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5화
“저쪽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십니까?”
“아, 그게…….”
한용운은 아직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해한다. 그에게 있어서 백우현 일행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끔찍한 괴물처럼 보였을 테니까.
강혜림이 그런 놈들 셋과 함께 남아 있다고 하니, 걱정이 들겠지.
“그쪽이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 쪽 아가씨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날뛰면 날뛰었지.”
조금 전까지 나지막이 울려 퍼지던 소리가 귀신처럼 뚝 끊겼다. 내가 신호를 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상당히 빠르다. 설마, 싹 다 죽인 건 아니겠지?
“가시죠.”
내가 앞장서자 한용운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이며 내 뒤를 따랐다.
안개를 헤치며 방금 휴식을 취하던 곳에 도착하니, 강혜림이 나를 발견하고 가볍게 반겨 줬다.
“오셨나요.”
“네. 나머지는?”
“저기요.”
강혜림은 손에 쥔 검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상처투성이가 된 스캐빈저 셋이 쓰러져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거로 보아 죽이지는 않았다. 적당히 힘 조절을 해서 제압하라고 한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나를 따라오던 한용운은 쓰러진 백우현 일행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떨리는 시선으로 백우현을 보더니, 이내 강혜림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혼자서 세 명을 무자비하게 제압을 했음에도 숨 하나 차지 않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런 멀쩡함이 역설적이게도 한용운이 품은 그녀를 향한 감정을 더욱 부각시켰다.
마치 별세계에 사는, 자신이 절대로 범접하지 못할 것 같은 존재.
지금 한용운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흐음. 상태를 보아하니, 굳이 반항하지 못하게 포박할 필요는 없겠네요.”
백우현과 나머지 둘을 살펴보니, 성한 부분을 찾기 힘들었다. 곳곳에 새겨진 검상은 애교다. 혜림 씨가 꽤나 과격하게 제압한 탓인지 그들은 팔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성령들은 그 광경을 보며 쌤통이라며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혜림 씨. 저들이 따로 뭐라고 말한 건 있었습니까?”
“글쎄요. 별로 귀를 기울여서 듣지는 않아서. 그냥 저쪽이 뭔가 수상하다 싶은 참에 유현 씨가 신호를 보내 줘서 바로 움직였거든요.”
“그렇군요.”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혜림의 거침없는 행동에 은근 감탄한 참이었다.
그래도 사람끼리 싸우는 것은 못 해 먹을 짓이라고, 나름 약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비 없이 두들겨 패다니.
흠. 근데 어째 저쪽의 여성은 특히나 더 많이 맞은 거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얼굴이 완전 보기 좋게 뭉개졌군.
“가, 강유현 씨. 저대로 어떻게 하시려고…….”
“지켜보세요.”
나는 한용운을 뒤로하고 쓰러진 셋에게 다가갔다. 놈들은 고통 때문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대로면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리더인 백우현에게 다가가 수면에 반쯤 잠긴 그의 허벅지를 발로 꾸욱 밟았다.
“끄아아아악!”
뼈가 부러진 곳을 밟히자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이런. 깨어나셨습니까. 백우현 씨.”
“이, 이게 대체……. 뭐야! 너, 너 대체 왜……!”
그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나를 보며 횡설수설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어깨너머의 한용운을 발견하고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이, 이 배신자 새끼가! 너냐? 네가 싹 다 불었어? 이 개 같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재차 그의 허벅지에 올린 발에 힘을 줬다.
꾸욱.
“끄으으으읍!”
“우현 씨. 우현 씨. 백우현 씨. 지금 상황이 어떤지 이해하지 못한 거 같은데. 제가 다시 이해하게 해 드려요?”
“허억! 허억!”
허벅지에서 발을 떼자 그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그제야 나를 노려보았다.
이 사람 눈빛 하나 마음에 드네.
“너네, 감히 우리에게 이러고도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냐?! 여길 나가기만 해 봐! 너희들은 다 죽었어!”
“계속하세요.”
나는 식상하기까지 한 그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더 말하라는 듯이 대답을 종용하기까지 했다.
그런 내 행동에 백우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처음 만났을 때 짓던 미소라는 가면은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다.
“못 들었어?! 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와. 그거참 재미있군요. 성령님들. 들으셨습니까? 이 자가 저와 혜림 씨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군요.”
