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8화
“아 참. 그리고 혜림 씨도 슬슬 자신의 주력기 하나 정도는 챙기는 게 좋을 겁니다.”
“주력기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혜림 씨는 이제 곧 중견급 컬렉터가 될 겁니다. 누구보다도 전례가 없는 속도지만, 그거 하나는 알아 두셔야 합니다. 하급 컬렉터와 중견급은 차이가 꽤나 크다는 걸요.”
사람들이 상위급 컬렉터만 주로 신경 써서 그렇지, 사실 중견급 컬렉터들도 어딜 가서 꿀리는 자들이 아니다. 특히나 중견급에 올라간 자들은 이제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발전시키는 과정이기에, 하급과 꽤나 큰 차이를 보였다.
“혜림 씨는 검을 쓰죠. 하지만 검술에 관련된 스킬이 몇 개 없습니다. 제 말 맞죠?”
“네, 음. 확실히 그런 거 같아요.”
강혜림은 [고려시대 소드마스터]라는 척준경의 특성을 지녔다. 검을 쥐는 순간 그녀는 말 그대로 엄청난 전투력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척준경이 지녔던 검술, 지금은 [대여진검법]이라 불리는 걸 사용하지만, 그녀가 지닌 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검술이다.
“혜림 씨가 그래도 기초는 이제 확실히 다졌죠. 아마 스킬 없이 순수 신체 능력 같은 스펙으로만 따지면 다른 중견급 컬렉터들과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헤, 헤헤. 제가 뭘요.”
“좋아하지 마십시오. 단지 그거뿐이니까. 혜림 씨는 너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남들이 차근차근 밟아 갔던 과정을 몇 개씩 건너뛰었죠. 신체 스펙은 확실히 좋고 전투 센스도 좋지만, 그것을 받쳐 줄 스킬이나 이야기가 너무 적습니다.”
물론, 남들이 없는 칭호를 지니고 있고 히든피스 무기까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혜림 씨도 슬슬 중급에서 상급으로 분류되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그녀가 지닌 하급 이야기는 기초에 지나지 않는 것. 이제 슬슬 숙련자 전용 스킬도 필요했다.
내 말에 수긍하면서도 강혜림은 망설였다.
“하, 하지만 그 정도 되는 이야기는 비싸지 않나요?”
“엄청 비싸죠.”
하급 이야기 스킬은 하나를 구매하는데, 싼 건 100TP에서 비싸도 2000TP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급 정도, 아이템은 레어만 넘어가도 그 가격은 순식간에 훌쩍 뛰어 버린다.
중급으로 분류되는 스킬 중에서 가장 싼 것도 2~3만TP는 할 거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려면 10만으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지금 강혜림에게 그것을 구매할 여유는 있지만, 그래 봤자 4개 정도 사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큰 포인트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싸게 구하는 법을 아니까요.”
지금 내가 손질하는 이 살리오 고대 유물 장검과 마찬가지로, 아직 [차원 상점]에는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히든피스들이 가득하다.
정확히는 숨겨진 조합식이라고 해야겠지.
나는 오늘 그중에서 강혜림에게 도움이 되는 히든피스 하나를 알려 줄 생각이었다.
“원래라면 성령님들이 보는 앞에서 어필을 하면서 하는 게 좋겠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 같아서요.”
성령들에게 히든피스를 보여 주면 그들은 좋아서 날뛸 것이다.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가, 차원 상점에 숨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꽤나 신선하게 다가올 테니까.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얻는 것에 비해서 이쪽에 돌아올 수 있는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에 누군가가 의혹을 제기한다면? 대체 저런 히든피스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의심하고 그걸 지적하는 순간, 의혹은 것 잡을 수 없이 퍼진다.’
‘그냥 알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럴싸한 변명을 떠올리기에는 이 히든피스가 갖는 가치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 생각이 없는 놈들이야 생각 없이 자기가 아는 지식을 마구잡이로 자랑하겠지.
하지만, 그걸 알아 둬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행동에 열광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의심하고, 경계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히든피스란 것이 그렇다.
누군가의 기대심, 호기심보다도 의심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가치는 무겁다.
그래서 이렇게 서재를 닫은 채로 그녀에게만 따로 알려 주는 것이었다.
“혜림 씨. 차원 상점을 열어 보세요.”
“아, 네.”
강혜림은 내가 시킨 대로 잘 따랐다.
“혜림 씨는 검을 사용한 기술을 선보이죠. 힘보다는 속도와 기교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맞죠?”
“네. 그렇죠.”
“자연스럽게 강한 개체와 싸울 때는 위력이 부족할 때가 있을 겁니다.”
“아! 맞아요. 저도 느끼고 있어요.”
