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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4화 (4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4화

사냥은 꽤나 무난하게 흘러갔다. 저쪽도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등장하는 환상체들은 족족 사냥을 당했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강혜림이었다.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이며 한칼에 환상체들을 쓰러뜨렸다.

줄기가 반으로 잘린 ‘늪지뿌리’라는 식물형 환상체가 쓰러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잠시 휴식 좀 취하죠.”

여기까지 오는 길에 우리는 여러 차례나 되는 전투를 치러 왔다. 이쯤에서 쉬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바닥에 물이 가득하지만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이끼들이 있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이야. 대단하십니다. 환상체를 단칼에 쓰러뜨리시다니.”

“와. 저 정말 그런 거 처음 봤어요.”

스캐빈저 파티원들은 어떻게든 이쪽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강혜림을 치켜세워 줬다. 하지만 강혜림은 그들의 칭찬에도 별로 기뻐하지 않고 무뚝뚝하고 짧게만 대꾸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대화를 틀 엄두도 나지 않아서, 자연스레 침묵이 맴돌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지만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이는군.’

저쪽도 처음에는 이쪽을 우습게 보고 다가왔지만, 이어지는 전투에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혜림이 강하니까.

아마, 본인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조바심이 일 것이다.

‘다급해질수록 일을 그르치게 되지.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움직일지 모르겠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스캐빈저 무리를 세세히 살폈다.

다들 책을 지니고 있었으며, 색깔은 전부 다 보란 듯이 갈색이었다. 표지의 색도 갈색, 책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갈색.

재능도 현실도 바닥을 기는 자들에게 흔히들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흐음. 그래도 의외인 건 4명이 다니는 거치고는 한 놈은 멀쩡하단 말이지.’

나는 한용운이라는 이름이 적힌 책을 살피며 턱을 쓰다듬었다.

다른 셋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간쓰레기들이라고 하지만, 이 한용운이라는 녀석은 아무리 봐도 우리처럼 휘말린 피해자에 가까웠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끌려와서, 뒤늦게 진상을 알게 된 것.

당연히 그는 이런 상황을 반길 리가 없었고, 그 때문에 아까부터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본인은 아닌 척하려고 무표정을 고수하는 거겠지만, 나한테는 다 읽힌다.

‘흐음. 어쩔까?’

아무리 저쪽이 모르고 왔다 하더라도, 결국 스캐빈저 놈들과 함께 움직이는 동료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스스로 양심에 괴로워하면서도 결국이 현실에 순응한 시점에서 저자도 사실상 똑같은 부류나 마찬가지.

‘무작정 용서를 해 주기엔 성령님들이 그걸 바라지 않으실 테고.’

일단 저 4명이 스캐빈저 무리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지금 성령들은 어떻게든 그들이 처절하게 박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저 한 명은 착하니까 봐 줍니다.’와 같은 소리를 했다간 메시지 창에 폭동이 일어날 거다.

‘무엇보다 혜림 씨가 잘할지 걱정이군.’

내가 스캐빈저 녀석들에게 속은 척 합류를 한 데는 일단 이야기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서도 있지만, 강혜림에게 경험치를 몰아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녀는 강하지만, 아직 초짜에 불과했다. 가진 힘이 아닌 마음가짐의 이야기다.

‘컬렉터는 주로 환상체와 싸우지만, 그렇다고 같은 컬렉터끼리 안 싸우는 것도 아니지.’

현실에서 무기를 휘둘러 목숨을 걸고 싸우는 직업군이다. 당연히 분위기가 험악해질 경우에는 서로 싸움이 나고, 심각할 경우 살인도 일어난다.

그나마 한국은 컬렉터에 대한 법률이 마련되고 나름 보호가 잘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당장에 저 살인자 무리만 봐도 그렇다.

언젠가 강혜림은 환상체가 아닌, 사람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예기치 않는다면 그들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못내 걱정이었다.

‘살인이라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

항상 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 준 그녀라지만, 글쎄 이건 어떠려나.

나야 험악하게 굴러서 살인에 대해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지만, 평화로운 시대에서 자란 강혜림에게는 전혀 다르게 비춰질 거다.

