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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6화 (3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6화

도망친 컬렉터들은 사상세계 입구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려서 이 이상 뭘 할 수가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들이 자리에서 죽치고 남아 있는 것은 아직 사상세계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계속 유지되고 있지?’

‘보통 이쯤 돼서 닫힌 다음에 한참 지나서 다시 열려야 할 텐데.’

생각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의아했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는 사상세계 입구를 뚫어지라 주시했다.

“그 검후라는 여자, 아직 안 나왔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죽은 거 아니야?”

“바보야. 죽었으면 실패 처리 돼서 입구가 바로 닫히는 거 몰라?”

“잠깐만, 저거 아직도 열려 있잖아. 그렇다는 건…….”

강혜림이 아직도 살아서 안쪽에서 싸우고 있다는 소리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부 컬렉터들의 마음속에서 ‘설마’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진짜 성공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대부분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적들이 15만이었어. 그것도 최소 15만.”

“성벽도 무너지고, 그 많은 적을 어떻게 막으라고? 가능할 리가 없잖아.”

“상위 컬렉터가 와도 저건 못 깨.”

우리가 못했으니, 그녀도 못 할 거다.

다들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만약에 성령들이 남아서 그 모습을 봤다면 혀를 차며 등을 돌렸을 정도로 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깥에서 대기하던 컬렉터들의 불안감은 점차 늘어 갔다.

그들을 데리러 온 클랜 멤버나 매니저들도 현장의 긴장감을 읽고 숨을 죽인 채 흘러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사상세계는 아직도 닫히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두가 지쳐서 떠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쯤 이변이 일어났다.

“어, 어어?”

“입구가 변하고 있어!”

몇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단 사상세계의 입구가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단순히 사상세계가 닫힌다고 보기에는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불안해하는 컬렉터들의 시선이 입구에 집중되는 사이, 그들과 계약을 맺은 몇몇 텔러들이 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제길!”

“이 병신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텔러들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의 계약 컬렉터에게 소리 질렀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보다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텔러는 이를 갈았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바깥으로 나온 것은 사상세계가 끝나고 [통합 구역]이 사라졌기에 강제로 튕겨 나간 것이었다.

그것은 즉슨.

“저 안쪽에 남은 컬렉터가 사상세계 클리어에 성공했단 말이다!”

그 외침은 현장에 있던 모두에게 울려 퍼졌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젠장. 귓구멍이 막혔냐? 너희들이 겁에 질려서 도망친 사이, 저쪽은 끝까지 남아서 저 빌어먹을 사상세계를 끝내 버렸다고!”

“뭐?!”

“그럴 리가!”

불신과 경악이 좌중에 맴돌았다. 그러나 진실을 전한 텔러는 아직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자신의 컬렉터가 너무나도 한심하게 비쳤다.

“그렇다면 지금 혼자서 그 엄청난 난이도의 사상세계를 클리어 한 거야?”

“혼자는 아니야. 둘이었지.”

“둘? 둘이라니. 여기에 남은 사람은 그 검후 빼고는 없는데.”

“젠장! 나도 모르겠다. 내가 본 게 현실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아.”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 광경을 본 텔러들은 여전히 복잡한 표정이었다. 과연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미친 짓? 자살행위? 혹은 새로운 길의 개척?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사태로 인해 혼성계가 아주 시끄러워질 거라는 점이었다.

“나, 나온다!”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에 사상세계 입구로 향했다.

회전하는 입구의 속도가 한계점까지 도달하는 순간, 안쪽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 * *

[사상세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클리어 했습니다.]

[10,000TP를 획득했습니다.]

[사상세계의 이야기가 당신들에게 깃듭니다.]

[칭호 ‘무훈 기사’를 획득했습니다.]

[최초의 기사 작위 수여!]

[보상으로 5,000TP를 획득했습니다.]

[‘전장의 승리자’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신의 사도’ 이야기를 획득했습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

…….

사상세계의 소멸과 동시에 우리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보상들.

최초 클리어 업적에 더불어 단둘이서 클리어 했기에 거기에 받는 보너스와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덕에 성령들이 추가로 후원해 주는 포인트까지.