“이 새끼야! 내가 우습냐?! 엉! 너 같은 새끼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마음만 먹으면, 뭐.”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그렇게 물었다. 동시에 발로 녀석의 상처를 지그시 밟아 줬다.
백우현은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 내려고 했지만, 나는 그런 녀석을 비웃으며 발끝에 더욱 힘을 가해 녀석의 부러진 뼈를 자극했다.
결국, 고통을 버티지 못한 백우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그만! 그마아아안!”
“그만? 그마안? 말이 좀 짧네요?”
으직!
“그, 그만해 주세요! 제발! 아아악!”
고통에 눈물 콧물 질질 짜게 되자 나는 그제야 녀석에게 발을 뗐다.
양쪽 옆에 쓰러진 나머지 둘도 백우현의 비명에 정신을 차리고 잔뜩 긴장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분고분해진 백우현에게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름. 백우현. 컬렉터 등급은 종7품. 여럿이서 뭉쳐 다니며 사람들 썰고 다니는 스캐빈저 짓을 생업으로 했고, 이미 죽인 사람이 10명이 넘었네. 그것도 모자라 깡패들이랑 연줄이 닿아 폭행, 갈취, 인신매매까지 저질렀어?”
“그, 그건…….”
내 입에서 녀석의 범죄 이력이 술술 나오자 백우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녀석은 그제야 자신이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뭐 이름도 없는 남자 하나랑 최근 졸부처럼 유명해진 검후라는 여성을 죽일 생각이었나 봐.”
“그, 그게…….”
“뭐, 지저분한 그쪽 성향상 우리를 그냥 곱게 죽일 생각도 없었겠지. 그렇지?”
“아, 아닙니다!”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고분고분한 척하고 있지만, 녀석의 눈빛은 아직도 흉흉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래, 화가 나겠지. 그리고 굴욕적일 거다.
학창 시절 때는 일진으로 살아와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은 마구 패고 부려먹었을 거다.
자신이 제일 잘난 것 같았을 테고. 그렇게 사회인이 되려는 차에 컬렉터로 각성까지 했다.
현실의 쓴맛은커녕 승승장구만 했겠지.
그의 삶에 있어서 대체 뭐가 두려웠겠는가. 뒤에서 든든하게 봐주는 형님들이 있고, 자신은 일반인보다 뛰어난 컬렉터인데.
물론, 컬렉터에게 가장 필요한 텔러 계약은 맺지 못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게 없어도 살인을 저질러 왔다.
애초에 본인도 바뀔 생각이 없었을 거다. 그러던 차에 텔러 하나가 의뢰를 했고, 녀석은 그것을 받아들인 거고.
‘참 재밌어. 인생을 완전 날로 먹으려고 들잖아?’
그러니 내가 오늘 보여 주마.
여태까지 알아 왔던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그리고 누굴 잘못 건드렸는지.
“누굽니까.”
“네. 네?”
“뒤에서 사주한 놈. 누구냐고요.”
“그게…….”
녀석이 눈동자를 굴리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손으로 녀석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발에 힘을 줘 부러진 뼈를 잘근잘근 밟아 줬다.
“아아아아악!”
“제 질문이 시원치 않았나요? 제가 뭐 어려운 걸 물었나?”
“아악! 아아악! 그만! 그만해! 개새끼야!”
“왜 이런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못 하지? 아직도 저희가 우습게 보입니까?”
“끄어어어어!”
고작 10초. 그것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백우현은 진이 빠졌다. 녀석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입가에 침을 질질 흘렸다.
“흐흐흐. 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지금 그 상태에서 용케 그런 말이 나오는군요.”
“크흐흐. 그래서 뭐. 우릴 죽이기라도 하게? 살인자가 될 자신이 있어?”
“뻔뻔하긴. 법이 두렵지 않습니까?”
“큭큭. 법이 두렵냐고? 크흐흐. 법이란다. 법이래. 그래서 뭐 사형이라도 시키게? 이 나라는 그런 거 없어. 법대로? 그래 법대로 해 보자. 그깟 깜방, 까짓것 다녀오지. 그런데 너 그거 알아? 깜방에서 나오면, 나는 바로 너 찾아가서 죽인다. 네가 아는 사람이랑 가족까지 전부 다.”
악에 받칠 대로 받친 백우현은 내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그는 내가 절대로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거 같았다.
“알았으면 당장 우릴 치료해라. 그러지 않으면…….”
