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40화 (4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0화

지구에 머무는 대부분의 텔러들은 유현의 소문을 듣고 있었다.

텔러면서도 가호를 포기하고 하계의 인간과 같이 싸우길 택한 괴짜. 그들에게 있어서 유현이 택한 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텔러 강유현이 벌인 짓은 지금까지 항상 지켜보기만 했던 텔러의 근간을 흔드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역할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진 텔러일수록 유현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건방진 정사원 자식. 자기가 뭔데 멋대로 가호를 버려?’

‘멍청한 놈. 지금은 운이 좋아서 가호가 없이 한번 이겼지만, 과연 앞으로도 멀쩡할까?’

‘어차피 그 인기는 일시적인 거야. 성령님들은 다시 돌아오게 돼 있어.’

그런 생각을 품은 것과 다르게, 유현이 벌인 짓에 관해서 차분하게 분석하고 그를 인정하는 텔러들도 더러 있었다.

‘가호를 포기하고 직접 싸운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있던가?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시화 방식이다.’

‘텔러가 싸운다. 이것 하나만으로 성령님들이 환장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게 돼. 잘도 이런 발상을 떠올렸군.’

‘강유현 사원이라고 했지? 성장세를 보아하니 금방 대리를 달 것 같고, 우리 부서에 와 줬으면 좋겠는데.’

이러한 소문은 지구에서부터 혼성계 전역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특히 유현이 몸을 담고 있는 천체주식회사에서는 유현이 벌인 짓을 모르는 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크하하하. 이 녀석. 눈빛만 봐도 언젠가 사고 한번 칠 거 같기는 했는데, 설마 벌써 저질러 버렸을 줄이야.”

기록보관실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용인 텔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유현과 만나던 날을 떠올렸다. 갓 입사식을 끝낸 초짜. 그럼에도 자신의 모습을 바로 취해서 꽤 기대되는 가능성을 지녔던 신입 텔러.

그는 그때부터 유현의 특이함을 알아봤다. 정확히는 그의 안쪽에 담겨 있는 거대한 열망의 불꽃을 말이다.

“녀석에게 명예의 전당을 보여 준 것은 어떻게 보면 좋은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어.”

다른 텔러들이 그저 시대가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것과 다르게, 유현은 반대로 흐름을 주도했다. 다른 텔러들이 떠올려도,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그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이다.

과연 그 과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 끝에는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자가 그의 시화에 열을 올리고 관심을 가질 것인가?

새로운 길을 걷는 건, 분명히 순탄치 않을 것이다.

“다른 부서나 다른 실에서도 꽤 관심을 갖는 녀석들이 늘어난 거 같고.”

과연, 그러한 외부적인 요인을 포함해서 유현은 잘해 나갈 수 있을까?

“허허. 아무래도 머지않은 시일 내에 다시 만나게 될 거 같군.”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재미있지 않겠는가?

* * *

“이런 제길!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진풍은 자신의 방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직접 행동을 취하기 전에 유현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골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날듯이 기뻐했었다.

콘스탄티노플이 어떤 곳이던가?

지금까지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했던 철옹성 같은 사상세계.

실패를 모르던 강혜림이 그곳에 들어갔으니, 분명 호되게 당하고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장소였다. 다른 텔러들, 컬렉터들도 애초에 클리어를 목적으로 찾아가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진풍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대체, 대체 거길 어떻게 클리어 한 거지?”

진풍도 옛날에 자신의 컬렉터를 데리고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펼쳐진 오스만의 군세를 보고 질리고 말았다. 그의 컬렉터 또한 겁에 질려서 바지에 오줌을 지리지 않았던가?

거기는 그런 곳이었다.

어지간한 컬렉터는 절대로 클리어 하지 못하는 곳.

그런데 강혜림은 그걸 해냈다. 다른 컬렉터들이 모두 겁에 질려 도망쳤을 때, 그녀는 끝까지 남아서 싸웠다. 그리고 그녀의 텔러인 유현 또한 가호를 포기하고 함께 싸웠다.

그렇게 단둘이서 지금껏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난제를 풀어헤친 것이다.

‘가호를 포기하고 컬렉터와 함께 싸워서, 살아남았다니?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소문을 직접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이게 현실인데 마치 끔찍한 악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이 성공으로 유현의 서재가 얼마나 성장했던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시청령이 이미 1,500을 넘었고 구독령도 1,000을 넘었다고 한다.

이마저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다. 아마 소문이 계속 퍼지고 퍼지다 보면, 다른 곳의 성령들이 더 많이 찾아올 가능성이 컸다.

