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54화 (5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54화

[살리오 고대 유물 장검(각성)]

아주 오래전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거대한 살리오 제국에서 만들어낸 무구입니다. 오랫동안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 차원 상점의 구석에서 썩어 가던 것을, 한 실력 있는 각인사가 가치를 알아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마도공학으로 정점을 찍었던 살리오 제국의 마도공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에게 막대한 힘을 주거나, 혹은 그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될 것입니다.

검 내에 거대한 자아가 잠들어 있습니다.

등급: 신화

-힘, 민첩, 체력 증가.

-적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확률 대폭 증가.

-마법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마법을 베어 낼 수 있습니다.

-사용자와 함께 성장합니다.

-[형상변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형상변환]

원하는 형태로 무구를 변화시킵니다. 제한 시간 없음. 쿨타임 없음. (단, 질량과 부피의 2배를 초과하는 건 불가)

[특수 창]

-(사용자의 수준이 낮아 잠겨 있습니다)

-(사용자의 수준이 낮아 잠겨 있습니다)

-(사용자의 수준이 낮아 잠겨 있습니다)

‘대박이다.’

떠오르는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신화 등급의 무구. 이것은 지금 지구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검 자체의 능력도 뛰어나고 부가 효과도 엄청나다. 무엇보다 검뿐만이 아닌 원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데다가, 무게와 부피도 2배까진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특수 창이 아직 잠겨 있지만, 이것은 지금 내 수준이 검을 완전히 다루기엔 미숙해서겠지.’

여기서 사용자와 함께 성장한다는 문구가 내 눈을 끌었다.

‘내가 강해질수록, 내가 품은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잠겨 있는 특수 창이 열리게 된다.’

이 특수 창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직 나의 경험과 내가 품은 역사다. 조건이 달렸다는 것 자체가 아쉽지만, 그거까지 바라기에는 내가 너무 배가 부른 거겠지.

‘그보다, 이 검이 원래 이렇게 좋았나?’

각성시킨 검의 성능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게 원래 그렇게 좋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내가 종말에서 봤던 살리오 장검은 이렇게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등급도 신화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고평가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잠깐. 녹을 벗겨 내고 각인을 끝냈는데, 아직 고대와 유물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고? 그렇다면 설마…….’

뒤늦게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혼성계에서 무기에 고대나 유물, 전설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그 자체에 [이야기의 힘]이 깃들어 프리미엄 보너스가 붙는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경우였다. 멸망한 과거 제국의 이야기를 내가 최초로 각인시킨 탓에 그 힘이 고스란히 깃들어 기존의 것보다도 훨씬 더 강화된 살리오 검이 탄생한 것이다.

‘의도치 않은 추가 요소로군.’

미래의 정보를 아는 나조차도 계산하지 못한 요소. 하지만 세상일의 모든 것들이 다 예상대로만 흘러가면 그거대로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선물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때 받아야 더욱 기쁘고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지금 내게 살리오 장검이 갖는 부가 효과는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잠깐만. 그런데 검 내에 거대한 자아가 잠들어 있다고?’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검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손에 쥔 살리오 장검의 위로, 자그마한 책이 하나 떠오른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검이 잘게 떨더니, 이내 우렁찬 여성의 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해방이다아아아아아!!]

아.

나는 검이 소리 지르는 걸 들으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전개를 통해 얻은 검은 당연히 말할 줄 아는 에고 소드여야지.

내가 이걸 깜빡했네.

* * *

갓 태어난 검에는 이름이 없다.

아니, 이 녀석의 경우에는 이미 과거에 한 번 이름이 있었겠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사라졌다는 것이 옳은 말이리라.

검이랑 가만히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관조자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네가 이 검에 깃든 자아라는 거야?”

[엣헴. 정확히 자아라기보다는 마법과 공학의 정수가 담긴 자율 사고 촉진 인공 지능에 가깝지.]

그게 자아잖아.

나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걸 가까스로 삼켰다.

아직 대화를 제대로 나눠 보지는 못했지만, 이 녀석이 꽤나 수다스럽고 자긍심이 강한 성격이라는 것은 말투나 목소리로도 알겠다.

[그래도 설마 놀랐어. 그 벌써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니. 살리오 제국도 결국 멸망했구나. 나는 한평생 갈 줄 알았지.]

“별로 슬픈 기색은 없네?”

