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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50화 (5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50화

아직 차가 없는 유현과 강혜림은 목적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이용했다.

검을 껴안고 있는 강혜림은 버스 안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지만, 놀라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미, 지난 10년의 세월을 통해 컬렉터는 완전히 지금 사회에 녹아들었다.

강혜림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사인해 달라고 달라붙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이상 귀찮게 구는 일은 없었다.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자 유현의 곁에 앉은 강혜림이 조심스레 물었다.

“유현 씨는 참 신기한 거 같아요.”

“뭐가 말입니까?”

“그냥. 전부 다? 텔러시면서 다른 텔러와 다르고 심지어 뭔가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과거가 있는 거 같잖아요.”

“착각입니다.”

“그럴 리가요.”

유현은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강혜림은 알고 있었다.

유현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아직 자신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는 건, 아직 유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의 모자람 때문이겠지. 그게 마냥 아쉽기는 했지만, 유현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러 가는 그 은인들은 어떤 분들이에요? 유현 씨가 은인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라면 분명히 대단하신 분들이겠죠?”

“…….”

뭘 하는 사람인가, 그 물음에 유현은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회사에서도 알아 주는 중진이었다. 반대로 아버지의 경우에는 항상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소설가였다.

유현이 기억하는 부모님의 이미지는 일반적인 가정의 것과 달랐다.

아버지는 유약했고, 어머니가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 중 누가 덜하고 못났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두 분 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분들이었으니까.

“네.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유현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들은 그와 달랐다. 자신만의 확고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목표를 위해 굽히지 않은 올곧음도 지니고 계셨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시죠.”

“헤에.”

강혜림은 유현이 저렇게까지 칭찬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사람들에게 묘한 질투심마저 느꼈다.

내가 모르는 유현 씨의 과거.

그 말 하나하나가 강혜림의 마음을 거칠게 자극했다.

강혜림의 그런 속내를 알지 못하는 유현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는 헛기침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혜림 씨는 가족이 있으십니까?”

유현은 그것이 문득 궁금해졌다. 최도윤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강혜림의 가족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유현은 그녀의 책을 통해 과거를 알아낼 수도 있었다. 유현은 몰래 읽는 대신 강혜림에게 직접 물었다.

앞으로도 함께 있을 동료의 정보 창을 몰래 훔쳐본다는 것은, 어째서인지 묘한 죄악감이 들었다. 유현은 그런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웃기는 일이야. 사람을 죽이는 건 아무렇지 않으면서 고작 과거를 들추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다니.’

유현의 그런 속마음을 모른 채, 강혜림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저한테 관심이 있어서 물어보는 거? 히히”

“또 그런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시던가요.”

“아뇨 기뻐서 그렇죠. 음. 가족 관계라.”

유현이 건네준 검을 꼭 껴안은 채, 강혜림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없어요.”

“……예?”

“저한테는 가족이 없어요. 아, 예전에는 있었어요. 아빠는 얼굴도 기억이 안 나지만요. 아마, 엄마가 저를 낳아서 도망친 거 같아요.”

“…….”

“그래서인가, 엄마가 저를 엄청 학대하셨어요. 막 때리고, 넌 내 자식이 아니라고. 뭐 그러다가 나중에는 우울증을 이기지 못해 목을 매셨죠.”

강혜림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광경.

그때의 그녀는 집 안에만 있으면 혼나니까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해가 질 때 집으로 돌아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가 본 것은 해질녘의 붉은 하늘을 등진 채 목을 매단 어머니의 시체였다.

그 이후의 과정은 별거 없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고아원으로 들어갔고, 어릴 때부터 받아 온 학대의 영향 탓인지, 그녀는 소심한 성격이 되고 말았다.

그런 소심한 태도 때문에 또 주위의 괴롭힘을 불러왔고,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게 가족 같은 건 없어요.”

유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자신이 비록 끔찍한 세상에서 10년을 굴렀다 하더라도, 강혜림이 겪은 이 일의 심각성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혜림은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력을 말했다.

마치, 유현이 자신을 궁금해 준 것이 참을 수 없이 기쁘다는 듯이.

“혜림 씨…….”

“네? 왜요?”

강혜림은 유현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정말로 모른다는 기색이었다.

유현은 그녀를 잠시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혜림 씨도 참 힘들었겠군요.”

“헤헤. 뭐,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이게 다 유현 씨 덕분이에요.”

“제 덕분이라.”

“유현 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예전의 그 고개를 숙인 패배자였을 거예요. 유현 씨 덕에 저의 재능이 무엇인지, 제가 뭘 하고 싶은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강혜림의 말을 계속 듣던 유현은 그녀가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슬픔이나 괴로움이 결여된 것 같았다. 마치 그때의 지옥 같았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강혜림은 그저 웃고 있었다.

자신이 알던 검후의 모습과 동떨어진 그 태도에, 유현은 묘한 이질감마저 느꼈다.

‘마치, 망가지기 일보 직전의 사람처럼.’

그가 알던 검후는 절대 이러지 않았다.

그 순간.

유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남 말할 처지인가.’

만약 사람이 정신적으로 뒤틀렸다면,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무엇보다 옛날 검후는 이러고, 지금 강혜림은 저러고 하는 비교도 더 이상은 무의미했다. 애초에 그는 과거의 검후가 진짜 모습이 어땠는지 몰랐으니까.

