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56화 (5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56화

[시화대전이 정식으로 수립되었습니다.]

[시스템의 권한에 의해, 정해진 방식대로 대전을 신청하게 됩니다.]

[방식은 ‘데스매치’입니다.]

진풍이 대전을 신청하고 유현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제네시스 시스템이 반응하고,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것은 우주에 펼쳐진 거대한 콜로세움이었다. 객석에서는 마네킹처럼 생긴 성령들의 아바타가 앉아 있었다.

[15분 뒤 대전이 시작됩니다.]

시화대전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그때까지 양쪽 진영은 어떻게든 휴식을 취하거나 상대와 어떻게 싸울지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 * *

“흐음. 이거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네요.”

진풍에게 이 모든 일을 지시했던 요정을 닮은 텔러, 아가엘은 자신의 [관조자의 방]에서 유현과 진풍의 대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머무는 관조자의 방은 여타 텔러들 보다도 훨씬 더 거대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은 물론이거니와, 한쪽 벽에는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모니터가 수십 개는 달려 있었다.

모니터에서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유현과 진풍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최근 갑자기 떠오르는 텔러라고 해서 궁금했었는데, 상상 이상인걸요?”

아가엘이 처음 유현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그저 그런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텔러면서 컬렉터를 잘 만나,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되는 경우는 적지 않게 있었다. 그녀는 유현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컬렉터를 보는 안목은 있겠구나 싶어서, 녀석을 이쪽으로 데려오라고 진풍에게 일을 시켰다. 정 안 된다면 늘 그래 왔듯, 펜타그램 부서의 방식대로 처리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만만치 않은 후배였다는 소리죠.’

가호마저 포기하면서 컬렉터와 함께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녀도 순간이지만, 믿지 못했다. 하지만 [제네시스 네트워크]에 떠돌아다니는 클립 영상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오히려 보란 듯이 그것을 무시하려는 녀석. 분명 성령님들의 입장에서는 저런 미친놈이 아주 제격이겠지만요, 이대로 놔두면 저희 부서에 꽤나 나쁠 거 같단 말이죠.’

아가엘은 유현을 영입하기보다는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녀석은 품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녀석이었다.

마침 진풍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스캐빈저 녀석들 몇 명을 이용해서 행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전부 실패했지만.

‘하지만, 뭐 괜찮아요. 저쪽이 그만큼 탐스러운 먹잇감이 되어 줬으니, 이쪽은 잡아먹으면 그만이니까.’

물론, 그녀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 뒤에서 지원은 해 주지만, 행동으로 나서는 것은 진풍이었다.

이번 일을 성공해서 진풍의 인기가 올라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 바보 같은 후배보다도, 제가 빌려준 비밀 병기가 관심을 다 가져갈 테니까요.’

결국, 지금의 모든 것들은 그녀가 짜 놓은 판이나 마찬가지.

최근 급부상하는 검후라는 컬렉터를 잡아먹고, 이쪽에서 비밀리에 키운 컬렉터를 떠오르는 신성으로 만든다.

“그래도 호기심 때문에 구경하고 있는데, 조금은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네요.”

작고 귀여운 아가엘이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떤 짐승보다도 흉포하게 빛났다.

* * *

“유현 씨.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대전을 앞둔 대기실. 강혜림은 갑자기 성사된 시화대전에 꽤나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이 모든 상황이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즉석에서 번갯불에 콩 굽듯이 성사된 일이었다는 것이 그녀의 걱정을 더욱 부추겼다.

“괜찮으니까 한 거죠.”

정작, 이 모든 일의 주범인 유현은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이나 경각심마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

“이건 오히려 잘된 일이거든요.”

“잘된 일이라니요.”

“혜림 씨의 [천뢰검]과 제가 새로 얻은 무기 [백련]을 선보일 기회니까요.”

당초 계획대로라면 둘은 이미 적당한 사상세계 하나를 잡아 클리어에 열을 올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진풍의 등장과 함께 유현은 곧바로 계획을 변경했다.

저쪽에서 알아서 제물이 되기 위해 찾아왔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그, 그래도…….”

강혜림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짜 맞춰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합당한 이유는 없다. 불안하다고 느낀 것은 전부 그녀의 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근 특성을 완전히 각성한 이후 어지간한 감이 다 들어맞았다는 점이 걸렸다.

강혜림은 현재 자기도 모르게 인간의 오감을 초월한 여섯 번째 감각에 눈을 떠 가고 있었다.

그런 강혜림의 표정을 읽은 유현이 물었다.

“걱정되십니까?”

“네, 네?”

“솔직하게 대답하셔도 됩니다. 뭐, 그럴 만도 하죠.”

사실,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강혜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서재에 찾아온 시청령들, 그 들 중에서 일부는 유현이 너무 성급하게 대전을 승낙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었다.

대전을 받아 주는 조건으로 5,000TP나 되는 포인트를 받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니. 알면서도 일부러 당해 주는 거?]

‘어. 그거.’

유현이라고 저들의 속내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일부러 당해 주는 것이었다.

‘분명 저쪽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나한테 그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건 거겠지.’

[서재의 권한과 생사이탈권 전부 걸었던 거 말이지? 확실히 그건 나도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

‘왜?’

[왜냐니. 너, 저쪽이 대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고 그러는데?]

백련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진풍이 자신만만하게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저쪽도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부서에 소속되어 있으니, 분명 뒤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이건 개인 대 개인처럼 보이지만, 파고들면 결국 너 혼자와 한 부서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라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내 기억을 읽었다면 너도 충분히 알지 않아?’

[애초에 계약으로 읽은 과거는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려 주지 않으면 나도 모른다고.]

‘완벽한 건 아니었구나.’

과거를 읽었다면 유현이 지니고 있는 책을 보는 능력도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백련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모르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있어.”