[애초에 검인 내가 국가에 무슨 소속감을 느낄 리가 없잖아. 아니, 느꼈었나? 모르겠다. 과거의 기억이 많이 결여되어 있거든. 아무래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탓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너에겐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겠네!]

오랫동안 잠이 든 반동 때문인지, 녀석은 꽤나 수다스러웠다.

[마치, 오랫동안 꿈을 꾼 기분이야.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정신만 말똥한 상태라고 해야 하나?]

“검도 꿈을 꾸나?”

[나를 일반적인 검이라고 보지 말아 주겠어? 꿈 정도야 얼마든지 꾸지. 나는 당시에 지고의 검이라고 불렸다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아마 비슷할 거다.”

녀석에게 매겨진 시스템의 등급만 보더라도 충분했다. 신화급이라는 것은 시스템이 그만큼 이 녀석을 고평가한다는 소리.

그보다 설마 꿈까지 꿀 정도로 강렬한 자아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21세기 현대 과학으로도 이룩하지 못한 인공 지능을, 멸망해 버린 고대 제국이 이룩했었다니.

에고 소드는 멸망한 제국의 꿈을 꾼다. 마치 SF소설 제목 같다.

나는 슬쩍 검의 근처에 떠 있는 책을 살폈다.

‘이거 참 놀랍네.’

책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만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지성체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은 데.

‘설마, 검에 책이 있을 줄이야.’

그 정도로 살리오 제국이 만들어 낸 이 인공 지능이 지성체에 근접했다는 소리인가. 나도 어렴풋이 전해 듣기만 했는데, 이쯤 되니 실제로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졌다.

‘아마, 그러지는 못하겠지.’

보통 멸망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기록이 있거나 구전된다면 [사상세계]를 통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 하지만 살리오 제국은 지금은 전해지지도 않고, 기록되지도 않았다. 사상세계로 다시 나타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할 거다.

‘일단은 이 검에 대한 건가.’

[아무튼, 네가 이번에 내 주인이라는 건 알겠어. 그래도 놀랐네. 설마 잠들어 있는 나를 다시 깨울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가 남아 있을 줄이야. 그래서 이름은?]

“강유현. 천체주식회사 소속 텔러다.”

[음. 텔러…… 뭐라?!]

내 말을 들은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야, 잠깐만. 텔러가 무슨 검이야! 아이고! 겨우 이렇게 깨어났는데 팔려 가겠구나!]

“걱정하지 마. 너를 버리거나 따로 팔 생각은 없으니까. 애초에 너를 쓰려고 내가 이렇게 만든 거야.”

[뭐?! 지금 그게 뭔 소리야?! 텔러가 무슨 검을 써!]

“나는 써. 조만간 보면 알게 될 거야.”

지금은 서재를 닫은 상황이라 아직 녀석에게도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 것인지, 에고 소드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보다 네 이름은?”

[없어. 아니, 정확히는 잊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너무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일부 기억이 온전치 않거든.]

“그런가, 흠. 그렇다고 계속 너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뭣하면 내가 이름을 지어 줄까?”

[그게 정말이야? 그거라면 나야 고맙지. 나를 깨웠다는 것은 각인사로서의 재능도 있고, 그렇다면 이름도 잘 지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녀석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마도공학검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녀석은 기계다운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 외형이었다. 정확히는 검신도 손잡이도 하얗다. 디자인은 꽤나 신경을 써서 고풍스럽지만, 그것이 전부.

하지만 마치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얀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백효 녀석이 떠올랐다.

“백련(白蓮)”

손잡이나 힐트의 디자인이나 색깔을 보니, 마치 새하얀 연꽃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녀석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 줬다. 물론, 백효의 동생이라는 느낌도 들게끔.

[백련이라. 나쁘지 않은 이름이네. 좋아. 강유현. 이제부터 네가 나의 주인이야.]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드는군.”

자아가 강한 에고 소드라서, ‘넌 내 주인이 아니다!’ 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괜한 기우였나 보다.

내가 백련의 이름을 지어 주고, 녀석이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 둘의 사이에 계약이라는 하나의 각인이 생성되었다.

[살리오 고대 유물 장검-백련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잊혀진 것을 계승하는 자 이야기를 획득했습니다.]

[고대 장검의 자아를 완전히 일깨웠습니다.]

[각인사 이야기가 각인사 칭호로 바뀝니다.]