그러니 실망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점이 있다.

당장은 불안정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녀지만, 그가 앞으로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검후는, 분명 착한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그런 정의로운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현은 그녀를 마냥 착하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착하기만 해서 될 일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녀를 대할 때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는 게 좋겠다고

유현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혜림 씨.”

“네. 유현 씨.”

“괜찮습니다.”

유현은 흘러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는 강혜림에게 말했다.

“저는, 적어도 당신을 버리거나 떠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은 당장은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강혜림에게는 그 말이야말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잠든 불안감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네! 저도요!”

유현이 강혜림을 위하겠다고 한 것처럼, 그녀는 유현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품었다.

유현은 그녀의 빛이고, 그녀의 삶의 이유다.

그렇기에 그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어떤 괴로운 일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이것은 뒤틀린 텔러와 뒤틀린 컬렉터의 관계.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는, 상처받은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 * *

정류장에서 내리고 본 풍경은 잊고 지냈던 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가 옛날에 살던 곳.’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온 가족이 모여서 단란하게 살았던 동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추억의 장소에 다시 서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요?”

“네. 여깁니다. 잠시 걷죠.”

나는 부모님을 찾아가기 전에 일단 동네를 조금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주변의 풍경을 하나씩 확인할 때마다 기억의 퍼즐이 하나씩 딱딱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랬었지. 옛날에는 여기서도 줄곧 놀았었는데.

어릴 때 자주 들렸던 피시방.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빵집. 정말로 가기 싫었던 학원가와 자주 군것질을 했던 포장마차까지.

전부 그때 그대로였다.

하지만 추억 속의 나는 14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주변 모든 것들이 똑같아도.

오직, 나만이 달랐다.

‘여기 놀이터에서도, 가끔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지.’

나는 상가 근처의 빈 놀이터를 보며 추억에 잠겼다. 항상 이 시간대에 학원을 가기 싫어서 일부러 놀이터에서 서성거렸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정말로 싫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그리웠던 순간이었다.

내가 그럴 때마다, 때마침 퇴근하던 어머니는 귀신같이 나를 찾아내고는 하셨지.

“야! 강유라! 너 또 학원 땡땡이쳤지?!”

그래. 이런 목소리로.

“……어?”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억 속에 있던 어머니와 똑같은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부른 것은 내가 아니었다. 시선을 돌리니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있는 한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뜨악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 기억 속에서 항상 저 자리에 있던 것은, 중학교 시절의 나였을 텐데. 저 소녀는 대체 뭐고? 분명, 어머니와 저렇게 티격태격하는 걸 보면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한데.

‘아. 그런…… 거였나.’

나는 분명 과거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모순이 생긴다. 인간 강유현과 텔러 강유현이 동시에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 강유현은 없었다.

대신, 이곳에 있는 것은 강유현이 아닌 강유라라는 소녀였다.

“후. 내가 말 했지? 자기 일에서 도망치는 자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고.”

“아, 알았다고. 잔소리 좀 그만해. 주변 사람이 보잖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마. 좀 더 자신에게 떳떳하면 되잖아.”

어머니는 내 기억 속의 그대로였다. 당당한 태도와 흔들림이 없는 눈빛.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까지.

나는 그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너무 빤히 쳐다봐서 그랬을까, 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저기.”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떠들었죠?”

어머니는 나를 보며 사과부터 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보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애초에 뭘 바랐던 거냐.’

이곳에 강유현은 없다. 그 대신 강유라가 존재할 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미 다른 주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지나간 기억에 얽매이다니.

어머니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치며 호통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다르게 어머니는 나를 보며 조금 의아한 기색이었다.

“저기, 혹시 저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나요?”

“엄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굴 닮은 거 같아서.”

“닮았다니.”

그녀의 말에 강유라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갓 피어난 꽃송이 같은 따스함과 활기참이 느껴졌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젖살이 빠지지 않았는데도 미인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진짜 그러네? 아빠를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아저씨, 혹시 우리 아빠랑 아는 사이에요? 이상하다. 아빠한테 형제는 없을 텐데.”

“강유라. 일면식도 없는 상대에게 함부로 그런 걸 묻는 건 예의가 아니야. 이거 죄송합니다. 제 딸이 워낙 말괄량이라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 목소리도 은근 비슷한데? 봐봐 엄마!”

“유라 너. 가만히 안 있을래?”

나는 실랑이를 벌이는 두 모녀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자인 나. 강유라의 말은 옳았다. 애초에 나는 아버지를 닮았으니까.

정확히 외모는 아버지를, 눈매는 어머니를 닮았지.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강유라의 시선이, 이내 내 곁에 멀뚱히 서 있는 혜림 씨를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엄청난 기세로 번뜩였다.

“헐, 헐헐헐. 실화야?”

“또 왜.”

“엄마. 저길 봐. 그 사람이야 그 사람.”

“그 사람? 그게 누군데.”

“아니 있잖아! 내가 그때 말했던 그 사람. 검후!”

“저분이?”

강유라는 혜림 씨를 알아봤다. 자신이 진짜 검후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지, 지나치게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녀가 역시 나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보다도 컬렉터에 관해서 빠삭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저, 저저저 싸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사인이요?”

강혜림은 내게 어쩌면 좋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나는 조금 난감해진 차에, 어머니인 신은숙 여서와 눈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잠시 이야기라도 나누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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