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2화
일부 성령들과 은연중에 이어진 주도권 싸움은 나의 승리로 돌아왔다.
나는 대기시켰던 강혜림을 불렀다. 백효를 데리고 다른 곳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내가 부르기가 무섭게 내게 다가왔다. 물론 표정 관리는 한 채로.
[검후 떴다!]
[검후! 검후! 검후!]
[이쪽을 봐 줘!]
그녀의 등장에 얌전했던 일부 성령들이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지만, 내가 한 차례 분위기를 휘어잡은 덕분인지, 선을 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음음. 다행이야.
“자. 성령님들. 오늘은 저희 듀오가 또 다른 사상세계를 클리어 할 생각입니다.”
[성령들이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당신들을 주시합니다.]
“하지만 일전의 콘스탄티노플 같은 곳은 아직 무리인지라, 오늘은 조금 가벼운 곳으로 갈 생각입니다.”
[일부 성령들이 기대를 배신당했다며 실망합니다.]
“너무 그러지들 마세요. 그래도 사상세계에 깔짝 들어가서 파밍만 하고 나오지는 않을 거니까요. 간다면 확실하게, 끝낼 생각입니다. 혜림 씨도 준비되셨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그녀의 어깨에 있던 백효가 내 어깨 위에 안착했다. 그래도 강혜림과 어느 정도 같이 지내며 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를 부모로 인식하고 있어서 내 곁이 좋은가 보다.
일부 성령들은 백효의 존재를 눈치채고 꽤 놀란 눈치였지만, 미카엘을 인지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인과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그들도 짐작했다는 소리다.
“그러면 가 볼까요?”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이 전에 좀 어려운 걸 했으니, 이번에는 쉬운 거로 갈 생각입니다. 혜림 씨 지금 등급이 어떻게 되죠?”
“정6품이요.”
“컬렉터로 활동한 지 얼마나 되셨죠?”
“한 달도 안 됐죠. 기간만 따지면, 3주 정도 됐나?”
“그렇죠. 지금까지 저희가 너무 달리기만 한 거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쉬어 간다는 느낌으로 가려고 합니다.”
내 말에 성령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강혜림이 지난 3주 동안 얼마나 강행군을 꾸려 왔는지 아는 것이다.
보통 컬렉터가 종9품에서 정6품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2년이 걸린다.
그 과정을 3주로 압축했으니, 과로로 쓰러지지 않은 것이 용했다.
“이번에 가려는 사상세계는 필드 형태로, 테오돌란트 습지입니다. 지금 혜림 씨의 등급에 어울리는 곳이죠.”
테오돌란트 습지는 필드 형태의 사상세계로, 코볼트 폐광처럼 클리어 조건은 일반 환상체 및 보스 토벌이다.
환상체 토벌이 클리어 조건인 곳은 기본적으로 환상체들이 자주 젠 되기 때문에 컬렉터들이 파밍을 위해 자주 찾아온다.
테오돌란트 습지는 그중에서 종5품에서 정7품 사이의 컬렉터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지금의 강혜림에게는 쉬어 가는 느낌으로 들르기에 적당했다.
“정말인가요?”
해당 사상세계의 정보를 말해 주니, 그녀는 눈을 빛냈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사냥하고 싶어 하는 눈치.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도심 안쪽에 자리 잡은 테오돌란트 습지로 이동했다.
“이 전에 왔던 사상세계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꽤 많네요.”
입구 주위에 진을 친 사람들을 보며 강혜림이 중얼거렸다. 단순히 컬렉터들뿐만이 아니었다. 편의점이나 음식점도 많았고, 컬렉터들이 쉬어 가라는 간이 휴식 장소까지 있었다.
“일단 장소가 도심에 가깝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있는데, 이곳 사상세계가 파밍용으로는 꽤 좋은 곳이라서 컬렉터들이 많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문제는 그런 사상세계를 지금 나와 강혜림이 끝장내러 간다는 거겠지.
“어, 야야. 저거 봐.”
“뭔데?”
“저거, 설마 그 검후 아니야?”
“야, 그게 무슨…… 헐. 진짜네.”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던 몇몇 컬렉터들이 강혜림을 알아봤다. 그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강혜림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같은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업계를 위협하는 이단자였다.
“대체, 왜 여기에…….”
“설마, 테오돌란트 습지를 클리어 하려고?”
“야, 이거 큰일 난 거 아니야?”