[3,000TP를 획득했습니다.]

단지, 계약을 맺었을 뿐인데도 이야기가 순식간에 칭호로 바뀌었다. 그 정도로 이 녀석이 정말 대단한 검이라는 걸 의미하는 거였다.

백련을 손에 쥔 순간 녀석의 이야기가 내게 흘러들어 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녀석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까지도.

고대 제국의 계약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품으면서 나는 이야기가 전해 주는 청량감을 느꼈다.

문자가 정립되고 문장이 된다.

문장은 이어져 문단이, 문단은 뭉치고 뭉쳐 하나의 이야기가.

그러한 완성된 이야기가 내 몸에 쌓여 간다.

그렇게 일련의 과정을 끝내고, 감았던 눈을 뜨자.

[어? 어어어어?]

백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기괴한 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니 무슨 일이고 자시고 간에. 강유현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녀석의 말에, 나는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환생자라니?]

그것은 내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비밀이었다.

* * *

“대체…….”

어떻게 알았냐고 묻기도 전에 걸리는 점이 있어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백련은 주인 계약을 통해 내 과거를 읽게 된 것 같았다. 내가 지닌 이야기가 녀석에게 흘러 들어갔었으니까. 다만, 완전히 다 읽은 것이 아니라 녀석은 단편적으로 드문드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죽었다 다시 태어난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소리.

결국, 숨길 것도 없기에 나는 녀석에게 내 비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흐음. 그랬었구나. 뭐, 범상치 않은 텔러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면 나를 찾아낸 것도 그 미래 지식의 힘 덕분?]

“그런 셈이지 뭐. 다만 미래에 너를 사용하는 녀석은 네가 에고 소드인 걸 모르는 낌새였는데,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네.”

[아마, 그건 네가 지닌 각인사라는 특징 때문일 거야. 미래의 내 주인이 될지도 몰랐던 녀석은 나를 어중간하게 깨운 거겠지.]

“과연. 그런 건가?”

[후아. 그보다 참 놀랍네. 설마, 새로 생긴 주인이 이렇게나 대단한 양반이었을 줄이야.]

“별로 대단하지는 않아.”

아직은, 말이지.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좋네. 왠지 옛날 주인은 고리타분했던 것 같기도 하거든! 그리고 텔러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했어. 녀석들이 과연 어떤 종족인지. 그 시화라는 것은 또 어떻게 하는지.]

“앞으로 질리도록 보게 될 거다.”

묘하게 나와 백련은 죽이 잘 맞았다. 그 이상으로, 누구도 몰랐던 내 진짜 과거와 모습을 알고 있는 이해자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무튼 이걸로 나는 백련의 각성을 끝냈고, 이를 통해 막대한 포인트를 부가적으로 더 얻게 됐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나야말로.]

그렇게 내게 새로운 동료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강혜림의 [천뢰검] 각성과 백련의 각인 때문에 나는 요 며칠간 시화를 내리 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성령들은 상당히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나마 공지를 미리 올려 둬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난리가 났겠어.’

잠시 며칠간 쉰다는 공지에 물론 내 시화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성령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얘가 미쳤네, 배가 불렀네 하는 반응은 기본 옵션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을 이미 우려하고 있어서 뒷말을 덧붙였었다.

-앞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검후와 저를 기대해 주십시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성령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그들은 이제 내가 이유 없이 쉬는 것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요소를 보여 주기 위해 준비하려고 쉰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덕분에 쉬는 동안에도 구독령의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났다.

서재를 개방하는 순간, 알림을 받은 성령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몰려왔다.

순식간에 시청령의 숫자가 2천 명을 돌파했음에도 오르는 속도가 전혀 줄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잠시 시화를 쉬는 그사이에 새로운 유입이 생긴 것이었다.

[검하!]

[드디어 검후를 다시 보게 됐다!]

[강유현 텔러님 오늘은 어떤 시화를 보여 주십니까?]

[오랜만이에요.]

포인트의 후원과 함께 쏟아지는 직접 메시지들.

그것을 확인하며 나는 오늘의 시화에 관해서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강유현 사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내 시선이 자연스레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이곳에 강혜림과 나 말고 따로 올 사람은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싹 가라앉았다.

“……진풍.”

펜타그램 부서의 텔러 진풍.

일전에 나를 노리던 녀석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