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9화
최도윤의 행방에 관해서 알아냈다.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녀석을 찾았다!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지.’
과연, 녀석은 대체 뭘 하다 왔기에 종말의 시작과 동시에 그만한 힘을 지녔던 걸까?
적어도 종말이 오기 전에도 정상적인 녀석은 아니었을 거다. 그만한 힘과 재능을 지녔다는 것은, 타고나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하니까.
선천적인 또라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최도윤은 그러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강혜림에게 검을 맡긴 채,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뒤에서 나를 불렀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은 내게 중요했다.
협회는 사무실에서 멀지 않았다. 보도로 걸어가면서도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녀석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의 녀석은 또 어떤지.
그러다 이내, 내가 지나치게 녀석에게 집착을 보인다는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참 웃기네. 다시 시작한 지금, 녀석과 굳이 엮일 필요가 없는데.’
과거로 돌아온 내게 있어서 최도윤과의 일은 전부 없던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세상은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녀석과 지내던 그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좋든 나쁘든 녀석은 내 삶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나면. 나는 뭐라 말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녀석을 보면 화가 날까?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냅다 주먹을 갈길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단 하나 확실한 건, 녀석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협회에 도착해 데스크에 다가가자 안내원이 그렇게 물었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말하려는 순간, 저쪽에서 나서는 것이 더 빨랐다.
“유현 씨.”
이곳 협회 지부의 관리자인 최중모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예.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소식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 소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강혜림만 지칭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 내가 일반적인 텔러와 다른 길을 걷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협회가 대형 클랜에 비해 힘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정보력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전처럼 그의 사무실은 아니라 다른 손님맞이용 객실이었다.
“앉으시죠. 혹시 커피나 차가 필요하십니까?”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흠. 일단 본론부터 꺼내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최중모는 조금 조심스러운 안건을 꺼내듯 입을 열었다.
“그 최도윤이라는 사람과, 무슨 관계입니까?”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악연이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의 최도윤은 나를 모른다. 나와 관계도 없다.
“다만, 소문을 들었을 뿐이죠. 최도윤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건…… 텔러들 사이에서 뭐, 그런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그런 거로 치는 게 훨씬 나았다.
최중모도 깊게 파고들 생각은 아니었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넘겼다.
“우선, 강유현 씨의 부탁대로 최도윤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확인을 해 봤습니다. 나이와 성별, 대략적인 외향을 특정 지어 주신 덕분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않았습니다만?
묘하게 끝말이 늘어진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네. 그게 솔직히 말하자면…… 최도윤이라는 사람의 행방에 대해서 물색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있었습니다.”
알아낸 것은 있었다. 최중모는 그렇게 말했다.
나의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잠자코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유현 씨가 찾던 최도윤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사상통합의 날 행방불명 됐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겉으로 드러나려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마음을 가다듬은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행방불명 됐다는 것은…… 지금 없다는 소리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라졌을 때 사진을 비교해 보니, 유현 씨의 말 대로였습니다. 보십시오.”
최중모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네줬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신상 정보가 담긴 종이였다.
가장 첫 페이지에 보이는 것은 한 사람의 사진이었다.
‘녀석이다!’
놀랍게도 최도윤은 내가 처음 종말에서 봤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헤어 스타일이나 복장은 달랐지만, 저 날카로운 눈빛과 외형은 그대로였다. 내가 녀석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10년 전 행방불명, 그리고 5년 뒤 종말의 때를 생각하면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녀석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 이 사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나이는, 사라졌을 때를 기준으로 21살입니다. 사상통합의 날. 변혁의 99일 때 사라진 사람 중 한 명이었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베니싱(Vanishing)이라 부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물질계였던 지구가 처음으로 혼성계에 편입되는 순간, 세상은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다. 우리는 그것을 사상통합의 날이라 불렀으며, 서양에서는 이것을 판타즘 쇼크라 불렀다.
세상의 모든 허상과 진실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이야기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 되던 순간.
그때 많은 사람이 현실에서 자취를 감추며 행방불명 됐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텔러님이 사람을 찾아 달라 한 것도 그런 데다 설마 그 대상자가 베니싱이었을 줄이야.”
베니싱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라진 사람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어딘가로 흘러갔다는 소리다.
간혹 행방불명 된 몇몇 베니싱이 다시 현실에서 나타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녔다.
‘마치, 인간이 아니게 된 것처럼 변했었지.’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례가 몇 있었다.
대부분 그런 것들은 시체만 돌아온 경우였다. 하지만 간혹 살아 있는 채로 넘어온 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도 대부분 괴물이 된 채였다.
피부가 나무처럼 변해 버렸다든가, 육신이 뒤틀렸다거나, 혹은 살인에 미친 광인이 되었다든가.
그들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는 멀쩡한 베니싱이 나타나고, 그들을 흔히들 ‘이계 귀환자’라 부르게 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혹시 강유현 텔러님은 이 최도윤이라는 베니싱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 겁니까?”
최중모가 묻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베니싱에 대한 정보를, 내가 혹시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들리는 소문으로만 추측한 겁니다. 최도윤이라는 인간이 있었고, 그자가 꽤나 강하다는 것까지요. 그 이름으로 추측건대 이쪽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렇습니까.”