컬렉터들이 사상세계를 유지하며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챙기는 것과 다르게 강혜림은 사상세계를 뿌리째 뽑아 버렸다.
그녀가 지금까지 없앤 사상세계의 숫자만 무려 5개. 그중 하나는 악명 높기로 소문이 난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강혜림에게 붙은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양식장 브레이커’.
기원을 따지고 보면 조금 불명예스러운 별명이었지만, 정작 그걸 듣는 그녀는 재밌다며 웃어넘겼다.
애초에 본인 특성이 고려시대 소드마스터라 이런 것에 내성이 생긴 탓이었다.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있네요.”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겁니다. 저희가 떴다는 것은 거의 비상사태나 다름없으니까요.”
“저희가 무슨 역병을 몰고 오는 재앙도 아니고. 이게 무슨 꼴인지.”
“저들로서는 그 비슷한 거라고 봐도 좋으니까요. 그래서 그만두실 겁니까?”
“아니요? 절대 안 그럴 건데요?”
우리가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이쪽을 향하는 시선이 점점 늘어났다.
일부 컬렉터들은 나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혜림 씨의 악명(?) 때문에 그녀를 노려보는 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
그것을 받으면서도 나와 강혜림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야말로 악당 취급이네요.”
“저쪽이 저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저쪽도 딱히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거나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우리와 행여나 충돌할세라 옆으로 길을 비키기까지 했다.
일단 이곳에는 일반인들도 보는 시선이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강혜림이 이미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한 탓이 컸다.
콘스탄티노플의 승리자. 그러한 명성 자체만으로도 그녀의 위상은 적어도 동급의 컬렉터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거겠지.
사실상 저들에겐 반강제적인 존중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문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분명, 이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다. 강혜림이 이룬 모든 업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사기극이라고.
그럼에도 그들이 우리 앞길을 막지 못하는 건, 그만큼 강혜림이 풍기는 기운이 강력하기 때문이겠지.
얼굴에 힘을 주고 표정 관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겨울에 피어나는 얼음꽃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에 압도된 컬렉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야. 어, 어떡해.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말려? 무슨 명분으로?”
“그러면 이대로 놔두자고? 저거 클리어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쫄리면 네가 가서 한번 말해 보던가.”
“아니. 어떻게 말을 걸어. 진짜 분위기 장난 아닌데.”
“하, 씨. 오늘 완전 텄네. 평소에 자주 찾아가던 사상세계인데, 앞으로 못 가는 건가?”
“휴. 나는 일찍 와서 사냥하길 잘했다.”
반응은 그야말로 가지각색.
대부분은 이쪽이 찾아온 것에 낙담하며 포기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부 텔러들이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해서 자신의 컬렉터들을 닦달했지만, 그렇다고 의욕이 날 리가 있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테오돌란트 습지에 돌입하자 풍경이 바뀌었다.
콘크리트 건물의 벽들이 사라지고, 자욱한 안개가 낀 습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습지와 다르게 곳곳에 거대한 버섯들이 자라나 있었고 버섯 하나가 거의 건물 7~8층 높이는 돼 보였다.
습한 공기에 버섯이 뿜어내는 포자까지 섞이니, 피부에 닿는 공기가 찝찝했다.
게다가 은근히 악취도 나는 거 같고.
“으윽. 냄새.”
아직 이런 것에 내성이 없는 강혜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유현 씨는 멀쩡하시네요.”
“적응했거든요.”
이 정도의 습지는 종말의 풍경과 비교하면 꿈과 희망이 넘치는 테마파크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직 초짜인 강혜림에게는 아직 이곳조차 꽤 험난한 환경이리라.
“후. 버섯이 뿜어내는 가루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여요. 게다가 숨 쉬는 것도 좀 답답한 거 같고.”
“그나마 포자에 독성이 없어서 신체에 무리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반인이라면 폐에 무리가 갔겠지만, 컬렉터는 그런 거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지만.
웅성웅성.
안쪽에서 돌아다니던 일부 컬렉터들은 우리를 단번에 알아봤다.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오던 몇몇은 우리와 엮이기 싫은지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몇몇 일부는 자리에 남아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행동할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내부 분석에 들어갔다.
‘흐음. 일단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는 게 우선인가?’