진풍은 배가 아파 왔다. 까마득한 후배가 자신이 하지 못한 걸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꽉 쥔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빌어먹을 자식!”

게다가 뭐? 판데모니움의 사탄과도 친분이 있어?

들리는 바에 의하면 대성군 에덴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소문은 소문을 낳는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또 다른 성군에서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진풍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방해해야 한다. 어떻게든 녀석을 막아야 해.’

이제는 유현을 반드시 짓밟아야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 마냥, 진풍은 그의 몰락에 과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놔두면 안 돼. 녀석은 지금 이 기세를 타면 내가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절대 돌이킬 수 없어. 녀석을 데리고 오거나, 아니면 밟아 주라는 부서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진풍은 몸을 잘게 떨었다.

텔러가 가호에 보호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무서운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가호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물리적인 위협만 막아 주지, 그 외 다른 방식으로 가해지는 외압은 막아 주지 않으니까.

가령, 자신의 부서에 소속된 상사의 엄벌이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였다.

‘성공해야 한다! 반드시! 실패하면 나는 끝장이야!’

다행히도 그의 뜻을 따라 줄 장기 말은 준비되어 있었다.

텔러인 그가 직접적인 행동은 할 수 없지만, 뒤에서 누군가를 부추기고 종용하는 것쯤이야 손쉬운 일이었다.

때마침 급격하게 인기를 얻는 강혜림을 질시하는 컬렉터들도 많이 있었다.

‘이 녀석들을 이용한다면.’

강혜림뿐만 아니라 그 건방진 강유현도 죽일 수 있었다.

녀석은 가호를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비록 좋게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바꿔 말하면 진풍이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연 것이나 다름없었다.

“큭큭. 그래. 텔러면서 가호를 포기한 대가는 치러야지.”

진풍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 * *

[서재가 개방되었습니다.]

시화를 위해 서재를 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성령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300명 수준이었던 성령들은, 어느덧 순식간에 1,000명을 넘어서서 1,500에 도달했다.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났다. 이거네.’

그러는 사이에도 서재에 방문하는 성령들은 멈출 줄 몰랐다.

5분도 안 돼서 시청령의 숫자는 순식간에 2,000명을 돌파했다.

[축하합니다. 서브미션-시청령 2,000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소정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시청령: 2,482명]

[현재 구독령: 1,142명]

시청령의 숫자는 확실히 늘었는데, 구독령은 그 반도 안 됐다. 갑자기 늘어나는 시청령의 숫자를 구독령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다.

물론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고, 이만한 시청령을 유지하면서 구독령 비율이 거의 50%에 가까운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래도 뭔가 아쉽긴 하단 말이지.’

조만간 외부 업체에서 광고가 들어온다면 그때 더 늘어날 것이다.

어찌 됐든 지금은 일할 시간.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성령님들. 싸우는 텔러와 검후의 이야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반갑다고 인사를 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됐고, 어서 시화를 보여 달라고 보챕니다.]

[일부 성령들이 닥치라고 소리 지릅니다.]

…….

시청령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메시지 창은 그야말로 개판이 됐다.

[100TP 후원!]

[후. 야 신입들. 닥눈삼 모르냐? 닥눈삼? 가만히들 있어라.]

[100TP 후원!]

[그래서 시화는 언제 보여줌? 시화! 시화! 시화! 시화!]

[100TP 후원!]

[남정네 말고 검후 보여 줘! 검후 어디 갔어?! 검후 내놔아아아!]

포인트를 이용한 직접 메시지 창도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이전에도 이 문제를 인지하기는 했는데,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상황을 보니 확실히 심각하게 느껴졌다. 사탄이 없으면 서재가 이 꼴이 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여러분. 잠시 진정하세요. 일단 제가 예정보다 일찍 서재를 개방한 것은, 성령님들께 공지 사항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부 성령들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너무 좋게 여겨 주셔서, 의도치 않게 과분한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덕분에 서재가 커진 것은 좋지만 당장에 관리하는 게 힘에 부칠 지경이거든요. 그래서 제 서재만의 규칙을 만들어서 그것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100TP 후원!]

[하긴, 딴 서재는 이미 공지 사항 다 올렸는데 여기가 좀 늦은 케이스이기는 하지.]

[100TP 후원!]

[딱히 늦은 건 아니지ㅋㅋㅋ 너무 서재가 확 커져서 그러지, 원래 생긴 지 얼마 안 된 서재는 그런 거 없다.]

“이전부터 결정했던 일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시행하게 된 거죠. 일단, 성령님들께 공지 사항 알리겠습니다. 이는 제 서재에서 반드시 지켜 주셔야 하는 일종의 규칙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펼치며 말했다.