평생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지도 모른다.

‘혹시나 문제가 될 거 같다면 내가 나서야겠지만.’

이미 내 손에는 많은 사람의 피가 묻어 있다. 여기에 4명 정도 추가해도 티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어디 가십니까?”

“잠시 볼일 좀 보려고요.”

나는 그렇게 둘러댔다. 물론 거짓말이다. 저쪽에서도 어떻게든 조급하게 기회를 보려고 하니, 이쪽에서 그 등을 떠밀어 줄 생각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다면, 저쪽도 무언가 행동을 취하겠지.

나는 곧바로 강혜림에게만 들리게끔 목소리를 보냈다.

-혜림 씨. 대기하세요. 제가 움직인다면 그때 저자들도 무언가 행동에 들어갈 겁니다.

-네. 알겠어요.

아마, 저쪽은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거다. 보통 이런 텔레파시 계열 이야기는 최소 정4품은 돼야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범용성이 뛰어나서 가격도 상당히 비싸기도 하다.

“금방 다녀오죠.”

“아. 잠시만요. 혼자 가시면 위험하니까 한 명 더 데리고 가세요. 야, 용 운아. 네가 같이 가드려라. 너도 방금 화장실 가고 싶다고 했잖아.”

“어, 어?”

한용운은 애초에 그런 적이 없었겠지만, 저 백우현이라는 리더가 재촉하니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무슨 속셈인지는 다 읽혔다. 보아하니, 이쪽이 혹시나 멀리 떨어질 것을 경계해서 사람 하나 붙이겠다는 거지. 그런데 사람 인선이 잘못된 거 아닌가?

“어서 가시죠.”

“네.”

한용운은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내게만 들리게끔 재촉했다. 그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개가 가득 낀 덕분인지, 우리는 조금만 움직였음에도 저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나는 적당히 자란 버섯 근처에 가서 섰고, 한용운은 그런 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흠.

“아까부터 느낀 건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신가요?”

“네, 네? 제가요?”

“네. 한용운 씨라고 하셨죠? 무슨 고민이 있으신 거 같은데,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나의 말에 한용운은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자신이 하는 짓에 대한 죄책감과 나를 향한 미안함, 그럼에도 과연 그만둘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까지.

그는 지금 현실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줄다리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눈을 빛냈다.

‘이거 어쩌면…….’

처음에는 그도 함께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운 씨.”

“아, 네.”

“아까부터 자꾸 저를 보시던데,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

나는 일부러 그가 고민하는 부분을 살살 자극했다. 내 물음에 한용운은 잠시 입술을 꾸욱 깨물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유현 씨……라고 하셨죠.”

“네.”

“지금 바로 도망치세요.”

그 말에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눌렀다. 반대로 이 광경을 따로 지켜보던 성령님들은 한용운의 태도에 꽤나 놀란 눈치였다.

같은 스캐빈저의 동료가 아니었나? 왜 갑자기 저러지?

대부분이 그런 반응이었다.

“왜 도망치라고 하시는 건가요?”

“그, 그게……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믿지 않으시겠지만, 백우현. 그러니까 저 셋은…… 살인자예요. 사람을 죽이는 나쁜…… 사람이요.”

결국, 한용운은 자신이 아는 사실을 전부 털어놨다.

백우현이 자신을 강제로 불렀고, 여기 와서 알게 된 건데 사람 둘을 죽이는 거라고. 거기에 충격을 받았고 그렇다고 싫다고 거절하려니, 저들에게 죽을 거 같아서 무서웠다고.

그럼에도 그는 용기를 내서 내게 고백한 것이었다.

“그, 이상하게 들리시는 것도 이해해요. 제가, 저들이랑 같은 부류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네. 저도 알아요. 저도 사실상 나쁜 놈이죠. 몰라서 왔다고는 해도, 여기 온 이후로는 진실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까요.”

“…….”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거 같아요. 자기가 좋다고 남을 죽이려고 하다니. 그건 짐승만도 못한 짓이잖아요. 그러니까 어서 도망치세요. 제가 따로 가서 몰래 죽였다고 거짓으로 보고할게요. 그 검후라는 여성분도 괜찮아요. 가서 따로 몰래 알려 줘서 기회를 틈타 내보낼게요.”

