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8화
[찬란한 빛을 닮은 자]
그 이명을 확인한 나는 표정을 쉽사리 관리할 수 없었다.
‘설마 했지만, 이쪽에서 벌써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찬란한 빛을 닮은 자라는 이명은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어지간한 컬렉터들도 그 진명을 말하면 다들 알아먹을 것이다.
빛의 어전에 임한 사자이자, 에덴의 4대 천사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 부를 수 있는 자.
성 미카엘 대천사(Sancte Michael Archangele)
사탄과 맞먹는 성령이 지금 내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만나서 대화를 한번 나누자는 소리였다. 공손한 어투로 이쪽에 독대를 요청하는 그의 태도는 1세대 성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예의가 발랐다.
전생에서는 만나고 싶어도 절대 만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곳에 있던 존재.
그가 지금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이유는…… 뭐,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바로 알겠군.’
바로 사탄 때문이다.
당장 그들의 전승만 살펴도 확실하다. 미카엘은 예로부터 사탄과 숙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사탄이 내게 관심을 갖고 아는 사이라고 하니, 그것을 확인하고자 연락을 취한 것이겠지.
‘흐음. 그런 거치고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솔직히 사탄이 지난번 크게 아는 척을 하는 순간, 나는 에덴의 성령들에게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대성군 에덴에서 가장 최적화된 성령을 통해 내게 연락을 취했다.
‘솔직히 대성군의 입장을 생각하면 적당히 2군, 천년왕국(Millenarism)쪽 성령을 통해 내게 연락을 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1군의 천상낙원(天上樂園)에서도 손꼽히는 자가 연락을 취하다니.
이건 아무리 나라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여러분.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네?”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거든요.”
[찬란한 빛을 닮은 자가 당신에게 독대를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나는 곧바로 그러겠다며 버튼을 눌렀다. 독대 요청은 가호와 전혀 관계가 없으니 상관없었다.
직후 나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이동했다. 단순히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차원의 벽을 뛰어넘어, 그 위치조차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아득한 공간이었다.
“여기가…… 독대 장소인가.”
성령들과 텔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독대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
[제네시스 시스템]이 주관하는 이 장소는 전생에서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최도윤도 세 번밖에 안 간 거로 알고 있었는데.
“어서 오십시오.”
그 끝을 알 수 없는 백색의 공간, 그 한편에서 누군가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시선을 돌리니 새하얀 의복을 입은 천사가 있었다.
천사들을 상징하는 하늘거리는 백색의 옷과 등 뒤에 펼쳐진 새하얀 날개. 거기에 더해 마치 태양빛을 그대로 짜 올린 것 같은 찬란한 금발까지.
아름다운 얼굴은 그 성별을 쉬이 짐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가느다란 목소리도 마찬가지.
저게 바로 미카엘의 아바타였다.
“이쪽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쪽이야말로 설마 그 에덴에서 독대를 신청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눈앞의 존재는 사탄의 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카엘.
대성군 에덴에서도 전투 쪽으로 놓으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상위 성령이었다.
“앉으시죠.”
미카엘의 앞에는 언제 놓여 있었는지,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나의 모습에 꽤 의외라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의 벽옥색 눈동자가 내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놀라지 않으신 겁니까?”
“놀라기는 했죠. 설마하니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 저를 만나겠다고 찾아오셨는데, 누가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 치고는 꽤 자연스러워 보이셔서 그렇습니다.”
그, 혹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왜 내 앞에서 겁먹지 않는 것이냐는 거다. 물론 비꼬거나 그런 게 아니다. 미카엘은 기본적으로 선(善)성향의 성령이다. 저건 순수한 의도로 궁금해하는 거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남들과 다르게 가호마저 포기하고 싸우길 택한 괴짜입니다. 조금 무례해 보이시더라도 용서해 주시길.”
내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군요. 저도 차라리 허물없이 대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말을 나누면서 느끼는 건데, 미카엘은 전승대로라고 해야 할까. 어딘가 똑 부러지는 우등생 타입이었다. 말투는 딱딱하지만, 예절을 차리고 있었고.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고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그 능글맞은 사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대척점에 서 있군.’
물론 저렇게 예의가 발라도 전투에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무섭게 날뛰는 건 전승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일단 제가 강유현 텔러를 이렇게 부른 것은, 떠도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겁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뭐,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카엘의 말에 수긍했다.
대성군 판데모니엄과 나름의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미카엘이 내게 묻고 싶은 것은 바로 그거겠지.
“일단은 오해라고 해 두죠. 저는 판데모니엄과 손을 잡는다는 둥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거짓……은 아니군요.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죠.”
“하지만, 좀 이상하네요. 저는 오히려 미카엘님을 필두로 한 에덴에서, 제 서재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그런 말도 나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소문에 휘둘리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제가 내린 가장 올바른 방안입니다. 그리고 확인을 해 본 결과, 소문과 다르게 당신은 판데모니엄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죠.”
“뭐, 그러긴 하죠.”
“하지만, 그 사악한 자와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하더군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이라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카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직접 만나서 대화해 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갑자기 주가를 올리는 텔러의 이름은 저도 익히 들어 봤으니까요. 물론 그 사악한 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요.”
요컨대 이거다.
너는 그 사탄과 무슨 사이냐! 혹시 긴밀한 관계는 아니겠지?!