“이거 진짜 웃기네.”
나는 뻔뻔하게 나오는 백우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거 참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자기들이 먼저 우릴 속여서 몰래 죽이려고 했다가 역으로 제압당하니 한다는 짓이 뭐?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나뿐만이 아니었다. 백우현의 저 뻔뻔한 낯짝을 본 내 서재의 성령들이 어서 녀석을 죽여 버리라고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성령들이 백우현을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일부 성령들이 백우현의 추태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찬란한 빛을 닮은 자가 악인에게 단죄의 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재의 분위기는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바로, 백우현과 그 일행을 죽이라는 것.
그 반응에 나는 속으로 매우 흡족해했다.
‘곧바로 죽이지 않고 녀석의 추태를 일부러 보이게끔 놔둔 보람이 있군.’
만약 내가 녀석을 깨우지 않고 바로 죽였으면, 성령들은 너무 시시하게 끝냈다고 하거나 혹은 너무 심한 처사를 벌이지 않았냐고 따졌을지도 모른다.
일부 자애로운 성격의 성령들은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그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백우현이 조금 전부터 보여 준 모습은, 그런 성령들의 반응을 싹 씻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일부러 녀석을 자극했던 나조차도 슬슬 화가 오르려는데, 성령들이야 오죽할까?
아마, 가능했다면 본인들이 직접 목을 쳤을지도 모른다.
“왜? 인제 와서 겁먹었냐? 그러게 누가 겁도 없이 나를…….”
“아니. 이제 됐다.”
“뭐? 그게 무슨…….”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거 같으니까 알려 주지. 우리가 널 못 죽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거 알아? 성령님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여기에 있던 일을 몰라.”
존댓말마저 포기한 내 스산한 목소리에 담긴 살기를 읽어 낸 것인지, 백우현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우, 웃기지 마! 증인! 증인이 있잖아! 야 용팔이! 야 이 새끼야!”
“저 사람? 저 사람이 밖에 나가서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거 같아?”
스르릉.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검을 뽑아 들었다. 백우현과 나머지 둘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내가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그럼 보여 줄게.”
푸욱!
나는 곧바로 백우현의 곁에 있는 그의 동료에게 칼을 찔러 넣었다. 불현듯이 파고드는 칼날에 남성 스캐빈저는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녀석의 갈비뼈에 쑤셔 넣은 검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꺼어억!”
결국 내 검이 심장을 찔렀고, 지나친 고통에 움직이지도 못한 녀석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광경을 보던 여성 스캐빈저가 두려움에 떨었다.
“히이익! 사, 살려 주세요!”
“이, 이런 미친!”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은 둘.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러게 이쪽을 왜 건드렸어.”
“사, 살려 주세요! 제가,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제발!”
“거, 검후 언니! 언니 제발! 저 잘못 없어요! 다 이 새끼가 시킨 거예요! 제발요!”
여성 스캐빈저는 나한테는 안 될 거 같으니, 강혜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도하게 굴던 표정은 사라지고 눈물 콧물을 마구 흘리는 추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강혜림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혜림 씨?”
설마, 나를 말릴 생각인가?
뭐, 확실히 그녀 입장에서 내가 지금 하는 짓은 꽤나 무섭게 보이겠지.
하지만, 강혜림이 보인 행동은 나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푸욱!
“꺼억! 어, 어째서.”
그녀는 그대로 검을 뽑아 여성 스캐빈저의 복부를 꿰뚫은 것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더니, 이내 옆으로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백우현은 사색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벌인 강혜림은 나를 보며 말했다.
“유현 씨. 저를 배려해서 일부러 혼자 나서신 거죠?”
“…….”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때의 싸움 이후로, 저는 확실히 깨달았으니까요.”
“……그렇군요.”
콘스탄티노플 공성전.
그 치열한 전쟁터의 속에서 강혜림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절대로 멈추지 않겠다고 각오마저 끝냈지.
‘놀랍군.’
강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혜림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첫 살인이라 해도 좋을 일이었지만, 그저 길가에 널린 돌을 치우는 것처럼 무감각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그녀를 가볍게 본 것 같았다.
“나머지도, 제가 처리할게요.”
“얼마든지요.”
혜림 씨가 알아서 잘해 주니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켜 주자 강혜림이 앞으로 나섰다.
“아, 아아.”
백우현은 떨리는 눈동자로 강혜림을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