최중모는 어딘가 아쉬운 기색으로 입맛을 다셨다. 뭐, 협회가 그만큼 여러 가지에 목이 말라 하는 건 나도 익히 아는 바다.
그렇다 해도 꽤나 놀랐다. 설마, 최도윤 녀석이 베니싱이었다니.
‘그렇다면 녀석은 지구의 종말과 동시에 되돌아온 거였나.’
즉 녀석은 사상통합의 날 다른 세상에 흘러 들어와, 15년 뒤에 돌아온 귀환자였다.
다른 세상은 분명 지구와 흐름이 다를 테니, 녀석의 모습이 그대로인 것은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혹은 극한의 고수가 젊음을 되찾는 것과 같은 이치일 수도 있었고.
‘결국, 뭐가 어찌 됐든 녀석은 다른 세상에서 구를 대로 굴러서 이쪽으로 돌아왔다는 소리였군.’
종말의 첫 시련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행동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도저히 일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무력이나, 그 이상으로 소름 돋을 정도로 냉철한 태도는 다른 세상에서 오랫동안 다듬은 것이었고.
사실상 인생 2회차라는 소리였다.
나는 녀석의 신상 정보에 대해 확인하다가 가족 관계를 보며 눈을 빛냈다.
“어머니가 있군요.”
“예. 가족이 딱 한 분 있더군요.”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사상통합의 날 전에도 편모 가정에서 살았다는 소리였다.
나는 녀석이 무슨 강철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인 줄 알았다. 하긴 녀석이 사람이라면 부모님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
“이분은…… 뭘 하고 계시죠?”
“그냥 식당에서 평범하게 주방 일을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10년 동안, 자기 아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 그리고…… 저희가 그 최도윤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는 과정에 이 어머니라는 분과 접촉을 했었는데, 그분께서 강유현 텔러님을 기회가 되면 뵙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분이?
아니, 그럴 만도 한가.
행방불명 된 아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다는데, 어떤 어머니가 가만히 있겠는가. 게다가 지난 10년간 베니싱이 된 아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 봐도 그녀가 끔찍하게 아들을 아낀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어떻게, 만나 보시겠습니까?”
“지금 바로 말입니까?”
“아뇨. 그쪽도 일단 일이 있다 보니, 주말에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흠.”
나는 살짝 고민했지만, 굳이 거절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녀석의 어머니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정도는 만나 보고 싶었다.
그 이상으로, 어머니라는 그 이름이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어머니라…….’
내게도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가 있었고, 어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종말이 찾아 오고 난 뒤에……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 계시겠지.’
그걸 알면서도 나는 찾아갈 수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내가 이곳에 있다면, 과거의 나는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한 것이 아니다. 강유현이라는 텔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즉 이 시대에는 아직 인간이었던 강유현이 존재할지도 몰랐다.
‘정말로 이곳에 그때의 내가 멀쩡하게 존재한다면 지금의 나는 뭐지?’
나는 대체 어떻게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도 그들을 부모님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은 자기 아들이 성장한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같은 이름의 두 존재. 하지만 하나는 진짜 인간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 진짜와 같지만 인간이 아니다.
내 부모님은, 텔러가 인간의 모습을 따라한다고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나를 가짜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그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텔러가 되고,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음에도 찾아가지 않은 것은.
하지만 애써 외면했던 사실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 언젠가는 한 번은 부딪쳐야 했던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나는…….’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말이다.
‘웃기는 이야기야.’
나는 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을 이루고자 마음먹었다.
그 길을 내게 제시해 준 것은 분명히 내 부모님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들이 나를 가족이라 받아 주지 않더라도, 그들이 내 부모인 건 변함이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는 겁니까?”
“네. 오늘 일은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도 부탁할 일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요?”
“강유현 텔러님께서 바라신다면, 얼마든지요.”
이미 그때의 일은 다 털어 냈는지 최중모는 나를 공손히 대답하며 그렇게 말했다.
지금 알았지만, 이 사람도 꽤나 대인배다. 미래에 나와 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서 과거의 사사로운 감정은 바로 던져 버린 것이다.
앞으로도 그와 자주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나는 최중모의 배웅을 받으며 협회를 나왔다.
그대로 조금 길을 걸을까 했지만, 그런 내 앞을 막아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건네준 검을 품에 껴안고 있는 강혜림이었다.
“혜림 씨.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그게……. 아까 나가실 때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괜찮으신가 해서.”
“그랬군요. 이거 걱정을 끼쳤네요.”
그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최도윤의 존재감은 내게 있어서 거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별거 아니었거든요.”
“아. 그래요? 확실히 지금은 괜찮아 보이시네요. 그래서 다시 사무실로 가시는 건가요?”
“아니요. 잠시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날 사람이요?”
내가 따로 만날 사람이 있다는 말에 강혜림은 궁금한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뭐, 혜림 씨도 할 일 없으면 저와 같이 가실래요?”
“저, 저요? 그래도 돼요?”
“안 될 건 없죠.”
“헤헤. 좋아요. 그럼, 같이 가요. 그래서 누굴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누구라…….”
‘부모님’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나는 텔러다.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두 분을 부모님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들은 인간이고, 내가 아닌 다른 자식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그들을 누구냐고 묻는다면…….
“은인…… 입니다.”
그래. 은인.
나는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