라비린토스에서 미노타우로스와 싸울 때도 그랬다. 그때는 어떻게든 검기를 일으켜서 쓰러뜨렸지만, 그전까지는 공격을 아무리 가해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었다.
“나중에는 단순히 검기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환상체와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도 똑같이 싸우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내 말에 강혜림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래서 알려 드리려는 겁니다.”
“어, 음. 사기 같은 거 아니죠?”
이미 내게 된통 당한 강혜림이 혹시나 의심하며 물었다.
뭐, 그녀가 차원 상점에서 포인트를 소모할수록 나한테 돌아오는 포인트가 늘어나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대 사기는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언제 사기를 쳤다고 그럽니까?”
“아니 그거야, 처음 그때도…….”
“네? 뭐라고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허어. 이거 참. 이쪽은 순수한 호의로 하는 행동인데 왜 이러실까.
아무튼.
“하급 이야기 중에서 보법 중 섬전보법을 찾아보세요. 있죠?”
“네.”
“그거랑 중급 이야기 중에서 뇌광기심법이 있을 겁니다. 가격은 중급치고는 아주 저렴하니까 충분히 살 만할 겁니다.”
“어. 진짜네.”
[차원 상점]을 확인한 강혜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술. 하급 이야기 중에서 ‘우레폭풍’이라는 이름이 있을 겁니다.”
“네. 찾았어요.”
“그 3개를 구매해서 동시에 익히세요.”
섬전보법.
뇌광기심법.
그리고 우레폭풍.
이 3개는 얼핏 보면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거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개별적으로 익히면 쓰레기도 이만한 쓰레기가 없는 이야기들이다.
섬전보법은 빠르지만, 그 빠름을 소유자가 주체할 수 없다. 심지어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약간의 뇌기가 몸을 태운다.
뇌광기심법은 체내에 뇌기(雷氣)를 담게 해 준다. 번개의 힘은 그 자체만으로 강력하지만, 이 뇌기가 너무 강력하다 보니, 몸속에서 자주 발작을 일으킨다. 어지간한 컬렉터는 제어조차 힘들다.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레폭풍.
이놈은 화룡점정이다. 검술 쪽에 속해 있음에도 그 일반적인 식(式)이 아예 없다. 배워도 어떻게 써먹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자연재해라도 일으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배워도 어디 쓸 데가 하나도 없다. 차라리 이런 것보다 숨을 더 잘 쉬는 이야기가 도움이 될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를 길, 이름만 멋진 개노답 삼 형제.
하지만, 이런 개노답 삼 형제 셋이 뭉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니. 뭉친다는 건 잘못된 표현이지. 정확히는 원래 하나가 셋으로 갈라진 것에 가까우니까.’
섬전보법, 뇌광기심법, 우레폭풍 검술.
사실 이 세 이야기는 그 근본을 놓고 보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각자 이야기를 지닌다고 제대로 써먹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퍼즐 조각이 다 맞춰지지 않았는데, 멀쩡한 힘이 발휘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세 개를 전부 구매하고, 익히세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그래야만 합니다.”
강혜림은 조금 미심쩍어하면서도 내 말을 잘 따라 줬다. 남들은 의심했을 것을 따라 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컬렉터 하나는 참 잘 키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혜림은 [차원 상점]에서 구매한 3개의 이야기를 손에 쥐었다.
새하얀 알처럼 생긴 텍스트의 집합체들.
강혜림은 그것을 조금 긴장 어린 눈빛으로 보더니, 그것을 자신의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파직!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전류가 흘러나왔다.
“꺅!”
그 모습에 백서련이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고, 내 어깨에 선 백효는 안 그래도 땡글한 눈을 더 크게 뜨며 날개를 퍼덕였다.
나는 차분하게 그 광경을 봤다.
강혜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뇌기는 점차 더 강해졌다. 그것은 어느덧 주변에 넘실거리려 하고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즉시 손에 쥔 [살리오 고대 유물 장검]을 쥐고 강혜림에게 들이밀었다.
사방으로 튀려던 뇌기는 그대로 칼끝을 피뢰침마냥 타고 흘렀다.
“유현 씨!”
“괜찮습니다.”
백서련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외쳤지만, 나는 손을 내젓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녀가 보기에는 내가 저 전류에 휩쓸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천만에, 저 모든 뇌기는 내가 지닌 이 검에 흡수되고 있었다.
정확히는 검에 발라 놓은 [레프라 수액]이 전도율을 높여 주는 것과 동시에 검 곳곳에 뇌기를 스며들게 도움을 준 것이다.
파지지직!