“그러다 들키면요? 혜림 씨는 물론이고, 용운 씨도 위험해지는 거 아닙니까?”

“그건…….”

“무엇보다 대체 저희 둘이 뭐라고 죽이려고 찾아온 건지, 그조차도 의문이군요. 대체 왜 그런 겁니까?”

이미 다 털어놓은 그는 더 숨길 것도 없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우현이가 그랬어요. 텔러 한 명이 자신을 찾아왔다고요.”

“호오. 텔러라.”

나는 일부러 추임새를 넣었다.

뭐, 한용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나는 이미 이 상황의 진실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저 스캐빈저 무리를 뒤에서 사주한 것이 누구인지조차.

그 사실을 모르는 한용운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게 누구인지는 저도 자세히 몰라요. 다만, 텔러 중에서도 나름 이름이 있는 부서 소속이라고 들었어요. 이번 일이 성공하면, 이쪽과 서재 계약을 해 준다고 했대요. 그, 그래서일 거예요.”

“서재 계약이라.”

한용운이 죄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이건 단순히 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일련의 일들은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쌓여 온 어두운 일면이었다.

텔러를 구하지 못한 컬렉터들, 서재 계약을 맺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령의 후원을 받을 수 없고, 당연하게도 서재 계약을 맺은 컬렉터들과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텔러의 숫자에 비해 컬렉터들이 지나치게 많은 탓이었다.

나름 직급이 높은 텔러의 경우에는 서재 계약을 여러 명과 맺어, 시화 주인공이 여럿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넘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결국,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그 자리는 언제나 선택받은 자들의 것이었다.

“저도 알아요. 저희 같은 녀석들은 죽었다 깨어 나도 텔러와 만나지 못하겠죠. 애초에 자격이 안 됐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해서 노력했어요. 컬렉터 등급도 올리고, 어떻게든 위험을 감수하고 싸우기도 했죠.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어느덧 이야기는 한용운의 개인 한탄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분명 저는 서재 계약이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죽이는 대가로 그걸 받다니. 이건…… 옳지 않아요.”

“하지만, 눈 한번 딱 감고 저지르면 되는 일이 아닌가요?”

정작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웃길 법도 한데,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알아요. 이 한 번을 저지르면 과연 다음에는 떳떳하게 살 수 있을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처음이 힘들지 그다음은 쉬울 테니까요. 분명 그렇게 되면, 저는 제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겠죠.”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도망치세요. 여긴 제가 맡을 테니까.”

그의 말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분명 두려움에 떨릴지언정 이쪽을 기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성령들의 반응을 살폈다. 대부분이 설마 한용운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히려 동정적인 여론도 생기는 걸 보면,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후. 그럼 어쩔 수 없죠.”

“네. 그러면…….”

“용운 씨는 여기 남으세요.”

“네?”

한용운은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게 대체 무슨…….”

“뭐,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희 쪽도 그쪽을 속이고 있었다는 소리죠.”

“속였다고요?”

“저희가 바보도 아니고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겠습니까?”

“그런…….”

그래도 돌아가는 머리는 있는지, 한용운은 순식간에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역으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사람이나 보일 법한 반응.

만약 그가 정말로 구제할 수 없는 악인이었다면 나는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럼,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다는……?”

“알다마다요. 용운 씨가 저를 따라온 것도, 백우현이라는 녀석이 뒤처리를 하라고 보낸 게 아닙니까?”

“…….”

“뭐, 너무 쫄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운 씨는 방금 그 행동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저쪽에 있는 셋은 아니죠.”

“자, 잠깐만요! 그러면 위험하잖아요! 그 강혜림이라는 분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멀리서 미약하게 들려오는 비명을 들었다.

안개에 섞이고 먹혀서 제대로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3명의 비명이었다.

“이미, 저쪽에서도 일을 처리하고 있거든요.”

한용운이 내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놨을 때, 나는 강혜림에게 신호를 보낸 뒤였다.

그게 3분도 안 됐으니까, 어디 보자.

“슬슬 끝났겠군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한용운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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