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3화
스캐빈저.
흔히들 좀도둑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지만 컬렉터들 사이에서 스캐빈저는 조금 범용성이 넘치는 칭호다.
기본적으로 스캐빈저는 다른 컬렉터 파티가 사상세계에서 사냥하고 남은 이야기의 찌꺼기나 텍스트를 몰래 수거하거나 훔치는 일을 생업으로 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사냥하기 힘든 환상체를 잡기는 무섭고 그렇다고 그 부산물이 필요한 탓이었다.
‘물론 그 정도는 차라리 양반이지.’
일부 스캐빈저 중에서 악질적인 놈들은 단순히 몰래 훔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녀석들은 오히려 다른 컬렉터들을 뒤통수치거나 심각하면 죽이기까지 한다. 특히 이런 부류는 절대로 혼자서 움직이지 않고 철저하게 조직으로, 파티를 이루며 움직인다.
지금 우리에게 접근한 저 4명이 바로 그런 악질적인 스캐빈저 파티였다.
“유현 씨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정말이라는 소리겠죠.”
의외로 강혜림은 정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정말 대단한 신뢰를 쌓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돼서 뭔가 뿌듯한 느낌. 아니,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유현 씨는 저들이 스캐빈저인지 어떻게 아셨나요?”
[성령들이 강혜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령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어떻게 알기는. 상대방의 ‘책’을 읽기만 하면 바로 정체를 짐작할 수 있지.
물론 이것을 솔직하게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미리 떠올린 대사를 내뱉었다.
“저들의 장비. 자세히 살펴보셨습니까?”
“네? 그건…….”
“멀쩡했습니다. 이제 막 사상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깔끔하더군요. 저들은 분명 저희에게 그렇게 말했죠. 여기 와서 잠시 사냥해 봤는데,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복장이 너무 깔끔했고 지친 기색도 없었습니다.”
나는 발을 움직여 가볍게 늪지대를 찼다.
찰박!
“보세요. 이곳은 발목까지 잠기는 늪지입니다. 조금이라도 격하게 움직이면 이렇게 진흙이 튀죠. 어지간한 수준의 컬렉터라 하더라도 싸움에 들어가는 순간,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성령들이 당신의 추리에 감탄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옷을 갈아입었을지도 모르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컬렉터들이 걸친 의복은 평범한 옷처럼 보이지만, 이야기의 힘이 깃든 특수한 아이템에 가깝죠. 그게 더러워졌다는 이유로 갈아입는다? 보통 컬렉터는 그런 짓을 할 정도로 풍족하지 않습니다. 여분의 옷이 없다는 소리죠.”
애초에 그런 부르주아 같은 짓을 할 정도인 컬렉터라면, 굳이 포인트를 벌기 위해 이런 지저분한 곳까지 찾아올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더 수상한 점은 저희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는 거겠죠. 뭐, 제 입으로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솔직히 저희들이 다른 컬렉터들에게 보통 밉보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성령들도 반박할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니, 거기서는 그래도 좀 부정해 주면 안 됩니까?
“다른 컬렉터들은 저희를 보면 피하거나 혹은 흥미를 품거나 둘 중 하나죠. 하지만 저쪽은 마치 이쪽을 모른다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4~6명이 파티를 이루는데, 저희는 고작 둘입니다. 그렇다면 저쪽은 역으로 저희 둘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저쪽이 둘이다?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을 떠올리는 게 당연하다.
혹은 미리 둘이서 들어오고, 나머지 파티원이 추가로 도착하길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 어떤 결론을 냈다 하더라도, 저들이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오며 합류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의심하지도 않으며,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럴싸하게 변명을 하는 것 치고는 모순된 점이 있다. 최소한 저들이 무언가 의도가 있고, 그것을 숨긴 채 다가온 것은 확실하다는 거죠.”
나는 주변을 쓰윽 살피고는 코웃음을 쳤다.
“때마침 안개도 자욱해서 몇 십 미터 바깥의 풍경도 제대로 보이지 않군요. 소리도 잘 퍼지지도 않는 거 같고. 사람이 죽어도 알아차리기 힘든 최적의 조건이 아닙니까?”
“그러면 유현 씨는 왜 굳이 저쪽의 제안을 승낙하신 거죠? 저쪽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면 그냥 거절하면 되잖아요.”
[성령들이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뭐, 강혜림의 말마따나 애초에 이쪽이 칼같이 거절을 하기만 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아니면 일행이 있다고 거짓말로 둘러대도 좋았고. 저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과하게 질척거리는 순간 우리가 의심할 거라는 걸 알 테니까.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네?”
“성령님들께 묻겠습니다. 여기 눈앞에 악당이 있습니다.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등 뒤에 저희를 찌를 칼을 가린 채 저희에게 접근한 악당이죠. 놈들은 저희를 아주 적당한 먹잇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놈들이 다가오는데, 단순히 피하기만 하실 겁니까? 성령님들이라면 그러실 겁니까?”
나의 도발적인 어조에 메시지 창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성령들이 절대 그런 짓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다수 성령이 무조건 상대를 짓밟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찬란한 빛을 닮은 자가 봐줘서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심지어 천상낙원의 미카엘마저 내 뜻에 동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캐빈저가 무엇인가?
악인이다.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고,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악인.
그런 놈들을 가만히 놔두는 건 영웅담의 이야기가 아니다.
악인들을 시원하게 쳐부수고 그들에게 절망감을 심어 준다. 그것이 성령들이 가장 바라는 ‘즐거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모르는 척, 저쪽의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아. 그런 거였구나.”
강혜림은 어째서인지, 내 말에 안도의 기색을 내비쳤다. 음? 뭐, 내가 정말 사이좋게 지내기라도 할 까봐 걱정이라도 한 건가? 순진하기는.