이전 4개나 되는 사상세계를 클리어 했던 건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이거라면, 8만이 넘는 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이 있군.’

순식간에 투자한 것에 맞먹는, 아니 다른 보상까지 합친다면 투자한 것 이상을 돌려받은 셈이었다.

무엇보다.

‘서재가 엄청나게 성장했어.’

[현재 시청령: 1,438명]

[현재 구독령: 1,006명]

정사원에게 있어서 가장 어렵다는 시청령 1,000명 돌파는 진작 해냈다.

그 이상 마의 벽이라고 불리는 구독령 1,000명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어지간한 대리급 텔러도 구독령을 저렇게 많이 유치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대리를 달지도 못했는데 해낸 것이다.

그만큼 내가 보여 준 시화가 성령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소리다.

‘다른 서재 녀석들은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겠군.’

하지만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애초에 이 합동 시화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서로의 서재를 견제하고, 자신의 서재를 키우기 위한 경쟁. 그들은 결국 도태되어 밀려난 거고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녀석들의 서재에 있는 성령들을 끌어모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한 것은 단순히 강혜림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성령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짓을 벌였지.’

텔러가 가호를 포기하고 직접 현장에서 뛰다니.

아마 이 말을 들었다면 그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고, 나는 그런 짓을 저질렀다.

세태에 완전히 반하는 이단자에 가까운 행위.

당연히 성령들의 시선을 모으기에는 차고 넘쳤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내 서재에는 성령들의 후원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구독한 것도 모자라 내게 후원자가 되겠다고 아양을 떨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성령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의 심정을 어찌 내가 모를까? 미안하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눈을 부릅뜹니다.]

내가 신호를 주자 사탄이 반응했다.

그가 서재를 쓰윽 훑자 당연히 후원자가 되겠다고 외치던 성령들이 입을 쑥 다물었다.

사탄의 존재는 그만큼 거대했다. 애초에 그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성령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판데모니움 소속인 그가 떡하니 존재하는 한 내 서재에 후원자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성령들은 없을 것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가 1,000TP 후원!]

[이렇게 된 거 도둑고양이가 못 오게 제가 후원자가 되는 건 어떨까요?]

“하하. 농담도 잘하셔라. 거절하겠습니다.”

내가 웃으며 거절하자 사탄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당당하게 거절한 나의 태도에 다른 성령들이 숨을 집어삼키며 놀라워했다. 사탄은 그런 존재였다. 같은 성령마저도 두려워하는 태초의 악.

“나가죠. 혜림 씨.”

“아, 네.”

우리는 그렇게 클리어 된 사상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풍경이 변하고 처음 들어왔던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사람들까지.

우리를 향하는 그들의 시선은 복잡했다.

‘그야 그렇겠지. 자기들이 못 할 거라고 도망쳤는데, 우리가 보란 듯이 깨 버렸으니까.’

결국 저 컬렉터들은 자신의 무능을 입증한 꼴이었고, 역으로 나와 강혜림을 띄워 주게 됐다.

“이, 이게 대체…….”

“살아서 나오다니. 정말로 클리어 했다는 소리잖아.”

“사기 아니야?”

“그보다 옆에는 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데.”

나와 강혜림은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공터를 벗어났다.

앞길을 막는 사람들은 없었다.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치른 우리의 모습에, 다른 컬렉터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 줬다.

그것은 다른 텔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를 복잡한 시선으로 보기만 했다.

그중 나한테 한 소리 듣고 깨갱대던 녀석들도 보였다. 놈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시청령을 빼앗은 나를 향한 분노를.

누군가는 가호마저 벗어던진 나를 향해 동정과 놀라움을.

누군가는 시화를 대박 낸 나를 향한 질투를.

나라는 존재는 하나였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개였다.

내가 이것을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과연 아는 녀석이 있기라도 할까?

적어도 나를 제대로 봐 주는 녀석은 없다는 사실이 못내 우스워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 * *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지금까지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사상세계. 그것을 다수가 아닌 단둘이서 클리어 했다는 소문이 쫙 퍼진 것이었다.