유현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강혜림에게도, 그리고 백련에게도 하는 소리였다.

방법은 있다. 애초에 그런 대비도 없이 진풍의 뜻대로 대전을 받아 준 것이 아니었다.

“저쪽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확실해. 아마 뒤에서 이 사태를 종용한 녀석이 있겠죠.”

그리고 그자가 어디선가 몰래 이쪽의 상황을 훔쳐보고 있을 거라는 것까지도.

유현은 그걸 알기에 더욱 당당하게 나섰다.

목숨과 서재의 모든 것을 걸어라……라고.

물론, 진풍은 처음에 서재의 권한을 걸라고 했을 때 당황했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의 서재의 권한을 다 지니고 있지 못했다. 서재의 권한은 펜타그램 부서의 상급자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진풍은 그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녀석을 자극했지.’

결국, 진풍은 유현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였다.

자신이 이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진풍은 애초에 자신이 서재의 모든 것을 빼앗길 거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혜림 씨. 제가 지난번에도 말했었죠?”

“지난번이라면 어떤 거요?”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똑똑한 사람도 멍청한 사람도 아니다.”

바로, 어중간하게 아는 녀석들이다.

“네. 기억해요.”

강혜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때의 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렴 그녀에게 있어서도 첫 살인을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왜요?”

“지금도 그때의 일의 연장선상이라는 소립니다. 결국, 그 진풍이라는 녀석도 어중간하게 아는 놈이죠. 아니 녀석뿐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서 남들 몰래 숨어있는 주동자, 거기에 더해 그 주동자가 소속된 부서까지 전부 다.”

그들은 유현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계략에 휘말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서 일부러 당해줬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강혜림과 유현, 백련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유현은 그 사실을 정정해 주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놈들이 자신을 얕잡아 보고 우습게 보면 볼수록, 그는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토록 무시하고 깔봤던 녀석에게 역으로 무릎을 꿇게 됐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참을 수 없었다.

[……이거 진성 또라이네.]

‘칭찬 고마워.’

[칭찬 아니거든. 넌 정말 미쳤어.]

백련이 보기에 유현은 정상인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평소에는 정상이지만, 이런 상황만 되면 사람이 바뀐 것마냥 돌변한다.

백련은 비록 자신이 기억이 없는 데다가 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보는 안목은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 그녀가 느낀 유현은 선량함이라는 가면 속에 끝없는 어두운 무언가를 품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악의? 적의? 증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유현의 적이 된다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무서움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놈을 못 알아보고 너한테 덤빈 텔러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네.]

‘미친놈이라.’

자신을 그렇게 칭하는 백련의 말에도 유현은 화를 내거나 지적하지 않았다. 사실, 유현 자신도 자신이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미쳐도 상관없어. 아니, 이런 짓을 저지르려면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지.’

세상을 바꾼다.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자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발상이다.

이제는 사라진 미쳐 버린 자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

그에게 있어서 미쳤다는 것은 최고의 찬사나 마찬가지였다.

‘날 뭐라고 불러도 개의치 않아.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대전의 남은 시간까지는 앞으로 5분.

“백효야. 부탁한다.”

부엉.

유현은 자신의 어깨에 앉은 새하얀 솜뭉치에게 말을 걸었다. 솜뭉치, 천계 부엉이인 백효는 유현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아올라 대기실을 벗어났다.

* * *

“큭큭큭. 멍청한 자식.”

주어진 대기실에 앉아 있던 진풍은 희열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려보냈다. 강유현, 그 멍청한 녀석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대전 신청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것을 위해 피 같은 5,000TP를 소모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기면 그 이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

‘검후가 있다고 해서 너무 기고만장해졌구나. 뭐, 확실히 그년의 실력은 내가 봐도 대단하기는 했지.’

검후 강혜림의 재능은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컬렉터와 차원이 달랐다. 고작 몇 번의 시화만으로 그녀는 성령들 사이에서도 팬덤이 생길 정도로 매력적이고 강했다. 아마 이대로 놔둔다면 중견급 컬렉터는 물론이거니와, 시간이 지나면 상급 컬렉터의 자리까지 오를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오지 않겠지만 말이야.’

진풍은 자신의 멋들어진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대기실 구석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 후드 티를 뒤집어쓴 한 청년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어딘지 모를 평범한 인상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성실해 보이는 착한 청년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진풍은 저 가면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다.

‘아가엘님도 참. 설마 부서에서 저만한 녀석을 키워 내고 계셨을 줄이야.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진풍은 일전에 목숨을 위협당한 일은 머릿속에서 싹 지운 뒤였다.

그는 부서에서 자신에게 저만한 컬렉터를 지원해 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늘을 날아다닌 것만 같이 기뻐했다.

‘크흐흐. 역시, 그분들도 나의 재능을 알아보신 거야. 이대로 가만히 놔두기엔 아까웠던 거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확실히 이기는 판을 깔아 줬겠어?’

진풍은 벌써부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 기분 좋은 도취감은 대전의 시작이 1분을 남았다는 알림에서 정점을 찍었다.

“야. 시간 됐다. 움직이자.”

“하아. 귀찮게.”

인상이 좋은 청년은 진풍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태도에 진풍은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대전이 시작됩니다. 양 팀은 각자 대기실에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대전 시작을 알리는 음성이 콜로세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진풍은 이미 자신의 컬렉터를 이끌고 무대 위에 오른 상황.

데스매치를 구경하기 위해 잔뜩 모인 성령들이 흥분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왔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저, 저 녀석……!”

진풍은 맞은편에 올라온 상대를 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이쪽이 컬렉터를 내보내니, 상대도 그에 맞춰 검후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올라온 것은 유현이었다.

그가 한 손에 검을 쥐고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