나는 조금 난감함을 느꼈다.
“그분, 음. 말을 낮추는 게 좋을까요.”
“편하신 대로 말해도 됩니다. 텔러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아, 네. 아무튼. 사탄님과 만나게 된 것은 입사식에서입니다. 그때 자그마한 연이 닿아서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죠. 인연(因緣)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않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오죠. 사탄님과의 만남도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생명의 열매까지 줬다는 겁니까?”
“이런 말 하면 좀 너무 잘난 척하는 거 같은데, 그쪽에서는 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지라. 서재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죠.”
후원자를 거절했다는 대목에서 미카엘은 꽤 놀란 기색이었다.
“어째서죠? 당신 같은 텔러들에게 적어도 그자의 후원은 매우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까?”
“중요하죠.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과 비교하면 부족합니다.”
“판데모니엄 군주의 후원이 부족하다고요?”
“존재마다 추구하는 것과 그 가치는 다른 법이죠. 적어도 제게는 그분의 후원보다도 제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뭐, 그쪽에서는 이렇게 튕기는 것이 신선하다며 계속 좋아하는 것 같지만요.”
이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리고 미카엘 정도라면 내가 한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군요. 역시 소문의 진위 여부는 직접 만나야 아는 거네요.”
“만족하셨습니까?”
“예. 당신이 판데모니엄과 손을 잡지 않았다는 것은 이로써 확실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염치 불고하고 묻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저희 에덴의 후원을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
역시나.
대체, 왜 이 말이 안 나오나 했다.
그냥 성령도 아니고 미카엘이 찾아왔다는 부분에서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들은 단순히 나와 판데모니움의 관계에 관해서 의심하는 것 이상으로, 나라는 텔러에게 꽤나 큰 관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그러지 않고서야 사탄의 대척점에 선 미카엘이 내게 독대를 요청할 리가 없었으니까.
‘에덴이라.’
대성군 에덴은 확실히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이미지가 매우 좋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며 혼성계에서도 가장 선한 성령들이 많은 곳을 꼽으라면 누구나 에덴의 이름을 꺼낼 게 분명했다. 뒤에서도 크게 나오는 말이 없을 정도로 조직이 깨끗했다.
이 이미지라는 것이 사실상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에덴의 존재는 크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까 말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따로 추구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그 어떤 후원자도 두지 않을 생각이라서요.”
내가 괜히 사탄의 제의를 거절한 것이 아니다. 에덴의 제안은 구미가 당기지만, 그렇기에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는 제 서재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 말은, 당신이 보여 주려는 이야기는 선뿐만 아니라 악(惡)조차도 담겠다는 건가요?”
“그렇게 단순하게 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 이야기가 그 어떠한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완벽한 자유를 추구합니다.”
설사, 내가 나아가는 이야기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색다른 이야기일 겁니다.”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남들이 정한 길이 아닌, 오직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대놓고 선포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 길만 걸어온 미카엘에게 있어서 내 말은, 어떻게 보면 이단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미카엘은 자신의 선함, 빛의 훌륭함만을 믿고 살아온 올곧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 올곧음이야말로 정말 이 세상의 진리라고 볼 수 있을까?
올곧은 것은 좋다. 하지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굴곡이 있고, 때로는 휘어지는 삶도 필요한 법이다.
너무 바르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가 없으니까.
“…….”
미카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주시했다.
황금색 눈동자는 나의 진위를 읽으려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말이 정말인지, 단지 당장에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지어낸 말인지.
궁금하겠지. 궁금해 미칠 것이다.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저는 사탄님께도 똑같은 이유로 제안을 거절했었죠.”
“그렇습니까.”
“건방지다고 느끼셔도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미카엘님의 자유니까요. 하지만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어떤 길을 가려는지 지켜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의 동요라는 것이 드러났다.
나는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이전이라면 절대로 벌일 수 없는 여유와 배짱이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에덴의 제안마저 거절한 텔러, 그리고 그가 이끄는 서재가 과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어떤 끝을 맞이하는지.”
내 말에 미카엘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무욕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미카엘 또한 [이야기]를 바라는 성령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성령들, 특히 미카엘이나 사탄처럼 정상에 선 성령들은 자신에게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이야기에 환장한다.
아마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은 이미 미지를 향한 이야기를 뜨거운 흥미로 들끓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미카엘이 입을 열었다.
“에덴과 판데모니움마저 동시에 품어 보이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씨익 웃어 보였다.
이 모든 판단은 결국 당신의 생각에 맡기겠다는 뜻.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미카엘이었다.
“알겠습니다. 저희 에덴은 당신의 뜻을 존중하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만들어 가려는 이야기, 당신이 나아가려는 길. 저 또한 그것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니 제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도록 하죠.”
“얼마든지. 제 서재는 그 어떤 성령님들이라도 차별하지 않고 환영합니다.”
나의 서재에 새로운 시청령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저의 개인적인 독대에 응해 주신 부분에는, 따로 감사를 드리도록 하죠.”
“감사라고요?”
“이대로 대화만 나누고 헤어진다면, 에덴의 이름이 울죠.”
미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자그마한 알을 하나 건네줬다.
어딘가 신성한 기운마저 흘러나오는 새하얀 알이었다.
“제 개인적인 선물입니다. 받아 주시죠.”
나는 그 알을 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최대한 억눌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