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9화
알의 정체에 관해서는 나도 쉽게 알 수 없었다. 이 안에 뭐가 깃들어 있는지, 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대체 어떤 녀석인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분명 범상치 않은 녀석이 이 안쪽에 잠들어 있다는 거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쪽에서 친분의 표시로 주는 선물이니, 굳이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미카엘을 통해 에덴과 연을 만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쪽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는데, 기대하지 않던 선물까지 받게 될 줄이야.
역시, 사람이나 텔러나 잘나가고 볼 일이다.
“나중에 서재에서 뵙죠.”
“예. 미카엘님도 편히 가십시오.”
[찬란한 빛을 닮은 자와의 독대를 종료합니다.]
짧은 메시지와 함께 내 몸은 다시 차원을 넘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백서련과 강혜림은 다시 나타난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내 손에 쥐어진 알을 보더니 더더욱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어딜 갔다 오신 거예요?”
“잠시 손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만난 김에 선물도 받았죠. 이겁니다.”
내가 알을 들어 보이자 그녀들의 시선이 알에 꽂혔다.
내 주먹보다 살짝 더 큰 새하얀 알은 가만히 있음에도 성스러운 기운을 풀풀 풍겼다.
“와. 은근 크네요. 뭐가 태어날까요?”
“글쎄요.”
알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려고 해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책을 통해 그 정체를 짐작하려 해도, 알은 아직 태어나기 전의 단계라 그런지 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크기를 통해 짐작할 수밖에.
“흠. 뭐, 보통 전개를 생각하면 이런 알에서 용이 나올지도 모르죠.”
“네? 용이요?”
“그냥 뻔한 전개입니다. 귀여운 용이 탄생하면 이름은 꼭 미르나 용용이라고 붙이는 게 국룰이죠. 막 태어난 애는 처음 보는 저를 주인으로 인식하고 애교를 부릴 거고요. 이제는 식상한 수준입니다.”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덴에서 용의 알을 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에덴은 용종과는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거든.
당장 그쪽은 용, 특히나 ‘붉은 용’을 불길함과 악의 상징으로 여겼다.
“뭐가 태어나든 선물을 주신 분을 생각하면 범상치 않은 존재겠죠.”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알이 꿈틀거렸다.
“어, 어어? 유현 씨! 봐요! 알이 움직였어요!”
“저도 봤습니다.”
내 손에 놓인 알이 움직이는 빈도가 늘어나더니, 끝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부화의 징조였다.
“어, 어떡해, 어떡해! 태어나려나 봐!”
“대체 뭐가 태어나려고 하는 걸까?”
서련 씨와 강혜림은 서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묵묵히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알을 주시했다.
거미줄 같은 실금은 어느덧 알 전체로 퍼져 나갔고, 이윽고 껍질이 파삭 부서지며 안쪽의 새 생명이 자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
“부……엉이?”
“부엉이네요.”
알을 깨고 나온 것은 새하얀 새끼 부엉이였다. 내 손바닥 위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덩치에 땡글땡글한 눈동자. 깃털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무슨 솜뭉치 같다.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부엉.
녀석은 그렇게 울더니, 이내 자그마한 날개를 몇 번 펄럭여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세상에. 너, 너무 귀엽다.”
“쓰다듬어 봐도 돼요?”
두 여성이 손을 뻗어 왔지만, 녀석은 기겁하며 물러나더니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이 녀석아 뭐 하는 짓이야. 어서 내려와.
“흐잉. 우리가 싫은가 봐.”
“갓 태어났으니까,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죠.”
“그런 거치고는 유현 씨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데요?”
“아무래도 저를 어미로 인식하나 봅니다.”
그보다 곧바로 부화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태어난 게 부엉이라니.
나는 다시 어깨로 내려온 녀석을 살폈다.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날개를 두어 번 퍼덕였다. 명백한 호감의 몸짓이었다.
‘하. 설마하니, 준 선물이 부엉이라니. 은근히 그쪽의 속내가 보이네.’
