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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57화 (5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57화

“뭐지? 지금 어떻게 된 일이야?”

“검후는 어딜 가고 텔러가 대신 올라온 거지?”

객석에 앉아 있는 성령들이 술렁였다. 생긴 것은 다 같이 공통적인 새하얀 마네킹처럼 생겨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불가능한 모습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공통된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바로 놀라움이었다.

“강유현이 직접 싸우는 텔러라고는 듣기는 했는데.”

“뭐야, 그거 헛소문 아니었어? 아니면 뭐, 적당히 검후한테 얹혀서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유현의 서재에서 그의 시화를 보지 못한 성령들의 반응은 불신이었다.

그가 가호를 포기하고 싸운다는 소문은 꽤나 유명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막대한 환상을 품지는 않았다.

텔러가 싸우면 또 얼마나 잘 싸우냐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와, 미쳤다. 서재장님이 직접 나섰다고? 이건 꼭 봐야 한다.”

“리얼로. 이거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반대로 유현의 서재에 꽤나 오래 머무른 성령들은 예상 밖의 상황에 꽤나 당황해하면서도, 나름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본디, 성령에게 텔러의 존재라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컬렉터의 이야기였고, 텔러는 그저 보여 주기 위한 창구를 마련해 주기 위한 심부름꾼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그런 성령들의 생각을 근간부터 뒤흔드는 텔러가 바로 강유현이었다.

그는 텔러임에도 직접 무기를 들고 싸웠으며, 다른 텔러들과 다르게 자신의 컬렉터와도 친하게 지내며 나름 톡톡 튀는 캐미를 선보였다.

컬렉터를 도구나 다른 무언가로 여기기만 하던 텔러들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에 성령들이 흥미를 품는 것은 당연했다.

‘흐음. 역시, 다들 생각했던 대로 반응하고 있군.’

무대 위로 올라온 유현은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보통은 듣지 못하지만, 지금 유현은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전부, 콜로세움의 위를 날아다니는 백효의 존재 덕분이었다.

‘시야와 청각의 공유라. 역시 천계 부엉이라 이건가?’

천계 부엉이인 백효에게는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보는 시야와 듣고 있는 음성을 주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는 것.

지금 유현은 무대 위에 서 있었지만, 그의 눈은 하늘에서 콜로세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성령들은 오랜만의 시화대전이라 잔뜩 기대하고 있군.’

애초에 시화대전이라는 것이 천체주식회사에서 나름 권장하는 시스템이지만, 실제로 성사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애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려는 텔러가 거의 없던 탓이었다.

굳이 하더라도 이름도 모르는 듣보잡이 괜히 이슈를 만들어 명성을 얻으려던 시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시화대전은 그 수준이 지금까지 있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단 유현의 경우에는 최근 무시무시한 속도로 입지를 쌓아가는 텔러였고, 그 상대인 진풍은 비록 그 자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려 시화실의 8개의 부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떠오르는 신성 개인과 기존부터 존재하고 있던 부서의 대결.

이렇게 가슴 뛰는 구도가 앞으로 얼마나 있겠는가?

특히, 이렇게 대전이 성사된 콜로세움 내부에서는 성령들은 직접 메시지를 위해 포인트를 쓰지 않고도 원하는 말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으니, 제네시스 네트워크에 나름 답답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성령들에겐 숨통을 트게 해 주는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아무나 이겨라!”

“솔직히 검후 데리고 왔으면 좀 지루하긴 했겠네.”

“에이. 그래도 상대도 부서에서 밀어 주는 신인이라던데? 보통은 아니겠지.”

“그래 봤자, 검후한테 되겠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 누구는 유현의 편을, 또 누구는 펜타그램 부서의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마음은 오직 하나.

어서 빨리 이 데스매치를 보고 싶다!

“후우. 이거 참 놀랍네요.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번에도 제 상상을 벗어나 주는군요.”

관객석에 앉아 있는 성령 중 하나, 남들과 똑같은 외형을 지닌 사탄은 무대 위로 올라온 유현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 에덴 녀석들이 움직이며 그에 따른 대응을 하느라 바쁘게 지낸 탓에 참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이런 큰 이벤트를 벌이다니.

