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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51화 (5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51화

우리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카페의 빈자리에 앉았다. 내부 인테리어에 꽤나 공을 들인 곳이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친구들과 몇 번 찾아온 곳이기도 했다.

여기도 참 오랜만이네.

각자 적당히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한 뒤,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주로 침묵하는 것은 나와 어머니, 그러니까 신은숙 여사님뿐.

맞은편에 앉은 강유라는 눈에서 빛이라도 나올 기세로 강혜림에게 이것저것 캐묻고 있었다.

“언니. 언니는 어쩌다 컬렉터가 된 거예요?”

“어, 나?”

“네. 와. 세상에. 언니 화장품 뭐 써요? 너무 예쁘다.”

“어, 그게…….”

“그리고 품 안에 그 검은 뭐에요? 역시 컬렉터의 전용 무기? 만져 봐도 돼요?”

강혜림은 강혜림대로 어떻게든 강유라의 질문에 응하려 했지만, 그녀가 던지는 폭풍 같은 질문 공세에 꽤나 질린 기색이었다. 어지간한 제삼자를 상대할 때는 가차 없는 그녀였지만, 묘하게 강유라에게 약한 것이었다.

정작 본인도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르는 느낌.

“강유라. 저분이 당황해하고 계시잖아. 적당히 해.”

“네에.”

결국, 그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얌전해졌다. 물론 아까에 비해서 얌전해졌을 뿐이지, 강혜림을 향한 동경의 불꽃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예전의 내 모습과 은근히 겹쳐 보였다.

나도, 저렇게 컬렉터들에게 열광하던 때가 있었지.

“이거 죄송합니다. 딸이 못 볼 꼴을 보여서.”

“아뇨. 괜찮습니다. 활기차서 보기 좋네요. 뭐.”

나는 정말로 괜찮다며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래서, 그쪽 분…… 그러니까 성함을 아직 여쭤 보지 않았네요.”

“아, 그렇군요. 저는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강유현…….”

신은숙 여사는 내 이름을 듣더니, 살짝 놀랐다는 듯 그 이름을 읊었다.

“이거 신기하네요. 사실, 저희 유라가 원래 남자로 태어나려 했으면 이름을 그렇게 지으려고 했었거든요.”

“아, 그런가요? 엄청난 우연이네요.”

“게다가 은근 우리 그이를 닮은 것 같기도…… 혹시 유현 씨는 강준석이라는 이름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강준석은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다.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은, 아버지와 혹시 무슨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해서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 본 적 없습니다.”

“그럼…….”

“다른 걸 물어보셔도 똑같습니다. 애초에 저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사람이 아니라고요?”

“네?”

옆에서 듣고 있던 강유라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그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내 진짜 정체를 알려 줬다.

“이렇게 보여도 저는 텔러입니다. 천체주식회사 시화실 소속, 강유현 사원이라고 하죠.”

그것을 증명하듯, 허공에서 상태 창을 띄워 그녀들에게 보여 줬다.

갑자기 생겨난 상태 창에 신은숙 여사는 물론이고 강유라는 입까지 벌리며 놀라워했다.

“세, 세상에. 텔러라니. 어, 엄마. 들었어? 텔러래 텔러!”

“조용히 해. 후우. 그랬군요. 저는 혹시나 우리 그이와 친척 관계인가 해서 물어봤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하하. 뭐,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셋은 있다는 속설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나는 속으로 뜨끔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넘겨 보였다. 하지만 그런 내 대답에도 어머니는 어딘가 자꾸 걸린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성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내게 무언가 이끌리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어머니는 어머니구나.’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분명히 내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저것은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모성이라는 거겠지.

마음만 같아서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고, 미래에서 과거로 온 거라고.

하지만.

‘이제 저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유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강유라가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빠르게 단념할 수 있었다.

비록, 과거의 기억은 내게 있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 품고 가야 할 추억이었다.

‘그것보다.’

나는 어머니보다도 나를 더욱 강렬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식은땀을 흘렸다.

강유라. 어떻게 보면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는 소녀가 내 얼굴이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응?”

“오빠 텔러라고 하셨죠?”

“어. 그렇지.”

“그러면 혹시 저 컬렉터로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강유라.”

신은숙 여사가 얼굴을 굳히며 그녀를 나무랐다. 평소라면 여기서 어깨를 움츠렸어야 할 강유라는 오히려 강하게 나왔다.

“아, 왜. 텔러니까 물어볼 수도 있지!”

“얘가 지금 어디서 큰 소리를. 저분께 실례되는 말, 하지 마.”

“실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하자, 내가 중재하듯 나섰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물어보는 거야 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거 봐, 엄마. 내 말 맞지?”

“유라 너…….”

신은숙 여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저건 그녀가 보기 드물게 화가 났다는 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방금 질문에 답변을 해 드리자면 컬렉터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텔러들은 이미 컬렉터가 된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거지, 일반인을 컬렉터로 만드는 능력은 없거든요.”

그 대답에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신은숙 여사는 안도의 표정을, 반대로 강유라의 경우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가슴을 쓸어내린 신은숙 여사가 입을 열었다.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혹시나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다행이야!”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강유라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켜며 자신의 어머니를 노려봤다.

신은숙 여사는 그 분노를 마주 보면서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컬렉터가 대체 뭐가 좋다는 거니? 애초에 타인에게 그렇게 기대는 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부터 잘못된 거야. 될 수 없는 것에 목매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이란다.”

“어, 엄마는…….”

자신의 꿈을 부정하는 말에, 강유라의 표정이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촉촉해졌다. 그리고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카페에서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얘, 강유라!”