얼핏 보면 그냥 부엉이를 줬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미카엘의 속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카엘은 사탄을 견제하기 위해서 내게 이 선물을 건넨 것이다.
‘사탄을 의미하는 짐승은 뱀. 그리고 뱀을 주식으로 삼는 건 부엉이지.’
부엉이는 밤의 어둠마저 꿰뚫어 본다.
이것은 미카엘이 사탄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까불면 잡아먹어 버리겠다는.
게다가 이 녀석, 평범한 부엉이가 아니다. 깃털은 마치 눈처럼 새하얗고 어딘가 고귀한 기운마저 풍기지 않은가.
‘평범한 부엉이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천계의 부엉이였군.’
갓 태어난 녀석의 머리 위에는 자그마한 책이 하나 떠 있었다.
아직 이름은 없지만, 종족 쪽에 천계 부엉이라 적혀 있었다.
부엉이에게 책이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그만큼 녀석이 일반적인 짐승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거겠지.
‘천계 부엉이라면, 에덴이 올림포스와 합작으로 키워 낸 개체인가?’
이 천계 부엉이의 대표적인 녀석을 꼽으라면 올림포스의 12주신 중 하나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키우는 글라우코스(Glaucos)라는 부엉이가 있다.
부엉이가 동양에서는 흉조라 불리지만, 서구 쪽에서는 지혜의 상징을 뜻하니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유명한 철학 문구다.
녀석은 아직 성체가 아닌 새끼라서 작고 귀여웠지만, 다 자라면 꽤 볼만 해질 거다.
“어찌 됐든 앞으로 잘 부탁한다.”
부엉.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는지, 그런 소리를 냈다.
“그보다 이름을 지어야 할 거 같은데.”
“저요, 저! 뿌엉이 어때요? 뿌엉이!”
“지금 장난하십니까?”
“이잉. 귀여운 이름 같은데.”
혜림 씨의 네이밍 센스가 최악이라는 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나는 서련 씨에게 그쪽의 의견은 어떠냐는 시선을 보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이름은 유현 씨가 직접 지어 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주인이잖아요.”
“그런가요?”
부엉.
녀석도 그 말에 맞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며 호응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나라고 마땅히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대충 지을 생각은 없었다.
이름이란 해당 존재를 규정하는 일종의 틀이다. 어설프거나 우스운 이름을 지을 경우, 이 녀석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좋은 이름, 훌륭한 이름은 그만큼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백효. 네 이름은 백효(白鴞)다.”
그냥 문자 그대로 녀석을 본뜬 새하얀 부엉이라는 의미의 이름.
하지만 녀석은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몸을 들썩들썩 흔들더니, 이내 내 뺨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뺨에 부드러운 깃털이 쓸리는 기분은 생각보다 좋았다.
이렇게 백화 매니지먼트에 새로운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
“아 참. 혜림 씨. 이번에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은 정리하셨습니까?”
“아, 네.”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은 지금까지 어떤 컬렉터도 클리어 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사상세계였다. 그것을 클리어했으니,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도 엄청났다.
나도 받았지만, 승리에 가장 큰 기여한 강혜림은 나보다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스킬이나 이야기를 흡수했을 확률이 높았다.
“상태 창 좀 보여 주세요.”
“여기요.”
나는 강혜림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이름: 강혜림
특성: [고려시대 소드마스터] [신검합일] [창천검로]
칭호: [신성로마제국 무훈기사] [검후]
보유 이야기: [오를레앙의 성녀] [신의 사도] [라비린토스의 생존자] [코볼트 학살자]
스킬: [삼재검법] [알소르 용병검술] [감각 극대화] [밝은 눈] [대(對)여진검법] [근력강화]……(더 보기)
-스탯-
힘: 하급
민첩: 중급
체력: 하급
지력: 하급
마력(기): 하급
“흐음.”
강혜림의 상태 창을 본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일단 특성부터 해서 칭호, 보유 이야기, 스킬까지는 딱히 뭐라고 할 건 없었다. 오히려 지금 수준을 생각하면 과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딱 하나 내 신경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스탯 부분이었다.