주인공은 최근에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검후였다.

검후에 관한 소문은 이 전부터 나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고작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누구도 클리어 하지 못해서, 사실상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던 사상세계.

그곳을 50명도 아니고 둘이서 끝냈으니, 당연히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클리어 한 사람이 둘이라는데, 하나가 검후면 나머지 하나는 대체 누구인가?

당연히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컬렉터들은 유현의 존재를 몰랐다. 반대로 유현에 관해 아는 텔러들은 굳이 입을 열어서 그의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다.

유현이 조금이라도 이름이 나돌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견제였다.

당연히 하계에서는 유현의 이름이 퍼지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검후와 함께 움직였던 의문의 남성이라는 소문만이 희미하게 퍼질 뿐.

하지만, 중계와 그것을 뛰어넘는 상계는 달랐다.

-텔러가 가호를 포기하고 컬렉터와 함께 싸웠다!

이 소문은 이미 지구에서 시화를 선보이는 텔러들 사이에서 쫙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지구의 시화를 즐기는 성령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소식을 들은 성령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제네시스 네트워크, 성령 게시판이 시끄러워졌다.

[뭐? 텔러인데 직접 싸운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스스로 가호마저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더라.]

[미쳤네. 진짜 미쳤어. 그래서 그게 누구라고?]

[지구에 그런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고? 지금 그게 사실이야? 초반에 보다가 재미없어서 신경도 안 썼는데, 무슨 일이래?]

원래 지구는 성령들이 눈여겨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1세대 성령들이 ‘씨앗’을 제공해 준 것, 이야기의 매장량이 대단한 것 치고는 컬렉터들의 수준이 낮았고 보여 주는 시화도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지구의 시화는 성령들의 관심이 떠나고 빠르게 식어 가는 추세였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현이 벌인 짓 때문에 성령들의 관심이 다시 지구로 집중됐다.

[다 똑같이 파밍만 반복하는 사이에, 유일하게 혼자서 사상세계를 하나씩 점령하는 컬렉터가 있다.]

[심지어 재능이 엄청 뛰어나고, 그 외모가 빼어나서 꽤 인기를 끌고 있음.]

[이번에 텔러가 나서서 싸운 것도 이 컬렉터의 계약자라 하더라.]

[미친 듯한 재능을 지닌 컬렉터와 미쳐 버린 텔러의 조합인가. 군침 도네.]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하면 안 됨. 그 강유현인가? 그 텔러에 후원자들이 줄을 섰는데, 판데모니움에서 이미 눈독을 들인 거 같더라.]

[그거 진짜임?]

[나 그때 봤었는데 진짜였음. 판데모니움 일곱 군주 중 하나인 ‘가장 어두운’이 나타났었다니까? 손발이 다 떨리더라.]

[헐 그 딥 다크가? 어지간한 시화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로 유명하잖아.]

[웃긴 건 정작 그 딥 다크가 해당 서재의 후원자가 아니라는 거. 심지어 놀라운 게 뭔지 알아? 딥 다크가 후원자 제안을 했는데 텔러가 그걸 거절함.]

[미친;; 그 텔러 아직 살아 있음?]

[오히려 재밌다며 웃던데? 아무튼 딥 다크도 관심을 가질 정도면 그냥 끝났다고 봐야지.]

성령들의 주제는 유현의 서재에서 사탄의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사탄이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령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사탄.

이명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웃는 자.

그가 누구던가? 대성군 판데모니움의 일곱 군주 중 하나이자, 시화의 질을 제일 따질 정도로 이야기를 보는 눈이 높은 성령이 아니던가.

그랬던 그가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후원자를 자처하겠다고 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성령들은 이 거인의 발자취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은 같은 판데모니움 내부에서도 마찬가지. 그 엉덩이 무거운 사탄이 움직였다? 당연히 호기심을 품는 성령들이 확 늘어났다.

그 이상으로 더욱 격하게 반응하는 곳이 하나 있었다.

판데모니움의 오랜 숙적이자 그들을 가장 견제하는 대성군.

에덴이 움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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