심지어 그 전후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마저도 그의 흥미를 돋게 했다.

역시,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텔러다.

“그렇다고 시화대전의 싸움에서 본인이 직접 나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유현이 생각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디, 제 기대를 만족시켜 줬으면 좋겠네요.”

사탄의 자그마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주위에 앉아 있던 다른 성령들은 이유 모를 오한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 * *

“이런 미친놈. 본인이 직접 나왔다고?”

진풍은 무대에 올라온 유현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당황한 것은 진풍의 컬렉터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맞은편에 서 있는 유현을 슬쩍 보더니 진풍에게 시선을 보내왔다.

“이봐, 아저씨. 내 상대는 검후라면서. 그런데 저건 또 뭐야?”

“나도 모른다.”

아저씨라는 말에 진풍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대체 왜 저 녀석이 나온 건지, 나도 이해가 가질 않아. 애초에 녀석은 그 검후라는 년과 계약을 맺은 텔러란 말이다.”

“헐. 텔러라고? 그 검후의? 그럼, 더욱 신기한데? 보통 여기에 텔러가 올라와도 되는 거야?”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보통 그렇게 하는 녀석은 없잖아. 하하. 이거 재미있네. 저거 검까지 찬 거 보면 아무래도 진짜로 본인이 싸우려고 올라온 거 같은데.”

청년의 짐작은 정확했다. 그는 유현이 자신의 상대라는 것을 그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느꼈다.

정작 진풍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꽤나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아, 아저씨.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여기서 뭘 한다고 상대가 딱히 바뀔 거 같지는 않잖아.”

“그건…….”

“저쪽도 나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왔겠지. 그리고 애초에 잘된 일 아니야? 그 검후 보다는 적어도 녀석을 쓰러뜨리는 게 상대하기 쉽잖아.”

진풍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아니라 컬렉터의 말에 역으로 설득됐다.

‘그래. 생각해 보면 굳이 놀랄 필요가 없잖아? 녀석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하기 쉬워진다는 이야기고. 어차피 내 목적은 이 대전에서 이기는 거니까.’

무엇보다 이쪽의 컬렉터도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니, 오히려 한시라도 빨리 싸우고 싶어 했다.

“아하하. 텔러와 싸우게 될지 몰랐는데, 이거 의도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네. 텔러는 과연 죽이면 어떤 느낌일까?”

그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살인을 저질렀다. 전부 펜타그램 부서의 위용을 등에 업고서 벌인 살인이었다.

주 대상은 당연히 일반인부터 컬렉터까지 다양했다. 특히 최근에는 정7품의 컬렉터를 무참히 도륙하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이 궁금해졌다.

가호를 받고 있는 텔러는 과연 죽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이 바로 그 기회였다.

“후우. 그래 좋아.”

진풍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받아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즐기지 않으면 손해였다. 그의 목적은 유현의 완전한 파멸. 이런 무대 위에서 이쪽의 비밀 병기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면, 그것만큼 완벽한 전개가 또 없다.

심지어, 이번 대전은 무려 데스매치다. 어느 한쪽에 죽어도 책임을 물지 않는 가장 자극적인 방식이었다.

이건 녀석을 합법적으로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가서 확실히 죽여야 한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거든? 멋대로 명령하지 마.”

“…….”

진풍은 입술을 씰룩이며 뭐라고 한마디 쏘아 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 * *

[야. 정말 이대로 괜찮겠어?]

‘상관없어.’

나는 맞은편에 올라온 녀석을 확인하며 백련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저 녀석, 아무리 봐도 마냥 무시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닌 거 같은데.]

백련의 시선은 정확했다. 나도 펜타그램 부서에서 그렇게 숨기고 있던 녀석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녀석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책.

그것은 분명 상위 10% 안쪽에 드는 것을 상징하는 은색이었다.

‘심지어 책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약간이지만 금색도 섞여 있어.’