“첫째. 서재 내에서 친목질은 금지입니다. 서로 아는 성군끼리 만났다고, 서재 내에서 끼리끼리 아는 척을 하면 다른 성령님들께 소외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절대 금지합니다.”

[성령들이 당신의 말에 집중합니다.]

“둘째. 타 서재, 컬렉터 언급에 관해서도 금지합니다. 이유는 첫 번째와 비슷합니다만, 그 이상으로 분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번째에 관해서는 나는 정말 위험하게 여기고 있다.

“괜히 이쪽의 서재에 와서 옆 동네 누구는 어떻네, 옆 동네 누구랑 견줄 만하네. 그런 비교의 말을 하면 당연히 모르는 성령님들이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는 성령들끼리 맞장구치기 시작하면 기존 서재에서 보여 주는 시화와 동떨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곳은 나의 서재고,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와 강혜림이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다른 서재의 타 컬렉터나 텔러를 언급한다? 본인 딴에는 나름 자신이 아는 걸 내뱉는다고 여기겠지만, 그것 자체가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왜 내 서재에 와서 옆 동네 누구누구보다 더하네요, 아아, 이 모습에서 옆 동네 누구랑 닮았네요. 하는 건데?

그게 다른 성령들에게 엄청난 민폐라는 걸 모르는 걸까?

“그리고 반대로 저희 쪽 이야기는 기왕이면 이쪽에서 끝내 주세요. 다른 서재에서 검후의 이야기가 어찌하니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팬덤화가 이루어지면 고정 팬층이 생기는 장점이 있지만, 팬덤 자체에도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흔히들 빠가 까를 만든다고 한다. 과도한 추종 행위는 오히려 타인에게 역으로 불쾌감을 심어 줘, 해당 팬덤을 향한 나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이상으로 팬덤의 위세가 커지고 행동이 과격해지면, 그때는 팬덤이 아닌 폭도라 불리게 되고 만다.

해골만 봤다 하면 와! 하고 외치는 인간들은 양반이다.

“저는 그것에 관해서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칼같이 블락을 먹일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타 진영 성령에 관한 이유 없는 비방이나 혐오 발언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겁니다. 제 서재는 성령님들의 소속을 가리지 않습니다. 상대가 누구네라는 이유만으로 편 가르기를 하면 곧바로 블락입니다.”

그 외에도 분위기를 해치는 선을 넘는 메시지를 할 경우나, 포인트를 후원하며 무리한 요구를 던진다거나 하는 것도 마찬가지.

어떻게 보면 조금 성령들에게 과한 요구를 하는 거겠지만, 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여지를 주면 꼭 그걸 이용해서 난동을 피우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은 그러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나쁘게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초창부터 빡빡하게 잡아 주는 게 편했다.

구독령들이 나름 절제하는 분위기가 잡히면 그때 풀어 줘도 늦지 않았다.

[일부 성령들이 당신의 말에 거세게 반응합니다.]

[100TP 후원!]

[아니! 그렇게 막 다 막으면 우린 뭐 어쩌라고!]

“저만 좋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제 서재를 좋아해서 찾아오시는 다른 성령님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서로 배려하는 거죠.”

내가 지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일부 성령들이 매우 화냈다.

[100TP 후원!]

[하. 진짜 꽉 막힌 놈이네. 아 됐다 됐어. 소문 듣고 찾아왔는데 걍 간다.]

“네. 가세요.”

나는 곧바로 녀석을 칼같이 블락 먹였다. 후원으로 직접 메시지 건네면 내가 뭐, 눈 하나 깜짝하는 줄 아나?

[대다수 성령이 감탄을 흘립니다.]

설마 후원자를 칼같이 쳐 낼 줄은 몰랐는지, 지켜보던 몇몇 성령들은 꽤 놀랐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다고 했으니, 할 뿐.

[해가 지는 바다의 백왕 1,000TP 후원!]

[이봐 젊은 텔러 양반. 좀 좋게좋게 갑시다. 어? 내가 후원도 많이 쏴 주고 그럴게.]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1,000포인트는 꽤 큰 금액이지만, 나는 거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예외를 하나씩 만들면 규칙을 짠 의미가 없었다.

빠바방!

[해가 지는 바다의 백왕 10,000TP 후원!]

[이래도?]

시끄러운 알림음과 함께 말도 안 되는 후원 금액이 터져 나왔다.

10,000포인트의 후원에 일부 성령들이 꽤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그걸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자식 봐라?’

지금 나랑 해보자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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