 유현의 니 킥이 보기 좋게 작렬했다.
객석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성령들이 탄성을 토해냈다.
“이럴 수가, 저렇게 자유자재로 변하는 무기라니!”
“아니 그보다, 저런 형태를 전부 다 다룰 줄 안다고?!”
“저거 진짜 텔러 맞아?”
반대로 유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성령들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젠장! 믿고 있었다구!”
“검후도 좋지만, 역시 우리 서재장님이 최고야!”
“다시는 텔러를 무시하지 마라!”
대기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혜림도 당혹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어? 어어?”
분명, 그녀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상대방이 내보낸 컬렉터, 김한중의 실력은 강혜림도 긴장하게 할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유현이 그와 충돌하는 순간, 그녀를 불안에 떨게 만든 머릿속의 경보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 법도 하지만, 강혜림은 그런 생각조차 품지 못했다.
그것은 유현의 싸움 방법 때문이었다.
백련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변화무쌍한 공격을 가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현란하고 또 검사로서 동경하게 될 정도로 실용적이라서.
그녀는 그저 넋을 잃은 채, 그의 싸움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제기랄!”
바닥에 처박힌 김한중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이 차서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고, 그의 몸 곳곳은 먼지와 상처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너무나도 컸다.
-어라? 어라라? 한중 씨.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요?
“이, 이봐!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아가엘의 의문스러운 목소리와 무대 바깥에서 진풍이 당황스럽게 외치는 소리가 그의 등을 때렸다.
진풍도 물론이지만, 아가엘도 지금 이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닥쳐!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김한중은 이제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눈앞의 유현을 어떻게든 쓰러뜨려야만 했다.
김한중의 굳은 의지를 느낀 것인지, 유현은 백련을 다시 검의 형태로 되돌리며 피식 웃어 보였다.
“왜. 이제야 좀 진지하게 할 생각이 들었어?”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너는 너무 방심했어. 적어도 기회가 있을 때 바로 끝냈어야지.”
김한중의 피부가 울긋불긋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검을 쥔 양손의 근육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고 피부 위로 붉은 피와 같은 글자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관조자의 방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가엘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흐응. 설마, 여기서 특성을 완전히 개방해 버리다니. 설마 사원급 텔러를 상대로 저런 걸 꺼낼 줄은 몰랐지만, 이걸 꺼낸 이상 이제 끝이겠죠.’
아무렴, 김한중을 저렇게 만들고 키운 것이 그녀였다. 부서의 지원을 받으며 살인과 전투에 최적화된 이야기를 지원해 주고, 포인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전부 가르친 것이다.
비밀 병기로 키웠으니, 투자한 값을 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이쪽이 곤란하던 차였다.
“뭐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저쪽의 단검 든 녀석.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인가?”
김한중의 근육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과도한 [이야기의 힘]이 신체에 깃들다 보니,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었다. 전신에 고통이 내달리는 와중에도 김한중은 기쁨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젠 절대 안 봐준다!”
콰앙!
김한중이 지면을 박차자 보도블록이 박살 나며 흩어졌다.
일순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뒤이어 김한중이 움직인 궤적을 그리듯 붉은 잔상이 허공에 그려졌다.
유현을 중심으로 주변에 순식간에 거미줄 같은 붉은 선들이 그어졌다.
전부 김한중이 움직이고 있는 궤적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성령들은 꽤나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세상에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컬렉터가 지금까지 무명이었다니?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새로운 신성이 떠오를지 모른다고.
“하하하! 과연 내 모습을 쫓을 수나 있을까? 이제 후회해도 늦었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에 유현은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유현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자신의 목을 노리는 단검을 가볍게 피해 냈다.
동시에 김한중의 손목을 붙잡고 그대로 힘을 줘 바닥에 메다꽂았다.
쿠웅!
“크헉!”
김한중은 등에 내달리는 엄청난 고통에 숨을 내뱉으면서도,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누워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렇게 시시할 줄 알았으면, 봐주지 말고 진작 끝낼 걸 그랬어.”
그런 김한중을 내려다보는 유현의 목소리는 이 상황 자체가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듯 너무나도 평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