“왜 그러신가요? 어, 어디 이상한 거 없죠?”
“아, 네.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나는 스탯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탯의 부분이 상당히 모호해서요. 지금 혜림 씨의 신체적인 능력을 생각하면, 이렇게 하급, 중급처럼 단순하게 나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혜림은 텍스트를 흡수함으로써 신체 능력이 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증가했다.
겉으로는 가녀린 여성이지만, 단순한 근력만 따진다면 근육질의 남성은 가볍게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다. 아마 맨손으로 벽돌도 쉽게 부수지 않을까?
그런데도 스탯에 표기되는 그녀의 수치는 하급이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이상한 수준이 아니라 문제가 큽니다. 이렇게 스탯을 어중간하게 표기할 경우에, 텔러는 물론이거니와 해당 컬렉터도 자신의 정확한 수준을 짐작할 수 없게 돼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내 컬렉터의 수치를 직접 목도하니 심각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알파벳으로 랭크를 매기는 게 속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다. 모든 스탯 수치를 상중하로만 나눈다면 분명 문제가 커진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해.’
자신의 특성이 주인공인지 주연인지 조연인지, 아니면 엑스트라인지마저도 상태 창은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정보를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생에서, 종말 이후에 대대적으로 상태 창의 개편이 있기는 했다. 그때는 수치도 명확하고 세세하게 나뉘었던 거로 기억한다.
‘어쩌면 그거일지도.’
나는 왜 지구의 컬렉터들이 매너리즘에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이는 상태 창 표기의 영향도 꽤 컸다.
강혜림의 힘이나 체력이 하급이라 떠 있다는 건, 그녀보다 약한 컬렉터도 하급이라는 소리.
문제는 제일 약한 컬렉터의 근력과 강혜림의 근력의 편차가 꽤 크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똑같이 하급으로 묶인다면 얼핏 봐서는 둘의 차이를 쉽게 짐작할 수가 없다.
만약, 갓 컬렉터가 된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가 열심히 노력해서 텍스트를 흡수하고,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고 치자. 그가 자신감을 품고 상태 창을 열었을 때 보는 것은, 이 전과 똑같은 수치의 스탯.
과연, 그 컬렉터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 더 노력해야겠다! 이럴까?
천만에.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수치를 보고, 오히려 절망할 게 분명했다.
‘의도적으로 수치를 애매하게 해 놓아서, 컬렉터들의 의욕을 저하하는 거야.’
열심히 노력해도 스탯에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 신체 능력이 상승해도 시스템이 알려 주는 수치는 변함이 없으니까.
심지어 스킬이나 이야기의 소화도도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기에, 그만큼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시스템이 이렇게나 불친절한 것일까?
‘무언가가, 이곳에 개입해 있어.’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확실했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 계속 이런 상태 창으로 유지되다가 종말 직후 급격하게 개편한 것만 봐도 그렇다.
스탯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나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인제 와서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상해.’
지금까지 종말은 컬렉터들의 부주의가 낳은 재앙이라고만 여겼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종말이 찾아온 이유 중 하나에는 컬렉터들의 직무유기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 컬렉터들이 그렇게 된 것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과정을 뒤에서 몰래 주도하고 있었다면?’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속단하지 말자.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이게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하지만, 주의해서도 나쁠 건 없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나의 이 터무니없는 억측이 사실이라면 그때는…….
‘역으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겠지.’
과연 그만한 종말을, 일개 개인이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설사 다수가 관여했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만에 이룩할 수 있을까?
분명, 그 결과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력과 시간,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 고민하고 고생해서 하나하나 쌓아 가는 결과물.
그 피땀 어린 노력의 결정체를 보기 좋게 깨부순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즐거워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아아. 부디.’
혹시 모를 종말을 추종하는 자들아.
이 세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자들아.
최선을 다해 움직여다오.
그래야만.
‘내가 잡아먹을 즐거움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