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52화
“그쪽이 그 말을 대체 어떻게…….”
신은숙 여사는 내가 꺼낸 말이 자식에게 누누이 했던 말과 똑같았기에,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내 할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모든 부모님은 자식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죠. 아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아기 때부터 키워 왔는데, 어떻게 모를까요. 하지만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자식의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닙니다.”
“제가 뭘 모른다는 거죠?”
“가능성.”
나는 딱 잘라서 그렇게 말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도 하죠.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속마음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능성, 그들이 앞으로 지닐 무궁무진한 능력도 여기에 속하죠. 묻겠습니다. 딸 유라가 정말 컬렉터로서 재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하죠.”
“정말로 확신하십니까? 자신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그 진짜 재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신다고 자부하십니까?”
“그건…….”
내가 강하게 나오자 신은숙 여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도 알고 있다는 소리다. 누군가의 재능과 가능성이라는 것은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식이 위험한 길을 가게 할 수는…….”
“그 마음도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안 됩니다.”
아마, 나도 비슷한 위치에 섰다면 저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나의 삶을 송두리째로 흔드는 경험을 한 뒤로는 달리 생각하게 됐다.
“만일 어중간한 마음가짐을 꿈이라 착각하고 있다면, 분명히 접게 만드는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로 누가 뭐라 하더라도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합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 길이 아무리 위험하고 괴롭다 하더라도, 그 끝에 자신의 목표가 있다면.”
몇 번이고 넘어지고,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게 해서도 안 된다.
절대로.
“당신은…….”
나의 이 말에서 무언가를 읽어 낸 것인지, 신은숙 여사는 어딘가 걱정 어린 표정이 되었다.
“괜찮으신 건가요.”
“저 말입니까?”
“네. 그, 방금 순간이지만…….”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오늘 처음 보는 텔러인 저를?”
“네? 아, 그게…….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당황스러워하는 신은숙 여사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강철 같은 어머니가, 이렇게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게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고마움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당신은 결국, 이렇게 된 저를 여전히 걱정해 주시네요.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그 강유현이 아니다.
이제는 안다. 내 꿈과 내 목적,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러니, 어머님은 유라를 조금만 더 믿어 주세요. 그녀의 꿈을 지적하기보다는 응원해 주세요. 비록 걱정된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내린 선택입니다. 어중간한 각오가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 가요.”
결국, 신은숙 여사는 고개를 저으며 백기를 들었다.
“후우. 네. 확실히 유현 씨의 말 대로네요. 저는 어쩌면, 어머니라는 이 권위를 이용해서 제 딸의 가능성을 막고 있는 거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웃기는 일이네요. 누구보다도 올바르게 살라고 말했던 제가,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죠. 사람도, 텔러도, 그리고 저 하늘의 성령들도 마찬가집니다.”
성령들도 후회하고, 괴로움을 느끼며,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들도 그러는데, 사람이라고 오죽하겠는가?
“하아.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 아니 텔러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말을 하게 될 줄이야.”
“하하. 그런가요.”
“네. 묘한 기분이에요. 마치, 다 큰 자식을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다 털어놓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고 나니, 꽤나 개운하네요.”
“……그렇군요.”
나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웃으며 넘겼다.
사실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어머니와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막상 ‘만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이따가 유라가 오면 한 번 더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어머님이라면 분명 옳은 선택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제가 장담하죠.”
그렇게 대화가 거의 무르익어 가는 순간, 카페를 나갔던 강유라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강혜림이 그녀를 데리고 돌아온 것이었다.
“유라야.”
“…….”
강유라는 여전히 심통이 난 채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눈물을 흘릴 때와 다르게 심적으로 꽤나 차분해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것보다 먼저, 내가 입을 열었다.
“어머님. 잠시 제가 유라와 따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제가 텔러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는 유라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주시겠어요?”
“네.”
“……그럼, 부탁드려요.”
얼마든지요.
나는 약간 떨어져서 이쪽을 보는 강유라를 향해 손짓으로 불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옆에서 혜림 씨가 귓속말로 뭐라고 말을 건네자 그제야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혜림 씨와 어머니는 자리를 비켜 줬고, 그렇게 나는 강유라와 일대일로 마주 보며 앉게 됐다.
“음, 그래. 일단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컬렉터가 되고 싶다고 했었지?”
“네. 그랬었죠.”
“왜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그야…… 멋지니까.”
“단지, 그것뿐?”
“그게…….”
유라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솔직하게 말해도 나는 비웃거나 하지 않을 거니까.”
“진짜요?”
“응. 진짜.”
“후우. 알았어요. 그, 그러니까 제가 왜 컬렉터가 되고 싶냐면요. 그 멋지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는…… 자신의 삶에 저렇게 떳떳하고 당당한 그 모습이 눈부셔서,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좀 웃기죠?”
“아니. 전혀 웃기지 않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오빠는 제 꿈을 비웃지 않으시네요.”
“왜냐면 나도 너랑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거든.”
“어, 진짜요?”
“응. 내가 텔러기는 하지만, 좀 별난 녀석이라서 말이야.”
“헐.”
강유라는 설마 텔러인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작게 웃었다. 저렇게 보니까, 또 여동생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야. 꿈을 갖는 것은 가능해. 남들이 비웃을 수도 있지. 중요한 건 네 마음가짐이야.”
“내, 마음가짐.”
“그래. 하나만 물을게. 너는 컬렉터가 되기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어?”
“목숨이라니…….”