폐광과 다르게 사방으로 트인 습지가 배경이라 그런지, 방향을 특정 짓기 어려웠다. 게다가 거대한 버섯들이 중간중간 길목을 가로막고 있어서, 사실상 버섯의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상 습지라기보다는 홍수림에 가까운 장소.
‘발목이 살짝 잠겨서 그런지, 조금 움직임이 껄끄러워지겠군. 일단 식물형 환상체인 늪지뿌리만 찾으면 나머지의 방향을 알기 쉬우니, 그걸 우선으로 삼아 볼까?’
강혜림에게 브리핑하려는 순간이었다.
아까부터 이쪽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무리가 다가왔다.
“저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사냥하실래요?”
* * *
‘뭐지?’
강혜림은 상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유현과 함께 지낼 때는 항상 풀어지고 어리광을 부리는 그녀였지만, 제삼자가 연관되는 순간 그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를 경계했다.
숫자는 넷.
남자 셋과 여자 하나의 조합이었다.
그중에서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쪽은 두 분이신 거 같은데 맞죠?”
“그렇습니다만.”
유현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아, 역시. 사실 저희가 원래 6인으로 활동했거든요. 그런데 두 명이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바빠서 빠진 탓에 자리가 비었는데. 혹시 같이 움직이지 않으실래요? 그래도 넷이서 괜찮겠다 싶어서 좀 사냥하고 있는데, 좀 힘에 부쳐서요.”
강혜림은 저들이 이쪽을 못 알아보고 다가오는 건가 의아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게 좀 자랑 같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름 명성 있는 검후가 아니었던가?
남들은 다 강혜림을 알아보고 피했는데, 오히려 다가오는 저쪽을 보니 뭔가 새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소문에 귀가 어두운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구나.’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와 유현은 애초에 누군가와 함께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저쪽은 평범하게 파밍 사냥을 하려는 생각이었겠지만, 이쪽은 사상세계를 클리어하러 찾아온 거니까.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그렇게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유현이 먼저 대답했다.
“오 그거 좋죠. 저희도 사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다행이다.”
‘어?’
전혀 예상 밖의 대답에 강혜림은 당황했다.
그녀가 이 순간 자신의 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포커페이스를 연습해 온 노력 덕분이었으리라.
‘유현 씨. 대체 왜?’
강혜림은 웃으면서 말하는 유현의 옆모습을 보며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실, 유현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저들의 합류를 꺼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
그녀는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4명의 파티 중에서 3명은 남자였지만, 단 한 명 여자가 끼어 있다는 점을!
‘설마……!’
강혜림이 뜨악하는 느낌으로 여성 컬렉터를 슬쩍 살폈다.
눈꼬리가 올라간, 어딘가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염색한 금색 쇼트커트에, 활동하기 편하게 피부가 많이 드러나는 복장. 심지어 몸매도 슬림하다. 손에 쥔 단검을 보아하니 도적 계열인 거 같았는데, 강혜림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내, 내가 그렇게 스킨십을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뭔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저런 쪽이 취향이었던 거야?!’
강혜림은 슬쩍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허리를 꼬집었다.
최근 돈을 벌어서 간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일까, 묘하게 살집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강혜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는 사이에 유현과 파티 리더의 대화가 끝났다.
“자. 그러면 함께 잘 해 보죠.”
“네. 그래요.”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합니다.”
강혜림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새로운 파티가 맺어졌다. 성령들은 왜 유현이 갑자기 저렇게 행동하는지에 관해 조금 따지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지만, 한바탕 데인 탓에 메시지 창을 남발하지는 않았다.
이 중 유일하게 강혜림만 속으로 끙끙 앓았다.
“저희는 잠시 짐 좀 챙겨 올게요.”
“네. 그러세요.”
새로 합류한 네 명이 조금 떨어진 곳에 놔둔 짐을 챙기러 가는 사이, 유현은 곧바로 강혜림에게 말했다.
“혜림 씨.”
“네, 네?! 아, 네. 유현 씨. 네. 알아요. 저는 이해해요.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법이니까요. 그럼요. 물론…… 저, 저런 취향일 거라고는 몰랐지만. 물론, 저도 다이어트 제대로 하면 저렇게…….”
“갑자기 무슨 소리 하십니까. 이미지 관리하시고.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네?”
유현은 즉시 강혜림에게만 들리게끔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가까워지는 유현의 얼굴에 강혜림이 살짝 홍조를 띄웠지만, 이어지는 유현의 말에 그녀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 파티, 스캐빈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