“일단, 속아 주는 척 하는 겁니다. 즉석에서 다 까발리는 것은 재미가 없죠. 저들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척하면서, 중요한 순간에 역습을 가하는 겁니다. 그래야 더욱 극적인 이야기가 탄생하죠.”
“저쪽이 속아 줄까요?”
“하하. 혜림 씨.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내 말에 강혜림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무식한 사람이 아닐까요?”
“뭐, 아는 게 없는 사람은 잘 속겠죠. 하지만 그걸 아셔야 합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야 말로 더욱 속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고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묻죠. 똑똑한 사람들이 속을까요?”
“그건…… 아닐 거 같아요.”
“네. 똑똑한 사람도 잘 속지는 않습니다. 그쪽에게는 지식과 정보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가 가장 잘 속느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뭔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속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자기가 아는 사실이 진짜고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런 잘못된 신념에 눈이 먼 장님이 되고 만다.
정말 위험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모든 걸 아는 사람도 아니다.
어중간하게 아는 놈들이야 말로 제일 위험하고, 제일 멍청하다.
자신이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놈들.
내가 아는 것만이 진실이고, 내가 남들의 머리 위에 서 있다고 우월감에 빠진 놈들.
그런 놈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 * *
“후우. 방금 표정 봤어? 멍청하긴. 제대로 속아 버렸잖아.”
“킥킥. 솔직히 검후라고 해서 존나 쫄았는데, 별거 아니잖아? 하긴. 컬렉터로 활동한지는 한 달도 안 된 초짜가 뭘 알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고.”
스캐빈저들은 자신들의 연기가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생각하는지,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 한용운이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표정을 읽은 일행의 리더, 백우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야. 용팔이.”
용팔이.
그것은 백우현이 한용운을 부를 때 꺼내는 멸칭이었다.
그가 컬렉터가 되기 전, 핸드폰 직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때문에 붙인 별명이었다.
“짜식. 표정 봐라. 왜? 이런 짓 하니까 양심이 찔려?”
“우현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다.”
한용운은 백우현과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딱히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악연이라면 악연이었지.
학창 시절 백우현은 주변 얘들을 괴롭히는 일진에 양아치였고, 한용운은 괴롭힘을 받던 피해자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사회에 나와 컬렉터가 되어서도.
한용운은 백우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각성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백우현은 컬렉터 꼬붕이 생겼다며 한용운을 자기네 쪽으로 강제로 영입했다.
‘이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애초에 한용운은 자신이 속한 이 파티가 스캐빈저였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그저 괜찮은 일이 있다는 꼬드김에 속아서 온 것이었다.
“하, 야. 용팔이. 그러니까 너는 이 일하기 싫다 이거네?”
“그건…….”
“그래. 양심대로 살아서 때려치운다고 쳐 봐. 그러면 뭐, 달라지냐? 야, 이 병신아. 정신 차려 새끼야. 지금 우리 컬렉터가 된지 얼마나 지난 지 알아? 반년이다. 그런데도 계약한 텔러가 없어. 텔러가!”
조금 전까지 유현에게 사람 좋게 웃던 백우현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텔러 없이 우리가 뭐 해 먹고살 건데? 포인트를 어떻게 벌 건데? 성령님들 비위 맞춰줄 자신이 있는데, 그럴 기회조차 없잖아. 그러면? 만들어야지. 있는 놈들 거 빼앗아서라도 올라가는 게 이 바닥 생리 아니겠어? 포인트 벌기 싫어? 계속 밑바닥에서 살래?”
“그래도 이런 방법은…….”
“오. 용팔이. 지금 나한테 말대꾸하는 거야?”
흠칫!
백우현의 말에 한용운은 몸을 움찔 떨었다. 백우현이 목소리를 내리깔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 기억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제길. 그는 이를 악 물었다.
사회인이 되고, 컬렉터가 되어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겁쟁이에 루저였고, 백우현의 따까리에 불과했다.
“후우. 야. 용팔이. 적당히 해라. 학창 시절 때 떠올리게 해 줘? 넌 진짜 여기 장소만 아니었어도 나한테 뒤지게 맞았어. 싫으면 입이라도 닥치고 있어. 난 그대로 할 거니까. 너희는?”
“낄낄. 이런 일에 빠지는 게 병신 아니냐? 멍청한 두 년놈 속여 먹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호호. 안 그래도 그 검후라는 년 면상에 칼 좀 그어 줄 생각에 난 벌써 기대되는 걸?”
나머지 둘은 백우현과 같은 부류였다. 그들의 행동에 한용운은 더더욱 침울해졌다.
이곳에 자신의 편은 없으며, 결국 저들과 어울리는 자신도 저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쓰레기라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부정하려는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다.
틀린 건 틀리다고 외치면 뭘 하는가. 힘이 없는 외침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오히려 비웃음을 사고,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이건 아니야.’
사람을 죽이는 짓은 도저히 하지 못할 거 같았다. 이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았다. 사기를 치고, 속여서 죽이려고 하다니. 그런 짓은…….
“야. 저기 온다. 표정 관리 해라.”
이쪽을 노려보며 말하는 백우현을 보며, 한용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깔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는 결국 겁쟁이였다. 눈앞의 폭력과 힘에 굴복해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어긋나는 짓을 벌이려는 그런 평범한 겁쟁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한용운은 자신의 이 비루먹은 운명이 증오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도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소리치지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그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검후라는 여인과 그의 동료 남성을 향해.
무표정한 얼굴을 보여 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사냥이 시작됐다.
속인다고 착각하는 자들과 그들을 잡아먹으려는 자의 사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