갑자기 무거워지는 주제에, 강유라는 꽤나 당혹스러운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그녀는 아직 컬렉터에게 환상을 품은 14살 소녀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벌써부터 현실을 알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꼭 필요했다.
“유라야. 그거 알아? 네가 그렇게 동경하는 검후, 혜림 씨는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 몇 번이나 사선을 넘으며 싸웠어. 자신의 검에 피를 묻힐 각오를 끝내고, 자칫 잘못하면 정말로 죽을 수 있는 싸움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지.”
“…….”
“모든 컬렉터가 그러진 않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성공한 컬렉터는 그럴 거야. 무서움을 견디고 참고, 이겨 내야 하지. 그래서 묻는 거야. 너는, 그럴 각오가 됐어?”
“저, 저는…….”
내가 너무 무섭게 몰아세워서일까. 강유라는 순식간에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으음. 채찍은 이쯤에서 해야겠군.
“당장에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알아 뒀으면 해서 하는 소리지. 언젠가 너는 내가 한,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내려야 할 거야. 내가 묻지 않아도, 너 스스로 묻게 되는 날이 오겠지.”
“…….”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 거야. 결국, 어떤 선택을 고르더라도 대답은 해야 할 테니까. 나도, 혜림 씨도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오빠는…… 제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할 수 있을 거라니?”
“그러니까, 만약에 제가 정말로 진지하게 컬렉터가 되고 싶고, 각오를 끝냈다면. 제가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흠.”
사실 그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아직 확신하지 못한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가 품은 그 일말의 불안감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만일, 자신이 선택한 길의 끝이 결국 낭떠러지기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고민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걸 감안해도 나아가겠지만, 아직 자아가 채 형성되지 않은 그녀에게 같은 대답을 바라는 것은 너무 잔혹한 처사겠지.
“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명,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요?”
“텔러인 내가 장담하지. 너도 할 수 있어.”
예전의 나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너는 뭘 해도 안 될 거라고, 일찍이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그런 말을 들어왔고, 결국 잔혹한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내게 단 한 번이라도 넌 할 수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는 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
이미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일들이며, 나라는 인간은 이미 내가 고른 길을 걷고 있었다. 여기서 누가 뭐라고 말한다고 한들, 내가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지.’
적어도 강유라는, 강유현과 같은 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목표를 정했다면, 절대로 멈추지 마. 하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 중요한 건 가장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현실적으로 정말 불가능한데, 하겠다는 것은 만용이지. 하지만, 아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였다면…… 그때는 죽기 살기로 해야 해.”
그렇게만 하더라도, 분명 그녀는 달라질 수 있을 거다.
‘과연 내 충고가 제대로 먹혀들었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강유라가 지닌 책의 변화를 보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너는, 나와 다를 테니까.
* * *
유라와의 상담이 끝나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됐다.
“히잉. 더 만나 보고 싶었는데.”
유라는 강혜림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지, 우는소리를 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그것은 신은숙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혜림 씨도, 유현 씨도 바쁘니까 어쩔 수 없잖니.”
“엄마도 참. 내가 그걸 모를까 봐.”
“그래. 모를 줄 알았다.”
“이 씨. 이 아줌마가.”
“이렇게 젊고 예쁜 아줌마 봤니?”
서로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나와 강혜림은 소리 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만나서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그래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부디, 두 분 다 원하시는 바를 이루길 기대하겠습니다.”
“헤헤.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든요?”
강유라의 시원스러운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그럼, 이만.”
“잘 가요. 오빠!”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나와 강혜림, 어머니와 강유라는 서로 헤어지게 됐다.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올 때와는 다르게 묘하게 가볍게 느껴졌다.
“후후. 유현 씨. 은근 좋아 보이시네요.”
“그렇게 보였나요? 그보다 혜림 씨는 유라와 따로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음. 그건 비밀로 할게요.”
강혜림이 깜찍하게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장난치듯 말했다.
뭐, 저런 식으로 대답하는 걸 보면 내가 걱정하던 일은 없던 것 같다. 은근히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유현 씨. 정말 유라와 아무 사이 아니에요? 저는 무슨 남매인 줄 알았는데.”
“애초에 그쪽은 인간이고, 저는 텔러잖습니까.”
“그런가? 닮았는데.”
서로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 멀리서 방금 헤어졌던 신은숙 여사가 내게 손을 흔들며 오는 것이 보였다.
“혜림 씨. 잠시만.”
나는 유라를 따로 두고 오는 어머니의 행동이 의아했다. 혹시, 뭐 깜빡하고 두고 가신 거라도 계신 건가? 매사에 철저하신 어머니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쩐 일이세요?”
“아무래도 떠나기 전에 제대로 말을 전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제대로 말을 전하지 못하다니…… 엇!”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나를 와락 껴안으셨다.
내가 당황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순간, 그녀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힘냈구나.”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신을 가로지르는 충격에 몸을 크게 떨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끔, 속으로 억눌러 왔던 감정의 둑이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저는…….”
나는 곧바로 변명해야 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나는 그저 남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서, 선을 그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따스한 칭찬에 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옛날부터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성공해서 떳떳해졌다고.
그렇게 말하고, 또 이렇게 듣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당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다고.
그럼에도 실패하고 괴로워하다가, 다시 일어섰다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중 아주 일부만 두 손에 거머쥐고, 그녀에게 보여 주기만 해도 됐다.
숨이 턱 막혔다. 달싹거리는 입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골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내 표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겠지.
그래도 나는.
“네…….”
어딘가 후련함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 힘냈어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모습이 달라지고 종족마저 바뀌어도.
어머니는 절대로 자식을 몰라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