안쪽의 내용물을 살펴보면 더더욱 가관이었다.

이름: 김한중

특성: [백색예배당의 살인마]

칭호: 없음

보유 이야기: [지옥에서 돌아온 자] [인식저해자] [구밀복검]

스킬: [살인귀의 검] [피의 희열] [감각 극대화] [안개은신] [어둠의 기습] [과다출혈]

‘이거 완전 미친 살인광이었잖아?’

보유한 스킬이나 이야기만 봐도 녀석의 성향이 어느 쪽에 특화되어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녀석의 백색예배당의 살인마라는 특성이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잭 더 리퍼인가?’

여기서 말하는 백색예배당이라는 것은 영국의 지명 중 하나인 화이트채플(whitechapel)을 그대로 풀이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화이트채플은 바로 런던의 유명한 살인귀, 잭 더 리퍼가 활동하던 구역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이야기 중 [지옥에서 돌아온 자]도 마찬가지. 엘렌 무어의 ‘프롬 헬’에서 획득한 이야기가 분명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녀석의 이름.

‘설마 나중에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 미치광이 연쇄살인마가 펜타그램 부서에서 몰래 키우던 컬렉터였다니.’

앞으로 약 1년 뒤. 한국은 꽤나 시끄러운 일에 휩쓸리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귀에게 여러 컬렉터가 살해당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사상세계에 들어가서 죽은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해당했기에 사건의 여파는 컸다. 심지어 죽은 컬렉터들은 나름 중견급이라 불릴 정도는 되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잡히지도 않았는데.’

종말이 올 때까지, 이 미치광이 살인귀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녀석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종말의 이후다. 누군가 밝혀낸 것도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밝히며 날뛰었던 것이다.

아마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더는 숨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녀석의 최후는 별거 없었다. 강한 놈들을 죽이고 싶은 기묘한 욕망을 지닌 놈이 최도윤을 건드리고 만 것이었다.

그 최후는 뻔한 것이었지만, 중요한 건 녀석은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최소 수천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왔다는 것이었다.

설마. 이 자리에서 그런 녀석과 마주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피 냄새나는 녀석을 몰래 키워 낸 부서가 펜타그램이라.’

점점 펜타그램 부서가 종말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내가 직접 나서길 잘했어.’

원래라면 혜림 씨를 내보내야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려서 내가 대신 나가기로 했다.

혜림 씨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여기서 한 번쯤은 이슈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일부는 내 실력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지.’

컬렉터와 함께 싸우는 텔러라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하지만 일부 성령들은 나의 실력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내가 직접 싸우지 않고 검후에게 묻혀가는 게 아닌가 하는 게 그들의 주된 의견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마련된 무대에서 보여 줄 생각이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그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말이야.

[대전이 시작됩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또 다른 자들을 향한 경고다.

이곳 어딘가에 숨어서 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을 펜타그램 부서 녀석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내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 녀석인지, 그리고 함부로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보여 줄 생각이었다.

[필드가 형성됩니다.]

콜로세움의 무대 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곳곳에 모형 건물이 솟아나고, 사람의 형태를 한 검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며 행인들처럼 끝없이 길을 돌아다녔다.

중앙에 우뚝 선 시계탑과 주위를 감싸는 희미한 안개까지.

‘이거 참.’

이곳이 어딘지 알아챈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어떤 환경에서 싸울지는 정하지 않았는데, 설마 이런 수작을 부렸을 줄이야.

‘런던의 화이트채플. 그야말로 살인마 잭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로군.’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노린 것 같지 않은가.

진풍 녀석이 그랬을 리는 없고, 뒤에서 누군가 몰래 수작질을 부렸을 것이다.

‘딱히 부정을 저지른 건 아니지. 애초에 필드가 그렇게 크게 중요하게 비치지는 않았으니까.’

성령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에 대전은 그대로 진행됐다.

내 정면에서 서 있던 김한중은 이미 인파에 섞여서 사라진 뒤였다.

때마침, 시계탑의 시침과 분침이 12시 정각을 가리켰다.

안개 속을 타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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