강혜림에게서 흘러나오는 뇌기가 극에 달했고, 그에 따라 유물검이 흡수하는 뇌기도 거의 한계치에 육박했다. 검날에 맺힌 녹들이 뇌기에 가루처럼 흩어졌고, 안쪽에 가려진 진정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대체…….”
“이게 진짜 유물검의 모습입니다.”
마치 갓 만들어 낸 것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내뿜는 살리오 장검.
검날에는 매우 정밀한 회로들이 있었고, 그 회로를 따라 전류가 미친 듯이 흐르고 있었다.
지이잉.
유물검이 잘게 떨리는 순간, 강혜림에게 흘러나오던 뇌기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검에 흡수되던 뇌기도 사라졌고, 검은 뭔가 아쉽다는 듯 빛을 잃으며 그대로 잠들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백서련은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아무래도 끝난 거 같군요.”
내 말과 동시에 강혜림이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눈동자 근처에서 푸른 뇌기가 살짝 일렁이는 게 보였다.
그러나 바깥으로 기운이 일절 세지 않았다. 제대로 제어하고 있다는 소리다.
“혜림 씨. 어떻습니까?”
“어, 음.”
강혜림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진 자신의 몸 상태를 보며 의아한 기색이었다.
나는 친절하게 그녀의 상태를 알려 주기로 했다.
“상태 창을 봐 보세요. 새로운 스킬이 생겼을 겁니다.”
“……진짜네요.”
“뭐라고 나옵니까?”
“기존에 흡수했던 3개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그 대신 천뢰검(天雷劍)이라는 스킬이 생겼어요.”
[천뢰검(天雷劍)]
이거야말로 강혜림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히든피스였다.
이제는 잊혀, 익힌 자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신공 중 하나.
하늘의 번개를 다룰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이 히든피스는, 이야기의 급을 놓고 본다면 중급은커녕 상급도 아득히 뛰어넘는다.
“그게 앞으로 혜림 씨의 힘이 되어 줄 겁니다.”
“아.”
강혜림은 이루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더니, 이내 내게 달려들며 와락 안기려고 했다.
“고마워요!”
“어허.”
나는 곧바로 그녀의 포옹을 피했다. 강혜림은 그대로 소파에 처박히는 신세가 됐다.
“흐잉. 너무해요.”
“어딜 껴안으려고. 지금 뇌기가 완전히 제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 안으면 제가 감전되는 거 모르십니까?”
“아, 그래요?”
“자. 이거 들고 있으세요.”
나는 녹이 완전히 벗겨진 살리오 고대 유물검을 그녀에게 건넸다.
“네?”
“그거 계속 안고 계세요. 당장은 아니지만, 아직 제어하지 못한 일부 뇌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올 겁니다. 그때마다 그 검이 뇌기를 흡수할 테니, 걱정 마세요.”
사실 이런 말 하는 건 그렇지만, 강혜림은 이 검을 일깨우기 위한 일종의 배터리 역할을 맡아야 했다.
내가 그녀에게 이걸 알려 준 것도 검을 각성시키기 위한 과정을 겸사겸사 얻기 위함이기도 했다.
“유현 씨…….”
“쉿.”
그 전말을 눈치챈 백서련이 나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사람처럼 쳐다보는 게 아닌가? 나는 곧바로 그녀의 입단속을 시켰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건전지처럼 만들다뇨!’
‘다 그녀에게 도움이 돼서 그런 겁니다. 아시잖아요. 상부상조 모르십니까? 상부상조.’
‘하마터면 제 사무실이 다 타버릴 뻔했다고요!’
‘……화가 난 건 그거 때문이었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제게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세요.’
‘그러죠.’
지금 와서 느끼는 건데, 이 아가씨도 보통 정상이 아니다. 종말 이후에 봤을 때도 비범하다고 생각했는데, 환경 때문에 맛이 간 게 아니라 원래 성격이 그랬던 건가?
어찌 됐든 나는 벌써 2개의 히든피스를 꺼냈다.
아직 아는 건 몇 개 더 있지만, 당장에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천뢰검은 아깝지만, 애초에 저건 내게 어울리는 게 아니야.’
애초에 저건 여성에게 특화된 무공이다. 그것도 검을 주류로 사용하는 무공.
나처럼 아무거나 잡다하게 쓰는 사람은 저걸 배워도 그 진짜 위력의 반도 구현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딱 강혜림을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나는 당장 저 살리오 검을 얻은 것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만족스러워 할 때였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제네시스 네트워크를 통해 내게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내게 이런 걸 직접적으로 보낼 수 있는 자들은 많지 않다. 대체 누가?
[발신인-최중모]
발신인의 이름에 나는 눈을 크게 떴고, 그 내용을 본 순간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부탁하셨던 일. 알아냈습니다.]
그때 부탁했던 최도윤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