신은숙 여사가 불렀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여 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딸이 못난 모습을 보여서.”

“아니요. 그러지 않습니다.”

“후우. 얘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컬렉터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데…….”

“뭐, 요즘 저 또래 아이들에게는 컬렉터가 멋있어 보이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강유라는 또 다른 나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가 보이는 행동은 과거의 나 또한 똑같이 겪었던 것이었다.

컬렉터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유명하고 멋있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현실에 존재하면 딱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당연히 10대 20대의 컬렉터를 향한 열망은 사회적으로 꽤나 시끄러운 요소 중 하나였다.

“뭐, 컬렉터라고 나쁜 것은…….”

“하지만, 목숨이 위험하겠죠.”

신은숙 여사는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부분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컬렉터는 분명 세간에서 큰 명성을 얻고 인기가 많은 직업인 건 압니다. 아니, 애초에 그걸 직업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어찌 됐든 제 딸도 컬렉터에 관심이 많은 것은 저도 압니다.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컬렉터의 밝은 면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그쪽의 검후라는 아가씨의 경우가 특이한 거겠죠.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습니다. 유라가 아는 것보다도, 컬렉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죠.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컬렉터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컬렉터의 숫자는 꽤나 많다. 그리고 이 컬렉터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다들 성공의 찬란함에만 눈이 멀어, 그 아래에 가려진 거대한 그림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사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저는 잘 압니다. 제 딸이기에 그녀가 어떤지도. 그녀에게는 어머니인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재능이 없습니다.”

재능이 없다.

어머니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내 심장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잠시.”

나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심호흡을 했다. 옆에서 강혜림이 내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왔지만, 나는 손을 흔들어 괜찮다고 전했다.

“혜림 씨.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어요?”

“유현 씨.”

“잠시면 됩니다. 가서 유라에게 말이라도 걸어 주세요. 아마, 아까 오던 길에 들렸던 놀이터에 있을 겁니다. 부탁입니다.”

“……네. 알았어요.”

강혜림은 어딘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떠나고, 나와 어머니 단 둘만 남았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속으로 고민한 끝에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고, 그 길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는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큰 목표를 지녀야 한다고, 제 입으로 항상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꿈은 크게 가져라.

그렇게 하면 너는 성공할 수 있을 거다.

그래. 그건 분명 어머니가 내게 자주 해 주셨던 말씀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살다 보니 알겠더군요. 세상에 꿈을 품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그건…… 그렇죠.”

뭐, 그건 나도 통감하는 바다.

모두가 자신이 꿈꾸는 대로 산다면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잔혹한 진실은, 나도 오랫동안 보고 겪어 왔기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자식이지 않습니까?”

“예. 자식이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좋은 말만 해 주고 싶었죠. 하지만 컬렉터는…… 아닙니다. 그건 분명히 힘든 직업이에요.”

“따님이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도요?”

“안 될 걸아니까, 그런 말을 했었죠. 하지만 정말로 된다면, 저는 필사적으로 말릴 겁니다. 그 아이는 컬렉터를 할 재목이 아니에요.”

어머니의 단호하면서도 잔인한 말. 하지만 어머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식을 잘 알아서 하는 소리기도 했다.

“저는 그 여린 아이가, 그저 아프지 않고, 자라주기만 바랄 뿐이에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진심. 그것을 지금 와서 알게 됐다는 사실에 나는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어머니가 나를 싫어한다고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전부, 나를 걱정해서 했던 소리였구나.’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일들은 내 뇌리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머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이 힘든 길을 가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까요. 심지어 그냥 직업도 아니고 컬렉터인데.”

나는 강유라를 이해한다. 아마, 나보다 그녀를 더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 그녀가 곧 나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이해하기 앞서서, 나는 신은숙이라는 사람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머니로서 어떤 심정인지, 어떤 입장인지.

나는 분명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다. 그녀는 분명 성공한 사업가였고,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확고함이 자신의 자식을 향할 때만큼은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그래선 안 됐다.

“분명, 어머님의 말씀은 옳을 겁니다.”

“그러니…….”

“하지만, 어머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식 된 입장으로서 부모의 뜻을 부정한다.

분명 이것은 어떻게 보면 불효의 일종이겠지만, 나는 이 말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라도 어머님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식의 꿈입니다.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지언정,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라는 건가요?”

“아뇨. 그것도 아니죠. 응원하시는 것이 힘든 거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니 제 말은 이겁니다. 응원도, 부정도 아닙니다. 그저 현실을 보여 주라는 겁니다.”

“현실을 보여 주라고요?”

“예.”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컬렉터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만 제대로 알려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묻는 거죠. 이래도 할 거냐고. 보통은 잔혹한 진실에 질려서라도 안 할지도 모르죠.”

“만약, 그래도 하겠다고 한다면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그게 대체…….”

“그걸 알면서도 선택한 겁니다. 어머님은 자식의 각오가 그렇게 가볍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강유라에게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한용운의 책이 변한 것을 본 이후로, 나는 달리 생각하게 됐다.

사람의 가능성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계기는 정말로 별거 아니다.

단순한 말 한마디, 혹은 등을 밀어 주는 작은 선행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바뀐다.

가능성이 열린다.

“분명…… 서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면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텔러 강유현의 입장으로 하는 말이 아닌, 한때 그녀의 아들이었던 강유현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부디, 자식의 꿈을 한 번만 더 믿어 주세요.”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의 강유라 만큼은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현실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다 하더라도, 꿈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그 꿈을 향해 가다 보면, 언젠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테니까요.”

“그건…….”

어머니가 내게 해 주셨던 말.

그걸 내가 입에 담자 그녀는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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